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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가좌(可座)마을은 기와를 굽는 터였다고 하여 ‘와등’, ‘왓등’, ‘와초’라고 불리었다가 가좌로 명칭이 변하였다.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동리, 입암리와 무학리, 율동리, 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좌마을, 무학마을 등의 자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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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이 배 모양이고 뒤는 학이 나는 전선후비학(全船後飛鶴) 형국으로, 배의 앞이 멍에 모양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에 멍에 가(駕) 를 쓰고, 배를 차에 비유한 수레 차(車)를 써서 마을 이름을 가차(駕車)라 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자 표기를 ‘가차(駕車)’로 기록한 문헌은 찾아볼 수 없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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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학(鶴)이 어가(御駕)를 모시고 날아와 앉은 형국이어서 가학리(駕鶴里)라 부르게 되었다.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래리, 신촌리, 용지리, 월하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학마을 1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학마을은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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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갈산포(葛山浦)는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송호해변 끝에 있었던 갈산마을의 남쪽 해안에 있었다. 갈산포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였다. 갈산포에는 뱃사람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풍선으로 항해하던 시기에 빠른 물살로 뱃길이 험한 명량해협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했던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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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장흥임씨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사촌(沙村)에, 동생은 강절(康節)에 거주하였다. 형제 간의 우애가 좋고 절개가 있었다. 형이 사는 마을은 모래가 많아 사촌이라 하였고, 동생은 절개가 좋아 강절이라 하였다. 여기서 강절리(康節里) 명칭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촌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강절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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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임진왜란 이후에 비곡면(比谷面)과 청계면(淸溪面)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계면의 ‘계’와 비곡면의 ‘곡’을 따와 계곡면(溪谷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제 때는 고서이현(古西伊縣)에, 신라 때는 고안현(固安縣) 혹은 동안현(同安縣)에, 고려 때는 죽산현(竹山縣)에, 조선 초에는 해남삼역의 하나인 별진역(別珍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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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성매산에 있는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고다산성(高多山城)은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성매산에 있다. 고다산성의 축성과 폐성에 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동국여지지(東國與地誌)』,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옛 성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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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고당리(古棠里)는 당집이 있어서 당몰, 당리라 부르다가 옛 당집이라는 의미로 고당(古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전리, 고당리, 장서면의 방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고당리로 개설되었다. 고당리 일대는 백제의 황술현과 통일신라·고려의 황원현 치소터로 추정된다. 그 이유로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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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기록에 의하면 고도지리(古道旨里)[그 이전은 고도지·고들몰]라고 부르다가, 이후 고도리(古道里)가 되었다. 조선시대 현일면·군일면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변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고도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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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안동리에 있는 고려 후기 마애불. 고도리 마애불(古道里磨崖佛)은 해남군 해남읍 안동리에 있다. 고려 후기인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고도리 마애불의 규모는 전체 높이 170㎝, 머리 높이 40㎝, 두광 너비 65㎝, 두께 50~70㎝이다. 가로 1.7m,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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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마한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조성된 고대 무덤. 해남 지역에는 마한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조성된 고대 무덤이 여러 기 있다. 삼산천 일대, 현산천, 일대, 옥천천 일대, 북일면 일대에 분포하는 고분은 해남 지역의 문화 교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해남군은 서북쪽으로 뻗은 화원·산이반도와 해남반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분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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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덮개돌이 땅 위에 드러나 있고 아래에 무덤방이 있는 형태이다. 무덤 속에는 주검뿐 아니라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청동기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하지만 고인돌이 모두 무덤만은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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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 사이에 건립된 상류층 가옥. 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상류층 가옥은 조선 후기 이후로 근대에 이르는 사이에 건립되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양반가 고택으로, 경기도에서 옮겨와 중부 지역 특징인 미음(ㅁ) 자형 배치 구조이다. 해남 공재 고택, 해남 윤철하 고택, 해남 정명식 가옥, 해남 민정기 가옥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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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고평(固坪)마을은 고당과 한 마을이었다가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을을 분리할 때 ‘평리’ 또는 ‘고평’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평리, 고대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고평마을, 고대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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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에 있는 다리. 고현교(古縣橋)는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에 세워진 4차선의 다리로서 국도 제13호선 노선상에 위치하여 있다. 고현교의 전신인 다한교(多恨橋)는 고현마을 서쪽 어귀에 있었으며, 태식천(太息川)에 놓여 있었다. 고려 때에 해남현은 현산면에 있다가 1357년 왜구의 침략을 받았다. 그 후 조선에 들어와 왜구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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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 해남군 현산면 지역으로 옛 해남현이 있던 곳이라 하여 고현(古縣), 고해남이라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학의리, 연평리, 사정리와 홍도리, 하도리, 하마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고현마을, 학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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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관두산에 있는 봉수 모양이 사람이 상투를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관머리산이라고 부르다가 마을이 산의 동쪽에 있다 하여 관동(館東)이라 불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표기가 관동(關東)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조리, 무학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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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봉수는 삼국시대 이래로 연안을 방호하는 관방 시스템의 하나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해남 지역에 설치된 봉수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인된다. 조선시대 해남현에는 화산 관두산(館頭山)[177m]을 비롯하여 일성산(日星山), 금강산(金剛山)에 있었고, 강진현 좌곡산, 영암군의 갈두와 달마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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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포구. 관두포(舘頭浦)는 관두량, 관두, 관머리라고도 칭하며 조선시대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포구이다. 관리들의 편의를 위하여 관을 설치하였다. 인근에는 봉화, 관터, 영터(營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관두포 관터는 화산면 관동리 944-2 쌍봉수산 인근이며, 선창은 동쪽 갯고랑이다. 관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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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관춘리(冠春里)는 마을의 생김새가 갓을 쓴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갓점골 또는 입점이라고도 불렀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관촌리(冠村里)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로써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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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 향교가 있는 지역이라고 하여 구교(舊校)라 불리었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동리·사포리·서외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구교마을, 관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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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구림리(鳩林里)는 마을 뒷산 큰봉재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서 구등리(龜登里), 거북등이라 불렀다. 이후 큰봉산[199.5m]에 비둘기가 많이 살고 있어서 구림(鳩林)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큰망재 칡덩굴에 몸을 숨기고 항쟁해서 칡더울이라고도 불렀다. 본래 장동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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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명종 때 뒷산 형국이 용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두라 불렸다가, 이후 개산 또는 구산(九山)이라 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덕리, 신덕리, 장동리, 방두리, 금제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구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구산마을, 금제마을, 방두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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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중기부터 돈월리(頓月里) 또는 1789년에 편찬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나오는 돈다리(頓多里)라 부르다가 1882년(고종 19)부터 구성리(九星里)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주위에 있는 9개의 섬에서 아홉 구(九) 자를 따고, 군소재지 북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북두칠성의 성(星) 자를 따서 구성리(九星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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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구시리(九市里)는 아흐레 만에 서는 장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구시(上九市)마을은 아흐레 만에 서는 시장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는, 구시저수지가 축조된 후 구시저수지를 경계로 구시마을이 둘로 나눠졌는데, 저수지 위쪽이라서 상구시로 명명되었다고도 한다. 하구시마을은 아흐레 만에 열리는 시장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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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금강산에 있던 조선시대 간선 봉수. 금강 봉수(錦江烽燧)는 1437년 해진군(海珍郡)에서 해남현이 진도군과 분리되어 현재의 해남읍으로 옮겨 와 설치된 간선 봉수[직봉 사이에 중간의 신호불통을 우려하여 직봉으로 전달되는 작은 갈래의 봉수]이다. 화산면 관두산 봉수와 해남현 관문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여 해남현에서 관두로 신호를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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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금강리(今江里)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금강(錦江)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을 앞 가공산[335m]이 옥녀가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玉女織錦) 형국인데, 산의 오른편에 물레재, 바람재가 있어서 짠 비단을 펼쳐 놓은 곳이어서 비단 금(錦) 자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今)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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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산성. 금강산성(金剛山城)은 13세기 중반 진도 용장산성과 함께 축조되었다. 14세기 왜구 침입기를 거쳐 해남읍성이 축조되면서 1434년(세종 16)까지 안으로 들어와 보호를 받는 입보용(入保用) 산성으로서 기능을 유지하였으며, 이후 봉수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쟁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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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왼쪽에는 옥금산(玉金山)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주령산(珠嶺山)이 싸고 있어 풍수적으로 당(塘)[연못]과 같다고 하여 금당(金塘)이라 불린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진도군 백도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금당리, 하금당리, 갈두리를 묶어 해남군 북평면 금당리로 개설되었다. 1983년 북평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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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는 석재와 금속류 등에 기록된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나 돌에 표기된 문자를 말하는데, 석비나 암각명문(巖刻銘文)[바위 따위에 새긴 글] 등 재료가 돌인 경우가 가장 흔하고 동종이나 금고 등 금속류 법구나 도구에 기록한 경우도 있다. 금석문의 범위를 넓히면 목재나 토기, 기와, 도자기 따위에 기록된 문자도 포함된다. 전라남도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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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명금마을에 있는 창녕성씨 사우. 금성사(琴城祠)는 성여완, 성석용, 성개, 성희, 성삼문, 성담수 6위를 배향하는 창녕성씨 사우로 원래 해남읍 백야리 오천마을에 건립하였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이 어렵다. 1920년 현재 위치로 옮겨 배향하고 있다. 성여완(成汝完)[1309~1397]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다.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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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금송리(琴松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동리의 첫 자와 반송리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업자리(業子里)·방축리(防築里)·금동리(琴洞里)·반송리(盤松里)·덕호리(德湖里)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업자마을, 방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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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평리(錦平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리를 중심으로 합치면서 평리에 ‘금(錦)’ 자를 붙여서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평리는 본래 금평리라 불렀다고 한다. 금평리의 유래 이야기는 18세기 전반에 감목관으로 부임한 강필경(姜弼慶)과 연관된다. 강필경은 마을의 장사들이 황원곶 목장의 병마 사육을 방해하자,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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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금호리(錦湖里)는 본래 ‘속금(束金)’이라 불렀다. 속금은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어떤 학자가 마을 산세를 둘러본 후에 ‘금호’라 불러야 마을이 부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금호(錦湖)’로 바꾸었다. 금호는 바다경치가 비단자락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고,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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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현감을 지낸 문신. 김서구(金叙九)[1725~?]는 1780년 2월부터 1781년 6월까지 해남현감(海南縣監)으로 있으면서 남천교를 중수하였다. 김서구의 자는 맹주(孟疇) 또는 성주(聖疇),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시하(金時夏), 할아버지는 김정화(金鼎和)이다. 친아버지는 김집(金𠍱)이며 김휴(金休)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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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난대리(蘭大里)는 터가 세서 민심이 사나워서 순박한 마을을 만들고자 난초(蘭草)를 심어 가꾸게 되면서 마을 이름을 난대(蘭大)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난대리·동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난대리로 개설되었다. 난대리(蘭臺里)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황이면에 속한 마을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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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1949년에 일본식 지명을 바꾸면서 ‘대화정(大和町)’에서 ‘남동리(南洞里)’라 칭하게 되었다. 본래 『호구총수(戶口總數)』 기록에 의하면 현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후에 군일면 지역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남문리의 남쪽 지역을 나누어 대화정이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대화정으로 개설되었다. 1949년 일본식 지명이 교체되는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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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남리(南利)는 고려 때부터 남리(南里)로 칭하고, 압리(鴨里)[‘앞리’에서 파생된 말]라고도 불렀다. 남(南)은 따뜻하고 풍요로움을 일컬으며, 리(利)는 하늘이 지니고 있는 4가지 덕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의로움의 조화나 만물이 이루어지는 가을을 뜻한다. 그러므로 남리는 따뜻하고 풍요로움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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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었던 역. 남리역(南利驛)은 지금의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설치되었던 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역에 소속되었다. 고려 말 왜구로 인하여 폐지되었다가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복설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진도군에서 출발하여 벽파진~삼지원~남리역~적량원~만희원~맹진~별진역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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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남외마을은 해남읍성의 남문 밖이었기에 남외라고 불리게 되었다. 본시 해남읍성의 남문 밖이므로 ‘남문밖→남밖에’·‘남문외(南門外)→남외(南外)’라 칭하였는데 ‘남외(南外)’로 굳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외리 일부와 군이면의 용정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남외리로 개설하였다.1955년 해남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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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고달도라 불렀으며, 달량진이라고도 하였는데, 1555년(명종 10) 달량진왜변 이후 남창을 두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남창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웃마을인 이진리에는 이진진이 설치되었다.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진리 일부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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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읍내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다리. 남천교는 남천에 세워져 남천교라 칭하게 되었다. 남천교는 해남읍성의 남문에서 나와 남천을 건너 동쪽에 있는 삼산면이나 강진, 영암으로 왕래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남천교는 조선시대 석교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교로 개축되었다. 지금의 남천교는 해남읍 읍내리에서 해남천을 건너 평동리와 삼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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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남천마을은 ‘쪽내’라고도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보이는 한자명 ‘남천리(藍川里)’와 연관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종천포(淙川浦)를 음독한 ‘종내’가 ‘쪽내’가 되어 남천리(藍川里)가 된 것이다. 이후 남(藍) 자가 남(南) 자로 변화한 것으로 보이나 그와 관련된 기록은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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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남천리 남천마을에 있는 돌로 만든 장승. 남천리 석장승(南川里石長丞)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남천리 석조미륵불입상, 남천리 미륵불, 미륵할머니라고도 부른다. 남천마을 인근 남천리 온인마을에는 ‘미륵할아버지’ 또는 ‘총각바위’라고 불리는 1기의 입석이 숲속에 매몰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아무런 형상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미륵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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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포구. 남포(南浦)는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 앞을 흐르는 태식천의 하류에 있었던 옛 포구이다. 고려 때 남경 간 사신들과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화가 전하는 포구이다. 고려 때에 해남현은 현산면 고현리에 있다가 1412년에 삼산면 녹산역 터로 옮기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남포는 중국 남송 가는 뱃길의 출항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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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산인 봉태산(烽台山)에 봉화를 올렸다고 하여 봉촌(烽村)으로 불렸으나, 후에 봉태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봉(內烽)으로 바뀌었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봉리와 동리의 이름을 따서 내동리(內東里)라 하였다. 강진군 백동면에 속하여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봉리, 동리, 좌일리, 중산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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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내사리(內四里)는 월교마을, 기동마을, 장화마을, 신리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교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98]에는 두정리(斗井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정리는 말[斗]만한 우물[井]이 있어 붙여진 것이라고 하나, ‘마루[산마루]’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본다. 즉, 산마루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마루물[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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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노송리(老松里)는 병자호란 때 창의한 김안방, 김안우, 김선지, 김연지가 청주화의(淸州和議) 소식에 비분강개하고 충절을 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마을 뒤 주성산에 노송을 심고 종신하므로 노송정(老松亭)이라 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노송리, 석연리, 구교리, 금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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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에 있는 1889년 건립된 김해김씨 사우. 노송사(老松祠)는 1889년 창의사 터에 복설한 김해김씨 사우이다. 노송사에 소장된 해남 노송사 소장 고문서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로 지정되었다. 노송사는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 주성산 산자락 아래에 있다. 노송사는 1728년(영조 4)에 매헌(梅軒) 김기손(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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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노하마을은 갈대밭이 있던 곳이라 갈앗 또는 노하(蘆河)라 불렀고, 노하(鷺河)로도 썼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노하리(路下里)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불렀던 명칭이다. 2008년 2월 18일에 노하(路下)에서 노하(鷺河)로 한자 표기를 바꿔 부르고 있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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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과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던 역 녹산역(淥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산면에, 조선시대에는 해남읍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녹산역을 출발하여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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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달량진(達梁鎭)은 완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동쪽 해변에 위치한다. 달량진은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전라우수영에 편성되었다. 관련 기록은 조선 건국 후인 1406년(태종 6)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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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1552년·1555년 세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달량진에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하였던 사건. 달량진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수군진이다.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古達島)라 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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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산(山) 자 형태를 하고 있고, 여기에 마을 전체가 한 집안이라는 의미로 당(堂) 자를 넣어 당산(堂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비곡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동리, 춘언리, 신광리, 동백리, 모동리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당산마을, 신기마을, 태인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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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는 비. 대둔사 사적비(大芚寺事蹟碑)는 1744년(영조 20) 건립되었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다. 대둔사 사적비는 대흥사의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비로 1744년(영조 20)에 건립되었다. 대둔사 사적비는 사찰 입구 승탑원에 승탑이나 승려비와 함께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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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뒷산이 크다고 하여 한뫼라 한 것을 한자화하여 대산(大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대산마을, 동리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대산마을의 입향조는 문의박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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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862년 건립된 통천최씨 사우. 대산사(大山祠)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양장공 최운해(崔雲海)[1347~1404], 활연정 최윤덕(崔潤德)[1376~1445], 옥포 최산정 등의 충의를 기리는 사우로 1862년 건립되었다. 최운해는 무신으로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시호는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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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큰 나루가 있으므로 한나루, 한날 또는 대진(大津)이라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신농리, 대진리·원항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대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대진마을, 원항마을, 지사마을, 신농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사와 신농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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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조선시대 불전. 대흥사 대광명전(大興寺大光明殿)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며,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대광명전은 천불전의 남동쪽에 있다. 표충사의 동쪽 뒤편으로 300m 들어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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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대흥사 용화당(大興寺龍華堂)은 강원(講院)을 위한 강당 겸 선방으로,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용화당은 경내의 남원(南院) 구역에 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보물 제1807호]의 왼쪽인 남쪽 앞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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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된 옥석제 천불상. 대흥사 천불상(大興寺千佛像)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해남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되어 있다. 1817년 옥으로 만든 천불상으로 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대흥사 천불상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인 천불전[보물 제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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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덕송리(德松里)는 산수가 수려하여 학이 많이 모여들었고, 노송이 많다고 하여 덕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곡리, 황조리, 대진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덕송마을, 덕곡마을, 황조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덕송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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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관흥군(冠興君) 임희성은 진도군수를 지냈는데, 처가가 해남이었다. 처가에 왕래하던 차에 마을 지형이 솥[鼎]과 같아, 터를 잡으면 큰 덕을 보고 자손만대에 인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 하여 정착하였으며, 마을 이름을 덕정(德鼎)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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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된 제주양씨 양득중의 영당. 덕촌영당(德村影堂)은 1800년대 초반 충청도 부여에서 옮겨 와 지은 덕촌 양득중(梁得中)[1665~1742]의 영당이다.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 있다. 양득중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택부(擇夫), 호는 덕촌(德村)이다. 아버지는 양우주(梁禹疇)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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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덕호리(德湖里)는 텃골 북쪽 갯가에 있어 ‘텃골개’, ‘텃굴개’라 하였다. 옆 마을 부흥마을을 내덕(內德), 덕호마을을 외덕(外德)이라 하였다.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백동리, 학림리, 백천리, 옹암리와, 반송리·덕호리·부흥리·해당리·방축리·예정리 각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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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원래 마을 이름은 앞산이 높다고 하여 대봉리라 불렀으나, 광해군 때 점(店)이 있었으므로 거치점 또는 큰바위 더미가 있어 덕흥리(德興里)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정리, 봉림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덕흥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덕흥마을, 봉림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덕흥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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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과 화원면 일원에 분포하는 고려시대 도자기 가마터.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는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와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가 있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원래 바다와 접해 있는 길게 뻗은 반도 형태로 바닷가 낮은 구릉 지대에 100여 기의 가마터가 분포한다. 현재는 영산강 개발 사업으로 개간되어 유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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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관춘리 보타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도장사(道場寺) 이름은 1530년(중종 25)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없지만, 조선 후기 1799년(정조 23)에 펴낸 『범우고』와 1872년(고종 9)과 1875년(고종 12) 무렵 간행된 『호남읍지』에 도장사(道藏寺)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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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외리(東外里)는 우수영성(右水營城)의 동문 밖에 있어서 ‘동문밖’, ‘동밖’ 또는 ‘동외’라 불렀다. 본래 해남군 문외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외리, 일정리, 신창리, 난대리, 남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동외마을, 동영마을, 동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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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이 배의 모양, 즉 구레, 배바통을 닮았다 하여 ‘배성국’이라 하였고,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홍해(洪海)로 나온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과정에서 마을 좌향이 동(東)이고 바다가 보인다고 하여 동해(東海)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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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명승지.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대흥사(大興寺)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흥사의 명칭 유래에 대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지명이 두륜산의 한자가 두륜산(頭崙山)에서 두륜산(頭輪山)으로 변경되면서 대둔사가 대흥사(大興寺)로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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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 특수지역의 하나인 마봉소(馬峰所)가 있던 지역이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영암군에 속한 지역으로, 옛 영암군 남 60리[약 23.56㎞]에 마봉소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영암군 송지종면 지역이었으며, 마장(馬場) 밑에 마을이 있다 하여 마봉(馬峰)이라 하였다. 마봉은 말[馬]과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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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마산리(馬山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천(馬川)과 월산(月山)의 첫 자와 끝 자를 취하여 지었다. 마천 마을은 마을 지형이 말의 형국이고, 마을 앞으로 하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마천(馬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월산마을은 마을 앞산 지령산(地靈山)의 맥이 동북쪽을 가리고 있어 등산(登山)이라고 하였는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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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포면(馬浦面)과 산일면(山一面)의 첫 글자를 따서 마산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포면(馬浦面)과 산일면(山一面)의 일부를 합쳐서 마산면이 되었다. 이후 마산면은 1972년 7월 1일 복평리가 해남읍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1월 15일 월암리가 계곡면에 편입되었다. 1992년 10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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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뒷산 매봉산이 말이 엎드린 형국이고, 지금은 논이 된 바다가 연못과 같다 하여 지당(池塘)이라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마을 인근 숲이 좋다 하여 만수리(萬樹里)로 개칭하였다. 본래 강진군 백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당리, 항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만수리로 개설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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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첩첩산중에 있는 마을로 세상과 접촉이 별로 없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미세(美世)라 불렸는데, 상노봉 뒤에 만안사(萬安寺)라는 절이 세워지면서 만안(萬安)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리[일명 웃미세]를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자연마을로는 만안마을이 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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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 육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만희원은 조선시대 한양과 해남지역의 교통과 통신을 원만히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만희원은 “현의 서쪽 12리[4.71㎞]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의 지리지에서는 만희원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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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망해루(望海樓)는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전라우수영의 망루이다. 전라우수영 망루는 망해루 외에도 구 충무사의 남장대[정해루(靜梅樓)]와 북장대가 더 있었다. 망해루는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데 성과 함께 성루로 건설되었다. 건립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밝혀진 건립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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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매월리(梅月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매개(梅介)와 월내(月內)의 첫 자를 취하여 지은 이름이다. 매개(梅介)마을은 마을 뒷산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매화가 떨어진다고 하여 매화 매(梅)와 시내 계(溪)를 써서 매계(梅溪)라 하였다가 매개(梅介)로 바꿨다. 월내(月內)마을은 달처럼 생긴 마을 뒷산이 마을을 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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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맹진리(孟津里)는 처음에 ‘큰 나루가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맏나루’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여 맹진이 되었다. 또한 ‘맏나루’가 ‘마나루’로 되어 마포(馬浦)라고 불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맹진리, 대월리·평촌리·송석리·북창리의 각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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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말을 방목하기 기르기 위하여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한 장소. 조선 초기에 중앙 정부는 말을 길러 국용을 조달하고 동시에 중국과 말 무역을 하였다. 전라도는 겨울철에도 춥지 않아서 목마용 풀을 얻기에 용이하였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다 제주도와 인접하여 전라도는 일찍부터 목장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특히 진도와 같이 물과 풀이 풍부한 섬과 바닷가 연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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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묘법연화경을 찍기 위한 조선 전기 목판. 묘법연화경 목판(妙法蓮華經木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소장되어 있다. 1561년(명종 16) 제작된 묘법연화경 목판으로 2017년 12월 26일 보물 제1959호로 지정되었다. 묘법연화경은 ‘법화경’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며 가야성(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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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무고리(武古里)는 본래 우수영 병사들의 활 쏘는 연습을 했던 연병장이었던 곳에 들어선 마을이라 하여 무고(武古)라 불렀으며, 무고율(舞鼓律)이라고도 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암리, 난대리, 증도리, 충평리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무고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무고마을, 외암마을, 공영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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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열녀각. 열녀 무안박씨는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품성이 곧고 정숙하였으며, 법도에 따라 행동하였다. 19세에 해남군 마산면 남송리 민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민정수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출가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안박씨는 슬픔에 겨워하다 몸이 야위어 갔다. 남편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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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충무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조석창의 효자 감응비와 비각. 석남(石南) 조석창(曺錫昌)은 부모 생전에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 백발이 성한 몸으로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하였다. 조석창은 증조할아버지의 비석이 운반 도중 바다에 빠지자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다고 한다. 빌기를 한달 여 만에 꿈속에서 기인이 나타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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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이 1897년 합쳐져서 문내면(門內面)이 되었다. 문내면에는 조선시대 초부터 전라우수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라우수영 영문(營門)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문내면(門內面)은 조선시대의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897년 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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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해남군 은소면에 속한 독야전(禿也田)으로 나와 있다. 미야마을 경주정씨 집안 호구단자에도 은소면 독야지(禿也只)로 나타나 ‘독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62년 마을의 풍속이 아름답다 하여 민둥산을 뜻하는 독(禿) 자 대신 아름다울 미(美) 자를 써 미야(美也)라 한 데서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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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미황사(美黃寺)는 달마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사찰이다. 미황사 사적비의 내용에 따르면 통일신라 때인 749년(경덕왕 8)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달마산은 삼황(三黃)의 미가 있다고 하는데, 삼황은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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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 「미황사 괘불탱(美黃寺掛佛幀)」은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2002년 7월 2일 보물 제1342호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 독존 형식의 걸개 그림이다. 미황사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다.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땅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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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달마산 미황사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가 기록된 사적비. 미황사 사적비(美黃寺事蹟碑)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비석이다. 미황사 창건과 중수에 관한 역사의 자취를 기록하고자 1692년(숙종 18) 9월 두인(杜忍)의 주관 아래 비석을 건립하였다. 미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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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박필양(朴弼瀁)[?~?]의 본향은 밀양(密陽)이며, 그 외 자세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박필양은 해남 출신의 효자이다. 늙은 아버지가 엄동설한에 병이 들어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아버지가 사망하자 상중에 술과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 지역 유림이 박필양의 효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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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전체가 반석(磻石) 위에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계곡천이 흐르고 있어서 반계(磻溪)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악리와 대운리, 방춘리의 각 일부와 비곡면의 성진리 일부와 마포면의 대월리 일부가 병합되어 해남군 계곡면 반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반계마을, 대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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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방두선(方斗善)[1650~?]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그 외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방두선은 1650년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삯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소금 행상을 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여 온 고을에 효자 소금장수로 소문이 났다. 어른이 되어 장가를 들었는데 어머니가 며느리를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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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중산리(中山里)라 기록되어 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방축(方丑)과 중산(中山)의 이름을 따서 방산리(方山里)라 하였다. 방산(方山)은 마을 뒷산인 봉태산(烽台山)을 널리 알린다는 뜻에서 붙은 지명이다. 본래 강진군 백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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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흑석산 아래의 봉우리가 금(金) 자 형이고, 봉우리 남쪽 마을 뒷산에 동백꽃이 화창하여 방춘(芳春)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옛날 이곳의 터가 방죽이었다 하여 방죽안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계리, 대운리, 중수리, 용계리, 마고리의 각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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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 백방산에 있는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백방산성(百房山城)은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 백방산에 있다. “백방산 정상에는 낙암(落岩)이란 바위가 있는데, 한 여인이 전쟁에 나간 남편을 그리며 날마다 낙암 바위에서 기다리다 끝내 돌아오지 않자 떨어져 목숨을 끊었다. 이후 지역민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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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백야마을은 백토가 많이 나서 ‘희재’, ‘희야재’ 또는 ‘백야치’, ‘백치’, ‘백야’라 하였다. 한편, 백토가 나고 마을의 형국이 ‘야(也)’ 자의 모습이어서 백야(白也)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는 해남읍과 삼산면에 걸치는 지역을 포함하는 신라 사라향(紗羅鄕)의 사라(紗羅)와 같은 어형(語形)을 보이는 지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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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 백포리(白浦里)는 백방산 밑에 있는 포구라 하여 백포 또는 백방포라 불렸다. 일설로는 백포마을을 바라보면 하얗게 보여 백포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간척되기 이전 포구 연안에 굴과 꼬막 껍데기가 패총처럼 쌓여 있어 하얗게 보였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모리와 장등리를 병합하여 백포리라 하고 해남군 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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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백호(白虎)라는 이름은, 마을이 풍수상으로 원경산[뽀쭉산]의 오른쪽[백호]에 자리잡고 있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본래 망골, 양지물동, 새터를 합하여 백호동, 백오동이라 칭했는데, 망골은 백호의 큰마을로 고려시대에는 옥산현과 이웃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옥천면소재지였다.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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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에 큰 절이 있어 근래까지도 법실(法실)[법이 있는 골짜기]로 불렸다가, 실을 나타내는 한자 곡(谷)을 써서 법곡(法谷)이라 한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비곡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곡리, 장산리, 용호리, 월신리가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법곡마을, 장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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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던 역. 별진역(別珍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남리역에서 맹진을 통하여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해남의 녹산역에서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역이다. 별진역은 지금의 해남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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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던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의 객사. 복파관은 전라우수영의 객사이다.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며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망궐례 등을 행하는 곳으로 우수영 관아 중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객사의 문은 운주루(運籌樓)였다. 복파관은 1440년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1660년대 중반 절도사 김동흘이 고쳐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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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복평마을은 해남천의 하류에 위치하여 일찍이 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이에 여러 곳에 보(洑)를 설치하여 ‘봇들’이라 불렸다. 후에 이를 한자화하면서 보평(洑枰)이라 하였으며,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후에 보평이 복평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호리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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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통신수단인 봉수 유적.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우역제와 더불어 신식 우편과 전기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전근대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 방법이었다. 군사 통신 제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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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부곡(富谷)이란 명칭은 마을의 형국과 관련이 있다. 간척공사 전,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는 형세를 동남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보인다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부수(浮水), 부실, 부옥촌, 부뜰이라 불렀는데, 후에 부곡이라 개칭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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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부동리(富洞里)는 부자가 될 마을이라고 하여 ‘부동(富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부동리, 상동리, 흑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부동마을, 흑두마을, 신흥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부동마을은 1726년경 금녕김씨 김대중(金大重)이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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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부호마을은 물 위에 뜬 연꽃이 소생한다 하여 연화부수(蓮花浮水), 곧 ‘부수도’라 불렸고, 부수도가 변형되어 부호도가 되었다. 1949년 해남군 해남면 내사리에서 부호도가 분리되면서 해남군 해남면 부호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부호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부호마을 1개의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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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에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강진군 백도면의 일부 지역과 북평종면과 합하여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83년 북평면에서 분면되어 해남군 북일면이 개설되었다. 북쪽으로 두륜산, 서쪽으로 쇠노재가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평야 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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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평시면(北平始面)·북평종면(北平終面)을 합하여 북평면(北平面)이라 명명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영암군의 월경지인 북평시면·북평종면·강진군 백도면(白道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는데, 1906년(광무 10) 영암군과 강진군에서 떨어져 나와 해남군에 편제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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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는 보성, 곡성, 장성을 방어하기 위해 식량을 관리하던 곳이라 하여 사창(社倉)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비들이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사정(士亭)이라 하였다가, 그 후 선비는 마음이 바르고 올바른 자세로 하나같이 나라의 기둥이 되자는 의미로 사정(士丁)으로 불렀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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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산막리(山幕里)는 조선 단종 때 강원도 원주의 이영화(李英華)[1430~1517]가 세조를 피하여 산막을 짓고 은거한 것에서 유래한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막리와 유목리, 그리고 지동리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산막마을 하나의 자연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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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산이면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를 비롯한 여러 지리지와 『광여도』[19세기 전반], 『해동지도』[1750]를 비롯한 옛 지도에 ‘산이(山二)’라고 수록된 지역으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지명이 바뀌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해남의 면이다. 고지도에서 산이면 지역의 산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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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산정(山亭)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름의 변화가 없이 전하여 왔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암군 송지종면에 속하여 있던 산정리와 은소면의 상석리, 석수리, 미학리와 미야리의 각 일부을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산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산정1리마을, 산정2리마을, 엄남마을,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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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산호리(山湖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산수리(山水里)의 첫 자와 석호리(石湖里)의 가운데 글자를 취하여 지었다. 산수(山水)마을은 마을 가운데로 냇물이 흐르고, 마을 주위를 산이 감싸고 있는 형국으로 예로부터 산과 물이 좋아 ‘산수(山水)’라고 불렀다. 석호(石湖)마을은 마을 주변에 돌이 많아 ‘돌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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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간을 왕래하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나루. 삼지원(三枝院) 나루는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지르는 나루이다. 해남 삼지원[나루]의 진도 쪽 상대 나루는 벽파진으로 고려 때에는 대진(大津)이라 칭하였다. 나룻가에 있는 원정(院亭)은 바람과 물때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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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에 있었던 옛 나루에 세워진 원(院). 삼지원(三支院)은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 지르는 나루에 세워진 원이다. 해협의 뱃길 거리는 직선으로 약 3㎞에 이른다. 삼지원은 진도군을 왕래하는 중심 나루이자 진도군 관문에 해당하는 중요한 원이다. 삼지원은 벽파진~남리역으로 연결되는 역로 상에 있다. 해남 삼지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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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공리(相公里)는 입향조인 동복오씨가 고향을 기억하고자 양지(良池)라 부르다가 상공산 밑에 있어서 상공(相公)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당후리(堂後里), 상공리(相公里), 양지리(良池里), 그리고 원항리(元項里)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로 개설되었다. 상공리는 당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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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상등리(上燈里)는 처음에 통세골로 부르다가 대나무와 매화가 많은 곳이라 하여 대매[竹梅]로 개칭되었으나, 이후 민씨들이 마을 위쪽 상봉 등성이에 터를 잡고 거주하면서 상등으로 불렀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에 따라 신촌리, 상등리, 호교리, 용전리 일부와 마포면 신흥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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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 말사. 서동사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으나 1980년대 초 지금의 대웅전 지붕을 보수할 때 발견된 「서동사중수상량문」[1870]과 「서동사중수서」[1870] 현판 기록을 통해 개략적인 발자취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서동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887~896]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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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서동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서동사 대웅전(瑞洞寺大雄殿)은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서동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이다. 서동사(瑞洞寺)는 운차산[운거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6] 대에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정유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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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표충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산대사의 행적비.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西山大師表忠祠紀蹟碑)는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대흥사에 있는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에는 서산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기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규합하여 전쟁에 공을 세운 서산대사가 입적한 이후 대둔사(大芚寺)[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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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17세기 초 청허 휴정이 중국의 『사가어록』을 발췌한 문헌.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西山大師行草精選四家錄)』은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병장인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이 중국의 『사가어록(四家語錄)』의 중요한 구절을 발췌한 문헌이다. 『사가어록』은 중국 당(唐)대 선문(禪門)을 대표하는 임제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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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서상리(西上里)는 우수영 동헌 서쪽 위에 있는 마을이라 서상(西上)이라 불렀으며, 세편, 서북리라 부르기도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상리, 서하리와 남상리·서외리·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서상마을, 서하마을, 서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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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 해남군 은소면 원서정마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산리, 장춘리, 운곡리와 패소리, 등리, 우분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서정마을, 치소마을, 장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정마을에는 1600년경 해남윤씨와 이씨,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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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쥐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서포(鼠浦)라고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쪽에 넓은 들이 있다 하여 서홍(西洪)으로 개칭하였다.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06년(광무 10)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등리, 신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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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석교리(石橋里)는 마을 앞에 돌다리가 있어 ‘독다리’, ‘독나루’, ‘석교’라 불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덕리, 일정리, 신창리, 석교리와 사교리·충평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석교마을, 심동마을, 신창마을, 일정마을, 목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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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석호리(石湖里)라 붙여졌다. 본래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흑석리, 장명리, 대인리, 대지리, 주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석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흑석(黑石), 좌일(佐日), 대지(大只)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흑석마을은 약 14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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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선두리(先頭里)는 본래 이곳에 배를 대는 머리였다고 하여 배머리, 뱃머리라 부르다가 선두라 칭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하리, 선두리, 남상리, 남외리, 학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로 개설되었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황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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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先史時代)라 하며, 문자 발명 이후의 시대를 역사시대(歷史時代)라 한다. 해남에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 곳으로는 산이면 구성리·덕송리·대진리, 문내면 충평리, 화원면 성산리 등이 있다. 이들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들로는 몸돌, 소형 양면찍개, 긁개, 여러면석기,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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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선진은 선산리라 하였고, 배와 연관되어 있어서 배미라고도 하였으며, 한편 국도 제13호선 건너편 마을은 선박 출입 시에 배가 정박하던 곳이라 하여 원진리(院津里)라 하였다. 여기서 선산과 원진을 합하여 선진(船津)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과거 마을까지 배가 닿았다 하여 선진(船津)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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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성내리(城內里)는 조선시대에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성문 안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성내리의 자연마을인 성내마을은 해남읍성(海南邑城)의 성 안쪽에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성내리의 자연마을인 서성마을은 읍성의 서문과 옹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성(城)의 서쪽 혹은 성내리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서성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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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에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의 암자. 성도암은 백여 년 전에는 위봉 봉우리에 위치한 대흥사 선승들의 기도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제주양씨 집안의 부인이 해남군 동촌리로 시집을 와서 아들을 낳고자 매일 성도암에서 기도를 하자, 시아버지가 안타깝게 여기고 성도암을 사비로 사서 대웅전을 지었다. 성도암은 여순 반란 사건을 거치면서 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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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있는 삼국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성마산성(城馬山城)은 삼국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있다. 성마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변천 과정을 알 수 없다.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성수동에서 남쪽으로 약 200m를 가면 해발 87.1m의 성마산이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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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성산리(星山里)는 성산(城山)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남윤씨의 꿈에 산 위에 별이 떨어져서 성산(星山)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또 옥천면 내 ‘산’ 자를 가진 여덟 개 마을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성산(星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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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성산리(星山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 앞에 있는 일성산(日星山)에서 두 글자를 취하여 성산(星山)이라 지었다. 본래 해남군 장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척북리(尺北里)와 가납리(加納里), 그리고 문내면의 고대리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성산리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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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성진리(星津里)는 고려 때 해남 삼역(三驛) 중 하나인 별진역(別津驛)이 있었던 곳이다. 성진(星津)은 뱃나루가 별나루로 변하여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별이 성(星)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혹은 성진교 위쪽에 별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이름을 따서 성진리로 개칭했다는 설도 전한다. 본래 해남군 비곡면에 속하였는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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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관방 시설인 성터 유적. 성곽은 행정 시설물이면서 관방 시설물이다. 방어나 주둔이 목적인 성도 있겠지만 주둔하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행정성이 되기도 한다. 해남 지역의 성은 우선 읍성이나 치소성 등 행정 기능이 주가 되는 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진보(營鎭堡) 등 군사 목적의 성도 있다. 산성의 경우는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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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와 서산대사. 해남 대흥사는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가련봉과 두륜봉을 상봉으로 하는 조계봉,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등의 두륜산 경치는 장관을 이룬다. 해남 대흥사는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8호로 지정되었으며,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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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소죽리(小竹里) 서쪽 바다에 섬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작다. 섬에는 대나무가 서식하고 있어 큰대섬, 작은대섬으로 부른다. 소죽마을은 작은대섬에서 이름을 따와 소죽(小竹)이라 하였다. 소죽마을은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 존재하였던 지방의 특수행정조직인 향·소·부곡 가운데 영암군에 있던 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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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송산(松山)은 ‘솔뫼’의 한역으로, 마을이 소나무가 많은 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고리, 남촌리, 화촌리의 각 일부와 학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로 개설되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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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소나무가 많은 산이 있다 하여 송산리(松山里)[화산면]라고 하였다. 본래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치리, 과목리와 봉황리, 주천리, 갑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송산마을, 탄동마을, 시목마을, 주천마을 등의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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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송석리(宋石里)는 송석정(松石亭)이라는 정자에서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곡리, 원덕리, 오산리, 송석·평촌 일부와 산일면 신덕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송석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송석마을, 원덕마을, 월곡마을, 월산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송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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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송천리(松川里)는 작은 하천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내’라고 불렀으며, 작은내가 전화하여 솔내 또는 소래가 되었다. 송천은 ‘솔내’의 한자식 지명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해당리·송천리·부흥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송천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해당리(海堂里)와 송천리는 1789년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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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송천리에 있는 1921년 건립된 도강김씨 사우. 송천사(松川祠)는 1921년 건립하여 도강김씨 김진용과 김진익 형제를 배향하고 있다. 김진용과 김진익은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의 난 때 원수 장만의 휘하에서 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훈록되었다. 김진용(金震龍)의 자는 신주(信住), 호는 죽정(竹亭) 본관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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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쌓은 조선시대 목장성. 송호리 목장성(松湖里牧場城)은 황원의 목마들을 방목하기 위하여 1454년 여러 곳의 수군들을 소집하여 축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해남읍지(海南邑誌)』 등에서 확인되며, 지적도에 흔적이 남아 있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연결된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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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송호마을은 바닷가에 연해 있는데, 마을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하고, 마을 앞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하여 송호(松湖)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송지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 신풍리, 송종리, 내동리, 갈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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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우수영으로 통하는 첫 관문이 있어 들문이라 부르다가, 소나무와 물이 많아 송호(松湖)라 부르게 되었다. 『여지도서』[1757]에 봉문리(峯門里)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것을 송호리로 보기도 한다. 또한 과거 문헌에는 산일면 거문리(擧門里)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거문은 들문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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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 송호정(松湖亭)은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지었고 나중에 연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송호당(松湖堂)이라고도 한다. 송호정은 석천 임억령 등 저명한 풍류객들이 묵어 간 곳으로 관련 내용이 시로 전한다. 정자가 있던 큰 소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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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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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향교 중심의 마을로서 마을의 이름 또한 향교몰, 신교리로 불렸으나 이후 1914년 수정이라고 하였는데, 해방 이후에 일본식 이름 개칭에 따라 수성이라고 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교리와 동외리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수정(壽町)으로 개설되었다. 1949년 일본식 동명 개칭에 따라 수정에서 수성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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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신계리(新溪里)는 본래 새로운 포구라 하여 신포(新浦), 신개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바다가 간척되면서 신계(新溪)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군 지역이었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리, 용계리, 죽리, 영해리, 신동, 거오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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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신평리의 ‘신(新)’ 자를 취하여 신덕리(新德里)로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신평마을은 마을이 어려운 시기를 몇 차례 무사히 넘겨왔기에 평탄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신평(新坪)이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저면의 신평리(新坪里), 하리(下里) 일부와 장서면의 사동리(巳洞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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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신화리(新化理)와 안국리(安局里)의 ‘신’ 자와 ‘안’ 자를 따서 신안리(新安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화리와 안국리, 해리, 고도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신안리로 개설하였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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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는 고려시대 건립된 석불입상 및 석탑. 신안리 석불입상 및 석탑(新安里石佛立像-石塔)은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다. 고려시대 건립된 석불입상 및 석탑으로 2015년 6월 29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신안리 석불입상 및 석탑 중 석불입상은 고려 중기 무렵 조성되었고, 신안리 석탑은 고려 전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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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큰 길가에 있다 하여 한길머리, 한질머리라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이 초승달 같이 생겼고, 만월마을 동북쪽에 있다고 하여 신월리(新月里)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리, 만흥리 일부와 강진군 백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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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영암군 옥천시면의 한 지역으로 연안정이라 하였는데, 팔산리의 죽촌(竹村) 어귀에 새로 들어선 마을이라서 신죽(新竹)이라 부르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이었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곡리, 한천리, 신흥리, 거오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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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큰 들가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여 새들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바꿔 신평리(新坪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비곡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월리, 해정리, 소은리, 황죽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계곡면 신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신평마을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평마을은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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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에 의하면 수렁이 많으므로 수실, 또는 화곡이라 하며, 또는 안동부사 윤복이 살았으므로 안동태 또는 안동이라고 하였는데, 이 중 『지명총람』에서 말하는 안동부사는 해남윤씨 윤효정의 넷째 아들 행당 윤복을 말한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해남면 안동리로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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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어란리(於蘭里)는 지형이 바다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것이 마치 난(蘭)처럼 생겼다 하여 어란(於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있어 어란진이라고도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장리, 동현리, 내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로 개설되었다. 1921년 완도군 군외면의 어불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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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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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었던 포구. 어란(於蘭) 지명은 2차례 이동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어란이 있었으며, 어란에 배치된 병선이 어란도 섬을 거쳐 지금의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만호진이 정착하면서 어란 지명도 현재로 고정되었다. 조선 전기 어란은 병선이 배치된 수군진이면서 제주를 오가는 입출항지이기도 하였다. 이에 제주도 관승의 자제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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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었던 다리. 어성교 지명은 대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어성천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어성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해남읍에서 화산면과 현산면을 왕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등을 보면 어성교가 그려져 있다. 당시의 어성교는 어성천의 하류에 석교로 건설되었으며, 현재 삼산면 원진리와 옹암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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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여수리(麗水里)는 본래 마을 형태가 새가 남향으로 앉은 모양이라 하여 새냄(鳥南) 또는 조남이라 불렸다. 방춘저수지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이 아름답다 하여 빛날 려(麗)를 써서 여수리(麗水里)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때 여수리(呂水里)로 바뀌어 불렸다. 2007년 군청에 마을 이름 개명을 요구하여 다시 여수리(麗水里)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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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역사. 해남군의 역사는 구석기로 올라간다. 고대에는 고대 연안 해로와 관련하여 신미제국의 중심인 침미다례(忱彌多禮), 지미(止迷), 침명현(浸溟縣)으로 이어진다. 고려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이 등장하고 지금의 산이면 진산리 청자 가마터[사적 제310호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와 화원면 신덕리 청자 가마터[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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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개성이나 한양을 연결하였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이동하거나 공문을 전달할 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보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를 원(院)이라 하였다. 이를 합하여 역원(驛院)이라 칭한다. 이칭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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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구리(燕邱里)는 마을 뒷산 형국이 제비가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연구(燕邱)’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구리, 당두리, 덕인리, 추당리, 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연구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구마을, 지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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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연못이 있어 연못골이라 불렀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마을 앞 저수지에 연꽃이 자생하여 연꽃 연(蓮)과 연못 당(塘)을 합해 연당(蓮塘)이라 불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당리, 덕암리, 백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당마을과 덕암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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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地名總覽)』에 의하면 연못이 있어 연못골 또는 연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송리와 연동의 이름을 따서 남연리라 하였다가, 1949년에 연동리로 고쳤다. 한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연동리 지역에 현일면의 조막동·백련동·죽음리가 있고 1896년(고종 33) 『해남읍지』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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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호(燕湖)의 연원으로 여흥민씨 민이달이 마을에 입향한 후에 연기(燕妓)라는 기생과, 남경사신으로 간 선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에서 연(燕)을, 마을이 바다에 가깝다고 하여 호(湖)를 따와 연호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연호 지명은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 이전부터 있었다. 또 고문헌 여러 곳에 연호호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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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1732년 건립된 원주이씨 사우. 영산사(英山祠)는 1732년(영조 8)에 건립된 임진왜란 공신 이계정(李繼鄭)[1542~1595]을 비롯하여 원주이씨 충신 9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이계정의 자는 경윤(景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곤양군수로 왜적을 격퇴하였고, 무주 조방장에 제수되어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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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영암군 옥천시면의 지역으로 영신원(永信院)이라 부르다가, 영신으로 바뀌었다. 마을 이름에 원(院) 자가 붙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묵고 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신리(永信里)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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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오래전 마을에 살았던 덕망가가 외롭고 괴로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 덕망을 사모하여 마을 이름을 전옹(田翁)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3년 영숙이라는 사람이 자기 호의 영(永) 자와 밭이 많다고 하여 전(田) 자를 더하여 영전(永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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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에는 만석동이라 불렀으나, 솔매등 또는 영춘(永春)이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호산리, 송운리, 만석리, 학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영춘1구마을, 영춘2구마을, 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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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호리로 법정명이 지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장재리, 저상리, 고하리, 별암리와 관저면의 구지리·상리 일부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영호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저상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오는 장목면의 저동(苧洞)과 같다. 현재 구지마을, 장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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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예락리(曳洛里)는 마을의 형국이 그물질하는 모습이라 하여 예락(曳洛)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송리, 서외리, 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락마을, 동리마을, 양정마을, 임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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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 있는 1789년 건립된 장흥임씨 사우. 예양사(汭陽祠)는 1789년(정조 13) 건립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예양군(汭陽君) 임발영(任發英)[?~?] 등 장흥임씨 육현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예양군 임발영은 156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가를 호종하여 안주목사 등을 제수받았으며 예양군에 추봉되었다. 임충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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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예동(禮洞)마을의 옛 이름인 예정에서 명칭을 취하였다. 예동마을은 깊이 들어간 갯가로 지푼개, 유효, 유정, 예정이라 부르다가, 예동으로 바꾸었다.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동마을, 동월(東月)마을, 중촌(中村)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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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은 시체 형상이고 앞동산은 까마귀 모습이어서, 까마귀가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가막리(加幕里)가 나중에 오산(烏山)으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호구총서(戶口總數)』에 가막리(加幕里)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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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옥동리(玉洞里)는 옥연이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이 옥매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연마을은 옥동마을과 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옥동리의 옥과, 마을 중앙이 제비집을 닮았다 하여 제비 연(燕)을 붙여 옥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호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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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천시면(玉泉始面), 옥천종면(玉泉終面)을 합하여 옥천면(玉泉面)이라 하였다. 옥천면 지역은 통일신라 때 냉천부곡(冷泉部曲)이 설치되었던 곳인데, 냉(冷)은 고대의 수(首)이고, 천(泉)은 몰[村]에 차용된 것이다. 곧 ‘우두머리가 있는 촌’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때는 옥산(玉山)으로 바뀌는데 옥은 거사(渠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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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와룡(臥龍)이라 하였는데 마을의 형상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 데서 나온 지명이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북평시면의 대청리 일부와, 강진군 백도면의 항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와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와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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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갓을 씌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갓바우라 하였는데, 마을이 바위의 바깥에 해당한다고 하여 바깥갓바우 또는 외립(外笠)이라 불리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내립암(內笠巖)에 해당되는 마을은 부곡마을과 춘정마을이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월리, 연당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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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외호리(外湖里)는 산막리 바깥 쪽에 있기에 ‘밖산막’, ‘밖몰’, 또는 앞에 개가 있기에 ‘밖개’라고 하였는데, 이를 의미대로 한자화하여 외호(外湖)가 되었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당거리, 외호리, 북창·봉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외호리로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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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동(龍洞)마을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으로 생겼는데, 용둠벙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룡골, 비룡동, 비렁골로 부르다가 용동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림리, 이목리, 자경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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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태산 아래에 있어서 용산(龍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용의 분비물 같아 땅이 비옥하고, 가뭄도 타지 않아 해마다 풍년을 누렸다고 한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 문촌리, 용정리, 야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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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 대덕산에 용바위가 있어 ‘용바우’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한자화하여 용암(龍岩)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문리, 원동리, 용암리와 석교리, 사교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문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용암마을, 원동마을, 신흥마을, 사교마을,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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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사우. 용연사(龍淵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명량대첩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김정언, 김정윤 형제를 배향한 사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김정언(金廷彦)의 자는 국보(國甫), 본관은 순천이다. 동생 김정윤과 함께 효성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사 유형(柳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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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에는 ‘해가 돋는 땅’이라 하여 좌일리(佐日里)로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운’과 ‘좌일’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용일리(龍日里)라 부르게 되었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따르면 영암군 북평시면과 강진군 백도면 상좌일리, 하좌일리 지역이었으나,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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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용전리(龍田里)는 지형이 용처럼 생기고, 마을에 밭이 많아 ‘용전’이라 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일면의 고암리, 용반리, 신기리, 용소리, ·용전리, 마포면의 신흥리 각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로 개설되었다. 용전마을, 신기마을, 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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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금새미[龍井]가 있으므로 금새미 또는 용정, 정머리라고 하였다. 본래 해남군 군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용리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용정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용정마을, 송정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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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1948년 건립된 동복오씨 사우. 용지사(龍池祠)는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다. 1948년 건립하여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吳克信)[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그리고 해금(海錦) 오달운(吳達運)[1700~1748]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단재 오극신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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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우항이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 휴식을 취하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하고, ‘소의 목’ 부위에 해당되는 위치에 이재량이 집터를 잡은 까닭에 ‘소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이재량의 선대에서 땅의 형국에 따라 ‘우항’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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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운전마을은 1850년 쯤에 평산신씨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신기(新基)라 하였다가, 마을 산세와 지형이 구름처럼 넓다 하여 운곡리(雲谷里)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운곡리와 장전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운전리(雲田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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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법정리. 원진리(院津里)는 원(院)[고려시대·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시설]이 있는 나루였다고 하여 원나루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진도군 삼촌면의 지역으로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신리, 옹암리 일부와 녹산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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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원님이나 사또들이 유숙하였던 곳으로 원터라 불리어 원호(院湖)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본래 산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호리, 학동리, 교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원호마을, 교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호마을은 약 400년 전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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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명종 때 마을이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고, 소나무 위로 달이 뜨면 노송 아래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였다 하여 월송(月松)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또는 마을 모양이 앞산에서 보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월송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암군 송지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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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누리, 누리동이라 불렸다가, 마을 형태가 달처럼 생겨서 월평(月坪)으로 바뀌었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산리, 해석리, 기평리, 덕산리, 팔산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월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월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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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월호리(月湖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월하리(月下里)의 첫 글자와 당호리(唐湖里)의 가운데 글자를 취하여 지은 이름이다. 본래 해남군 장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월하리, 화동리, 당호리, 그리고 억수리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월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당포마을, 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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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전반.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전래되고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숭상되었지만 정치의 이념과 운영은 유교에서 구하였다. 고려 말에는 유학의 한 파인 성리학이 전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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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 유교 건축.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유교 건축(儒敎建築)은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제사와 교육이 주된 기능이며 관아와 비교되는 건조물이다. 서원과 사우는 제사 기능에서는 동일하지만 서원은 교육 기능이 있다. 그런데 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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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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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구(尹衢)[1495~?]는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에서 가장 먼저 중앙 관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광양 최산두(崔山斗)[1483~1536], 해남의 유성춘(柳成春)[?~?]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렸다. 또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을묘명현(乙卯名賢) 중 한 사람이다. 윤구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형중(亨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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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이후(尹爾厚)[1636~169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菴)이다. 할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고, 아버지는 윤의미(尹義美),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윤이후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 윤의미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동래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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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인미(尹仁美)[1607~1674]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자수(子壽), 호는 치헌(癡軒)이다. 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며, 어머니는 윤돈(尹暾)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구봉(九峯) 유항(柳恒)[1574~1647]의 딸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형제로는 윤의미(尹義美)와 윤예미(尹禮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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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금강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은적사가 있는 이곳은 본래 다보사(多寶寺)라는 절이 있었고, 부속 암자로 은적암(隱寂庵)이 있었다. 19세기 중반 무렵에 다보사가 폐허가 된 뒤, 은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보사는 신라 때인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 기록이 없어 뒷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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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일제강점기에 본정(本町)이라 불렸으나, 1949년 일본식 이름을 정비하면서 해남골의 골안이라고 하여 읍내리(邑內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변리·남문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본정(本町)이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본정으로 개설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 일본식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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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소금을 저장하는 염창(鹽倉)이 있었으므로 염창이라 불리었으나, 조선 고종 대에 이재양이 정착하여 읍호정(挹湖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마을 이름을 읍호정, 읍호(挹湖)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계리, 백포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읍호마을, 고담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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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이문길(李文吉)[1551~?]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강릉부사를 지낸 이영화[1430~1517]의 손자이다. 아들은 이광일(李光一)이며, 손자 이신신(李愼信) 또한 효행으로 유명하다. 이문길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소학(小學)』의 가르침대로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멧돼지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멧돼지고기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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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풍수가였다.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태생으로 관련 설화가 많이 전한다. 선조 때부터 왕가의 묏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선조는 이의신에게 벼슬을 내려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었다. 광해군 때는 교하 천도설로 조정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이의신의 본관은 원주(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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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생김새가 배 같이 생긴 나루라 하여 배진 또는 이진(梨津)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진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이진마을, 산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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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 이진성지(梨津城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으로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1598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성지는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진진은 1598년(선조 31) 설진하여 1627년(인조 5)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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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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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인지마을은 본래 장수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분리되었다.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인지(仁智)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장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인지리, 장수리, 예의리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로 개설되었다. 예전에 인지리와 장수리는 ‘공수개’라 부르는 한 마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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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신리(日新里)라 칭하였다.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산리, 금곡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일신마을, 이목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일신마을의 입향조는 1987년의 『마을유래지』에는 김동현이라 하였으나, 단종애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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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일평(日坪)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일평마을은 본래 당구[혹은 당뫼]라 불렸다. 당구는 해남의 옛 이름으로 고려시대 해남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임을 반영하는 지명이다. 당구는 치소가 옥산현으로 옮겨갈 때 같이 옮겨져 해남의 옛 이름을 대변하게 되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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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자 해남현의 치성이었던 산성. 일평리 산성(日坪里山城)은 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축조된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남 지역은 백제에 병합된 이후 백제식 행정 구역인 현산면 부근에는 새금현(塞琴縣)이 설치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浸溟縣)이 되었으며, 고려 때 해남현(海南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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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임달유(任達儒)[1829~1888]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영유(永有), 호는 묵암(默巖)이다. 임달유는 1829년(순조 29)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우애가 깊었고 커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서리나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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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수(林秀)[1454~?]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희암(希巖)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임득무(林得茂)의 아들이다. 임수는 임우원(林遇元)·임우형(林遇亨)·임우리(林遇利)·임우정의 4형제를 두었다. 이들 중 임우형의 가계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임구령(林九齡) 등 임우형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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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지형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누에머리’를 뜻하는 잠두리(蠶頭里)로 불렸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청계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년리, 월하리 일부가 병합되어 해남군 계곡면 잠두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잠두마을, 만년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잠두마을의 입향조는 1770년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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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동쪽에 장군봉, 남쪽에 옥녀봉, 동남쪽에 등잔봉이 있다. 그런데 장군봉 밑으로 사람의 손바닥 모양의 산줄기가 오지형(五枝形)으로 뻗어 있어 손바닥 장(掌)과 소(所)를 써서 장소(掌所)라 하였다. 후에, 동쪽 장군봉의 형상이 마치 장군이 투구를 벗어 놓은 채 동남쪽 등잔봉에 불을 켜고는 남쪽의 옥녀봉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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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장촌리는 장자(長者), 즉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장자(長者), 장재(長材), 장촌(長村)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촌(長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계리와 장재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남계리는 17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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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냇가에 건설된 다리들. 대흥사에 이르기 전에 장춘 자연마을의 인근에서 냇가를 여러 차례 건너야 한다. 장춘마을 냇가에 다리가 건설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대흥사 관내 장춘마을 인근에 건설된 여러 석교를 말한다. 기록에 따른 장춘교(長春橋)의 시작은 피안교이며, 중건 기록에 의하면 1750년 무렵에 석교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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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장춘리(長春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장평리(長坪里)의 장(長) 자를 취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장평마을은 간척한 농토가 길어서 장평(長坪)이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장평리, 초호리, 이목리, 그리고 방하리와 문내면의 고당리, 신평리, 무고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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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적량원(赤良院)은 조선시대 남리역과 녹산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을 위하여 설치된 숙소로서, 통행하는 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 적량원은 “현의 서쪽 23리[약 9.03㎞]에 있다.”라고 하였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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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는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문을 세워 표창한 유적.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이나 그 정려문을 말한다. ‘정(旌)’은 깃발의 의미로 드러낸다는 뜻이고, ‘려(閭)’는 마을 또는 마을 어귀에 세운 문이라는 뜻이다. 국가가 정문을 세웠던 것은 삼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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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정언식(鄭彦湜)[1538~?]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곡구(谷口)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귀영(鄭貴瑛), 할아버지는 정자화(鄭自和), 아버지는 정공유(鄭公裕)이다. 형은 정언홍(鄭彦洪), 아우는 정언순(鄭彦淳)이다. 정언식은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문하생이자 증손녀사위이다.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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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해남성의 남문루. 정원루(靖遠樓)는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해남읍성의 남문루이다. 일제강점기에 해안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1469년 건립되었는데 정원루의 건립 시기는 해남읍성의 축성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원루의 남문 통에는 장시가 형성되었고 냇가에는 홍교가 있다. 정원루는 『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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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인공으로 쌓아서 만든 작은 산이 있다고 하여 조산(造山)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은소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 수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조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조산마을, 신풍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산마을은 조산, 수점(水店)의 2개 작은 마을이 1914년 합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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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조석창(曹錫昌)[?~?]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그 외 자세한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조석창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에는 묘 앞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느 날 조석창은 조상의 묘장(卯杖)[정월의 첫 묘일(卯日)에 부정을 방지하는 주술 도구로서 이용된 막대기]을 만들어 옥매산으로 운반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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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신석기시대 이후 삼국시대까지의 주거 유적. 해남 주거유적의 현황을 지역별로 설정하여 나누어 볼 수 있다. 지역 설정은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수계(水界)와 연결되는 해만(海灣)을 중심으로 삼산천 권역, 옥천천 권역, 현산천 권역, 북일면 권역, 화원면 권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삼산천 권역 삼산천 권역은 행정구역상 삼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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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 있는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죽산산성은 고려시대 죽산현의 현성(縣城)이며,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에는 본래 백제 고서이현으로, 고려시대에 죽산현으로 고쳐 영암군에 임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에 내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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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진산리(珍山里)는 진산현·진산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진산현의 성터 밑에 있어서 ‘진산(珍山)’이라 불렀다. 진산포는 고려시대에 청자를 실어 나르던 포구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산리, 내송리·대진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로 개설되었다. 진산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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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조산리에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 진흥사는 1909년(융희 3) 김진성각(金眞性覺) 보살이 양도암으로 창건한 이래 양도암에서 양도사로 변경되었다가 진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은 진흥사로 등록되었지만 1990년대 초까지는 양도암으로 부르다가 진흥사로 이름을 고쳤다. 진흥사는 예전부터 대둔사 소속 암자였으며, 『대둔사지』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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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천인혁(千寅赫)[1833~?]의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아버지는 천극로(千極老)이며, 양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그 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천인혁은 부모를 효성으로 모셨으며, 아버지 천극로가 일찍 사망한 뒤 할아버지상을 당하자 지극정성으로 시묘하였다. 이때 슬퍼하며 흘린 눈물로 인해 풀이 말랐다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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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기원전 300년 경, 중국으로부터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 단단하고 예리한 철기는 쓰임이 다양하여 쇠로 만든 도끼, 괭이와 삽, 따비, 낫, 손칼 등 농기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철제 농기구를 이용하자 벌채와 개간이 용이해져 농경지가 확대되고, 수로의 굴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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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300년 전후 시기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가 사용되고, 간석기가 더욱 발달하여 일상 도구로 활용되며, 농경이 본격화되고, 무덤이 정형화되어 무리를 형성하고, 청동기가 제작 사용되는 문화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해남의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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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청룡리(靑龍里)는 운거산[일명 청룡산]의 왼쪽[좌청룡]에 위치하기 때문에 ‘청룡’이라 불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관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저면에 있던 중리를 중심으로 상리·하리의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로 개설되었다. 청룡리는 조선시대 황원곶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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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고래시암이 있어 고려샘, 고려정이라 불렀다가, 이후 구시반, 청신정으로 불리었고, 청신(淸新)이라 칭하게 되었다.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탑동리, 동리, 흑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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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초두(草頭)의 첫 번째 글자와 외송(外松)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초송리(草松里)라 지었다. 외송(外松)마을은 초송리에서 으뜸[설, 솔]인 소리마을의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밖소리’라 불렀다. 이를 밖에 해당하는 외(外) 자와 설 혹은 솔에 해당하는 송(松) 자를 써서 ‘외송(外松)’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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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고려실’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에 초지가 좋아 초평으로 바뀌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넓은 들이 호수와 같다 하여 초호(草湖)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평리, 신방리, 산기리, 읍호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초호마을, 신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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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1964년 건립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우. 충무사(忠武祠)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다. 1964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건립되었다가 동외리로 이전하였다. 충무사는 문내면 동외리 마을 안쪽 우수영안길 경사지에 있다. 충무사는 1964년 해남 명량대첩비가 있던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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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 있는 1652년 건립된 정운 장군 사우. 충절사(忠節祠)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공신 정운(鄭運)[1543~1592] 장군을 배향한 사우이다. 정운은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부산포 몰운대(沒雲臺)에서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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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산수가 좋고 버드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서 유평(柳平), 버릿돌, 벗들이라 부르다가 해방 이후 국가에 충성을 해야 된다는 의미로 충평(忠坪)이라 바꾸었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우리와 무고리, 신평리, 충평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로 개설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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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해남현의 객사. 침명관(浸溟館)은 조선시대 해남현의 객사였다. 침명관은 1437년 현재의 위치로 치소를 옮긴 뒤 곧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13년(순조 13) 고쳐 지은 객사는 정전이 3칸이고, 동대청·서대청이 각 5칸이었다. 침명관은 일제강점기에 해남공립보통학교, 군청의 사무실 등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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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천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태영사는 1552년(명종 7)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문헌 자료는 없다. 창건 당시는 이름이 칠성암(七星庵)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으며, 이후 중건을 거듭하였다. 태영사에서 가까운 남창항의 선주와 주민들이 출항할 때 재난 방지를 위해 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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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우수영 성안에 있었던 조선시대 누정. 태평정은 태평장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언제 초설되어 언제 훼철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전라수영이 1440년(세종 22) 전라남도 무안 당포에서 옮겨오고 성(城)의 망루처로 건축되었으므로 15세기 중반에 성과 동시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정은 우수영 성 남쪽 돌출부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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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통호마을은 앞쪽만 제외하고는 산이 마을을 깊이 안고 있어, 마치 속을 파놓은 나무 속에 마을이 있는 것과 같다 하여 통(桶)에 바다의 포(浦)를 붙여 통포 또는 통개라 불린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통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통호로 바뀌었다. 본래 영암군 송지종면 지역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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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옥천 일대의 마을 가운데 대산-봉산-성산-용산-다산-송산-호산에 이어 여덟 번째로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여 팔마, 팔매라고 불린 데서 팔산리(八山里)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한 서기산에서 뻗어나온 마을 뒷산이 팔자형(八字形)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본래 해남현에 딸린 팔마부곡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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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 해남 지역에서 발굴·조사된 복합 유적. 패총(貝塚)은 마치 조개가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무덤이라고도 하며, 또는 조개더미라고도 부른다. 패총에서는 조개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식용으로 이용하였던 동물이나 물고기 뼈 등과 같이 아주 작은 뼈들도 남아 있다. 또 파손된 토기, 석기, 골각기, 토제품 등의 생활 및 생산 도구나 무덤, 주거지, 화덕 시설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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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본래 평동마을은 ‘드림밭’, ‘디딤밭’이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대정정(大正町)이라 하였으나, 1949년 일본식 동명의 폐기로 평동리(坪洞里)로 칭하게 되었다. 의미는 고도지리의 고들몰의 ‘들몰’을 한역(漢譯)한 것이다. 군일면 고도지리(古道旨里)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도지리의 일부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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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평암리(平巖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평(安平)과 암정(巖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부리, 암정리, 암평리, 묵동리, 전옹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평암리로 개설되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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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호리(平湖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들이 통합되어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사포(沙浦)마을, 평발(平發)마을, 구성(九星)마을, 송평(松平)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포마을은 1680년경 밀양박씨들이 진도에서 나와 살기 좋은 터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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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바다에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해남군 지역의 포구는 나루와 포구를 혼용하여 쓰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용례로 쓰이기도 한다. 즉, 나루는 상대 나루로 건너가는 작은 규모의 선착장이 있는 지점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된 것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나루는 다시 진(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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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학동리(鶴洞里)는 마을 산세가 학처럼 생겼다고 하여 ‘학골’, ‘학동’이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여 개편에 따라 삼정리, 보동리, 안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학동마을, 삼정마을, 충무마을, 명량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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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학의리(鶴儀里)는 마을 뒷산인 제봉산이 학이 두 다리를 뻗고 날아가는 형국이라 학의(鶴儀)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학의리, 망미리, 오호리, 금자리, 산일면의 용소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학의(鶴儀)마을, 용소(龍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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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한자리(閑子里) 명칭이 유래한 한자마을은 자라 형태의 다섯 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자라섬이라 하여 ‘한자라’라 불렸다. 이것을 한자로 바꾸면서 한자라에서 크다는 뜻을 가진 ‘한’을 대(大)가 아니라 음차만 하여 한(閑)으로 쓰고, 여기에 ‘라’가 탈락되어 한자(閑子)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말엽 광동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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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방처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해남 군곡리 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방처마을에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복합 유적으로 2003년 7월 2일 사적 제449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군곡리 패총은 1986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해남군의 문화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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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두륜산(頭輪山)[700m]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담당한 서남해 지역의 중심 사찰이다. 두륜산은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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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海南大興寺大雄寶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중심 불전이다. 2008년 9월 1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은 대흥사 경내에 있다. 대흥사 북원(北院)의 중심 불전이자 대흥사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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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海南大興寺北彌勒庵磨崖如來坐像)은 대흥사 북미륵암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이다. 마애불(磨崖佛)은 벼랑부처라고도 하며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9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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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에 있는 고려 전기에 건립된 삼층석탑.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海南大興寺北彌勒庵三層石塔)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北彌勒庵)에 있다. 고려 초기인 10~11세기경 조성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01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에 대해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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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9세기 후반에 건립된 석탑.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海南大興寺三層石塔)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9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으며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고 한다. 응진전 앞 삼층석탑이라고도 부른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은 신라 하대 건립 당시의 역사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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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소장된 서산대사의 유물.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 의발 등 유물 일괄(海南大興寺西山大師衣鉢等遺物一括)은 해남 대흥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산대사의 유품과 유물들이다. 의발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하던 것이고, 교지(敎旨)는 1788년(정조 12) 정조가 내린 것이다. 청허휴정(淸虛休靜)[15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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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는 1647년경 건립된 승탑.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海南大興寺西山大師塔)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승탑원에 있다. 1647년(인조 25)경 건립되었으며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 25일 보물 제1347호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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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화.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海南大興寺靈山會掛佛幀)」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대웅보전에 있다. 1764년 색민(色旻)을 비롯한 금어(金魚) 등 26명이 공동 제작하였다.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2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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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해남 대흥사 천불전(海南大興寺千佛殿)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천불을 모신 전각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의 경내 대웅전을 기준으로 남원(南院)의 중심에 있다. 1823년 『대둔사지(大芚寺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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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 해남 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는 1688년(숙종 14)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1942년 3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힌 것을 1945년 해방이 되자 우수영 유지들이 명량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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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조선 후기 미황사의 중심 불전. 해남 미황사 대웅전(海南美黃寺大雄殿)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조선 후기 미황사의 중심 불전이다. 1988년 4월 1일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미황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미황사는 달마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은 달마산을 배경으로 입지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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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해남 미황사 응진당(海南美黃寺應進堂)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미황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이다. 1993년 11월 19일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미황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응진당은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도 제자들에 대한 신앙 세계를 함께 묘사한 사찰 당우이다. 미황사는 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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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석축성. 해남 북평 달량진성(海南北平達梁鎭城)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종 대 왜구의 해안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만호가 배치되었던 우수영 관할의 진성이다. 해남군 북평면은 제주도로 향하는 해상 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해남 북평 달량진성과 관련하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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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송천리 미륵사에 있는 미륵불. 해남 송천리 미륵불(海南松川里彌勒佛)은 해남군 산이면 송천리 미륵사에 있다. 송천리는 ‘미륵동’으로도 불린다. 해남 송천리 미륵불은 미륵사 경내 보호각 안에 있다. 2003년 11월 24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송천리 미륵불의 조성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자연석 바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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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해남 신안리 지석묘군은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다.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서 저수지로 올라가는 길 왼쪽 교회 옆에 고인돌 20여 기가 군집을 이루며 있다. 고인돌이 있는 곳은 덕음산[385.3m]에서 흘러내린 구릉 말단부의 평지에 해당한다. 해남 신안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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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에 있는 석불. 해남 연당리 미륵불(海南蓮塘里彌勒佛)은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에 있다. 2002년 11월 7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연당리 미륵불은 현재의 자리가 원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미륵불로 신봉되어 왔다고 한다.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힌 상태이며 위는 시멘트로 덮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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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마한 또는 백제 시기의 산성. 해남 옥녀봉 토성(海南玉女峰土城)은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와 삼산면 창리·신흥리의 경계에 있으며, 마한 또는 백제 시기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해남 옥녀봉 토성은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와 삼산면 창리·신흥리의 경계에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녹산(綠山)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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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와 영춘리에 있는 5~6세기 고분군. 해남 옥천 고분군은 흔히 옥천 성산 만의총(萬義塚)으로 불린다. 본래 정유재란 때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의병들의 분묘로 알려졌다. 만의총이 있는 성산벌은 상당히 넓은 벌판으로 정유재란 때 남해로부터 상륙한 일본군에 맞서 윤륜(尹綸)·윤신(尹紳) 형제를 중심으로 참여한 의병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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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 해남 용정사(海南龍井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을 도와 용맹을 떨친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1566~1615], 수사(水使) 이억기(李億祺)[1561~1597],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 참의(參議) 이계년(李桂年)[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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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운곡사에 있는 장흥임씨 재실. 해남 운곡사 영모당(海南雲谷祠永慕堂)은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운곡사에 있는 장흥임씨 재실이다. 2011년 12월 29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운곡사 영모당이 있는 운곡사는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신기마을에서 북쪽으로 2㎞ 거리 산 중턱에 있다. 운곡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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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선도가 머물렀던 유적지. 해남 윤선도 유적(海南尹善道遺蹟)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1642년(인조 18) 54세 때 전라남도 해남군 금쇄동과 수정동, 문소동의 첩첩산중에 머물면서 자연을 이용해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 원림 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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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대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해남 이유길 유허비(海南李有吉遺墟碑)는 이유길(李有吉)[?~?]이 임진왜란 때 명량대첩에서 세운 공과 1619년 건주(建州) 출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해남 이유길 유허비가 세워진 해남군 삼산면 충리는 이유길의 출생지이다. 이유길은 17세에 임진왜란을 겪는데 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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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 해남 전라우수영(海南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해 전라도 연안 일대에 설치한 전라우도의 본영이다. 1377년(우왕 3) 전라북도 옥구(沃溝)[현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부근]에 전라수영이 설치되었다. 태종 때 왜구의 침입이 전라남도로 집중되면서 적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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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1949년 건립된 박심문을 배향한 재실. 해남 죽음사 영모재는 죽음사(竹陰祠)라는 사당에 제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중앙에 3칸의 대청을 두어 제를 모시기 위한 준비 공간으로 활용하였고, 양측 단부에 온돌방을 두어 생활 공간으로 한 전형적인 남부 지방 재실 형태이다. 2013년 8월 1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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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해남 탑동 오층석탑(海南塔洞五層石塔)은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다. 945년경 고려시대 석탑으로 2006년 1월 1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탑동 오층석탑은 평박한 옥개석과 기단부의 결구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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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임씨 효열 정려. 해남 현산면 효열부 나주임씨 정려(海南縣山面孝烈婦羅州林氏旌閭)는 효와 열을 겸비한 나주임씨의 덕성을 기리기 위해 암행어사 성수묵(成守黙)의 특명으로 1866년(고종 3) 중건된 건물이다. 해남 백포리 임부인 효열비각(海南白浦里林婦人孝烈碑閣)이라고도 부른다. 나주임씨는 전라남도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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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해남 내동리 밭섬 고분군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에 있다. 밭섬 정상부에 백제 고분 2기가 있으며,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북일면 면소재지에서 내동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해안이 나오고, 북동쪽으로 가면 밭섬이 나온다. 밭섬은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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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의 만일암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해남 대흥사 만일암지 오층석탑(海南大興寺挽日庵址五層石塔)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모신 건조물이다.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으며 고려 후기인 12~13세기에 조성되었다. 만일암은 대흥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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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에 있는 고려 전기에 건립된 석탑.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海南大興寺北彌勒庵東三層石塔)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北彌勒庵)에 있다. 고려 초기인 10~11세기경 조성되었다.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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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있는 조선 초기 죽산현의 향도와 주민들이 매향 의식을 행하고 새긴 암각 비문.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는 해남 맹진리 만대산 장군바위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 1406년에 세운 매향 암각비이다. 매향비 또는 매향 암각은 매향을 하면서 매향 연유와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이나 집단을 기록하는 기록물을 말하는데 돌 비석이나 바위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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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용운 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은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독수리봉[57.7m]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독수리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1호분과 2호분이 있다.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방산리 독수리봉 고분군은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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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은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전방후원형 고분이며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8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북일면 면소재지 남동쪽에 성마산(城馬山)이 있다. 세 줄기 구릉이 남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비교적 짧은 중앙부 구릉에 해남 방산리 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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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해남 방축리 지석묘군(海南方丑里支石墓群)는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무덤이다. 1987년 9월 18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선은산[281.7m]의 서쪽 기슭 아랫부분에 있으며 화산면 소재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고인돌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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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방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강학소. 해남 방춘정(海南芳春亭)은 1871년(고종 8) 김정정(金鼎淨)과 김문익(金文翼)이 주도하여 건립한 순천김씨 강학소이다. 원래 방춘정에는 절제 김종서, 월담 김승주, 북저 김류, 남은 김효우를 비롯한 순천김씨 선대를 배향하였던 삼상사(三相祠)[1808년 건립]가 있었다. 1868년(고종 5)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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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고분. 해남 신월리 방대형 고분(海南新月里方臺形古墳)은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남동쪽성마산(城馬山) 구릉 경사면에 있다. 1984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고, 1987년 1월 5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북일면 면소재지 남동쪽에 성마산이 있다. 성마산에서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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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해남 연정리 지석묘군은 해남군 화산면 연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이다. 1997년 5월 15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연정리 지석묘군은 연화저수지의 상류에 접한 연정리 석정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해남 연정리 지석묘군은 1986년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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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 있는 6세기 중반에 조성된 고분. 해남 용두리 고분은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마을에 있는 6세기 중반의 고분이다. 전방후원분으로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해남읍에서 대흥사로 가다 보면 용두마을이 나온다. 용두마을 입구에는 삼산시온교회가 있으며, 교회의 왼쪽에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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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용일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해남 용일리 용운 고분군은 해남군 북일면 용일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로 지정되었다.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북일면사무소 남동쪽에 성마산(城馬山)이 있다.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 정상부에 해남 용일리 용운 고분군이 있다. 2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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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증산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많은 부장품이 수습되었으며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378-1에 있다.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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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읍. 고려시대 침명현이 해남현(海南縣)으로 개칭되어 처음으로 ‘해남’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였다. 조선 초 직촌화 과정에서 황원군(黃原郡)·죽산현(竹山縣)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해남이 시작되었다. 1409년(태종 9) 해남현이 진도군과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 되고, 1437년(세종 19) 해진군에서 해남과 진도가 분리되면서 해남현이 되었다.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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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성내리에 있는 1437년 무렵 축성된 읍성. 해남읍성(海南邑城)은 세종 때 대대적으로 있었던 연해 고을의 읍성 축조와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해남읍성이 축조되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나였던 해남과 진도의 분군 시기인 1437년에 쌓기 시작하여 읍성의 남문루인 정원루(靖遠樓)가 완성된 1469년(예종 1) 사이 축성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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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만조 때면 바닷물이 해남천(海南川)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여 본래 ‘갯몰’, ‘바댓몰’이라고 불렸다. 한자식 지명에 따라 해리(海里)로 개칭하였다. 본래 군일면 지역에 속하여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리와 신교리·동외리·천변리의 각 일부를 붙여 해남군 해남면 해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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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해원리(海元里)라고 하였다. 해원리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영암군 송지종면의 개현(介峴)으로 나와 있는데, 갯골 또는 가연이라 불렀다. 개현이 어떤 연유로 해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암군 송지시면과 송지종면의 개현(介峴), 삼마동(三馬洞)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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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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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포구. 해창(海倉)은 조선 후기에 해남현의 전세를 보관하고 출발하는 포구였으나 사실상 해남현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전세나 대동미를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17세기 중반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되면서 해남현에 설치한 세곡 창고였고, 동시에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는 포구이기도 하였다. 전세와 대동미를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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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해창마을 갯가에 정자나무가 많았으므로 석호정(石湖亭)이라 하다가, 연곡리(蓮谷里)에 있는 해창(海倉)이 옮겨 와 창촌(倉村), 신해창(新海倉)이라 한 데서 해창리(海倉里) 지명이 유래하였다. 해창시(海倉市)가 『조선지지자료』에서 확인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가 개설되었다. 현재 해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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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기관. 해촌서원(海村書院)은 최부(崔溥)[1454~1504], 임억령(林億齡)[1496~1568], 유희춘(柳希春)[1513~1577], 윤구(尹衢)[1495~?], 윤선도(尹善道)[1587~1671], 박백응(朴伯凝)[1525~?] 등 해남 출신 인물 6현을 배향하고 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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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의 조개더미. 현산 두모리 패총(縣山斗毛里貝塚)은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에 있다. 2001년 11월 7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해남군의 문화유적』 보고서에서는 ‘백포리 패총’으로 보고하였는데, 이후 2002년 『문화유적 분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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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호동(虎洞)마을은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좋아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그러나 인근 마을과는 달리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없었다. 이에 범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범골이라 하였으며 호동(虎洞)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다. 혹은 마을 모습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태라 하여 복호곰이라 불렀는데, 여기서 호동이라는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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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화내리(禾內里)는 ‘곶 안쪽에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곶안’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고안’으로 음이 변하였다고 하며, 마을이 ‘곶 안쪽’에 있으므로 ‘물안’이라고도 하였다. 화내는 한자식 표기이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낙동리, 화내리, 양지리, 안정리와,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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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화봉리(花峰里)는 마을 뒷산인 화봉산(花峯山)[165.3m]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화봉산은 꽃봉우리 형국으로, 사시사철 꽃이 피고 향기가 가득하여 화봉(花峯)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화봉리(花峯里), 초동리(草洞里), 역양리(力陽里)를 통합하여 화원면에 편입되었다. 이 중 초동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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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행어사 정만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화원 정어사 철비(花源鄭御史鐵碑)는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비석으로 암행어사 정만석(鄭晩錫)[1758~1834]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만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균관전적·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후 1794년(정조 18) 호남·호서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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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화원면을 설치하였는데, 조선 초에 설치한 황원곶목장(黃原串牧場)의 ‘원(原)’ 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장서면(場西面)과 장목면(場牧面)으로 편제되었다가, 1906년(광무 10)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감목관이 혁파되고, 그 자리에 관저면(管底面)이 신설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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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에 1454년 설치되었던 목장. 화원목장(花源牧場)은 1445년(세종 27) 무렵 해남군 화원면에 설치되었고 영암군사가 관리하였다. 성종 무렵에는 1500여 필을 방목하였으며, 중종 때는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까지 옮겨 방목하였다. 1454년(단종 2) 6월에는 황산면 송호리에 목장성을 축성하였으며, 17세기에는 진도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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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흙이 누래서 누렁메라 불리어 오다가 황산(黃山)이라 개칭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토리, 용암리, 원진리, 학동리와 현산면의 봉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황산마을, 분토마을, 원진마을, 봉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황산마을은 조선 중엽 경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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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황산면(黃山面)은 황원면과 산일면이 병합하여 이루어졌다. 황원면은 백제 때 황술현(黃述縣), 통일신라 때 황원현(黃原縣), 고려시대 황원군(黃原郡), 조선시대 황원면(黃原面)으로 이어지는데, 황은 황토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즉 황원면은 과거의 ‘황(黃)’으로 볼 때 ‘중심이 되는 넓은 들판’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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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일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황원 봉수(黃原烽燧)는 조선 초기에 개설되어 1894년 폐지되었다. 고려 시기 황원군의 진산인 일성산(日星山) 정상에 있어 일성산 봉수라고도 하였다. 황원 봉수를 감싸고 서쪽으로 테뫼식 석축성[산 정상부를 둘러가며 바깥쪽만 성돌을 쌓고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 조성되었으며,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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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된 목장. 황원목장(黃原牧場)은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에 설치된 목장이다. 1445년 건립되었다. 1445년(세종 27) 10월 9일에 하삼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뢸 때 “영암군의 황원곶[黃原串]은 4,000필을 놓을 수 있는데, 거민 400여 호가 바닷가에 흩어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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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농토가 적어 농사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시절 마을사람들은 모시를 생산해 생계를 이어갔다. 그래서 모시골이라고 불렀다. 모시 생산이 줄어들고 대신 마을 형성 당시의 대나무가 무성하게 되어 황죽(篁竹)이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비곡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계곡면 황죽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황죽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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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후상리(厚上里)와 후하리(厚下里)에서 ‘후(厚)’를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온득리(溫得里), 후상리(厚上里), 후하리(厚下里), 가마리(加馬里), 질마리(叱馬里)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온득리, 후상리, 후하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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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흑천마을을 곰샘골로도 불렀는데, 곰샘은 ‘검은 샘’, 즉 흑천(黑泉)이며, 흑천은 곧 신천(神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학동리, 억수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흑천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흑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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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신풍(新風), 선성국(船成國), 만흥동(萬興洞)으로 불렸으며, 흥촌(興村)이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만흥과 신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마을이 흥하기를 바라는 명명이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풍리,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