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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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啓英 |
영어음역 | Im Gyeyeong |
이칭/별칭 | 홍보(弘甫),삼도(三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편세영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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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임희중(任希重) |
성별 | 남 |
생년 | 1528년 |
몰년 | 1597년 |
본관 | 장흥(長興) |
자 | 홍보(弘甫) |
호 | 삼도(三島) |
추증 | 병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 |
대표관직 | 진보현감(眞寶縣監)|양주목사(楊州牧使)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 아버지는 임희중(任希重)이다.
[생애]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급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능성현령 김익복(金益福), 진사 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와병중이던 박광전 대신 의병장으로 추대되고, 순천에 이르러 장윤(張潤)을 부장으로 삼았다.
남원에서 다시 1,000여 명의 의병을 더 모집하고, 전라우도의병장 최경회(崔慶會)가 이끄는 의병과 합류하고 전라좌도의병장이 되었다. 이어 장수·거창·합천·성주·개령 등지에서 왜적을 대파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왜군이 진주성(晋州城)을 포위하자 장윤(張潤)에게 의병 300명을 나누어 관군을 지원하게 하고, 자신은 밖에서 곡식과 무기를 조달하다가 적이 성을 포위하여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고성·거제 등지에서 왜적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화의가 성립된 후 양주, 정주, 해주, 순창 등지의 목사(牧使) 등을 지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객사했다.
[저술]
『삼도실기(三島實紀)』가 전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