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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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硈 |
영어음역 | Sin Hal |
영어의미역 | Sin Ha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신화국(申華國)과 첨정 벼슬을 지낸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또한 충주전투로 유명한 충장공(忠莊公) 신립(申砬)[1546~1592]이 셋째 형이며, 둘째 형 신급은 피난 중 왜군을 만난 어머니가 벼랑에서 투신하자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려 모친을 구하고 죽음으로써 후에 효로써 정려를 받기도 하였다.
이 가문은 호성공신도감(扈聖功臣都監)에 신할 이외에도 12인이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충절 활동이 많았던 집안이다. 평산신씨는 신할의 8세손인 신현(申絃)[1768~1789]이 입향하면서 공주에 터를 잡게 되었다. 영정리 복골은 신현이 입향하면서 생겨난 마을로 지금까지 평산신씨의 집성촌이다.
[활동사항]
신할(申硈)[1548~1592]은 19살이 되던 해인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에 보임(補任)되었고, 1589년(선조 22) 경상도좌병사가 되어 활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병사가 되어 선조의 몽진을 호위함으로써 그 공을 인정받아 좌승지 민준(閔濬),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 대사헌 윤두수(尹斗壽) 등의 추천으로 경기수어사겸남병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막하의 유극량(劉克良), 이빈, 이천(李薦), 변기(邊機)를 아장(亞將)으로 삼고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병사를 이끌고서 임진강을 지키며 적과 대치하였다. 9일 동안 적과 대치하던 신할과 그의 병사들은 당시 도순찰사였던 한응인(韓應寅)의 병력을 지원 받아 작전을 세우고 심야에 적진을 기습하였으나 복병이 나타나 44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서 순절하였다.
[묘소]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다. 서울 상도동에 있었으나 1974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고, 1984년 묘비를 다시 세워 묘소를 단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려는 1638년(인조 16)에 명정을 받아 서울시 상도동에 건립되었으나, 1982년 도시계획 과정에서 철거될 운명에 처하게 되자 신할의 14세손 신갑철(申甲澈)의 주도로 그의 직계 자손들이 대대로 세거하고 있고, 또 신할의 묘소가 있는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또한, 1984년 묘소 가까이에 사적비를 세워 공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