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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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琦弼 |
영어음역 | Choe Gip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경준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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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몰년 | 1593년(선조 26) |
본관 | 전주(全州) |
자 | 규중(圭仲) |
호 | 모산(茅山) |
추증 | 병조참의 |
제향 | 창렬사(彰烈祠) |
대표관직 | 진주부관 |
[정의]
임진왜란 때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생애]
출생년은 미상이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지휘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항왜구국(抗倭救國)의 기치 아래 관군과 의병의 적 토벌을 지원하고, 이듬해 적군이 후퇴할 무렵, 가토[加藤淸正] 등이 진주에서의 패전을 복수하려고 많은 군사를 진주로 집결하여 진주성이 위태로워지자 6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進) 등 수성장(守城將)들과 합심, 분전하였다. 그러나 6월 진주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