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B04010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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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연 |
내산리에는 허임의 12세손인 허은 씨가 살고 있다. 그는 갓 군대를 제대한 젊은 시절부터 동네 이장을 맡아 오면서 마을 안길 사업과 농지정리, 마을 확·포장 사업에 전력을 다해 묵묵히 일해 온 내산리의 숨은 일꾼이었다. 또한 부전대동계의 일원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해오면서도 항상 조상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우직한 인물이다.
하양 허씨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조상의 묘를 제대로 돌볼 상황이 못 되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무릉리로 금초하러 가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하는 허은 씨는 그 후로 집안사정이 더욱 어려워져서 대대로 물려받은 선산마저 팔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허대장의 마을가꾸기]
1967년 12월 월남전에서 돌아오자마자 제대한 허은 씨는 3년 만에 고향에 돌아 올 수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다시 돌아온 청년을 자기 아들인양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무엇보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제대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마을에서는 이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넌지시 해왔다.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사일에 전념해야 했던 그였지만 마을 안길을 내는데 주민들이 협조한다면 하겠노라고 단박에 결정을 내렸다. 비만 오면 쓸려나가는 마을길을 내 손으로 반듯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터였다. 월남전까지 갔다 온 젊은 청년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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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 씨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자꾸 일을 만드느냐는 볼멘 소리였다. 그랬다.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팠다. 밭에 심은 무가 알이 들기도 전에 뽑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잔디뿌리와 소나무 껍질마저 벗겨 먹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가서 어린 학생들에게 등굣길을 만들어 주고 우리 마을에도 우마차가 다닐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 이장의 끈질긴 설득에 귀찮아서라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괭이로 땅을 파고 지게로는 돌과 흙을 운반했다. 제방을 쌓고 다리도 놓았다. 공동 작업인지라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해서 일손을 도와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길을 내는 땅은 무조건 희사였기 때문에 소유자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애초에 희사하기로 합의한 집안에서 함부로 자기 땅을 파헤친다고 고소를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허이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결국 이 사건은 청와대까지 알려져 마무리되긴 했으나 소송 과정에서 들어간 시간과 노력 그리고 모아둔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마을에서는 허이장을 허대장이라고 불렀다.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불의에 저항하는 허이장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아픈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마을에서는 또다시 이장직을 청해 왔다. 농지정리 사업을 해야겠는데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하고 싶지도 그럴만한 처지도 못 되었다. 영세민으로 생활하면서 논 한 마지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농지정리가 말이 되겠는가. 허대장이 완강히 거절하자 마을 사람들은 급기야 서류뭉치를 던져놓고 나타나지 않았다. 고심한 끝에 이번에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났다. 각자의 농지를 자기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지 않으면 또 다시 불화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농지를 전부 한사람 것으로 여기고 일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그때 시작한 농지정리가 현재의 내산리를 만들었다.
당시 허대장의 형편은 한참 공부해야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차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당장의 생계와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선산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송 과정에서 가진 재산을 소진하고 빚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눈물을 머금고 산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땅을 사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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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 씨
[허대장의 이웃사랑]
허대장은 10여 년을 남몰래 해온 일이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 일인지라 부인조차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허대장의 이웃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던 어머니. 그 연약한 몸으로 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며 한 순간도 편히 쉴 수 없었던 어머니였다. 홀로 6남매를 키우느라 어머니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허대장은 10여 년을 남몰래 해온 일이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나서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나 소리 소문 없이 남을 도왔는지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부인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 해 농사를 거두어 내다판 돈으로 주변 초등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후원하는가 하면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뵙고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허대장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홀로 고생하는 노인들을 돕기 시작한 일이 보람을 느끼게 되어 계속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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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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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