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22
한자 珍山里
영어공식명칭 Jin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개설
진산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2.223㎢
가구수 111가구
인구[남/여] 221명[남자 99명|여자 122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진산리(珍山里)진산현·진산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진산현의 성터 밑에 있어서 ‘진산(珍山)’이라 불렀다. 진산포는 고려시대에 청자를 실어 나르던 포구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산리, 내송리·대진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쳐서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로 개설되었다. 진산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이면에 속한 마을로 동진산(東珍山)과 함께 나온다. 현재 진산마을, 신정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진산현은 본래 조선 초 해남군의 속현이었다가 폐현되었다. 당시 진산현의 치소터로 추정되는 진산고성지(珍山古城址)가 남아 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6]과 『문헌비고』[1908]에 관민(關民)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는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보면, 진산마을은 조선 초 산이면 일대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진산마을 일원에는 고려시대의 청자 가마터가 많이 남아 있어서 고려시대에 번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해김씨가 최초 입향하였다고 전해 온다. 신정마을은 진산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1982년 분리되었다.

[자연환경]

남쪽으로 화원반도와 연결되는 문내면 석교리와 지북산[58m]이 바라보이고, 동북쪽으로는 영암군 학산면·미암면이 금호호와 영암호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인다. 1996년 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의 남서쪽과 동북쪽으로 펼쳐진 갯벌을 간척하여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현황]

진산리(珍山里)는 북쪽으로 대진리, 영암호, 동쪽으로 초송리, 남쪽으로 금호호, 서쪽으로 부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2.223㎢이며, 진산리, 신정리의 2개 행정리에 111가구, 221명[남자 99명, 여자 1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배추와 고추,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으며, 일부 농가에서는 양돈과 양계를 한다. 특산물로 무화과를 재배하는 농가도 있다. 진산리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지방도 제806호선이 지나가고 있다.1985년 1월 4일 사적 제310호로 지정된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가 있다. 또 산이면 대진리에서 진산리까지 가로질러 만들어진 평지성인 진산성이 일부분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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