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공주문화대전 > 공주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시대 >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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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마한 지역 소국의 대부분은 기원전 3~2세기 이래의 세형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배경으로 대두된 다수의 정치 집단들이 발전한 결과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2세기 이후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에 위치한 백제국(伯濟國) 중심의 소국 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 세력권이 병존하였다가, 3~4세기에 이르러 점차 백제 중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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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목지국(目支國)은 초기 철기시대 이래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지역에서 형성, 발전되어 온 토착 정치 집단의 하나로, 백제(百濟)가 마한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마한 소국 연맹체의 중심 세력이었다. 『삼국지(三國志)』위지 동이전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목지국의 존속 시기 및 진왕(辰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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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나, 개별 소국의 위치에 관하여 명확한 정의는 되어 있지 않다. 『삼국지』에 기록된 삼한(三韓) 소국 이름의 한자 표기는 우리말 이름을 당시의 중국 고대음에 따라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중국 고대의 북방음은 현행 우리 한자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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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8년부터 660년까지 존속한 삼국시대 고대국가의 하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는 BC 18년에 건국하여 660년에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여 678년간 존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제는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유지하는 동안 2번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흔히 백제의 역사는 도읍지를 기준으로 한성시대(BC 18~AD 475)·웅진시대(475~538)·사비시대(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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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당나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 웅진 지역은 사비 천도 이전 6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며, 방어상 유리하다는 점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의자왕 역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사실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백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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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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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년(성왕 16)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사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지의 이동이며, 지배 세력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평양 천도 이후 국내성에 거주한 귀족들의 반발이나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달구벌(현 대구) 천도 실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지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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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에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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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 8월 취리산에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 사이에 맺은 화친의 맹약.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부여융(扶餘隆)은 백제 태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 지역에 친당정권(親唐政權)을 심어놓으려던 당나라는 664년 10월 유인궤(劉仁軌)의 추천이 있은 이후에 부여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