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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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集姓村 |
영어의미역 | Single-Clan Village |
이칭/별칭 | 동족마을,동족부락,씨족부락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개설]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의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종법적 가족제도의 수용 등이 집성촌 형성을 가속화시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
집성촌은 생활공동체로서 동일 조상에 대한 제사, 마을 운영과 관련된 대동계·동계(洞契)·동약(洞約)의 조직 및 관리, 문중 서원과 사당의 건립 등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성촌은 혈족의 존속과 사회경제적 특권의 유지를 도모하면서 지역 내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충주최씨, 충주유씨, 충주양씨 등은 고려시대 이전이나 고려 개국 초의 인물을 시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시대부터 충주 지역에서 세거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동성동본 중심의 집성촌의 형성 여부는 관련 자료의 부재로 알 수가 없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충주 지역의 집성촌 형성 시기는 조선시대부터이다. 1400년대부터 주로 양반사대부가 충주로 낙향하거나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후손들에 의해서 집성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400년대 충주에 입향해 집성촌을 형성한 성씨는 대소원면 검단리, 소태면 복탄리의 안동권씨, 용관동의 전주이씨 한남군파, 대소원면 금곡리의 청풍김씨, 신니면 모남리의 광산김씨, 주덕읍 사락리의 광주이씨, 대소원면 검단리의 전의이씨 등이 있다.
1500년대는 주덕읍 제내리에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경주이씨, 대소원면 매현리에 양성이씨, 소태면 오량리와 중청리에 양천허씨, 소태면 양촌리와 중청리에 전주이씨 석보군파, 동량면 대전리와 산척면 영덕리에 전주이씨 임영대군파, 살미면 신매리에 전주이씨 화의군파, 동량면 하천리에 전주이씨 효령대군계, 노은면 법동리에 전주이씨(경녕군파), 단월동·풍동과 살미면 세성리에 평택임씨, 주덕읍 화곡리에 풍산김씨, 안락리와 대덕리에 문화유씨 등이 입향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했다.
1600년대에는 금가면 잠병리에 순흥안씨, 노은면 수룡리와 금가면 잠병리·월상리에 풍산홍씨, 대소원면 문주리와 살미면 토계리에 전주유씨, 수안보면 온천리에 합천이씨, 노은면 수룡리에 영일정씨 등과 1700년대 노은면 가신리에 장수황씨 등이 집성촌을 형성했다.
[현황]
1935년 발간된 『조선의 취락』에 의하면 1933년 충주의 집성촌은 53개였다. 1960년대 이전까지 그대로 유지해오던 집성촌의 수와 집성촌 거주민의 수는 1960년 대 이후 추진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이동으로 인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8년 현재 충주시에서의 집성촌은 경주이씨 종포리 집성촌, 광산김씨 모남리 집성촌, 광주이씨 영죽리 집성촌, 문화유씨 안락리 집성촌,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 아산이씨 동막리 집성촌, 안동권씨 칠금동 집성촌, 양천허씨 오량리 집성촌, 연일정씨 수룡리 집성촌, 영월신씨 돈산리 집성촌, 온양정씨 장천리 집성촌, 장수황씨 가신리 집성촌, 전주유씨 문주리 집성촌, 전주이씨(경녕군파) 법동리 집성촌, 전주이씨(한남군파) 용관동 집성촌, 청풍김씨 금곡리 집성촌, 충주최씨 대전리 집성촌, 평택임씨 세성리 집성촌, 풍산김씨 화곡리 집성촌, 풍산홍씨 잠병리 집성촌, 합천이씨 오산리 집성촌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