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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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崔氏 |
영어의미역 | Chungju Cho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
집필자 | 최일성 |
세거지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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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900년대 초 |
성씨시조 | 최승 |
입향시조 | 최승 |
[정의]
최승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충주최씨는 최승(崔陞)을 시조로 한다. 그러나 최승 이후 계보를 알 수 없어 고려 충선왕 때 판도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최공의(崔公義)를 중시조 겸 1세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주최씨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문하시중을 지낸 최옥(崔沃)을 비롯하여 문하시랑을 지낸 최백청(崔伯淸), 좌찬성을 지낸 최숙청(崔叔淸) 등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대사간·충청감사를 지낸 최순(崔洵) 등을 비롯하여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했다.
[입향경위]
최승은 당나라 태생으로 본래 이름은 최우(崔偶)다. 889년(진성여왕 3) 원종(元宗)·경노(京奴) 등이 난을 일으키자 상장군으로 와서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은청광록대부에 오른 후 신라인으로 귀화하여 충주에 정착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최승을 시조로, 충주를 본관으로 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충주최씨는 2000년을 기준으로 전국에 4,240가구 13,466명, 충청북도에 875가구 2,614명, 충주시에 341가구 1,00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8년 현재 충주최씨는 과거 집성촌이었던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에 18가구를 비롯하여 충주시 전역에서 살고 있다.
[관련유적]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에 시조 최승과 충주최씨 선조 8인의 위패를 배향한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9호 충주 영모사(永慕祠)가 있다. 충주 영모사 앞에는 최승 신도비, 최개국 신도비, 최주환 기념비, 충주최씨 추원기적비가 있고, 마을 동쪽 계곡에 최개국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