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22 |
---|---|
한자 | 高從厚 |
영어음역 | Go Jonghu |
이칭/별칭 | 도충(道冲),준봉(準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도충(道冲), 호는 준봉(準峰).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이다.
[생애]
1570년(선조 3) 진사가 되고, 1577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현령(縣令)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버지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錦山) 싸움에서 아버지와 동생 고인후(高因厚)를 잃었다. 이듬해 다시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이라 칭하고 여러 곳에서 싸웠다. 위급해진 진주성(晋州城)에 들어가 성을 지켰으며 성이 왜병에게 함락될 때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세상에서는 고종후·김천일·최경회를 일러 삼장사(三壯士)라고 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열(孝烈)이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광주(光州)의 포충사(褒忠祠)와 진주(晋州)의 충민사(忠愍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