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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712
한자 義兵
영어음역 uibyeong
영어의미역 righteous arm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편세영

[정의]

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개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이었다. 진주에서도 임진왜란과 조선 말기에 의병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임진왜란과 의병]

임진왜란 때 의병이 처음 일어난 곳은 왜군이 먼저 침입한 경상도 지역이며, 의병을 가장 먼저 일으킨 인물은 곽재우이다. 그는 현풍 유생으로서 경상도 의령에서 1592년 4월 22일 10여 명의 가동(家童)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붉은 비단옷과 백마를 타고 스스로를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 붉은 옷을 입은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 부르면서 기세를 올렸다.

이 밖에도 전국 각처에서 의승군의 활약이 컸다. 특히 의승장 신열(信悅)은 진주 부근을 주 무대로 하여 의병장들과 합세하여 많은 적을 격파하였다.

진주에서는 제1차 진주성전투(1592년 10월) 때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관군과 의병장 곽재우, 임계영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약 3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하여 승리를 하였다.

이어 제2차 진주성전투(1593년 6월) 때에는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김천일, 고종후, 이잠, 황진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끝까지 싸웠고 일본 군대에도 많은 손실을 입혔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의병과 의병장을 배출시키고 빛나는 전투기록을 남긴 것은 진주의 자랑이 되었다.

[조선 말기의 의병]

한말의 의병은 크게 1895~1896년의 제1차 을미의병(乙未義兵)과 1905~1910년의 제2차 의병전쟁(乙巳義兵과 丁未義兵)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차 의병전쟁은 1894년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으로 일제 침략이 노골화된 시기에 일어났다. 제2차 의병전쟁은 일명 을사의병·정미의병이라고도 하는데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군 강제 해산이 그 원인이 되었다.

진주지역에서는 진주민란 등을 계기로 민중 의식이 크게 고조되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노응규, 정한용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투쟁이 전개되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노응규정한용은 진주 관찰부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여 의병대의 무장을 강화할 것을 목표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진주에 있던 정한용은 안의의 노응규 의병부대와 함께 진주성을 공격, 점령하였다. 그 과정에서 순검 2명을 포함하여 10여 명이 살해되고, 관찰사 및 관리들은 달아났다. 이들 의병부대는 고성, 하동 등 진주 인근지역은 물론 일제 침략의 발판이자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던 부산까지 활동지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점차 일본군과 관군의 압박이 강해지고, 고종의 ‘의병해산령’이 발표됨에 따라 경상남도 일원을 휩쓸었던 진주의병은 완전히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군 강제 해산 등의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에 대항한 의병활동이 다시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의병장의 신분이 보다 다양해졌고 일본군의 압박을 피해 대규모 조직의 활동보다는 산 속을 배경으로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진주 지역은 이 당시에도 의병 활동이 격렬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강력한 의병 토벌작전으로 인한 공격력 약화와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활동은 어려워졌다. 결국 이들은 만주나 연해주로 활동무대를 옮기거나 화적이 되어 일본군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진주 지역의 의병은 전국에서 활동이 가장 격렬하고 활발했으며 의병장 수와 전투 횟수가 가장 많아, 40명이 넘는 의병장을 중심으로 3백여 차례나 항일 투쟁을 벌였다. 의병전쟁의 주도층인 유생과 농민은 일제 침략자와 그에 협력한 소수의 집권자들에 대한 최대의 저항자로서 항일민족세력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구실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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