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568 |
---|---|
한자 | 順興安氏岑屛里集姓村 |
영어의미역 | Sunheung An Clan Jambyeong-ri Single-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순흥 안씨 집성촌.
[명칭유래]
잠병리(岑屛里)는 본래 충주군 가차산면 지역으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잠리, 사천리, 사랑리, 하담리와 상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잠병리가 되었다. 법정리인 잠병리는 3개의 행정동(축동·금병·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축동(일명 싸리골)과 금병이다.
잠병리가 공식 행정구역 명칭이 된 것은 1914년부터지만 잠병리란 이름은 이미 예전부터 사용되던 이름이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82호에 남자 205명, 여자 33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보다 20년 뒤인 1780년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충주목 가차산면조」는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89호에 남자 266명, 여자 17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70년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충주목 방리조」에도 잠병리는 관문에서 북쪽 20리에 있고 269호에 남자 394명, 여자 422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은 순흥안씨 17세손으로 용양위부사과를 지낸 안경창(安景昌)이 1600년경 경기도 양주에서 현 충주 금가면 잠병리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했다. 안경창의 세 아들 중 안명원(安命遠)의 후손이 잠병리 금병에 주로 세거하고, 안복원(安福遠)의 후손은 주로 잠병리 축동에 세거하고 있다.
[자연환경]
잠병리는 금가면의 중앙 북쪽에 위치하여 동은 금가면 도촌리, 서는 금가면 하담리, 남은 금가면 매화리, 북은 엄정면 율능리와 경계하고 있다. 잠병리 동쪽에는 태고산[186m]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엄정면 율능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잠병리 북쪽을 감돌아 태장산[123.9m]의 봉우리를 만들고 한강과 접한다.
태고산의 또 다른 줄기는 남서로 뻗어 잠병리 남쪽에서 내기대봉[105.5m]이 되고 하담리 뒤를 돌아서 한강에 닿는다. 또한 태고산에서 발원한 개울이 잠병리 금병과 축동 사이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잠병리 일대의 산은 평평하고 낮아 과수농사와 밭농사에 이용되고, 산능선 사이로 논이 있다.
[현황]
1960년대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에는 금병에 60여 가구, 초당에 40여 가구 등 총 1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2008년 현재 78가구가 살고 있으며 그 중 순흥안씨는 50여 가구이고 나머지 30여 가구는 이씨, 김씨, 유씨, 신씨, 반씨, 권씨, 박씨와 그 외의 성씨로 인척관계이다.
관련 유적으로 안경창(安景昌)을 배향한 충흥사(忠興祠), 안명원(安命遠) 묘, 안복원(安福遠) 묘가 있다. 충흥사는 음력 10월 8일 제사를 지내고, 시제는 10월 10일에 지낸다. 안명원 묘와 안복원 묘 앞에는 한 그루 향나무가 있는데 안명원과 안복원이 중국에 다녀 올 때 사용했다가 땅에 꽃아 둔 지팡이가 자라서 향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에 이르는 길은 금가면 소재지인 도촌리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24호선을 따라 하소로 가서 다시 북쪽으로 가면 순흥안씨 잠병리 집성촌에 도착한다. 또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가다 율능리 바마루에서 지방도 24호선을 따라가도 된다. 4차선으로 확장된 국도 38호선 금가인터체인지에서 지방도 24호선을 이용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