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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349
한자 國師峯傳說
영어의미역 Legend of Guksabong Peak
이칭/별칭 「국사봉의 금잎」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국사|왕자|임금|나무꾼
관련지명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모티프 유형 임금이 준 금화|심어놓은 금화의 성장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에 전해 내려오는 국사봉에 깃든 지명 이야기.

[개설]

「국사봉 전설」은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받은 금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서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590.6m]이라고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그래서 「국사봉의 금잎」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채록/수집상황]

2005년에 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전통마을』4에 실려 있다.

[내용]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가 있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다.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봉오리 주변에 금 한 잎을 묻었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다. 국사는 나무꾼에게, “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 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에 의해 국사봉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파헤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을 개설하고 많은 금을 캐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국사봉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임금이 준 금화, 땅에 심은 금화와 그 성장, 국사가 머물던 장소로서의 국사봉 등이다. 성장한 금화가 금광이 되고 이것을 일본인이 캐갔다고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철저한 경제적 수탈이라는 역사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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