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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선비 성봉화(成鳳和)가 마을을 개척하고 몇 년 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기슭에 정자를 짓고 글공부를 하였다. 이에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江亭)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형곡동을 병합하여 강정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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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 있는 창녕성씨 동성마을. 입향조인 선비 성봉화가 마을 뒷산 기슭 낙동강 변에 정자를 지어 학문을 닦았는데,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이라 하였다. 조선 중엽 성봉화가 마을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성풍세(成豊世)[1572~1649]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정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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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있던 포구. 개경포(開經浦)는 개진면 개포리 앞 낙동강 변의 포구로 옛날에는 소금을 비롯한 곡식을 실어 나를 정도로 번창하였다. 개경포라는 이름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를 통해 이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달리 개포나루,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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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개포(開浦)의 ‘개’자와 진촌(津村)의 ‘진’자를 따서 개진면(開津面)이라 하였다. 신라시대에 대가야군에서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시대에 영천현으로 개칭하여 감무를 두었으며, 1394년(태조 3) 고령현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九谷面)이 되어 개포·시례(詩禮)·한제(漢制)·오사(吾士)·광도(廣道)·구곡(九谷)·봉동(鳳洞)의 7개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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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포(開浦)는 원래 개산포구(開山浦口)로, 일찍이 낙동강을 이용한 수운(水運)의 요지로서 소금과 곡식을 운반한 선창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판을 강화 전등사에서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길 때 서해안을 거쳐 김해의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와 개포나루에 이른 뒤, 육로로 대가야읍 화갑을 거쳐 해인사에 다다랐다. 이후부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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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는 경주김씨 동성마을. 낙동강 상류와 하류, 내륙 지방의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였던 까닭에 많은 행인들이 묵어가거나 거쳐 가는 곳이어서 손터라 하였다. 객기(客基)는 손터의 한자 표기이다. 객기마을이 속한 객기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고종 32)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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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에 있는 경주최씨 동성마을. 객기리(客基里)에는 손터[客基], 새터[新基]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손터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 내륙 지방의 육로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였던 까닭에 많은 행인들이 묵어가거나 거쳐 가는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객기(客基)는 손터의 한자 표기이다. 새터는 손터가 생긴 뒤 새로 개척한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그릇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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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 있는 이홍기, 이홍량, 이홍우가 건립한 재실. 경목당은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 쟁골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고탄(高呑)은 조선 초 하씨가 개척한 마을로 의봉산 남쪽으로 높은 산 여울에 에워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쟁골은 조선 선조 때 광산이씨 문종을 모신 경목당이 있었는데 재실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쟁골이라고 불렀다. 성산IC를 나와 대가야읍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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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큰 골짜기 위에 자리 잡았으므로 고곡(高谷)이라 하였다. 마을 지형이 북처럼 생겨 고실(鼓室)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인 삼거리는 대가야읍과 안림리, 해인사 방면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 갈림길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성동·칠동·신촌동을 병합하여 고곡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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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은 1979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 석불로, 배 모양의 평평한 돌에 새겼다. 전체적인 윤곽은 돋을새김을 하였고, 옷주름이나 연꽃무늬 등은 선으로 긋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에 쓴 관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고, 손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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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고령박씨의 정문. 열녀 고령박씨는 양천인 최흠(崔欽)의 처이다. 결혼한 지 20일 만에 남편이 병사하자 시부모 앞에서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남편의 3년 상을 마친 후에 남편의 허리띠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의 죽은 모습은 산 사람처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선녀 같은 자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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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 때 관청이 있었다 하여 고아리(古衙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치사리를 병합하여 고아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고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고령읍 고아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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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높은 산과 여울이 에워싼[呑]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고탄(高呑)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곡동을 병합하여 고탄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고탄리가 되었다. 고령군 동부의 의봉산[535m]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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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 있는 광산이씨 동성마을. 고탄리에는 고탄, 쟁골, 봉곡, 대월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고탄은 의봉산[535m] 남쪽에 있는 마을로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붙인 이름이고, 쟁골은 광산이씨 문중의 이홍기(李弘器)·이홍량(李弘量)·이홍우(李弘宇)를 기리는 재실인 경목당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봉곡은 고탄 뒷산이 봉황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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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뒷산 칡덩굴 아래 자라는 기이하고 향기로운 풀을 먹으니 힘이 세어지고 장수가 났다 하여 곽갈(藿葛)이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반상(班常)의 차가 심하여 까다롭다고 하여 꽉걸이라고도 하였고, 옛날 마을 안에 있던 못에서 미역이 났다 하여 곽촌(藿村)이라고도 하였다. 달리 깍껄·꽉깔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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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는 달성서씨 동성마을. 곽촌리에는 곽촌(藿村), 못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곽촌은 옛날 마을에 있던 연못에서 미역이 났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척 당시 뒷산 칡덩굴 아래 자라는 기이하고 향기로운 풀을 먹으니 힘이 세어지고 장수가 났다 하여 곽갈(藿葛), 마을 사람들이 반상(班常)의 차가 심하여 까다롭다고 하여 꽉걸이라고도 하였다. 달리 깍껄·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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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에 있던 광명사의 절터. 광명사(光明寺)는 성산면 상용리 절골에 있던 사찰로, 1954년에 조각운이 주동이 되어 보살계를 모아 창건한 것을 주지 이무룡이 이건(移建) 중창한 사찰로 추정된다. 현재는 폐사되어 존재하지 않으나 아직도 주변에서는 탑이나 기와편 등이 발견되고 있어 사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성산면사무소에서 고령교 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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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올밧골, 올밤골, 건진골, 월당골, 진방골, 밋골, 문안골, 골안골, 새안골 등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구실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계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전방골, 골이 깊은 올방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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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김해허씨 동성마을. 올밧골, 올밤골, 건진골, 월당골, 진방골, 밋골, 문안골, 골안골, 새안골 등 아홉 골짜기로 둘러싸여 구실 또는 구곡(九谷)이라 하였다. 이와 달리 범이 살았던 범산골, 절이 있던 절골, 바위에 글이 있었던 문바위골, 문안 같은 문안골, 고기를 구웠던 국계골, 원당사가 있었던 원당골, 햇빛이 많이 비치는 대양골, 동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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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 앞 낙동강이 흐르는 일대에 늪, 즉 벌이 뒤덮여 있어 붙인 이름이다. 달리 지버리·재벌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고, 다만 약 300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인근 봉동마을에 안동권씨가 세거하여 온 점으로 미루어 봉동과 같은 시기에 안동권씨가 지벌리마을에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봉동마을에는 지금도 안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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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26호선 을 타고 고령읍내로 들어와 고령공영주차장에서 고령보건소 방향으로 올라가는 마을길을 연조리 사람들은 ‘구신거리’ 혹은 ‘귀신나무거리’라고 부른다. 구신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대가야국 때 조서(詔書)를 발표하여 붙이는 현재의 게시판과 같은 조서문(詔書門)이 왕궁 근처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마을을 연조(延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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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안림역에 딸린 구생원(救生院)이 있어 구생원·귀손·귀빈·귀원이라 하였다. 고을 원이 살던 집이 있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귀원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귀원동이 되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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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키처럼 생겨 기싯 또는 기산이라고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경동과 기족동 일부를 병합하여 기산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기산리가 되었다. 북쪽은 의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해발 고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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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기계유씨 동성마을. 마을 뒷산이 키처럼 생겼다 하여 기싯 또는 기산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에 기계유씨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기싯마을이 속한 기산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경동·기족동 일부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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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어떤 도사가 마을 남서쪽에 있는 바람고개를 넘다가 마을을 바라보면서, “저 마을은 뒷산 모양이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과 같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 사람의 발과 같으니 이름을 깃발이라 하면 마을이 번성할 것이다.”라고 한 데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기발이라고도 하며, 기족은 깃발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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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마을 개척 당시 어떤 도사가 마을 남서쪽에 있는 바람고개를 넘다가 마을을 바라보면서, “저 마을은 뒷산 모양이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과 같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 사람의 발과 같으니 이름을 깃발이라 하면 마을이 번성할 것이다.”라고 한 데서 붙인 이름이다. 1500년경 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고,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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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은 선산김씨[일선김씨]들이 모여 사는 전통 한옥 마을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를 당한 영남 사림파의 종조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후손이 17세기 중반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350여 년간 대를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이런 연유로 개실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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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 사는 기씨(奇氏)가 이곳에 정자나무를 심었으므로 전라도의 ‘나(羅)’자를 따서 나정(羅亭)이라 하였다. 마을 앞 정자에서 뒷산을 바라보면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나정 건너 남쪽에 있는 새나정은 약 70년 전에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신나정(新羅亭)이라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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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 있는 행주기씨 동성마을. 마을 앞 정자에서 뒷산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하여 나정(羅亭)이라 하였다. 또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 사는 기씨가 정자나무를 심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1638년(인조 16) 덕산공 기중선(寄重宣)이 처음 들어와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기중선은 선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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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일량면(一良面) 안쪽 골짜기가 되므로 내곡(內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일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곡동을 병합하여 내곡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내곡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고령읍 내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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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내곡리에 있는 기계유씨 동성마을. 마을에 들어올 때는 길이 멀고 피곤하지만 마을에 들어오면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편안하고 안락해진다는 뜻에서 시실이라 하였다. 물과 경치가 으뜸이어서 수곡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 형성되었다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선비 유경민(兪景敏)이 난을 피해 들어왔다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도 한다. 시실마을이 속한 내곡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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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리의 낫골 안쪽이 되므로 안골·내상곡·내상동·내상이라 하였다. 산과 산이 이어진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리 또는 내산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동을 병합하여 내상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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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 있는 시문용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 국도 33호선을 따라 운수면 화암1리[꽃질]마을 표지석에서 좌회전하여 마을회관을 지난 100여m 위쪽 마을 끝 우측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 내화재는 1572년 중국 예부상서(禮部尙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인 시문용(施文用)을 추모하기 위해 절강시씨(浙江施氏)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내화재는 절강시씨 꽃질화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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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척 당시 갈대숲이 우거져 있어 노곡(蘆谷)이라 하였다. 낙동강 변의 넓고 기름진 땅에 논이 많다고 하여 논실·답곡(畓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암동을 병합하여 노곡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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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있는 광평이씨 동성마을. 노곡리에는 논실, 월암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논실은 낙동강 변의 충적토에 넓고 기름진 논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답곡(畓谷)이라고도 하는데 논실의 한자 표기이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낙동강 변에 갈대가 우거져 있어 노곡이라고도 하였다. 월암은 마을 중심에 달맞이하는 큰 바위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논실마을이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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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는, 이경벽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 중화2리 마을 표지석에서 좌회전하여 70여m 떨어진 둔덕마을 초입 좌측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농헌정는 1902년 합천인 이경벽(李慶壁)이 행한 후진 양성 및 학문 탐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문하생들이 건립하였다. 1965년 한낮에 건물 전부가 붕괴되어 후손과 후학들이 뜻을 모아 그해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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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높은 곳에서 면 전체를 내려다보면 닭의 형상을 하고 있어 다계면이라고도 하였다. 평리리가 닭의 머리 부분, 노곡리와 나정리가 날개 부분, 송곡리가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신라 초기에 다사지현(多斯只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치고 수창군(壽昌郡) 또는 수성(壽城)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9년(현종 9) 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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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약 500년 전 창녕성씨 성원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논이 많았으므로 논실 또는 답곡이라 하였다. 희정골은 현풍곽씨가 개척한 마을로, 강 건너편에 곽씨 문중에서 배출한 효자·효부·열녀의 정려가 있어 후손들이 정려를 바라보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희정·시정골·희정동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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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고령군 대가야읍의 옛 지역이 대가야국이 있던 지역이므로 새로운 대가야의 부흥을 목표로 지역 발전을 이어가자는 의미로 대가야읍이라 하였다. 대가야읍은 원래 옛 대가야의 중심지로서 562년 도설지왕 때 여러 가야 중 마지막으로 신라에 정복되었다. 757년(경덕왕 1) 고양군이 되었고, 고려 초 경산부에 속하였으며, 1413년(태조 13) 고령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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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큰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한실 또는 대곡이라 하였다. 마을 옆 소학산[488m]은 학이 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축조한 소학산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져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 있다. 삼밭골[일명 마전곡(麻田谷)]은 한실의 성짓골 뒤에 있는 마을로, 주위의 전답 대부분이 옛날에는 옷감을 짜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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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 있는 청주한씨 동성마을. 마을이 들어선 골짜기가 크다 하여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하였다. 마을이 북향이어서 춥기 때문에 ‘추울 한(寒)’자를 써서 한실이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마을 남쪽에 우뚝 솟은 소학산[488m]이 동북쪽만 트이고 동서로 능선을 이루어 북쪽에 있는 하라동 뒷산까지 에워싼 형국이 마치 동북쪽을 출입구로 하여 학이 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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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들[大坪]의 이름을 따서 대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성동·내성동·평촌동을 병합하여 대평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대평리가 되었다. 가야산(伽倻山)의 남동 비탈면에서 발원한 대가천(大加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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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690년경(숙종 16) 성주 지방의 도씨[또는 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때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 하여 새방골[新坊谷] 또는 신촌이라 하였다가 1914년 대흥(大興)으로 바뀌었다. 신라시대에 가리현 소재지였고, 조선 말기에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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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대흥리에 있는 김해김씨 동성마을. 대흥리에는 새방골, 양지마, 중리, 삽재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새방골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고, 양지마는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중리는 새방골과 삽재 사이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고, 삽재는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1690년대에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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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산악(山岳)이 많아 악곡면(岳谷面)이라 하였다가 조선 인조 때 윤휘(尹暉)가 덕곡면(德谷面)으로 고쳤다. 조선 말기 성주군(星州郡) 악곡면 지역이었다가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덕곡방(元德谷坊)의 15개 동, 인곡방(仁谷坊)의 13개 동, 관동방(館洞坊)의 후암(後岩)·지사(志士)를 병합하여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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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180년경(명종 10) 주씨가 마을을 처음 개척하여 주진이라 하였고, 그 뒤 병조참의를 지낸 박경이 마을 앞 회천 둑을 따라 복숭아나무가 우거져 절경을 이루고, 강에는 나룻배가 다니는 나루터가 있어서 도진 또는 도원이라 하였다. 도진 남쪽에 있는 새마는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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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고령박씨 동성마을. 도진리에는 도진, 새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1350년대에 병조참의를 지낸 박경(朴景)이 마을 앞 회천 둑을 따라 복숭아나무가 우거져 절경을 이룬 것을 보고 ‘복숭아 도(桃)’자를 따고, 회천에 한실과 속리·사전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으니 ‘나루 진(津)’자를 따서 도진이라 하였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무릉도원에 견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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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 있는 곽간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포산곽씨 17세손인 죽재(竹齋) 곽간[1529~1593]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며 1546년 중광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1566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공조(工曹), 형조(刑曹),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영천군수, 공주목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악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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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 있는, 정순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대가야읍 쾌빈리에 위치한 쾌빈교를 지나 좌회전하고 내상리 방향으로 지방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도로변에 있는 내상리[동촌] 표지석에서 마을 안쪽으로 120m 진행하면 푸른 함석 기와지붕으로 된 재실이 보인다. 1802년 동래정씨 후손이 정순문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는데, 조선 말기 화재로 전소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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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성산 기산동 도요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질나루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마을 주민들이 큰 이득을 얻었다 하여 득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득성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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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난 직후 전라도 지방에서 나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앞 도진나루터[성산면]를 통하여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성산 기산동 도요지 등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대량 수출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왕래하면서 큰 이득을 보았다 하여 득성(得成)이라 하였다. 득성리는 조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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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에 개척한 마을로 용담천 변의 거친 땅을 개간하여서 매가리·맥가리·매촌이라 하였다. 마을 중앙에 매화꽃 모양의 희귀한 바위와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매호리(梅湖里)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촌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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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서원. 구목재는 중화1리 화갑마을회관에서 주산임도를 따라 900여m 올라가면 우측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구목재는 여주이씨 문중에서 청소년들의 학문을 수학하기 위하여 1922년 건립한 건물이며, 경내에 충의부도사(忠義府都事) 이재윤(李載胤)의 유허비가 있다. 1957년에 명곡정(明谷亭)으로 개칭하였다. 건물구조는 정면 4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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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정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모의재는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순절한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를 추모하기 위해 정국풍(鄭國風)이 후산에 묘지를 정하고 세운 재실이다. 성산면사무소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대구·화원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용암·다산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3㎞쯤 가다 무계리 마을 표지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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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670년경(현종 11) 오씨와 김씨 등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세천(細川)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작은 내는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손씨와 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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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해주오씨 동성마을. 마을을 개척할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실개천 세 줄기는 닭의 오른쪽 날개, 동남쪽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왼쪽 날개, 마을 뒷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을 형국이 마치 닭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무계(舞鷄)라 하였다. 그 후 오씨·조씨·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낙동강 변에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성할 무(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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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문연서원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문연서원 터의 문연서원은 1695년(숙종 21)에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의 강학지소(講学之所)로 건립하여 죽연(竹淵) 박윤(朴潤),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 월오(月塢) 윤규(尹奎), 학암(鶴巌) 박정번(朴廷璠), 매헌(梅軒) 최여설(崔汝楔)의 5현을 향사(享祀)하였으나 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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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김종직을 모시는 불천위 사당. 사당(祠堂)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건물로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린다. 특히 국가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서는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 내에 모시면서 계속적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문충공 사당은 점필재(佔畢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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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소류지. 소류지는 농업용수를 저장하기 위해 만든 담수 용량이 적은 저수지로서, 농업 기반 시설로 등록되어 시·군의 건설과나 농정과의 기반 조성 담당에서 관리한다. 국가지원지방도 67호선을 타고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성주군 용암면으로 넘어가다 보면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가 나오는데, 물한지는 운수면 신간리 물한재의 우측 산기슭 밑에 위치한다.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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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문중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 본관리 관동마을은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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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자호란 후 성주 지역에서 박씨 성을 가진 이들이 옮겨 와 정착하였으므로 박실(朴室) 또는 박씨골·박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박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박곡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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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에 있는 이미숭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난 국도 26호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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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있는 동래정씨 동성마을. 정구(鄭矩)와 아들인 정선경, 손자인 정종(鄭種), 정비(鄭秠)를 배향한 반암서원이 있었는데, 서원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앞 또는 원전(院前)이라 하였다. 반암서원은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으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 확대 개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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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산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아 와룡산이라 하였고, 용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구름이 많이 서려야 하므로 마을 이름을 반운(盤雲)이라 하였다. 마을을 돌아 흐르는 회천(會川)을 반천(盤川)으로 부른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또 앞 내가 동그랗게 사린 모양이므로 사리움이라고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와서 땅이름을 물으니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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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잣나무가 우거진 산 아래 있는 마을이므로 백산(柏山)이라 하였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러 성씨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산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백산동이 되었고,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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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인 보검등(寶劒嶝)과 장등(長嶝)의 모양이 무엇을 내려치려고 하는 칼의 형상인데, 칼을 쓸 때에는 칼을 잘 알고 가려서 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칠 벌(伐)’자와 ‘깨달을 지(知)’자를 써서 벌지라 하였다. 뒷산이 헐벗었다고 하여 버지라고도 하며, 달리 벌지골짝·벌곡(伐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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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벌지리에 있는 성주배씨 동성마을. 벌지리는 마을 뒷산이 헐벗어 버지라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인 보검등과 장등이 무엇을 내려치는 칼의 형상인데, 칼을 잘 알고 가려서 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칠 벌(伐)’자와 ‘깨달을 지(知)’자를 써서 벌지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동암은 마을 동쪽 어귀에 큰 바위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 개척 당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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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 절이 있어 법당골 또는 법동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봉동·백적동을 병합하여 법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법리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줄기 남서쪽에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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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초기 선비 이사징(李士澄)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차 벼슬을 많이 하는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관동방(館洞坊)을 세웠고, 이것이 관동면이 되고 관동면 소재지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관동면 옥산동을 병합하고 관동면의 본 마을이므로 본관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관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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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동성 마을. 조선 초기 이사징(李士澄)이란 선비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차 벼슬을 많이 하는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관동방(館洞坊)을 세웠고, 이것이 관동면이 되었다. 달리 관동, 관골, 관곡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관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산동을 병합하여 본관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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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본리리에 있는 성산배씨 동성마을. 지금의 상승암 자리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전란은 물론 자연재해를 물리친다고 믿어 바위 이름을 ‘이길 승(勝)’자와 ‘바위 암(巖)’자를 써서 승암(承巖)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려 말 성주이씨 승암 이인임(李仁任)이 이곳에 유배되어 살았는데 그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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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대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 떼들이 서식하여 샛가지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샛가지를 한자 표기인 조지동(鳥枝洞)으로 바꾸었고, 1983년 조지동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대봉산의 이름을 따서 봉산으로 바꾸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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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 있는 경주최씨 동성마을. 마을 뒤에 대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 떼가 서식하여 샛가지라 하였다. 예전에는 각성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 경주최씨가 많이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샛가지마을이 속한 봉산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에 속했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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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봉의 ‘봉’자와 순평의 ‘평’자를 따서 봉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평동·외신동·연봉동과 운라면의 금성동을 병합하여 봉평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봉평리(鳳坪里)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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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 있는 파평윤씨 동성마을. 옛날 봉황새 한 마리가 마을 옆에 있는 의봉산[535m]에 날아와 앉았는데 꼬리와 몸통만 있고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기이한 봉황이 내려앉은 의봉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연봉(延鳳)이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의봉산을 비봉산이라고도 한다. 연봉마을이 속한 봉평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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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리(釜里)에는 가암, 늪추리, 독실, 진두, 창동(倉洞)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가암은 옛날부터 옹기 가마가 있어 가마라고 한 데서 변한 이름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늪추리는 마을에 늪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늪가라고도 한다.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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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도요지(陶窯地)에서 사기를 구워 냈다고 하여 사기골이라 하였고, 1914년 사부동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읍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령동·풍곡동·신촌동을 병합하여 사부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사부리가 되었다. 해발 고도 250m 안팎의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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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에 있는 성주이씨 동성마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분청사기를 구워 내는 가마터가 많아 사기골 또는 사부골이라 하였다. 지명 유래를 증명해 주듯 이 마을에는 사적 제71호인 성산 사부동 도요지가 있다. 성산 사부동 도요지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든 10여 기의 가마터가 있으며, 대접과 접시 등 분청사기 유물이 여럿 발굴되었다. 1537년경(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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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고려 충신 전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사. 대가야읍 영생병원사거리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왜관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덕곡삼거리에서 가야산·덕곡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1.3㎞ 지점 우측도로에 사와재 입구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서 좌회전하여 300m 진행하면 마을길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사와재은 고려 충신 전순(全順)을 기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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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 있는 이도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재실. 사우재는 전주인 이도(李蒤)가 후배 양성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이도의 유적비는 지금의 새마을공장[연방직물] 안에 있으며, 이도의 친필서 2권과 문집 5권이 보관되어 있다. 사우는 네 벗, 즉 노중련, 도연맹, 호방형, 이벽결을 뜻한다. 국도 33호선을 따라 합천·거창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안림삼거리에서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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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부의 ‘사(沙)’자와 저전의 ‘전(田)’자를 따서 사전(沙田)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부동·저전동을 병합하여 사부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우곡면 사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우곡면 사전리가 되었다. 해발 고도 250~300m의 산지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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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회천 변의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모래가 많은 강가 마을이므로 사촌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모개실은 모과나무가 있는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모과나무 옆에 지은 모가정(慕柯亭)이 있던 곳이어서 모가곡이라고도 한다. 당시의 모가정은 없어졌으나 모과나무는 비록 비바람에 큰 가지가 부러지고 넘어졌어도 아직 존재하고 있다. 조선 단종 때 고령신씨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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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있는 고령신씨 동성마을. 사촌리에는 사촌, 모가곡[일명 모개실], 서원곡[일명 서원골], 서재촌[일명 서재마], 지성곡[일명 지성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사촌은 회천 변의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모래가 많은 강가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모가곡은 고령신씨 신평(申坪)이 단종이 폐위되자 이곳에 은거하면서 고향인 전라도 옥과현 가실을 그리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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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있는 순천박씨 동성마을. 사촌리에는 사촌, 모가곡[일명 모개실], 서원곡[일명 서원골], 서재촌[일명 서재마], 지성곡[일명 지성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사촌은 회천 변의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모래가 많은 강가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모가곡은 고령신씨 신평(申坪)이 단종이 폐위되자 이곳에 은거하면서 고향인 전라도 옥과현 가실을 그리는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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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번창하려면 연못이 있어야 하는데, 이 마을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항상 흐르고 있어 연못이 필요 없었다. 이 점을 보완하고자 마을 이름을 ‘뫼 산(山)’자와 ‘못 당(塘)’자를 써서 산당(山塘)이라 하였다. 마을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으므로 신당·산댕이·산당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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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대산[688m]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산골[일명 산곡] 또는 산주라 하였다. 고령군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 이름이 -동, -리로 되어 있는데, 산주만은 ‘고을 주(州)’자를 썼다. 그 이유는 옛날 적화현이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중심이었을 때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면서 잠시 이곳으로 적화현을 옮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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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470년경(성종 1) 김녕김씨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무봉산·수만산·수리봉산의 세 산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삼산(三山)이라 하였다. 그 후 삼대(三垈)로 바뀌었다가 김녕김씨·광산이씨·김해김씨의 세 성이 모여 발전을 기약하는 마을이란 뜻에서 삼대(三大)가 되었다고 하며, 삼대(三垈)·반장(班庄)·멍더미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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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에 있는 김녕김씨 동성마을. 1470년경(성종 1) 김녕김씨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무봉산·수만산·수리봉산의 세 산 밑에 마을이 있으므로 삼산(三山)이라 하였다. 그 후 김녕김씨·광산이씨·김해김씨의 세 성이 모여 발전을 기약하는 마을이란 뜻에서 삼대(三大)가 되었다고 하며, 삼대(三垈)·반장(班庄)·멍더미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대가 되었다고도 한다. 김녕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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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다사지현 소재지로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점령하고 이곳에 행궁을 두었으므로 상국(上國)으로 부르다가 마을 이름으로 너무 지나치다 하여 상곡(上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가 행궁을 두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을 개척 당시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라 초기 다사지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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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신라시대 진흥왕이 대가야 영토를 점령할 때 지금의 상곡에 행궁을 두었다고 하여 상국으로 부르다가, 후대에 와서 마을 이름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하여 상곡으로 고쳤다고 한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지리적으로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처음 박씨가 많이 살았고 고려 말에 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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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소(龍沼) 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상용(上龍)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 밑의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용기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룡동을 병합하여 상용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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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들어가는 길이 좁은 골짜기이므로 송골 또는 송곡이라 하였다. 송골의 ‘송’은 ‘솔다·좁다’는 뜻이다. 1600년경 화전민이 들어와서 화전을 일구고 토기를 구웠다고 전해 오고 있다. 또 마을 뒷산인 삼베등[麻布嶝]의 모양이 마치 삼베 실을 풀칠할 때 사용하던 솔[省]처럼 생겼다 하여 한자로 생곡(省谷)으로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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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신라 때 있었던 성산군에서 이름을 따서 성산면(星山面)이라 하였다. 상고(上古) 때는 벽진가야(碧珍伽倻)에 속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사료는 없다. 신라시대에 일리현(一利縣)이었다가 제35대 경덕왕 때 성산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가리현(伽利縣)이 되었고, 제8대 현종 때 성주목에 속하였다. 조선 중엽 이후에 가현면이 되어 무계(茂溪)·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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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깊은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속골이라 하였다. 달리 솝골, 속읍리, 우촌, 속곡이라고도 한다. 마을 입구에 돌빼기라는 곳이 있었는데 옛날 성지대사가 이곳을 지나면서 세 번이나 쉬어갔고, 계곡 물에 손을 씻으며 바라본 산수풍경의 아름다움에 감복하여 ‘삼청동(三淸洞)’이라는 글을 손가락으로 바위에 새겨 놓고 떠났다고 한다. 그 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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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곡(松谷)이라 하였다. 깊은 골짜기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 단풍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씨실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노동·삼동을 병합하여 송곡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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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수성나씨 동성마을. 송곡리는 송곡, 삼동, 하노다(下老多)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송곡은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붙인 이름이다. 깊은 골짜기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 단풍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뜻에서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달리 씨실이라고도 한다. 삼동은 수성나씨(壽城羅氏), 함안조씨(咸安趙氏), 안동권씨(安東權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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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창녕조씨 동성마을. 깊은 골짜기 속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가을에 단풍이 들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골짜기가 아름다워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곡(松谷)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 때 담양전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고, 1728년(영조 4년) 경 창녕조씨 태복경공파 정주목사 조정립(曺挺立)의 현손조성좌(曺聖佐)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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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기 매초동에 살던 선비 오선기가 대홍수로 마을이 떠내려가자 이곳으로 이주하였는데 소나무 숲이 우거졌으므로 마을 이름을 송림(松林)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서원은 이곳에 매림서원을 세웠으므로 서원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매림은 매헌(梅軒) 곽수강(郭壽岡)의 호의 첫 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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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고창오씨 동성마을. 매림서원이 있던 마을이어서 서원이라 하였다. 고창오씨 죽유공파 시조인 오운(吳澐)[1540~1671]의 후손들이 임진왜란 뒤 서원마을로 들어와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서원마을이 속한 송림리는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림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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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호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송애(松崖) 최호문(崔虎文)은 조선 헌종 때 문과 을방에 제2인자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봉화현감을 지냈다. 천성이 순박하여 가난하고 천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너그러웠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잘 도와주어서 인심이 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문적으로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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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최호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사무소를 지나 합천 해인사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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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고 신궁의 ‘신’자와 물한의 ‘한’자를 따서 신한동이라 하였다. 그 후 운수면 신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신간리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남서 자락에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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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죽산전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여 신한동이라 하였다가 신간동으로 바뀌었다. 자연마을인 봉산리는 봉황이 살았다는 의봉산[535m] 밑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죽산전씨 판서공파 파조인 전충수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신간마을에 살았던 전충수의 8세손 전극창(全克昌)이 1573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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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농토를 따라 한두 집이 자리 잡기 시작하여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어서 신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박곡동·신림동을 병합하여 신곡동이라 하고 임천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신곡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쌍림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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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가 망한 뒤 신라 제53대 경덕왕 때 명칭인 신복현(新復縣)에서 ‘신’자를 따서 신동·신리·새마라고 하였다고 하나 고증이 필요하다. 신복현은 본래 신라의 가시혜현(加尸兮縣)으로 경덕왕 때 신복현으로 고쳤다. 조선 말기 고령군 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음동을 병합하여 신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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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령신씨가 들어와 새로 이룩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촌이라 하였다. 원 마을은 독산 을달 쪽의 들판 복판에 형성되어 있었으나 금천의 바닥이 높아지면서 수해가 발생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 무렵부터 신씨는 점차 다른 지방으로 떠나고 전주이씨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을 중흥시켜 편안한 마을이란 뜻에서 신안(新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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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민들이 마을 앞 안림천에 나루터를 만들려고 할 때 봉새가 날아와 울었으므로 나루 이름을 봉나루·봉진이라 하였고, ‘봉(鳳)’자를 빼고 새나루·새나리라고도 하였다. 신촌은 새나루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은동·송정동을 병합하여 신촌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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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성산전씨 동성마을. 가야산에서 흘러오는 내와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에서 흘러오는 내가 마을 앞에서 만나 안림천을 이루는데, 마을 사람들이 안림천을 건너기 위해 나루를 만들려 하자 봉새가 날아와 울었으므로 나루 이름을 봉나루·봉진이라 하였고, ‘봉(鳳)’자를 빼고 새나루·새나리라고도 하였다. 신촌은 새나루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붙인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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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쌍동면(雙洞面)의 ‘쌍’자와 임천면(林泉面)의 ‘임’자를 따서 쌍림면(雙林面)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면의 하거·구고·덕곡·산주·석사·부례·신촌·환동·송정·백산, 하동면의 귀원·송림·매촌·상가·하가·산당·초곡을 병합하여 쌍동면이라 하고 하거·산주·신촌·백산·귀원·송림·매촌·합가·산당의 9개동으로 개편하였다. 한편, 유천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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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의성김씨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로 분관하여 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해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었다. 나라로부터 3재[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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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이 겨울의 세찬 북풍과 여름의 태풍을 막아 주어 주민들이 편안하고 화합하는 마을이므로 안화(安和)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 국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안홧골·안화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부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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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이 고령현감으로 부임하여 정자를 짓고 ‘들의 노인정’이라는 뜻의 야옹정[일명 양우정, 양오정]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야옹정에서 넓은 들을 바라보며 경치를 읊은 ‘야옹팔경’이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야정2리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변에 기러기가 많이 놀아 ‘기러기 안(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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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양전리와 반운리 사이에 소나무가 우거져 송곡동(松谷洞)이라 하였고, 분지 지형인 까닭에 수리 시설이 불안전하여 밭이 많았으므로 양전(量田)이라고도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솔밭을 불태웠는데 다시 밭으로 개간하였으므로 좋은 밭이란 뜻에서 양전(良田)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알터[卵峴]는 양전에서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 회천 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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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5현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박택(朴澤), 박정번(朴廷璠), 윤규(尹奎), 박윤(朴潤), 최여설(崔汝楔) 등 5현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비석이다. 낙락당(樂樂堂) 박택은 고령인 박계조(朴継祖)[양산군수]의 아들로 남명(南冥) 조식(曺植), 배신(裴紳)과 교우하여 도의가 높고 효성과 덕행이 뛰어나며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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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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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기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을 흐르는 회천 변 늪에 연꽃이 만발할 때면 그 경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연화동(蓮花洞)이라고 부르다가 연동(蓮洞)이 되었다. 마을 뒷산이 얼음 등처럼 생겨 빙등산이라 하였고, 그 산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빙등 또는 빈등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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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에서 조서(詔書)를 발표하여 붙이던 조서문(詔書門)[지금의 게시판]이 있던 마을이므로 연조리(延詔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동·봉두동을 병합하여 연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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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 영연서원 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비석. 서원(書院)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던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향사하기 위해 영주에 세운 백운동서원이었다. 이후 1549년(명종 4) 풍기군수 이황(李滉)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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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례동의 ‘예’자와 부곡동의 ‘곡’자를 따서 예곡(禮谷)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아치실은 고려 초기 아치산[207m] 밑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꿩 혈의 정기를 받는다는 믿음으로 꿩을 보호해 오고 있다. 달리 아치리·아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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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에서 쌍림면 방향으로 난 국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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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자연마을인 뱃가는 수로를 이용하여 대구(大邱)·현풍(玄風) 등지를 왕래하던 나루터가 생기면서 들어선 마을이다. 달리 배두새·진두(津頭)라고도 하였다. 조선 선조 때 조일도(趙逸道) 형제가 함안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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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연안차씨 동성마을.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오실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안차씨 고령 입향조 차군보가 현풍에서 성산면 오실마을로 옮겨 와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후손 일부는 다산면 호곡마을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오실마을이 속한 오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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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함안조씨 동성마을. 오곡리에는 오실, 신곡, 뱃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오실은 오전에만 햇빛이 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을이 다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성주이씨가 들어와 새로 개척한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상곡이라고도 한다. 뱃가는 나루터에 가까운 마을이어서 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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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도리를 병합하여 오사동이라 하고 개진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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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는 달성서씨 동성마을.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는데, 그 절에서 다섯 명의 도사(道士)가 났으므로 오사(五士)라 하였다가 오사(吾士)로 바뀌었다. 현재 절터에는 개진초등학교가 들어섰고, 절에서 사용했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약 300년 전 달성서씨를 비롯하여 경주최씨·김해김씨·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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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국서(國瑞), 호는 국포(菊圃). 오운(吳澐)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오연순(吳演淳)이며, 맏아들로 태어났다. 오상옥(吳相玉)[1847~1910]은 밖으로는 능숙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자, 인분을 약으로 먹이라고 하였다. 이에 인분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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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벼슬아치들이 귀양살이하던 옥섬[玉島]이 있고, 잣나무가 많았던 잣뫼가 있어 옥섬의 ‘옥’자와 잣뫼 한자 표기인 백산(栢山)의 ‘산’자를 따서 옥산(玉山)이라 하였다. 잣뫼는 달리 잠미라고도 하는데 잣뫼의 발음이 변하여 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적산은 옥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초립동이 피리를 구슬프게 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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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 있는 강화노씨 동성마을. 옛날 이름도 모르는 초립동이 구슬프게 피리를 불며 마을을 지나갔다고 하여 적산이라 하였다. 대나무 숲이 많아 죽산이라고도 한다. 옥산리에는 이 밖에 마을에 부자가 살았다 하여 장자곡,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고립된 곳이라고 하여 옥섬이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강화노씨들이 옥산리와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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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도학자 이기춘의 묘각.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덕곡삼거리에서 덕곡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도로변에 있는 덕곡면 반성2리 표지석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100m쯤 진행하면 반성2리 경로회관을 지난 50m 부근에 옥산재가 위치하고 있다. 옥산재는 성산인 도학자 옥산 이기춘(李起春)을 위하여 고령, 성주,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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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일량면의 마을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바깥마·밖일량·외동(外洞)·외일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일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촌을 병합하여 외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외동이 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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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안고 있는 미숭산[734m]의 아홉 산줄기가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같아 이곳에 구룡사(九龍寺)를 지었고, 마을 입구에 있는 70m가량의 바위를 용바위[龍岩]라 하고 그 주변 돌들을 용바우돌이라 하였으므로 마을 이름도 용동(龍洞)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 주변 산세가 개구리 혈에 해당한다고 하여 ‘개구리 와(䵷)’자를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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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던 큰 소(沼)에서 용이 올라갔다 하여 용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리(倉里)·월산(月山)을 병합하여 용소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용소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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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우촌(牛村)의 ‘우’자와 답곡(畓谷)의 ‘곡’자를 따서 우곡면(牛谷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下彌面) 지역으로 도진·사부·저동·대곡·아라·월오·운동·아산·부례·부동·사동의 11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촌면(牛村面)·답곡면(畓谷面)·왕지면(旺旨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우곡면이라 하고 답곡·조지·포동·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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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운산(雲山)이라 하였다.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진 곳에 안개가 많이 끼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르미·구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구음면(九音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하동을 병합하여 운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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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고령신씨 동성마을. 운산리에는 구음동, 새구름, 삼하정(三河亭)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구음동은 운산1리의 중심 마을로, 마을 개척 당시 큰 학이 날아와 아홉 번이나 울어 길조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운산(雲山)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이 운라산(雲羅山) 밑에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동쪽에 큰 산이 있어 아침이면 늘 그늘 속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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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운라의 ‘운’자와 흑수의 ‘수’자를 따서 운수면(雲水面)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星州郡) 운라면(雲羅面) 지역으로 운산·월성·법암·거호동·외화·금성의 6개 마을을 관할하였고,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음면(九音面)의 운산(雲山)·삼동(三洞), 성주군 흑수면(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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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뒷산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달빛에 비친 뒷산이 마치 장막을 친 것처럼 보여 월막·달막·다르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고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막동·국전동을 병합하여 월막동이라 하고 임천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임천면과 쌍동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월막동이 되었고,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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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현풍곽씨 동성마을. 월막리에는 다르막, 국밭[菊田], 산막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월막은 뒷산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달빛에 비친 뒷산이 마치 장막을 친 것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달막이라고 한다. 국밭은 국화처럼 마을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산막은 공씨가 산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세 번째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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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성의 ‘월’자와 운산의 ‘산’자를 따서 월산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운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성동과 운산동을 병합하여 월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월산리가 되었다. 가야산(伽倻山)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로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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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앞에 있는 듬이라 하여 선듬이라 하였다. 듬의 돌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선도(先道)·월성이라고도 한다. 약 600년 전 공조참의를 지낸 김용기가 덕곡면 후암리에 살다가 산이 마을을 가려 겨울에 몹시 추웠으므로 소가천 건너 앞듬 밑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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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로동·장척동·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월성리가 되었다.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이 펼쳐져 있다. 서쪽과 북쪽은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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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월성리에는 높음방, 장자골, 수리니미, 상노다, 바래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높음방은 마을에서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고방이라고도 한다. 장자골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강하수라는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장자리·장척리라고도 한다. 수리니미는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가 수레바퀴처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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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월오(月塢)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면서 울분을 달래다가 왜적에게 붙들려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이 윤규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달오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오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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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버들골 또는 유곡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연동·고승동을 병합하여 유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유리(柳里)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동남쪽 산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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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산이씨의 재실. 대가야읍 영생병원사거리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왜관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다시 덕곡삼거리에서 가야산·덕곡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1.2㎞ 지점 좌측 도로에 의재 입구의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방향으로 200m 지점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의재는 세종 때 사간원 헌납을 지낸 이사징(李士澄)과 후손인 죽포(竹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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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창녕군, 남쪽은 경상남도 합천군, 서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특히 여름에는 영천시, 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경관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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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인안리(仁安里)에는 꼬뫼, 인안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꼬뫼는 낙동강 변에 있는 마을로 꿩뫼에서 변한 이름이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마치 꿩이 매를 피하여 엎드려 있는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자로는 치산(稚山)으로 표기한다. 인안은 마을 동북쪽 산줄기에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꼬뫼에서 날아온 꿩이 두 개의 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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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일리군(一利郡)은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하는 562년(진흥왕 23)에서 757년(경덕왕 16)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과 다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달리 이산군(里山郡)으로도 불렸다. 이 시기 일리군의 치소는 오늘날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원동마을로 보기도 하지만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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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읍에서 바깥에 있는 장터이므로 바깥장터·장터·장거리라 하였다. 장기(場基)는 장터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20년 이전에는 상수도(上水道) 남쪽에 80여 세대의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대홍수로 가옥과 논밭이 한꺼번에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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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닥나무가 많은 마을이란 뜻에서 ‘닥나무 저(楮)’자를 써서 저전리(楮田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내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전동(薪田洞)을 병합하여 저전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저전동이 되었고,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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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제삼정이 위치한 개포리는 남동쪽 경계를 낙동강이 흐르고, 남서쪽 경계를 회천이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성산면과의 경계 지역에는 제석산(帝錫山)[389m]이 동서로 뻗어 있으나 곳곳에 평탄한 농지가 있고, 또 낙동강 변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발달하여 농산물 생산이 풍부하다. 고령 현감 이형중(李衡仲)이 부임하여 송천방(松泉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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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진사(進士)를 지낸 하서천(河瑞千)이며, 남편은 조정필(趙廷弼)이다. 조정필 처 진주하씨(晋州河氏)는 남편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곡을 하였는데, 그 곡소리가 처음 상을 치를 때와 같았다. 아들을 잃은 시아버지의 슬픔을 씻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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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홍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곽홍지(郭弘址)[1600~165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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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약 300년 전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할 때 마을 뒷산 지형이 학이 앉은 형국이므로 학골 또는 학동이라 부르다가, 약 150년 뒤 학이 많이 날아와 앉았으므로 좌학(座鶴)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발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좌학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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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오운을 모신 불천위 사당. 사당(祠堂)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건물로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린다. 특히 국가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서는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 내에 모시면서 계속적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죽유 오운 사당은 오운(吳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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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갑리 중간에 있는 마을이므로 중화갑이라 하였다. 화갑(花甲)은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 산을 뒤덮어 화산이라 불린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대가야의 왕이 피난 갈 때 궁녀들이 이 마을에 머물렀는데, 궁녀들을 꽃에 견주어 화갑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화동을 병합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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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못이 있어 못안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모산골로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산(池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기동·막곡동·신기동을 병합하여 지산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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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경주김씨 동성마을. 대가야읍 주산 밑에 자리 잡은 마을 바로 앞에 못이 있는데, 마을의 위치가 못 안쪽이므로 못안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모산골로 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지산(池山)이 되었다. 지금의 연못은 새로 조성한 것이며, 본래의 연못 자리에는 향림정(香林亭)이 있다. 조선 초기에 경주김씨 김을당이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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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가져온 팔만대장경판을 개포에서 해인사로 옮길 때 이 마을로 바로 갔다고 하여 직통(直通)이라 하였는데 후에 직동(直洞)이 되었다. 마을에 양조장이 있어 직동도가라고도 하였다. 열뫼 또는 열미는 마을 북쪽 산 모양이 칼로 잘라 벌려 놓은 듯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산(開山)은 열뫼의 한자 표기이다. 교통의 요로였으므로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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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진양강씨 문중 재실. 다산면소재지에서 군도 5호선을 따라가다가 왼쪽의 다산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 우측으로 군도 7호선을 따라 조금만 가면 우측으로 월성리 장척마을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 500m 정도 들어가면 들머리마을 산자락에 있다. 추원재 뒤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진다. 추원재는 진양강씨의 재실로 1968년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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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대가야시대에 내빈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정자인 쾌빈정(快賓亭)에서 따서 쾌빈이라 하였다. 지금은 그 정자를 찾을 수 없고 약간의 내력이 이중윤(李仲允)의 「소찬정기(所撰亭記)」에 전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곡동을 병합하여 쾌빈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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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봉우리가 여덟 개가 있어 팔뫼라 하였다. 팔산은 팔뫼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팔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팔산리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끝자락에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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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들판에 마을이 있었다 하여 들마[일명 평리]라 하였다. 달리 닷기, 다사지, 답지, 다기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리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1일 다산면 평리리가 되었다. 낙동강 물길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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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림리에서 좁은 골짜기를 거쳐 마을에 이르면 꽤 넓은 평야가 있어 평지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유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천동·오로동·개방동을 병합하여 평지동이라 하고 임천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임천면과 쌍동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평지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쌍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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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동강 변에 대바우나루터가 있어 포동이라고도 하였다. 마을이 들어선 낙동강 변에 갯벌이 많이 모여 있어 개밭골 또는 갯골이라고도 한다. 현재 갯벌은 경지 정리를 하여 넓은 논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후동을 병합하여 포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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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개척 당시 마구실 뒷산에 선녀가 옥가마를 타고 내려왔다 하여 산 이름을 옥녀봉이라 하고, 마을까지 수레를 타고 왔다 하여 하거(下車)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주변 지형이 학처럼 생긴 것을 보고 마을에 큰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둘러봤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상동면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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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고령박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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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성산배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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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양천최씨 동성마을. 마을 앞으로 안림천이 흐르고 공기가 맑고 들이 넓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 매년 학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므로 학골이라 하였다. 신라시대 어느 임금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 지형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편 모습과 같으므로 마을에 연못이 있는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았다고 하여 학골 또는 하거라고도 하였다. 또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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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최원과 최여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우는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학매정은 양천최씨 최원(崔源)과 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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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박경가의 업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비석.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는 조선시대 순조 때 사람으로 고령인 박문국(朴文国)의 아들이다. 7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장례를 잘 치렀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고기를 잡아 반찬을 장만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께 피를 먹이는 등 병환을 잘 간호하여 관찰사와 고을 원님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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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상용마을 입구에 있는 자연 바위. 대가야읍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쌍림면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반룡사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월막리를 지나면 반룡사 방향과 용리 상용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 좌측으로 상용마을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상용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의 좌측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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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가동과 하가동을 병합하여 합가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가동과 하가동을 병합하여 합가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을 병합하여 쌍림면에 편입함에 따라 쌍림면 합가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쌍림면 합가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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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일선김씨 동성마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를 입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5대손이 피신 와서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아름다울 가(佳)’자와 ‘골 곡(谷)’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또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 하며 개화실(開花室)이라고도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개실이 되었다. 아룻개실은 개실 아랫마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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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기재 김수옹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조선 후기 재실. 기재 김수옹은 1513년 월기[지금의 대가야읍 지산리]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의 이치를 깨달았다. 또한 겸손과 미덕을 겸비하고 용감했으며, 특히 큰 절개를 가져 상대가 낮다고 교만하지 않고 세도가 있다고 아부하지 않는 대쪽 같은 기질이었다. 김수옹이 1559년(명종 14)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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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 동헌(東軒)의 문이 있었으므로 동헌의 ‘헌(軒)’자와 관문의 ‘문(門)’자를 따서 헌문(軒門)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헌문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헌문동이 되었고,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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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강화경판 고려대장경(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일명 강화경판]은 13세기 중반 몽고의 침략으로 야기된 민족적 수난기에 피난 수도였던 강화경(江華京)에 설치된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조성되어,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친 공역으로 이루어졌다. 강화경판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말기 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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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동강 변에 있어 마을 개척 당시에 늪이 많아서 늪마, 또는 호수가 있어 호촌이라 하였다. 약 500년 전 큰 홍수로 낙동강이 범람하여 큰 호수가 생기고 그곳 흙을 훑어갔다고 하여 훑촌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성주군 다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촌동을 병합하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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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동의 ‘화’자와 법암의 ‘암’자를 따서 화암동이라 하였다. 화동은 봄이면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인다 하여 붙인 이름이고, 법암은 운라산성(雲羅山城) 밑의 마을로 산성이 높고 바위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기 성주군 운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암동·거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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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 있는 절강시씨 동성마을. 마을 산 모양이 연꽃과 같고 봄이면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여 산에 오를 때면 꽃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 하여 꽃길의 사투리인 꽃질이라 하였다. 달리 꽃동네란 뜻의 화동(花洞), 꽃골이란 뜻의 화곡(花谷), 꽃이 지고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열매동이라고도 한다. 꽃질마을은 다시 안꽃질과 아래꽃질로 나누어진다. 안꽃질은 꽃질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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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정씨 문중 재실. 대가야읍 중앙 공영주차장에서 합천 해인사 방면으로 400m가량 떨어진 고령군청 부근 도로변에 접해 있다. 450여 년 전 월담 정사현이 남명 조식과 강마도의지소(講磨道義之所)로 건립하여 월담정이라 하였으며, 150여 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이건하면서 이름을 황산재로 개칭하였다. 본체 건물은 1m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