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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던 조창.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9곳의 조창(漕倉: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을 두었는데, 가흥창은 그 중의 하나이다. 충주는 남한강이 흘러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남도 수군에 12창을 설치할 때 덕흥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덕흥창에는 판관을 두고 충주 부근의 조세를 수납하여 경창으로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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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두동에 있는 농업 특산품 제조업체. 충주의 농업 특산품을 가공한 각종 식품을 생산·판매하여 농가 소득을 증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2005년 지역의 농업 특산품을 2차 가공 식품으로 제조하기 위하여 연구 개발을 시작하였다. 2006년 6월 사과를 원료로 비타민을 생산하는 공법을 자체 개발하여 ‘충주사과비타민’이란 브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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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중앙공원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1442년(세종 24) 경주에 있던 「태조 영정」이 충주의 동루에 잠시 봉안되었는데, 누각이 좁고 기울어져 충주목사 김중성(金仲誠)이 “오늘날 어용(御容)이 잠깐 멈추신 것은 참으로 이 고을이 만나기 어려운 영광이니 신자(臣子)로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받들어야 할 것이다”라며 경영루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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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자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는 신라 초기의 6촌(6부) 중 알천 양산촌을 다스리던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한다. 통일신라 말기 이알평의 36세손으로 진골 출신인 소판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해서 고려 말기 이거명의 16세손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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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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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 지도.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지도, 관방지도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전국지도는 한 장의 종이에 넓은 지역이 취급되어 있기 때문에 군현지도에 비해서 생활 공간의 내용이 적게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른 전국지도에 비해서 『청구도(靑邱圖)』·『동여도(東輿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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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 관가의 건물 현황. 충주는 1395년(태조 4) 충청감영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감영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할 때 충주부가 되었으며, 1896년(고종 33) 13도제를 실시할 때 충청북도의 관찰사부(도청)가 되었다. 1908년(융희 2) 충청북도 관찰도(도청)가 청주로 옮겨갈 때까지 충청북도의 중심 도시였다. 따라서 많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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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예몽·김기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문왕의 셋째 아들로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무진주가 광산으로 개칭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 삼중대광에 오른 김길(金佶)로부터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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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극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신라 내물왕 대에 내사령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한다. 이자성은 원래 칠원(현 경상남도 함안)을 봉토로 갖고 있던 칠원백이었으나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불복하였으므로 왕건이 이자성의 신분을 낮추어 회안의 호장으로 삼았다. 그 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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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의정부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조부는 우군동지총제 권천(權踐)이다. 아버지는 영춘현감 권첨(權瞻)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이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능하여 ‘무동(武童)’이란 별칭을 얻었으며 1453년(단종 1) 4월에 단종이 모화관에서 베푼 무과 시험에서 약관의 나이로 장원 급제하였다. 같은 해 10월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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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할아버지는 권심(權深)으로 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을 지냈다. 아버지는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권오(權悟)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었고, 1606년(선조 40) 음보로 광릉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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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洞). 증조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이며, 조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 권근(權近)이다. 1406년 권천과 허웅 등이 대간으로 있을 때 박저생(朴抵生)의 옥송(獄訟)을 체류시킨 죄로 허웅 등은 외방으로 귀양 갔으나 권천은 공신의 아들이라 귀양을 면하였다. 1411년(태종 11) 다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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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한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는 신라 때 제6관등 아찬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유삼재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고려에 불복하므로 태조 왕건이 유삼재의 신분을 낮추어 기계(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의 호장(戶長)을 삼았다. 이후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삼았고, 후대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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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회백(晦伯). 증조부는 영의정 김철산(金鐵山)이고, 할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이다. 아버지는 좌참찬을 지낸 김극복(金克福)이며, 처부는 홍경주(洪景舟)이다. 1519년(중종 14) 현량과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부정자를 지냈으며 1524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1525년 형조좌랑·예조참의·도승지·경기도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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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김생이 남긴 글씨를 집자한 비문을 모은 탁본집. 김생(金生)[711~791]은 신라의 명필이자 한국 서예사에서 신품사현(神品四賢)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충주 출신의 서예가이다. 충주 곳곳에 김생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여 오고, 김생이 살았다는 충주 김생사지도 남아 있다. 충주시민의 축제인 우륵문화제 때 충주의 5현으로 향사하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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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통례문부사·지제고를 지낸 김오(金珸)이다. 1370년(공민왕 19)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였다. 어머니가 별세한 후 3년 시묘를 살아 정려를 받았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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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공직 생활을 한 이철재의 회고록. 『나의 삶 나의 길』은 충주신문사 출판사업부에서 발행한 이철재의 회고록이다. 이철재는 1969년 10월 중원군 농촌지도소에 발령을 받은 후 6년여 동안 근무하였다. 그후 충주시청에서 10여 부서의 계장을 역임하고 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문화공보실장, 사회진흥과장, 문화관광담당관 사회과장, 농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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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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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근배가 그동안에 쓴 논설을 묶은 책. 『내릴 수 없는 깃발』은 최근배가 20대부터 50대까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쓴 논설문들을 가려 뽑아 2001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발간한 논설집이다. 1권 1책의 국판으로 가로는 15㎝, 세로는 22.5㎝이다. 면수는 총 370여 면이다. 제1장 지방자치 17항목, 제2장 지역개발·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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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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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국제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 가정. 우리나라 사회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1980년 장기 체류 외국인은 40,519명에 불과했다. 1997년 386,972명으로 늘어나고 2007년 9월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숫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4913만 명의 2%에 해당된다. 2003년 한국 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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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의 옛 이름. 목계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촌락이 아니고, 목계가 가지는 자연 지리적 이점에 의하여 조선 후기인 1750년 이전에 이미 내륙의 상항(商港)으로 강을 내려오는 어염선이 정박하며 세를 내는 곳이 되었다. 한강의 가항구간 중 중간에 위치하여 육지와 바다의 물산이 집산될 수 있는 지점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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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용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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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정국군 박위(朴威)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효력부위 박성구(朴聖耈)이며, 할아버지는 박필하(朴必夏)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박인원(朴仁源)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773년(영조 49) 문과에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1775년 자여도(自如道) 찰방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다 역호(驛戶) 권치문(權致文)을 죽여 귀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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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정국군 박위(朴威)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박윤정(朴允貞)이고, 조부는 박응규(朴應奎)이며, 아버지는 박대현(朴大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 병과 제1,724인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갔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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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문정공(文貞公) 박승휘(朴承輝)이며, 아버지는 공조참의 박세병(朴世秉)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박용대는 1865년(고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86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書)에 제수되었다. 1871년 홍문관부수찬이 된 뒤 평북감시(平北監試), 경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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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박시환(朴時煥)이며, 할아버지는 효력부위 박성구(朴聖耈)이다. 생부는 박필하(朴必夏)로, 박필한(朴必漢)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남궁씨이다. 1653년(영조 29) 문과에 을과 제4인자로 급제하여 1757년 성균관학록, 1759년 성균관전적 겸양현고주부, 1758년(영조 34) 성균관학유, 17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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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인 장기덕의 수상집. 저자가 교육자, 향토사학자로 활동하면서 그 동안 쓴 글을 모아 발간하였다. 판형은 국판이며 총 366쪽으로 모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교단산고, 2편은 세월낙수, 3편은 민속고금, 4편은 향토방보, 5편은 기필자화상이다. 1편은 교육 일선에서 평생 동안 느끼고 생각했던 일들을 모았다. 2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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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진 사금과 석금 채광. 사금은 충청북도 지역의 여러 곳에서 나고, 사금의 채굴허가 광구 면적은 96만 2,392평에 연장 448정 56칸으로, 충주·음성·연풍·진천·문의·청주·옥천 등 7개 군내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몰래 남굴(濫掘)되는 곳이 많았다. 충주 지역에서는 노은면과 주덕면에서 사금이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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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성문화연구회가 고문헌에 수록된 충주 관련 기사를 모아 발간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문헌에 충주 관련 기사가 기록되어 있으나 사료를 쉽게 구할 수 없고 구한다 해도 찾아보기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충주시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충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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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김왕기가 편찬한 문화 유적 답사기. 『산수화에 다소곳 숨어 있는 중원문화 이야기』1은 2004년 김왕기가 미덕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주 등 중원문화권의 이야기를 담아서 편찬한 역사책이다. 그 후 2005년과 2006년에 김왕기는 충주·제천·단양·괴산·음성 등으로 현지조사를 한 결과를 계속해서 2, 3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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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경찰공무원. 석대준은 본관은 충주(忠州)로, 충주교현공립보통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1944년 1월 20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경찰로 근무했다. 8·15광복 직후인 1946년 3월 7일 제4관구경찰청(충북) 경무과에 근무하였고 1949년 6월 30일 경감으로 승진한 후 1950년 8월 20일 잠시 경찰을 떠났다. 195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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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갖는 세거 성씨. 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는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 장군, 촌주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귀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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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축동·금병에 있는 순흥안씨 집성촌. 잠병리(岑屛里)는 본래 충주군 가차산면 지역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잠리, 사천리, 사랑리, 하담리와 상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잠병리가 되었다. 법정리인 잠병리는 3개의 행정동(축동·금병·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순흥안씨 잠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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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 본적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신말평(申末平)이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신상(申鏛)이다. 아버지 생원 신화국(申華國)과 어머니 파평윤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녀로는 영의정을 지낸 첫째 아들 신경진(申景禛), 훈련도정을 지낸 둘째 아들 신경유(申景裕), 지돈녕부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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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말 고창(현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의 성씨는 본래 김씨였으나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권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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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제정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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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과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설치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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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예성군에 봉해졌던 충주양씨 시조. 본관 충주(忠州). 탐라국왕 양을나(梁乙那)의 후손으로 충주양씨의 시조이다. 양능길(梁能吉)은 고려가 건국되고 후삼국이 통일될 때 공을 세워 삼중삼한대장군에 오르고 예성군에 봉해졌다. 본래 양능길은 제주양씨였으나 예성(중원소경의 별칭)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후손들이 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940년(태조 23) 중원소경이 충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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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주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양성이씨는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한다. 이수광은 송나라 출생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하여 양성군에 봉해지고 이후 후손들이 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양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이부상서를 역임한 이신정(李臣靖) 등 20여 명의 인물을 배출했고,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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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초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양천허씨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한다. 허선문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의 30세손으로 공암현(현 김포시)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어 거부가 된 인물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식량과 마필을 지원하여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공을 세워 공암촌주에 봉해지면서 공암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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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연수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사당터.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안종(安宗) 왕욱전(王郁傳)에 성황사(城隍祠)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996년(성종 15) 이전에 이미 성황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황에서 ‘성(城)’은 성벽을, ‘황(隍)’은 성벽을 둘러싼 공호(空濠, 물이 없는 해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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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은을 시조로 하고 정경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영일정씨는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한다. 정종은은 신라 6촌 중 취산진지촌의 촌장 지백호의 후손으로 신라 태종무열왕 때 사정부간관을 지내고 김유신과 함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정종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현 호장을 지내고 영일백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일을 본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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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봉방동 예성문화연구회에서 발행하고 있는 학술지. 1978년 9월 예성동호회(현 예성문화연구회)를 조직하여 충주 지역에 산재한 문화재를 보호하고 확인되지 않은 문화유적, 성곽, 절터, 고분 등을 찾아 답사한 발견기 또는 답사기 등을 모아 『예성문화』로 엮었다. 판형은 4×6배판(가로 188㎜, 세로 254㎜)이다. 제1호 50쪽으로 시작하여 제24호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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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김상현이 중원군의 역사 및 문화 등에 관하여 기록한 향토지.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명관이 지방을 다스리려면 지방의 편리함과 불편함, 생업과 지역의 역사와 풍속에 정통해야 했다. 그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지방지를 만들어서 성종 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인조 때『호서승람(湖西勝覽)』, 영조 때 『여지도서(輿地圖書)』, 정조 때 『충청도읍지(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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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이고, 할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관의 딸이다. 1558년 19세 때 경상남도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으로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고,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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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증조할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우팽(禹伻)이며, 할아버지는 밀직제학을 지낸 우복생(禹福生)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우희열(禹希烈)이며, 어머니는 삼사우사와 도원수를 지낸 금성군 최공철(崔公哲)의 딸이다. 처는 문하좌정승를 지낸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자 소헌왕후의 사촌 여동생이다. 우경지(禹敬之)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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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현길(見吉), 호는 구암(懼庵) 또는 동계(東溪). 증조부는 현령 우효친(禹孝親)이고, 조부는 증좌승지 우순좌(禹舜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우숭선(禹崇善)이고, 어머니는 경주군수 이수지(李洙之)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며 당시 성균관 예식에 참석하는 당상관에게 유생들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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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언확(彦確). 증조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우경지(禹敬之)이며, 할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우효종(禹孝從)이다. 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낸 우인손(禹仁孫)이며, 어머니는 진사 송찬(宋瓚)의 딸 진천송씨이다. 1507년(중종 2) 충주에서 태어난 우상(禹鏛)은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급제하고, 1540년 식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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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9년(중종 34) 원주 사람 유석이 아버지를 죽이려 한 사건 때문에 충주목이 예성부로 강등된 사건.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35년 7월 6일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천하의 죄악 치고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기 때문에 그 처형도 가장 극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에 밀양의 박군효와 수원의 노범근도 자기 아버지를 죽인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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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상(汝常), 호는 구봉(九峯).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유세린(柳世麟),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의(柳儀), 아버지는 예조참판를 지낸 유영길(柳永吉)이다. 1601년(선조 34) 진사시에 급제하고 1606년 판관 재임 중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사간원정언을 지낸 뒤 1612년(광해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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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1950년 처음 발족된 군인 위문 부대. 6·25 전쟁 중 공연을 통하여 전투에 투입된 장병들을 위문함으로써 국군의 사기 진작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후퇴를 거듭하던 육군 6사단 2연대는 충주의 남한강 가에 진을 치고, 육군본부의 정식 승인 하에 화랑소대와 양양소대의 2개 소대를 합쳐 정식으로 육군 군예대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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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성주(星州).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시대 낭장을 지낸 이만년(李萬年)이고, 할아버지는 정랑(正郞)을 지낸 이의인(李宜仁)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덕봉(李德逢), 아들은 이춘영(李春英)이다. 1419년(세종 1) 개성유후로 있을 때 본명인 이도분(李都芬)의 이름 중 도(都) 자가 세종의 이름과 음이 같아서 이사분으로 고쳤다. 다섯 번 수령에 임명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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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증조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내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이오(李塢)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생원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월성부원군 이난(李鸞)이고,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우담령(禹聃齡)의 딸 단양우씨이다. 아들은 효종 때 우의정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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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삼남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송년(李松年)이며, 할아버지는 이성유(李聖裕)이며, 아버지는 이명하(李明夏)이며, 어머니는 진천 임재춘(林再春)의 딸 진천임씨(鎭川林氏)이다. 이우형은 1731년(영조 7) 진사가 되았다. 1785년(정조 9) 유생들과 함께 “김세필(金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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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관료. 1888년(고종 25) 파주목사 재임 시 전무위원(電務委員)으로 기해전선(畿海電線) 가설에 공을 세웠다. 1890년 양주목사, 한성판윤, 1894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896년 중추원 의관으로 덕수궁 수리의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또한 이유인 자신이 천주교도였으므로 천주교구장 뮈텔(Mutel) 주교를 고종에게 소개하여 국호(대한제국)와 연호(광무) 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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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훈련원판관을 지낸 이유일(李惟一)이고, 어머니는 참봉 민학용(閔學用)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5년(광해군 7) 사서(司書)를 거쳐 사헌부정언이 되었다. 이때 이이첨이 대사헌에 기용되어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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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증조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할아버지는 선무공신 이극일(李克一)이고, 아버지는 부판결사를 지낸 이정(李淀)이고, 어머니는 참판 김반(金槃)의 딸이다. 상국(相國)을 지낸 이완(李浣)의 조카이다. 1645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비변랑(備邊郞)·사복내승(司僕內乘)을 거쳐, 1649년 영일현감(迎日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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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천의는 1930년 1월 신간회 청년지하운동 단체인 선무부에 가입하여 선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체포령을 피해서 1931년 2월 만주 용정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4년 1월 흑룡강성 북안진 전가둔에서 일본국경경비대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1934년 5월 풀려나서 흑용강성 하리치커우 한국인 농가에 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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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효술(孝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좌랑을 지낸 이은(李誾)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이희업(李熙業)이며, 아버지는 선무원종공신 2등에 오르고 형조참판에 추증된 이안국(李安國)이며, 어머니는 천안전씨이다. 아들 이호신(李好信)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했다. 1554년(명종 9) 충주에서 태어난 이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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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조전서 이구직(李丘直)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이정간(李貞幹)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윤 이사관(李士寬)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한상질(韓尙質)의 딸이다. 형제는 이인장(李仁長)·이의장(李義長)·이예장(李禮長)·이지장(李智長)·이함장(李諴長)·이서장(李恕長)이다. 그중 이의장은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예장·이지장·이함장·이서장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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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광정(光正), 자는 경복(景服), 호는 방야(方野),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역임한 이재(李縡)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이채(李采)이다. 후사가 없던 목사 이화(李禾)에게 입양되었다. 1780년(정조 4)에 태어난 이휘정(李輝正)은 1813년(순조 13) 동몽교관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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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임유명(林有名),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임덕윤(林德胤), 아버지는 영중추부사를 역임한 임황(林篁),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1594년(선조 27)년 충주에서 태어난 임경업(林慶業)은 1618년(광해군 10) 동생 임사업(林嗣業)과 함께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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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증조할아버지는 증통훈대부 임재극(林栽克)이며, 할아버지는 증통정대부 임회영(林晦榮)이며, 아버지는 증가선대부호조참판 임기국(林基國)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868년(고종 5) 용양위부사정(龍驤衛副司正)이 되었고, 1870년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871년 훈련원판관에 이어, 1875년 행부산포진수군첨절제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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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충민공 임경업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사복시정 임시망(林時望)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임정좌(林廷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임강원(林綱遠), 어머니인 비안박씨(比安朴氏)는 박정혁(朴廷爀)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고, 1784년 정조가 참석한 활쏘기 시험에 참석하여 6품직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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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조선을 침입한 왜군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의 전쟁 1592년 4월 13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에 이어 동래를 점령한 일본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상주 전투에서 이일(李鎰)을 격파하고 충주에서 신립(申砬)을 깨뜨린 뒤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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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2리에 있는 장수황씨 집성촌. 가신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흥동(新興洞), 주동(注洞), 가정리(佳亭里), 안락일리(安樂一里), 문암리(文岩里)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가정리의 ‘가’와 신흥리의 ‘신’을 합쳐 가신리(佳新里)로 명명했다. 법정리인 가신리는 3개의 행정리(가신1리·가신2리·가신3리)로 구성되는데 이중 장수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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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신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의 본래 이름은 이치(李齒)다. 이도는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범람하는 금강을 건너려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왕건으로부터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삼한개국공신에 오르고 전의후에 봉해지면서 전의(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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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 세거 성씨. 전주유씨는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유습(柳濕)이 고려 말에 완산백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전주(옛 이름은 완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주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9명, 재상 1명, 공신 2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0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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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 있는 전주이씨 경녕군파 집성촌. 법동리(法洞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의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법동이란 이름은 옛날 사찰 법당이 있어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경녕군 묘가 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응동에 있다. 전주이씨 법동리 집성촌은 경녕군의 7세손 이성(李成)이 임진왜란 전후 위토(성묘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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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수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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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전주이씨 한남군파 집성촌. 용관동은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한남군파의 파조인 한남군(漢南君)[?~1459]은 세종의 12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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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희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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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집성촌. 제내리(堤內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한 법정리이다. 이전에 방죽이 있었으므로 방죽안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제내리다. 제내리는 풍덕·성동·대촌 3개의 행정동(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이씨 제내리 집성촌은 1590년대 중반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9세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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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건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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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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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정경순은 조선 후기 영조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문장과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고 전한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정옹(修井翁).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생 정석경(鄭錫慶)이다. 형은 정원순(鄭元淳), 동생은 정지순(鄭持淳)이다. 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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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여(善餘). 증조할아버지는 송강 정철(鄭澈), 할아버지는 강릉부사를 지낸 정명(鄭溟),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정직(鄭溭), 어머니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박준(朴峻)의 딸 비안박씨이다. 슬하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 통덕랑에 오른 정린(鄭潾), 상의원정을 지낸 정필(鄭泌), 정섭(鄭涉),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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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신부. 정로베르토는 1928년 10월 19일 메사추세츠주 노스아담스에서 출생하여 1960년 6월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왔다. 1961년 청주교구 충주성당 보좌신부를 역임하였으며, 1962년 청주교구 수안보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아버지가 물려준 전 재산을 수안보성당 건축에 희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당, 사제관, 수녀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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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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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충주문화원에서 매년 발행하고 있는 기관지. 『중원문화』는 중원문화권이 간직한 독특한 문화유산을 알뜰히 가꾸고 다듬어 더욱 알찬 내일의 향토문화 창달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1988년 충주문화원에서 창간하였다. 형태는 국판이며, 면수는 약 200면 정도이다. 『중원문화』는 화보, 목차, 간지, 발간사, 특집, 중원논단, 내 고장 소개,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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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 충주유씨 등 호족이 충주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관부(官府). 도속이관(道俗二官)의 기록은 보물 제17호로 지정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음기에 나타난다.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주인공인 법경대사는 당나라에 가서 구봉산(九峯山) 도건대사(道乾大師)에게 심요(心要)를 받고 10년 동안 각지를 두루 편력하다 924년(태조 7) 46세로 귀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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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김현길이 충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쓴 향토지. 『중원의 역사와 문화유적』은 자라나는 향토의 젊은이들에게 향토의 역사를 올바로 일깨워 주고 향토에 대한 긍지를 심어 주고자 저자가 직접 답사한 내용과 경험을 정리하여 1984년 9월 청지사를 통하여 발간하였다. 1권 1책으로, 가로 12.5㎝, 세로 21㎝ 크기의 소책자 형태이며, 면수는 약 200면이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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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김풍식이 충주 지역의 문화재 현황을 파악하여 발간한 향토지. 충주 지역의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보호하고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중원의 향기』를 발간하였다. 판형은 국판으로 모두 132쪽이다. 충주의 역사를 개괄하고 우륵·강수·김생 등 고대 충주에 살던 인물을 조명하였다. 반송산·탑평리 사지·정토사지·중원 미륵리 사지, 탄금대 토성 등을 다루었으며, 부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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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장기덕이 충주 지역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기록한 향토지. 충주 지역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은 사적이나 정사의 기록보다는 민간에 내려오는 비화나 전설 등에 살아 숨 쉬고 있으므로 이를 발굴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중원향토기(中原鄕土記)』를 발간하였다. 판형은 크라운판으로 쪽수는 1권과 2권 각각 750여 쪽이다. 모두 2권 2책으로 각 권 3편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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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의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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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금곡리에 있는 청풍김씨 집성촌. 금곡리(金谷里)는 충주시 이류면의 12개 법정동(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이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안면은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었고 상금곡과 하금곡이 합쳐져 금곡리로 명명되었다. 금곡이라는 명칭은 쇠가 많이 나는 데서 유래했다. 청풍김씨 금곡리 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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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가만(可晩), 호는 오가당(五可堂). 1599년(선조 32) 충주에서 태어난 최환(崔煥)은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급제했다. 송시열(宋時烈)과 도의로서 교유했으며, 노직(老職)으로 1676년(숙종 2) 77세에 산림지사(山林知事)에 임명되었다. 1699년(숙종 25) 동지중추부사로 임명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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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강씨는 중국 진(晋)의 대부 강일(强釰)을 시조로 한다. 반면에 1924년에 간행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는 강일의 후손으로 송나라 희종 때 전당을 지낸 강준명(强浚明)을 충주강씨의 시조로 하고 있다. 충주강씨가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된 경위와 충주 거주 여부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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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3일 북한 공비의 습격과 방화로 충주군청이 불탄 사건.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서울을 점령한 후 계속 남진하여 7월 초 충주를 함락하였다. 북한군은 여세를 몰아 낙동강 전선에서 총공세를 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그해 10월 1일 유엔군과 한국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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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김씨는 김남길(金南吉)을 시조로 한다. 김남길은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金鳴鐘)의 16세손으로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충주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김남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김남길의 5세손 김만수(金萬守)의 첫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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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몽항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73년(원종 14)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전개되었다. 1225년(고종 12)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뒤, 몽고는 1231년(고종 18) 조공 거절 및 저고여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고려에 대한 제1차 침입을 필두로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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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서예가 서동형이 충주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한시를 엮은 책. 충주에는 충주 출신의 위대한 유학자와 문인 및 예술가들이 충주에 관해 읊은 시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충주에서 생활했던 감사나 목사의 시와 남북 교통의 요충지였던 충주를 거쳐 간 많은 문인 명사들이 읊은 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개인 문집 등에 실려 있어 일반인들이 찾아보기란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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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매씨는 중국 산동성 제남 사람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매씨을 하사받고 충주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충주매씨의 인물로는 조선 중종 때 매한손(梅漢孫)이 있다. 매한손은 아버지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였던 효자로 후에 정문이 건립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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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에 제작된 충주목 지도. 1866년(고종 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사건 이후 흥선대원군은 국방과 치안을 위한 관제 개정, 군제 개편, 군사 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군기(軍器)의 정비와 실험 등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지방에 대한 실정 파악은 시급한 과제였고, 이를 위해 1871~1872년 사이 전국적인 차원의 읍지 편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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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박씨는 박영(朴英)을 시조로 한다. 박영은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朴彦昌)의 12세손으로 고려시대 부정(副正)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충주박씨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세거 성씨로 나와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각종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충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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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왕실의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였던 창고. 충주는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관방(關防)으로서 중요한 요충지이고 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 때문에 외적의 방어에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인 점이 고려되어 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 사고 관리는 충청도관찰사와 충주목사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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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석씨는 석린(石隣)을 시조로 한다. 『충주석씨세보』에 의하면 석린은 1174년(명종 4)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예성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석린을 시조로 하고 충주(옛 이름은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한편으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옛 문헌에서는 고려 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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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 충주시는 중부 내륙 광역권의 거점 도시로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풍부한 용수로 기업하기 좋은 산업 기반이 구축된 도시이다.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전국 교통망의 중심이며,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의 중심 도시이자, 충주호와 월악산, 수안보온천·앙성온천·문강온천이 있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다. 충주시를 상징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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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충주시에서 충주 지역의 역사와 일반 현황을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충주를 다룬 기록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호서승람(湖西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호서읍지(湖西邑誌)』(1871)·『충주군읍지(忠州君邑誌)』(1870),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최근지충주』(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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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양씨는 양능길(梁能吉)을 시조로 한다. 양능길은 본래 제주양씨였으나 고려 개국에 공이 있어 예성군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옛 이름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봉작은 출신 지역이나 거주 지역과 연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조 양능길이 예성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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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익을 시조로 하고 어백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성씨. 충주어씨는 고려 초 평장사를 지낸 어중익(魚重翼)을 시조로 한다. 어중익은 본래 지씨였는데 겨드랑이에 있던 세 개의 비늘 때문에 고려 태조 왕건이 어씨(魚氏)를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어중익 이후 계보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고려 말 성균진사를 지내면서 가세를 일으킨 어승진을 중시조 겸 1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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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긍달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성씨. 충주유씨는 유긍달(劉兢達)을 시조로 한다. 유긍달은 충주의 호족 세력으로 918년(태조 1) 딸 신명순성태후가 고려 태조 왕건의 제3왕비가 됨으로써 강력한 지방 세력으로서 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실의 외척 세력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후손들이 유긍달을 시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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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이씨는 이관(李土+寬)을 시조로 한다. 이관은 고려시대 평장사를 지내고 충주백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이관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여러 지리지에서 충주 지역의 성씨로 기록되지 않은 점으로 봐서 충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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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한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장씨는 장문한(張文翰)을 시조로 한다. 장문한은 조선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거창현감을 지냈다. 충주장씨는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화단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장승업(張承業)을 배출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서는 시조 장문한의 간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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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년(고종 43) 4월 충주주성에서 고려군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1219년(고종 6)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후원을 얻어 공동 작전을 취했을 때이다. 이 일을 빌미로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을 자처하며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 1225년(고종 12) 1월 몽고의 사자 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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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충주 지역 역사와 일반 현황을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충주 지역은 고구려 때 국원성, 신라 때 국원소경, 통일신라 때 중원경, 고려 때 전국의 8목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 충청감영이 설치된 충청도 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그런 만큼 충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충주를 다룬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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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지씨는 지경(池鏡)을 시조로 한다. 지경은 송나라 사람으로 960년(광종 11) 태학사로 고려에 와서 평장사를 역임했던 귀화인이다. 지경의 6세손 지종해(池宗海)가 고려 정종[1035~1046] 때 충주백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충주지씨는 특히 고려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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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최씨는 최승(崔陞)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최승 이후 계보를 알 수 없어 고려 충선왕 때 판도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최공의(崔公義)를 중시조 겸 1세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주최씨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최옥(崔沃)을 비롯하여 문하시랑을 지낸 최백청(崔伯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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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우성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충주평씨는 평우성(平友聖)을 시조로 한다. 평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한나라 성제 때 평당(平當)이라는 사람이 식읍으로 하사받은 평릉을 성씨로 삼아 평씨가 생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씨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931년(고려 태조 14) 평환(平喚)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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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남한강 가에 있던 나루. 한강의 수운은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의 용산이나 마포까지이며 그 중심에 충주가 있다. 충주에는 고려시대 때 덕흥창, 조선시대 때 가흥창이 있어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세금으로 받은 곡식 등의 물품을 수송하였고,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선(私船)에 의한 경강상인들이 한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였다. 이때 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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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급을 시조로 하고 임황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평택임씨는 임팔급(林八及)을 시조로 한다. 임팔급은 당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를 지내고 8학사 중 한 명으로 신라로 와서 귀화하여 팽성(현 경기도 평택시)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헌 상 정확한 계보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후손들에 의해 고려 말 세자전객령겸연희궁부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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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적을 시조로 하고 김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풍산김씨는 김문적(金文迪)을 시조로 한다. 김문적은 신라 경순왕의 12세손으로 고려시대 공을 세워 좌리공신에 오르고 풍산백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김문적을 시조로 하고 풍산[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사좌윤을 지낸 김안정(金安鼎) 등을 배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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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경을 시조로 하고 홍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풍산홍씨는 홍지경(洪之慶)을 시조로 한다. 홍지경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국학직학을 역임한 인물로 풍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풍산홍씨는 고려시대 홍유(洪有) 등 대제학 4명을 배출했고,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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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합천이씨 집성촌. 오산리(烏山里)는 충주시 수안보면의 8개 행정동(리) 중 하나이다. 까마귀가 많이 서식했다고 해서 오산리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 합천이씨 오산리 집성촌은 1601년(선조 34) 합천이씨 11세손 절충장군 이흡(李洽)이 여주(혹은 원주)에서 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오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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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1945년 8·15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환희와 함께 혼란과 고통도 가져다주었다. 충주도 해방 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노정되면서 많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결과,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하였다. 충주는 우리나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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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회 변동을 주도하며 존재한 지방 세력. 신라 하대에는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호족이라는 새로운 지방 세력이 대두하였다. 호족은 몇 가지의 부류로 구분된다.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에서 패배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정착한 경우, 지방의 토착세력이던 촌주(村主)들이 성장한 경우, 청해진의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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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중(成中), 호는 채봉(彩峰).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이며,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어머니는 경림군(慶林君) 이정(李淀)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홍만수는 1673년(현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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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회(季會), 호는 추헌(楸軒).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홍집(洪雲+集)이며,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어머니는 이문량(李文諒)의 딸이다. 홍만우는 1693년(숙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702년 알성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1710년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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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면천군수 홍주후(洪柱後)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이며, 아버지는 호조좌랑 홍중태(洪重泰)이며, 어머니는 목사 이기징(李箕徵)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홍일보는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19년 증광문과에서 병과로 합격하였다. 1729년(영조 5) 2월 사헌부지평으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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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홍수(洪脩)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홍곽(洪㰌),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친아버지는 홍탁이다. 1646년(인조 24) 생원이 되고, 1653년(효종 4) 알성시 문과 을과 1위로 급제하였다. 1655년(효종 6) 사간원정언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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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사직(司直) 홍수(洪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이며, 아버지는 남원부사 홍탁(洪雨+濯), 어머니는 조안국(趙安國)의 딸 평양조씨(平壤趙氏)이다. 홍주진은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어 1680년(숙종 6) 문의현령이 되었다. 169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91년 사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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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범(聖範).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아버지는 이천부사 홍만운(洪萬運), 어머니는 군수 정하(鄭何)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홍중주는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4년 사간원정언이 되어 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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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식(士式). 예조참판 홍영(洪霙)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선조의 부마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며,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홍만형(洪萬衡), 어머니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홍중해는 송준길(宋浚吉)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송시열(宋時烈)과 박세채(朴世采)에게도 배웠다. 기사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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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택(景澤), 호는 연자(撚髭). 부사용 홍우전(洪禹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사직 홍수(洪脩)이며, 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선무랑 김고언(金顧言)의 딸이다. 홍집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12년 형방도사를 역임하였고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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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행가(行可). 부사용 홍우전(洪禹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사직 홍수(洪脩)이며, 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김고언(金顧言)의 딸 안동김씨이다. 홍탁은 1613년(광해군 5) 진사가 되었다. 1643년(인조 22) 심기원(沈器遠)이 이일원(李一元)·권억(權澺) 등과 모의하여 회은군(懷恩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