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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도연맹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011
한자 國民保導聯盟事件
영어의미역 Genocide of Federation Protecting and Guiding the Public in Gongj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단학살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7월 7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0년 7월 12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왕촌골짜기
관련인물/단체 이승만(李承晩)[1875~1965]|장석윤|국민보도연맹

[정의]

1950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 학살된 사건.

[역사적 배경]

1949년 6월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에 좌익 활동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하였다.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로당, 북로당의 파괴 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의 각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충청남도에서도 1949년 12월 27일에 국민보도연맹 충청남도 연맹이 결성되었으며, 공주군 연맹은 정확한 일자는 알 수 없으나 1949년 12월 말에서 1950년 1월 초 사이에 결성되었다. 국민보도연맹 결성 초기에 가입 실적이 저조하자, 강제로 사람들을 가입시키거나 가입 인원을 지역별로 할당하여 좌익 활동의 전력이 없는 사람이 가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1949년 11월에 공주에서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자수한 사람이 270여 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국민보도연맹 공주군 연맹에 최소한 이 규모 이상이 가입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요시찰인을 단속하고 형무소를 엄중 경비하도록 하였다. 이어 6월 28일에는 장석윤 내무부 치안국장이 “보도연맹 및 기타 불순분자를 구속, 본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석방 금지”라는 ‘국민보도연맹원 예비 검속’의 통첩을 내렸다. 7월 초부터 전국 곳곳에서 국민보도연맹원이 예비 검속되어 수용되었다.

당시 경기도 이천에서 경찰과 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국민보도연맹원 100명이 총살당하는 등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정부가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국민보도연맹원이 북한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로 검속하여 집단 학살을 자행한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7월 초에 공주에서도 치안국장의 통첩에 따라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예비 검속되어 공주형무소 등지에 수감되었다.

[결과]

7월 9일에는 공주 읍내와 각 면에서 국민보도연맹원으로 예비 검속된 사람과 반포, 계룡, 의당 등지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공주 상왕동 왕촌 살구쟁이에서 집단 학살을 당하였다. 증언에 의하면 군인과 경찰이 학살하였다고 한다. 이때 학살된 사람의 규모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200~40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7월 11일에는 공주 장기면 송원리(현 연기군 남면)에서도 국민보도연맹이 집단 학살되는 등 공주 곳곳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 중에는 좌익 활동과 관련이 없는 이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으며, 당시 정부도 이 사실을 시인하고 선별하여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설사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법 절차 없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은 이승만 정권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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