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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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民 |
영어음역 | Kim Junmin |
이칭/별칭 | 성인(成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태남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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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
성별 | 남 |
몰년 | 1593년(선조 26) |
본관 | 상주 |
자 | 성인(成仁) |
추증 | 가선대부 형조판서|지의금부사 |
제향 | 창렬사(彰烈祠) |
대표관직 | 거제현령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상주. 자는 성인(成仁).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김후(金後)의 후손으로 군수 김녹돈(金祿敦)의 손자이다. 아들 김봉승(金鳳承)은 정유재란 때 진주 발재[鉢峴]에서 전사하였다.
[생애]
출생년은 미상으로 산청의 단성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후 1583년(선조 16) 북평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정하여 북쪽 야인을 격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거제현령으로서 감사 김수(金睟)와 함께 왜군에 대항하였고, 이후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여하여 끝까지 싸우다 1593년(선조 26)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합천의 의병장이 되어 왜장 모리[毛利輝利]의 부대를 격파하였으며, 김시민 목사가 진주성을 사수할 때 의병을 거느리고 산청의 시천지방에서 왜적을 방어하여 제1차 진주성전투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왜군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하자 진주성에 들어가 동문의 지휘 장수가 되어 끝까지 항전하다가 힘이 다하여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봉되었고, 후에 가선대부 형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진주의 창렬사에 제향되었으며,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에 신도비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