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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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悟遺稿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Man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원철 |
[정의]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애국지사 이상린의 문집.
[개설]
이상린은 공주시 우성면에서 출생하였으며, 간재 전우(田愚)에게서 수학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삭발령이 내려지자 이에 격분한 이상린은 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안병찬(安炳瓚)·송병직(宋秉稷)·홍건(洪楗) 등과 함께 홍주관아에 들어가 홍주(현 충청남도 홍성군) 1차 의병거사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6명 모두 붙잡혀 서울로 압송 구금되었다가 고종의 특명으로 방면되었다.
이후 이상린은 “글이나 읽고 시부(詩賦)를 쓰는 것으로 오랑캐를 물리치고 위급한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지금 세계 열강들이 정교한 기계와 기술로 다투고 있는데 문을 닫고 혼자만 수양해서는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역설하며 후학들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이상린은 청양의 성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만주에서는 공교처(孔敎處)를 설립하여 교육을 통하여 조국 광복의 목표를 수행하고자 하였다. 사후 정부의 포상을 받았으며 애국지사비가 세워졌다. 호가 만오(晩悟)이다.
[편찬/발간경위]
1946년 3월 20일 이상린이 작고하자, 아들 이연(李燃)은 이상린의 종현손(從玄孫)인 이윤옥(李潤玉)에게 유고를 맡겼다. 이윤옥은 유고를 보관해 오면서 분류·정서하고 국역하였다. 이후 2001년 고손 이윤권(李潤權)이 『만오유고(晩悟遺稿)』를 간행하였다.
[형태]
『만오유고』는 4×6배판 1책으로 분량은 586쪽이다.
[구성/내용]
책머리에는 신덕선(申德善)의 서문이 있다. 본문은 시 161수, 가(歌) 1편, 송(頌) 1편, 서(書) 29편, 서(序) 16편, 기(記) 8편, 전(傳) 1편, 행장(行狀) 2편, 상량문 1편, 제문 15편, 묘갈명 6편, 잡저 25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부록으로 이성우가 찬한 이상린의 행장이 있다.
북간도에서 쓴 시 「근학(勤學)」에는 후진을 권면하는 이상린의 마음이 잘 들어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만 배움이 새로워지나니/ 부질없이 노는 사람이 되지 말자/ 높다랗게 하늘 위로 솟아 있는 태산도/ 당시로부터 티끌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네.(刻苦方能學日新 因徇莫作枉遊人 巖巖泰山玄間峙 起自當年積累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