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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인자함을 찾는 마음으로 농기구를 들고 예술을 생각하다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C010108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식

현재 원골의 마을지도자이며, ‘예술과 마을’ 행사 총무로 많은 수고를 하였고, 해마다 우수한 작품을 출품하여 예술제를 빛냈던 서정식(49세)는 그 동안 예술제 행사를 치르면서 예술제에 대한 여러 가지 감상을 피력하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일의 시작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어요. 우리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성원 미술선생이 자신의 생가 터에 여주이씨 종친회의 양해를 얻어 임동식이라는 화가의 작업장을 짓게 되면서부터였지. 예술가인줄 알았더니 이성원과 임동식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밤낮으로 삽과 호미를 들고 일만하더라구. 그사람들 보면서 자연예술이니 자연미술이니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는데, 이성원씨 말은 마을 주민들이 진짜 자연예술가라는 것이여. 농사짓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것도 밭을 가는 것도 작품이요, 농사짓는 모든 것이 땅과 기온과 비 햇볕 등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만드는 자연미술이란 거지..”

그의 말인즉 가장 진실된 자연미술의 가능성은 농민과 농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미술이란 농사를 중심으로 보는 ‘예술과 마을’의 시각에서 보다 보완되고 성립될 수 있다.

농촌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던 서정식으로서는 이러한 내용들은 정말 뜻밖의 이야기였으며, 자신이 하는 농사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 덧붙여 농사는 살아있는 것과의 일이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고 윤리적인 일이라는 것이라는 견해에 기쁘기까지 하였다.

서정식은 이성원으로부터 이러한 견해와 이야기를 들은 후 나름대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머리에 잡히는 것은 미술가들은 손에 붓을 들었고, 농사짓는 농사꾼은 농기구를 들었다. 미술가들은 종이 같은 재료 위에 그림을 그리고, 농사짓는 본인은 땅 위에 씨앗 등으로 농사를 짓는다. 농민들은 미술가들이 쥔 붓 대신 농기구를 들고 있으며, 농민이 자연생명미술가라는 이야기는 농사짓는 사람들을 추켜세우기 위한 말이 아닌 명백한 현대미술의 문맥에 준한다는 점이 서정식을 설레게 하였다. 이로써 서정식은 자연생명 예술가로 농기구를 들고 예술을 생각하는 입장이 되었다.

서정식 자신과 농민들의 입장에서 미술가의 붓이 되는 농기구들, 지금은 트랙터에 경운기 등 기계들이 많이 나와서 예전부터 농촌에서 농사짓는 농사꾼이 사용해 오던 농기구들만 하더라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삽·호미·갈퀴·낫·괭이·쇠스랑·쟁기 등은 아직도 필수적이다.

‘예술과 마을’은 서정식 본인과 원골 주민들에게 농사를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 농기구를 들고 예술을 생각해보며, 또한 지난 시절의 일들을 찾아보고 좋은 것을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작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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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예술과 마을' 마을 주민 작품 "장기"

서정식이 초등학교도 입학 전인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서정식네 사랑방은 동에 어른들이 모여서 멍석 짜기와 짚신 삼기, 새끼 꼬기 등을 하던 장소였다. 어느 한 분이 이야기책을 큰소리로 읽으면, 그것을 들으면서 일을 하였다. 담배를 피울때는 부싯돌을 서로 부딪혀 그 옆에 마른 쑥을 대고 불을 붙여 태웠고, 흙으로 구운 큰 화롯불은 겨울에 사랑방에 놓여진 난로였다.

서정식의 할아버지는 92세가 되는 고령의 나이까지 멍석을 짰는데, 멍석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 술도 드시고 사탕도 사오곤 하였다. 서정식의 할아버지는 “살라고 나온 것을 왜 죽이는가?” 하며 모기도 잡지 않고 쫓았다고 한다. 그렇게 인자한 성품의 할아버지는 당시 집에 밥을 얻으러 오는 걸인들을 당신의 방에 재워주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사랑방에서 잠을 자곤 하였다. 며느리인 서정식의 어머니가 거지라고 대충 밥상을 차리면 크게 역정을 내고 정식으로 차려 오라고 꾸지람을 하였다.

농기구를 잡고 예술을 생각해보며, 서정식원골의 ‘예술과 마을’ 행사에 낼 작품을 계속 궁리 하고 있다. 그런데 본인의 작품보다 ‘만약에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면 이 행사를 위하여 얼마나 정성을 들여 멍석을 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정식은 할아버지가 걸인을 박대하지 않고 함께 잠까지 잤던, 그로 인하여 얻은 좋은 인상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찾으려는 의식 속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할아버지의 영향을 통하여 원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기구를 들고 예술을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예술과 마을’에 대한 서정식의 관심은 인자하고 사랑이 많았던 할아버지를 찾는 정신의 그림자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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