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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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olk Game of Farmers´ Cooperative Group Scuffle |
이칭/별칭 | 기싸움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에 전해 내려오는 두레에서 파생된 민속놀이.
[개설]
두레란 농촌에서 서로 협력하여 공동 작업을 하는 풍습, 또는 이를 위하여 마을 단위로 구성한 조직을 이르는데, 주로 마을 전체의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타작 등 농사의 전 과정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두레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씨족 공동 사회에서 찾는 견해가 많다. 삼한시대에 농사의 시작과 끝에 행하던 음주가무가 두레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지역 공동체의 호칭이었다가 차츰 인위적 공동체로 변하여 단체의 성격을 띠는 공동 노동 조직을 두레라 부른다는 주장도 있다.
1960년대까지 공주 지역에는 많은 두레가 존재했으며 두레마다 두레싸움을 하는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2001년 실시한 표본조사에 의하면 87%의 두레가 두레싸움을 하였는데, 전통 사회에 500여 개의 두레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공주 지역에서만 1년에 440여 회의 두레싸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연원]
두레싸움의 유래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마을 단위 두레 공동체가 생성되는 것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레 공동체가 활발해지면서 같은 들판에서 2개의 두레가 일을 시작하면 농지 소재지 마을 두레(본동 두레)와 외지 지주 두레(타동 두레)가 만나게 되는데 타동 두레가 본동 두레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외지인이 농토를 경작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본동 두레들이 시비를 걸어 싸우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놀이방법]
1. 두레싸움의 조건
두레는 적게는 30여 명, 많게는 200여 명의 장정들이 움직이는 현장이니, 두레싸움은 매우 거칠어지고 사람이 상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싸움이 공연히 시작되지는 않았다. 두레싸움의 전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들판에 2개 이상의 두레패가 작업하여야 한다. 외지 두레가 타동 들판에 와서 두레 공동 작업을 하면서 본동 두레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경우 두레싸움이 가장 흔하게 일어났다.
둘째, 인근 두레의 서열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인근 두레 간에는 형님 두레, 아버지 두레 등의 서열이 존재했는데, 하위 두레가 상위 두레를 인정하지 않거나 동등한 두레가 상위 두레로 군림하고자 할 때 싸움이 성립된다. 셋째, 풍장 겨루기에서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위의 첫 번째, 두 번째 사례가 아닌 경우 발생하는 두레싸움으로 유희적으로 두 두레가 실력을 겨루는 풍장을 쳤는데 실력이 부족한 두레 풍장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싸움이 난다.
2. 두레싸움의 종류
두레싸움의 유형은 감정형과 유희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감정형은 다시 두레간 서열 싸움과 두레간 예의 문제로 다투는 싸움으로 구분된다. 두레간 서열 싸움은 생활권이 인접한 두레에서 흔히 보이는 것으로 상호 동등한 규모의 두레가 인근에서 활동하는데 서열이 분명하지 않으면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싸우는 형태다.
두레간의 예의 문제로 다투는 싸움은 서열이 존재하는 두레 간에 벌어지는 싸움으로 아래 두레가 윗두레에게 예의를 갖춘 것이 잘못되었다 하여 다투는 싸움이다. 대부분 힘 좋은 윗두레가 아래 두레에게 시비를 걸어 발생하는 유형이다.
유희형은 다시 풍장 겨루기 두레싸움과 약속된 두레싸움으로 구분된다. 풍장 겨루기 두레싸움은 비교적 사이가 좋은 두 두레가 유희적으로 풍장 실력을 겨루다가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한다. 관례에 의한 절차가 있고, 적당한 선에서 싸움이 끝난다.
약속된 두레싸움은 가장 민속놀이화된 두레싸움으로 상호 사이가 좋은 두레에서만 가능하다. 의당면 수촌리 율정두레처럼 두 두레의 좌상이 만나 날을 잡고 장소를 정하여 한 들판에서 두 두레가 만나게 하거나, 계룡면 하대리 중장의 논배미 두레싸움처럼 타동 두레를 초청하여 여름두레를 먹는 장소에서 실시하는 형태로 프로그램화 된 절차에 의하여 싸움을 한다.
3. 두레싸움의 구성
두레싸움의 구성은 감정형과 유희형이 다르다. 감정형도 체면을 중시하는 마을은 유희형과 같이 시작하기도 하지만 감정형은 직접 두레패의 몸싸움으로 시작되는데 반하여 유희형은 몸싸움 이전에 서로 어르는 과정을 거친다. 감정형에서는 두레싸움을 길게 하고 농기 싸움은 짧게 하며, 유희형은 풍장 싸움과 농기 싸움을 길게 하고 두레싸움은 짧게 한다.
두레싸움의 신호는 징소리가 주를 이루며 유희형에서는 좌상이 육성으로 지휘하는 부분도 있고 나발을 이용하는 마을도 있다. 감정형은 두레패 싸움, 농기 싸움, 승자 대동 놀이판 및 패자 철수로 구성된다. 유희형은 두레패 어르기, 풍장 겨루기, 양편 좌상의 두래 싸움 선언, 두레패 싸움, 농기 싸움, 대동마당으로 구성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두레싸움은 사람이 크게 다칠 위험이 있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두레싸움을 할 때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규칙은 어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형인데 중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논이나 밭에 들어가 싸우지 않는다. 농사꾼이 농작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는 절대 금기 사항이다. 이런 연유에서 두레싸움은 논두렁이나 밭두렁이 아니라 시냇물이 있는 제방이나 공터를 택했다.
둘째, 연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레 일꾼들은 모두 호미나 살포 등의 농기구 1점 씩을 가지고 일을 한다. 이런 상태에서 몸싸움을 하는 장정들은 무의식적으로 농기구를 사용하여 남을 때릴 수 있기 때문에 두레싸움이 벌어지면 소리를 지르며 나갈 때 반드시 농기구를 바닥에 버려두고 나간다. 셋째, 상대를 때리지 못한다. 주먹이든 손바닥이든 발을 이용하든 상태를 타격할 수 없다. 넷째, 뼈가 부러지는 정도 이상의 싸움이 발생하면 두레싸움을 중단한다.
[현황]
1999년 이걸재가 공주 지역의 두레에 관한 저술을 위해 표본 44개 마을의 두레 싸움을 조사하였다. 이 조사는 1960년을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며 모두 3인 이상의 증언을 들어 수집한 결과다. 44곳의 마을 중 두레싸움을 하지 않았던 두레는 3곳으로 의당면 수촌리 태실 두레, 이인면 이인리 이인 두레, 계룡면 유평리 신곡 두레 등이 있었다. 1동네와 싸운 두레는 19곳, 2동네와 싸운 두레는 14곳, 3동네와 싸운 두레는 5곳이 있었다. 4동네 이상과 싸운 두레는 3곳으로 장기면 도계리 안향 두레, 반포면 공암리 공암 두레, 계룡면 금대리 금대 두레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