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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27
한자 宣化堂
영어의미역 Seonhwadang Hall|Seonhwa Shri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웅진동 332-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왕기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12월 29일연표보기 - 선화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선화당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선화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성격 관영 건축물
건립시기/일시 1706년연표보기
정면칸수 8칸
측면칸수 4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웅진동 332-9]지도보기
소유자 공주시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개설]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을 감영이라고 하는데, 감영에는 다양한 업무 기능을 하는 각종 건축물이 건립되어 있었다. 감영에는 감사본아(監司本衙)로 상방, 청옥, 행랑, 각종 누고, 도사청, 부관청, 육방청 등 큰 규모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감사의 행정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선화당이라 한다.

[위치]

공주시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인근에 동헌, 포정문 등과 함께 선화당이 있다.

[변천]

충청감영은 1602년(선조 35)~1603년(선조 36) 공주 공산성에 상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산성 안이 좁았기 때문에 제민천 인근으로 이설하였다가 되돌아가길 반복하였고, 1706년(숙종 32) 감사 이언경이 지금의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에 감영을 아예 새로 지어 이설을 완료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충청감영은 충청남도 도청이 되었다. 1931년 충청남도청은 대전으로 옮겨 갔으며, 남은 건물은 1938년 중동[현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으로 이건해 공주박물관 진열실로 활용되었다. 그 후 1972년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새로운 국립공주박물관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박물관 건물은 헐렸다. 대신 건축 부재가 한동안 창고에 쌓여 있다가 1992년 들어와 지금의 웅진동에 새롭게 중건되었다. 그러나 구재(舊材)가 아닌 신재(新材)를 사용하여 옛 모습을 재현하였다. 원래 건물은 정면 9칸이었으나 새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변경되었다. 1990년 12월 17일 착공하여 18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2년 6월 15일 준공하였다.

선화당은 ‘임금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떨치며, 백성을 교화한다[宣上德而化下民]’는 뜻에서 따온 명칭이다. 충청도뿐 아니라 전국 8도 감영의 감사 집무실은 모두 ‘선화당’이라고 불렀다. 충청감영 선화당 외에 대구의 경상감영, 원주의 강원감영, 함흥의 함경감영에 선화당이 남아 있다.

[형태]

평면은 정면 8칸이고 측면은 4칸으로, 4방의 협칸은 폭이 다른 칸에 비해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정면의 퇴칸은 문 없이 개방하였고, 측면과 뒷면의 퇴칸은 문을 설치하여 회랑같이 꾸몄다. 때문에 내부 평면은 내진과 외진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진 주위의 협칸 1칸씩이 외진으로, 정면을 제외한 외진 측면과 뒷면에는 창호를 달아 두었다. 내진은 크게 마루방과 온돌방으로 꾸미고 문을 달았다. 내진의 서쪽 4칸 열은 대청마루이고, 동쪽 2칸 열은 온돌방이다. 사방의 퇴칸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두었다.

평면이 이와 같이 내진과 외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는 관청 같은 건축물에서 흔히 보이는데, 이는 실내 공간을 크게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기능적으로 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업무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 3벌대로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앞면 대청마루 앞 3칸과 양 측면 앞쪽, 그리고 뒷면 1곳에는 각각 계단석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직경 42㎝의 원통형이고, 기둥 위쪽에 무출목 2익공식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와 공포 사이의 각 칸 창방 위에는 복화반을 끼우고 운공을 설치하였는데, 협칸에는 1조씩, 나머지 칸에는 3조씩 짜 올려 건물이 화려해 보인다.

복화반과 운공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두었다. 지붕 구조는 2고주 7량집에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출목이 없어 내·외목도리가 끼워지지 않았고, 주심도리와 중도리로 구성되었다. 고주 위쪽에는 머리 부분에서 횡으로 창방을 끼우고 주두를 올린 다음 대들보를 걸었다. 보 아래쪽에는 연화두 모양으로 초각된 보아지를 끼워 보를 받치게 하였다.

대들보 양측 위쪽에는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쳤다. 동자주에도 고주 상부와 같이 창방을 걸고 주두를 올린 다음 종보를 걸었다. 대들보, 종보머리는 연화두 모양으로 초각하여 마감하였다. 종보 중앙에는 파련대공을 세우고 그 상부에 종도리를 걸었다. 천장은 대들보 하단 높이에서 우물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퇴칸의 천장은 모두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외부 정면 양 협칸을 제외한 6칸 창호는 아래 부분에 ‘정(井)’자살 4분합문을 달았고, 각 살문의 상부에는 횡으로 길게 교살문 광창을 달아두었다. 양 협칸과 측면, 뒷면은 광창을 두지 않고 ‘정(井)’자살문만 달아두었다. 양 협칸에는 분합문을 달았고, 나머지는 모두 4분합문이다.

내부의 중심부 대청마루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꾸며 연화문 모루단청을 하였고, 측면 방은 반자 위에 종이바름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열 퇴칸 천장에는 반자를 달지 않고 서까래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으로 마감하였다. 지붕 용마루 양 끝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를 달았고, 내림마루와 추녀마루 끝에는 여의주 없는 용두를 얹어놓았다. 추녀 끝에는 토수기와를 끼우고 기와 끝에는 각각 막새기와로 마감하였다.

[현황]

선화당은 포정문과 함께 1980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선화당은 감영의 성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위풍당당하고 품격 높은 건축적 풍모를 보여 주고 있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행정 집무실이 근대에 들어 훼손 및 복원된 경위에 대해서도 추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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