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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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州第一敎會 |
영어의미역 | Gongju Jeil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제민1길 18[봉황동 1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효범,박범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개설]
공주 제일교회는 공주 지역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이다.
[변천]
1896년(고종 33) 스크랜턴(W. B. Scranton) 선교사가 공주 지역을 둘러보았고, 1898년(고종 35) 스웨러(W. C. Swearer) 선교사가 파견되어 1899년(고종 36) 공주 지역의 선교 상황이 미국 감리회에 보고되었다. 스웨러 선교사는 1902년(고종 39) 김동현 전도사를 보내 지금의 반죽동 앞에 집을 구해 전도 활동을 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후 1903년 의사이자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맥길(William B. McGill)이 이용주 전도사의 도움을 받아 공주 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맥길 선교사는 당시의 남부면 하리동(현재의 앵산공원 서쪽부근)에 초가 2동을 구입하여 하나는 예배당으로 사용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교육관 및 치료실로 사용하였다. 초대 교인은 김상문, 유월나, 배리백가, 백정운 부부 등 5명이었다.
1905년 맥길이 귀국한 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샤프(Robert Arther Sharp)와 그의 부인 사애리시(Mrs. Alice H. Sharp)가 부임하였다. 그들은 공주에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으며, 사애리시는 명설학교를 설립하여 여학생들을 가르쳤다. 1906년 우리암(Frank Earl Cranton Williams) 선교사가 영명고등학교의 전신인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설립하여 많은 신도를 가르쳤다. 1919년 이후 한국인 목사를 전임으로 하여 유치원과 병원을 경영하였다.
공주 제일교회는 공주 지역 내 3.1운동 시작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공주 제일교회의 신홍식 목사는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22인 가운데 기독교 대표로서 공주를 비롯한 충청도 초기 교회 형성에 큰 공로를 세운 인물이다. 독립운동을 지원한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 역시 공주 제일교회를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공주 제일교회 앞에는 첫 담임목사였던 신흥식 목사의 동상이 설립되어 있다.
[현황]
공주 제일교회 건물은 1931년에 건립되어 6·25전쟁 때 상당 부분 파손되었지만, 보수 시 벽체, 굴뚝 등을 그대로 보존하는 등 옛 흔적들이 잘 남아 있다. 1991년 10월 공주시 봉황동 8-3번지 주택을 구입하여 기독교박물관 등의 시설을 새로 조성하여 개방하고 있다. 2011년 6월 20일 국가등록문화재 제47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재에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공주 제일교회는 교회의 역할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다방면에 걸쳐 근대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