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12 |
---|---|
한자 | 肯堂集 |
영어의미역 | Collection works of Geungd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원철 |
성격 | 문집 |
---|---|
관련인물 | 김순동(金舜東)|성구룡(成九龍) |
저자 | 이규헌(李奎憲)[1896~1976] |
편자 | 이종락(李鍾洛) |
간행자 | 사일계(事一契) |
저술연도/일시 | 1976년 |
편찬연도/일시 | 1991년 |
간행연도/일시 | 1991년 |
권수 | 14권 |
책수 | 2책 |
사용활자 | 필사영인본 |
가로 | 19㎝ |
세로 | 26㎝ |
표제 | 肯堂集 |
간행처 | 학민문화사 |
소장처 | 중동정사(中洞精舍) |
소장처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3동 |
[정의]
충청남도 공주에 세거하였던 유학자 이규헌의 문집.
[개설]
이규헌(李奎憲)[1896~1976]은 조선 중기 학자 초려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10세손이며, 일제강점기 식민 정책인 민적 편입과 단발에 끝까지 항거한 지방 유생 이철영(李喆榮)[1867~1919]의 조카이다. 경주이씨 국당공파(菊堂公派)는 이유태 이후 흔히 중동골이라 부르는 중호[中湖]에 거주하면서 광복 이후 최근까지도 전통 유학의 학문적 전수를 이어 왔다.
이 때문에 이규헌 이하 현재 생존해 있는 자손들도 한학 분야에 정진하여 시문집이 적지 않다. 이규헌의 문집도 분량과 내용 면에서 일정 수준을 갖추게 된 것이 모두 이러한 가학의 전통과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편찬/발간경위]
1976년 이규헌이 작고한 뒤, 한학에 밝은 조카 이종선(李鍾宣)·이종락(李鍾洛)과 아들 이성우(李性雨) 등이 초고를 정리하고 편집하였으며, 이를 문생들의 모임인 사일계(事一契)에서 1991년 모필 필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긍당집(肯堂集)』을 발간하였다.
[형태]
『긍당집』은 14권 2책이며, 필사영인본이다. 가로는 19㎝이고, 세로는 26㎝이다. 행수는 10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총목이 있고, 이어 권별 목록을 붙였다. 권1~3은 부(賦) 2편, 시 866수인데 칠언 절구와 칠언 율시 등 근체시가 많다. 권4~6은 서(書) 91편, 서(序) 51편, 기(記) 2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7은 발(跋) 16편, 설(說) 3편, 명(銘) 6편, 찬(贊) 5편, 자사(字辭) 1편, 제사(題辭) 1편, 혼서(婚書) 10편, 상량문(上樑文) 7편, 제문(祭文) 3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8은 애사(哀辭) 3편, 고유문(告由文) 2편, 고사(告辭) 5편, 봉안문(奉安文) 3편, 축문(祝文) 8편, 통문(通文) 4편, 묘도비(墓道碑) 7편, 권9는 비문(碑文) 24편, 묘갈명(墓碣銘) 29편, 권10은 묘갈명 21편, 묘지명(墓誌銘) 6편, 권11은 묘표(墓表) 55편, 권12는 묘표 46편, 권13은 추지(追識) 6편, 행장(行狀) 8편, 전(傳) 6편, 가장(家狀) 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4는 부록으로 가장(家狀) 1편, 묘갈명 1편, 제문 21편, 만사 73수, 문인록(門人錄), 발(跋) 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긍당집』에는 일제강점기 폭압 정치와 광복 이후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민족의 참담한 현실에 대하여 읊은 시들도 여러 수 실려 있다. “그릇과 솥까지도 빼앗아가 쌓아 놓으니/ 사람들의 원통함과 분함에 귀신들도 미워하리/ 몰래 죽이려는 의논 있는데 누가 알리오/ 포악한 관청으로 쇠붙이 나르라는 명령만 독촉하네.(器皿釜鍋聚積堆 人含兎憤寃應猜 陰誅有議能知否 金入秦庭命亦催)”라고 하여, 일제강점기 말기 각 가정의 쇠붙이 그릇과 심지어 제기(祭器)까지도 강제로 수탈해 가는 횡포를 고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