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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의 복위 문제를 둘러싸고 훈구파와 사림파가 탄압을 받은 사건. 갑자사화는 1504년(연산군 10)[갑자년]에 훈구파와 사림파 중심의 부중(府中)으로 세력이 궁중(宮中) 세력에게 받은 정치적인 탄압 사건이다.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위 사건과 사사 사건을 임사홍(任士洪)의 밀고로 연산군이 알게 되면서 촉발되었으나, 조정 신하들 간의 암투로 격화되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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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운문산에서 은거한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아버지는 사재감 첨정 곽수녕(郭遂寧)이고, 어머니는 김철단(金哲端)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곽효원(郭孝元), 증조할아버지는 곽성기(郭成己)이다. 부인은 정언수(鄭彦脩)의 딸이다. 곽순(郭珣)[1502∼1545]은 1524년(중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28년(중종 2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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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지방 행정 구역의 단위인 군의 행정을 맡아보던 장관직. 우리나라는 고대 국가 성립 이후 중국 군현 제도를 모방하여 지방을 통치하면서 군에는 군수, 현에는 현령과 현감을 파견하였다. 군수는 중국 진나라가 제후들을 진압하고 그 땅에 군을 설치해 수(守)를 둔 것이 기원이다. 신라 시대에는 군을 설치해 태수(太守)·소수(小守)를 두었고, 고려 시대에는 군이라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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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권일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할 때 『오산지(鰲山誌)』를 편찬,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잘 정리하였다. 재임 중 통치를 잘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를 받았는데, 청도에 세웠던 청덕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만(子萬).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선 군수(旌善郡守) 권담(權紞)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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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문신. 금의(琴儀)[1153∼1230]는 고려 후기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글을 잘 지었다. 과거에 장원 급제한 뒤 최충헌의 문사로 발탁되어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벽상공신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극의(克儀), 자는 절지(節之)이다.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용식(琴容式)의 후손이다. 금의는 생김새가 훤칠하고 도량이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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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류가 훈구 세력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 중종반정(中宗反正)[1506]으로 새로 등용된 기호 사림파가 급격한 개혁 정치를 시도하다가 1519년(중종 14)[기묘년] 11월에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 재상들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중종반정으로 새로 등용된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은 파괴된 유교적 정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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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효녀. 청도군 향리(鄕吏) 김군산(金郡山)의 처이다. 김군산의 처 종비는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었고, 부모가 사후 정성을 다하여 상을 마치고 영당(影堂)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제사 지내기를 생시에 살아있는 듯 섬기었다. 이 일이 임금에게 알려져 정려(旌閭)가 내려졌고, 이런 사실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청도군 조에도 실려 있다. 정려비가 당시 읍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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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인.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용협(用協),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의흥 현감(義興縣監) 김서(金湑)이다. 부인은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김극일(金克一)[1382∼1456]은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고, 장성한 뒤에는 장인 김서의 간곡한 관직 진출 요청이 있었으나, 양친을 봉양해야 함을 이유로 거절하고 성심을 다하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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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형여(亨汝). 할아버지는 김성응(金聖應)이고 아버지는 승지 김치묵(金峙默)이며, 어머니는 현감 송익흠(宋益欽)의 딸이다. 부인은 한용정(韓用靜)의 딸이다. 김기상(金基常)[1770∼?]은 음보로 출사하여, 1819년(순조 19) 10월 청도 군수로 부임했다가 1820년(순조 20) 4월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 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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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규(稚圭), 호는 이호(梨湖) 또는 낭간 거사(琅玕居士)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상숙(金相肅)이다. 김기서(金箕書)[?∼?]는 1820년(순조 20) 5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가, 포폄(褒貶) 성적이 좋지 않아 1821년(순조 21) 12월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기서의 생애와 행적은 잘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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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중운(仲雲), 호는 매헌(梅軒).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며 아버지는 사헌 집의를 지낸 김맹(金孟)이다. 어머니는 이양(李讓)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고, 부인은 최학연(崔學淵)의 딸 흥해 최씨(興海崔氏)이다. 아버지 김맹의 꿈에 용마(龍馬)를 보고 세 아들을 낳아, 아들의 이름을 모두 마(馬)변이 있는 글자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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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김대유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무오사화로 삼촌 김일손이 화를 당했을 때 아버지 김준손과 함께 호남으로 유배를 당했다가 풀려났다. 이후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 전적·칠원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 현량과가 파방되자 삭탈 관직 당한 뒤, 청도의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천우(天佑), 호는 삼족당(三足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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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진(子進). 청도 사인촌(舍人村)[현 각남면 칠성리]에 살았다. 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며, 어머니는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김준손(金駿孫)·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 등 세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꿈에 용마(龍馬)를 보았기 때문에 아들 이름을 모두 마(馬)변 글자로 지었다 전한다. 김맹(金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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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원윤(遠允), 호는 퇴평(退平). 아들이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로 정려를 받았다. 김서(金㥠)[?∼?]는 조선 태종 때에 추성익대 좌리공신(推誠翊戴佐理功臣)으로 분릉군(盆陵君)에 봉해지고, 의흥 현감(義興縣監)을 제수 받아 청렴하게 선정을 베푸니 백성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퇴임 후 청도의 자계(紫溪)에서 자손을 가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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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도(淸道). 아버지는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이다. 김선장(金善莊)[?∼?]은 1340년(충혜왕 복위 1) 충혜왕의 실정이 빌미가 되어 조적(曺頔)의 난이 일어나 왕이 원나라에 불려갈 때, 대호군(大護軍)으로서 모시고 갔다. 이 공을 인정받아 1342년 일등 공신의 은전을 받았으며, 청도도 승격되어 주치(州治)가 되고 도주(道州)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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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김은휘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음보로 관직에 나아가 내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체찰사 정철(鄭澈)의 종사관으로 종군하며 수원의 독성산성(禿城山城)을 지키던 중 정철이 무고를 당하자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회(景晦). 고조할아버지는 좌의정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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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김이교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으나, 정조가 죽자 벽파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1806년(순조 6) 직첩을 환수 받은 뒤 다시 관직에 나아가 이조 판서·평안도 관찰사·병조 판서·형조 판서·공조 판서·예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고, 1831년 우의정이 되었다. 본관은 신안동(新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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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백운(伯雲), 호는 동창(東窓).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지낸 김맹(金孟)이고, 할아버지는 청도 효자로 널리 알려진 김극일(金克一)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서이다. 어머니는 이양(李讓)의 딸 용인 이씨이며, 부인은 첨정을 지낸 고태익(高台翼)의 딸 제주 고씨이다. 아우인 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 등이 모두 문과 출신이며,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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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도(淸道). 아버지는 김인수(金仁秀)이고, 시조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의 6세손이다. 김한귀(金漢貴)[?∼?]는 1362년(공민왕 11) 총병관 정세운(鄭世雲)이 홍건적을 물리쳤을 때, 이 사실을 알려와 황금 25냥과 비단 2필을 하사받았다. 홍건적이 다시 공격해 올 때 원나라에서 협공하자는 청이 있자 동경도 병마사(東京道兵馬使)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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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남천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대사간 등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호조 참의로 있을 때 경신대출척이 일어나 벼슬을 박탈당하였다. 예론에 밝아 예송에 깊이 참여하였으며, 봉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안동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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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목내선은 조선 후기의 남인 계열 문신으로, 형조·예조·호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기사환국에서 서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 좌의정에 올랐으나, 갑술옥사 때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699년에 풀려났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내지(來之), 호는 수옹(睡翁))·수헌(睡軒)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목서흠(睦敍欽)이며, 어머니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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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신진 사림들이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 무오사화는 1498년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제자이던 김일손(金馹孫)[1464∼1498] 등 영남 사림들이 유자광(柳子光)[?∼1512]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4대 사화 중에서 첫 번째로 일어난 사화이며, 사초(史草) 문제로 발단되었기에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 한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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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에서 배출된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문무 관인. 문무 관인이란 문관이거나 무관을 역임한 관인을 말한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관직 운영은 크게 문관과 무관 두 개의 반열을 두었다. 조회 때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반, 서쪽에는 무반이 정렬하였기 때문에 이를 동반 혹은 서반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런 제도는 고려에서부터 비롯되어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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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문신. 민종유(閔宗儒)[1245∼1324]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청도 감무로 부임하여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여 칭송을 받았다. 충렬왕 때 삼사 우윤에 오르는 등 여러 관직에 두루 기용되었으며, 복흥군의 봉작을 받기도 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평장사 민영모(閔令謨)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호부 시랑을 지낸 민황(閔滉)이다. 유천우(兪千遇)의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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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원(孝元).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며, 아버지는 증 참판 박이(朴頤)이고, 어머니는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제우당 박경전(朴慶傳)의 아우이다. 부인은 숙부인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박경선(朴慶宣)[1561∼1592]은 어려서부터 골격이 비범하고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독서하는 여가에 무예를 겸하여 닦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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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선(仲宣), 호는 삼우정(三友亭).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며, 참판에 증직된 아버지 박영(朴潁)과 참봉을 지낸 장후(張煦)의 딸 창녕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첫째 부인은 예회간(芮檜幹)의 딸 의흥 예씨이며, 두 번째 부인 김려문(金麗文)의 딸 분성 김씨이다. 분성 김씨와의 사이에 박지남과 박철남을 두었다. 박경신(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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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중(孝仲), 호는 국헌(菊軒).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제우당 박경전(朴慶傳)의 아우이다. 부인은 장사랑 김응권(金應權)의 딸 경주 김씨이다. 아들이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된 첨정 박린(朴璘)이다. 박경윤(朴慶胤)[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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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희중(禧仲), 호는 용연(龍淵).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다. 참판에 증직된 아버지 박영(朴潁)과 참봉을 지낸 장후(張煦)의 딸 창녕 장씨 사이에 태어났다. 처는 참봉 송경(宋璟)의 딸 여산 송씨이며, 아들은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된 박선(朴瑄)이다. 박경인(朴慶因)[1542∼1592]은 어릴 때부터 기절(氣節)과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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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백(孝伯), 호는 제우당(悌友堂)·이모당(二慕堂).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萬戶)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배위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로 아들 박정(朴珽)과 박기(朴璣)를 두었다. 박경전(朴慶傳)[1553∼1623]은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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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 할아버지는 증 참판 박이(朴頤)이고, 아버지는 국헌(菊軒) 박경윤(朴慶胤)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입암(立巖)에서 태어났다. 처는 수문장 박종(朴宗)의 딸 죽산 박씨이다. 박구(朴球)[1577∼1605]는 어릴 때부터 담략이 크고 무예에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부형들과 함께 청도 의병에 가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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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보(明甫). 정랑 박하청(朴河淸)의 증손이고, 참봉 박옹(朴顒)의 손자로, 공릉(恭陵) 참봉 박경찬(朴慶纘)의 계자(繼子)이다. 생부는 참봉 박경서(朴慶緖)이며, 부인은 공인(恭人) 청주 곽씨이다. 박근(朴槿)[?∼?]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로서 학업에 전념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밀양 박씨 일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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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민헌(敏獻), 호는 죽와(竹窩)이다. 제우당 박경전의 아들이며, 상우재 박경준의 계자(系子)이다. 어머니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이고, 부인은 충의위 서사도(徐思道)의 딸 이천 서씨이다. 박기(朴璣)[1590∼1667]는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1667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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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운경(雲卿), 호는 농암(聾巖).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5세손이다. 순천 교수(順天敎授) 박맹문(朴孟文)의 둘째아들이고 청도 교수 박린(朴麟)의 아우이며 군수 박호(朴虎)의 종형이다. 어머니는 점마사(点馬使) 최수희(崔受禧)의 딸로 곡강 최씨(曲江崔氏)이다. 부인은 지주사 정습명(鄭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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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눌암(訥巖).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5세손이다. 아버지 순천부 유학 교수(順天府儒學敎授) 박맹문(朴孟文)의 맏아들이고 성균관 진사 박란(朴鸞)의 형이다. 어머니는 점마사(点馬使) 최수희(崔受禧)의 딸로서 곡강 최씨(曲江崔氏)이다. 박린(朴麟)[?-?]은 조선 중종 때 선무랑(宣務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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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모와(慕窩).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 두촌(杜村) 박양무(朴揚茂)의 7세손이다. 박광생(朴光生)의 둘째아들이고, 진사 박광형(朴光亨)의 양자이다. 어머니는 참봉 김명록(金命祿)의 딸로 상주 김씨(尙州金氏)이고 양어머니는 좌통례(左通禮) 유저(柳渚)의 딸로 약목 유씨(若木柳氏)이다. 부인은 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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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은원(恩遠), 호는 지암(芝巖)이다.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예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10세손이고, 일청재 박호(朴虎)의 5세손이다. 학생 박지빈(朴之贇)의 차남이다. 박상고(朴尙古)[1654∼1718]는 46세 되던 1699년(숙종 25) 식년 사마시 진사과에 재종제 박태고(朴太古)와 함께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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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복(子復), 호는 괴정(槐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며, 용연(龍淵) 박경인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참봉 송경(宋璟)의 딸 여산 송씨이다. 처는 군수 김극유(金克裕)의 딸 정부인 청도 김씨이며, 아들은 박동흠(朴東欽)과 박동온(朴東溫)이 있다. 박선(朴瑄)[1571∼1614]은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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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숭정처사(崇禎處士). 동몽교관(童蒙敎官) 박신(朴愼)의 아들이다. 박수춘(朴壽春)[1572∼1652]은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항상 『소학』을 애독하였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싸웠다. 1618년(광해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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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헌(而獻), 호는 용암(龍巖). 증조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며,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고, 어머니는 부정(副正)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기포(杞圃) 박우(朴瑀)의 아우이며, 처 이반(李礬)의 딸 고성 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다. 박숙(朴琡)[1578∼1639]은 다섯 형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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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휘도(輝道), 호는 운강(雲岡). 할아버지는 박장덕(朴章德)이다. 아버지는 박정주(朴廷周), 어머니는 김종악(金宗岳)의 딸 월성 김씨(月城金氏)이다. 처는 사헌부 지평 이병영(李秉瑩)의 딸 숙부인 경산 이씨(京山李氏)이다. 박시묵(朴時默)[1814∼1875]은 정재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의 대학자인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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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약생(若生), 호는 두촌(杜村).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예로서, 할아버지는 중서령 박원광(朴元光)이고 아버지 보승오위 박기봉(朴奇鳳)의 둘째아들이다. 청도 밀양 박씨 밀직부사공파 두촌공 문중의 입향조이다. 어머니는 직장 김인계(金仁桂)의 딸로서 경주 김씨이다. 처는 현령 백문질(白文質)의 딸로서 청도 백씨이다. 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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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헌(仲獻), 호는 기포(杞圃). 증조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고,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며, 어머니는 부정(副正)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임란공신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의 조카이다. 박우(朴瑀)[1576∼1637]는 경상북도 청도군 수여현[지금의 이서면 수야리]에서 태어났다. 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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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남거(南擧), 초명(初名)은 정붕(廷鵬). 아버지는 박희태(朴熙泰), 할아버지는 박취광(朴就光), 증조할아버지는 박민좌(朴敏佐)이다. 어머니는 이익무(李益茂)의 딸이고, 부인은 박경보(朴敬甫)의 딸이다. 박유붕(朴有鵬)[1806∼?]은 1844년(헌종 10) 증광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고, 경상도 중군(中軍)을 거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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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효자. 수군(水軍) 박동(朴同)의 아들이다. 박윤손(朴閏孫)[?∼?]은 17세에 어머니가 빨래하는데 따라갔다가 호랑이가 어머니를 물어 가자, 왼손으로 어머니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돌을 던지며 1.96㎞ 남짓을 쫓아갔다. 이웃사람들이 듣고 달려오니 호랑이가 드디어 어머니를 버리고 갔는데, 그만 큰 부상을 입은 어머니는 그날 한밤중에 죽었다. 이 일이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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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문신. 박융은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1408년(태종 8) 생원시를 거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전한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그 사이 두 번의 면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서용되어 성균관 사예(司藝) 등 경외(京外) 여러 관직을 거쳤다. 이후 함안 군수로 파견되어 목민에 힘쓰다가 1428년(세종 10)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밀양(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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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후손이 청도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천익(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판도 판서(版圖判書) 박영균(朴永均)의 아들이며, 모친은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좌정승 구위(具褘)의 딸이다. 박익(朴翊)[1332∼1398]은 고려의 신하로서 1386년(우왕 12) 동경(東京) 판관(判官) 재직 중 권농 방어사를 겸했다. 그 후 사재 소감(司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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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경(文卿), 호는 중산(中山). 아버지는 박재범(朴在範)이고,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재령 이씨이다. 박장현(朴章鉉)[1908∼1940]은 어린 시절 고향의 보성 학원(普成學院)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세부터 조긍섭(曺兢燮) 문하에서 도학(道學)에 정진하였다. 이후 송준필(宋浚弼)·하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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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백옹(伯翁), 호는 진계(進溪), 초명은 박재성(朴在誠). 할아버지는 박정주(朴廷周)이고, 증(贈) 좌승지 박시묵(朴時默)과 사헌부 지평 이병영(李秉瑩)의 딸 숙부인 경산 이씨(京山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는 군수 이박상(李博祥)의 딸 여강 이씨이다. 박재형(朴在馨)[1838∼1900]은 청도군 금천면 출신으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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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1353년(공민왕 2) 과거에 합격한 국간(菊磵) 박진록(朴晉祿)의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밀양 박씨 12중조(中祖)의 한 사람이다. 박중미(朴中美)[?∼?]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등제하여 중서령(中書令)과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했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국경을 건너와 괴수 모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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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경(仁卿)·계애(溪厓). 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고, 아버지는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이다. 어머니는 김려문(金麗文)의 딸 분성 김씨이다. 부인은 군수 박명세(朴命世)의 딸 정부인 함양 박씨이다. 박지남(朴智男)[1565∼1626]은 어릴 적부터 담략이 있고, 글씨와 칼 쓰기에 능했으며, 불의를 참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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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청도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숙헌(叔獻), 호는 운옹(雲翁).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며, 할아버지는 순릉 참봉 박영(朴潁)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고, 어머니는 부정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수여현]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숙부인 고성 이씨이다. 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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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현경(賢卿)이고 호는 운애(雲厓).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박이(朴頤)이며, 아버지는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이다. 어머니는 김려문(金麗文)의 딸 분성 김씨이다. 선무원종공신 2등을 받은 박지남의 동생이다. 부인은 이장백(李長白)의 딸 월성 이씨이다. 박철남(朴哲男)[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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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생만(生晩), 호는 경양재(景陽齋).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10세손이며, 일청재 박호(朴虎)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선장(朴宣章)이고, 아버지는 장릉 참봉(莊陵參奉) 박지현(朴之賢)이며, 어머니는 참봉 전유장(全有章)의 딸이다. 부인은 좌랑 배명윤(裵命胤)의 딸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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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응천(應千), 호는 소요당(逍遙堂). 증조할아버지는 함양 군수를 지낸 박융, 할아버지는 소고공 박건이며,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晉州河氏)이다. 박하담(朴河淡)[1479∼1560]은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여러 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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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천(聖千),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晉州河氏)이다.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동생이다. 박하징(朴河澄)[1484∼1566]은 유아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보채지 않고 젖도 빨지 않아 향리에서 유효(乳孝)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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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응도(應圖), 호는 성와(城窩).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현손이며, 박융(朴融)의 증손, 밀양 박씨 청도 입향조 박건(朴乾)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박승원(朴承元)이고, 어머니는 경절공 하숙부(河叔溥)의 딸 진주 하씨이다.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의 동생이자,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의 형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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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박한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연산군 때 간관이 되어 왕의 실정을 극간하고 노사신·임사홍을 탄핵했다. 연산군의 횡포가 심해지자 외직으로 나갔으나,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도(門徒)로 분류되어 유배를 당하였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연루되어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迃拙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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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박호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546년(명종 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좌랑과 평해 군수(平海郡守)를 지냈다. 평해 군수 시절 친구가 중국에서 가져온 감나무를 얻어 고향에 가져와 재래종에 접을 붙였는데, 감이 씨가 없고 커서 ‘새월 반시’라 불렀다. 이 감이 오늘날 청도 전역으로 퍼져 청도의 명산물인 ‘청도 반시’가 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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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성(岐城). 자는 문보(文甫), 호는 옥계(玉溪). 시조 반부(潘阜)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반조(潘慥)이다.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파평 윤씨이다. 반우형(潘佑亨)[?∼?]은 1469년(예종 1)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72년(성종 3) 임금이 선정전에 나가서 문신과 성균관 유생들에게 글을 강론할 때 성균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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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지역의 효자. 본관은 기성(岐城). 자는 헌옥(獻玉), 호는 종모재(終慕齋). 죽오(竹塢) 반국해(潘國海)의 6세손이다. 반환(潘瓛)[1767∼1829]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15.7㎞나 떨어진 두곡산(杜谷山)에 묘소를 모시고, 3년 동안 매일 성묘를 하였으며,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역시 두곡산에 묘소를 모시고 여막(廬幕)을 치고 조석으로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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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기성(岐城). 호는 양헌(陽軒). 증조할아버지가 옥계(玉溪) 반우형(潘佑亨)이다. 반효홍(潘孝泓)[?∼1592]은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들이 4월 20일에 쉽게 청도 읍성을 함락하자, 청도 조전장 박경신과 함께 의병이 되어 싸웠다. 청도읍성이 쉽게 함락된 것은 군수 배응경(裵應褧)이 경상도 순찰사(巡察使) 김수와 함께 대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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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배응경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의병들과 함께 청도를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다.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회보(晦甫), 호는 안촌(安村). 할아버지는 증 형조 참의 배유(裵裕)이고, 아버지는 훈도(訓導) 배무선(裵茂先)이다. 어머니는 서산 정씨(瑞山鄭氏)로 제릉 참봉(齊陵參奉) 희장(希章)의 딸이다. 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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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지역의 향리(鄕吏). 본관은 청도(淸道). 청도 5대 토성 중의 하나였던 청도 백씨 가문 출신이다. 백계영(白桂英)[?∼?]은 고려 후기 청도 호장(戶長) 출신이다. 1270년(원종 11) 몽고와 강화를 맺은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돌아가 삼별초를 해산하려 하자 배중손을 필두로 한 삼별초가 저항하며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였는데, 이때 몽고군에 항복을 원치 않던 많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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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발생한 전쟁.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만주족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조선을 침략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병자호란 중에 청도에서도 의병이 모집되고 근왕병(勤王兵)들이 힘을 합하여 청과 맞서 싸웠다. 광해군(光海君)의 중립 외교 대응 후 인조반정(仁祖反正)[1623]이 일어나자, 조선에서는 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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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서문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기사환국 때 노론의 중신으로 인현 왕후의 폐위를 반대했다.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득세하자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등용되었으나, 희빈 장씨 및 남인에 대한 처리에 온건론을 주장하다 조정에서 배척을 받아 은퇴했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도윤(道潤), 호는 몽어정(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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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서원리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봉림 대군의 사부로서 심양까지 따라가 봉림 대군을 모셔 신임을 얻었다. 현종이 세자 시절 춘궁 강관을 뽑을 때에도 진선으로 발탁되어 국왕과의 인연이 깊었다. 강원도·경상도·함경도의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였고 강화 유수로 재임할 때는 병기 수보(修補)와 군량미 확보에 노력하여 효종의 북벌 계획을 도왔다. 본관은 대구(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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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국보(國寶). 서성(徐渻)의 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제조(提調) 서경주(徐景霌)이고, 할아버지는 서정리(徐貞履)이다. 아버지는 자헌대부 예조 판서 서문유(徐文裕)이고, 어머니는 이홍적(李弘迪)의 딸이다. 서종옥(徐宗玉)의 동생이고 황주 목사 서명민(徐命敏)의 아버지이다. 서종벽(徐宗璧)「1696∼?]은 1721년(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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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조선 시대 교통도 성현도에 파견되던 종6품의 벼슬아치. 경상북도 청도 지역인 성현도(省峴道)에 파견되어 인근의 소속 역을 관장하던 종6품의 벼슬아치이다.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역승(驛丞) 제도가 1535년(중종 30)에 완전히 폐지되고 찰방 체제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 찰방은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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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성현도에 소속된 각 역의 운영 실태를 기록하여 편찬한 역지. 『성현도 역총(省峴道 驛摠)』은 경상도 중요 역도(驛道)의 하나인 성현도에 소속된 각 역의 운영 실태를 기록한 자료이며, 2013년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 지역의 행정 단위별로 읍지(邑誌)가 편찬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교통 행정 단위인 역도를 중심으로 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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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성현도의 역참들을 관리하는 데 드는 인적·물적 자원의 현황을 기록한 책.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省峴道邸吏役價釐正節目)』은 1802년에 성현역과 성현 찰방 관할 아래 있던 역참들의 각종 현황들을 기록한 자료이다.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은 2013년 현재 천안 우정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역 운영과 관리에 들어가는 액수를 각 역별로 기록하고, 관내의 역을 운영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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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청도 관내에 있던 역참(驛站)의 하나. 삼국 시대 이래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었던 역은 고려를 이어 조선에서도 그대로 답습되었고, 군사적인 목적도 컸기 때문에 병조에서 관할하였다. 1535년(중종 30)에는 예전 고려 때의 역승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고 찰방 체제로 바뀌었다. 성현역 역시 고려부터 설치되었다가 조선으로 이어졌다. 조선 시대 역 운영은 41개의 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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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 은진(恩津). 자는 열경(悅卿). 할아버지는 송문흠(宋文欽)이며, 양부는 송치연(宋致淵), 생부는 송시연(宋時淵)이다. 어머니는 목사(牧使) 신사적(申思迪)의 딸이며, 부인은 진사 김이대(金履大)의 딸이다. 송계백(宋啓柏)[1781∼?]은 음보로 출사하여 1814년(순조 14) 돈녕부 참봉, 1816년(순조 16) 세자익위사 부수(副率)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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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대보(大甫)·홍보(弘甫). 회덕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충(宋世忠), 할아버지는 송기수(宋麒壽)이다. 아버지는 송응순(宋應洵)이고 어머니는 안언수(安彦銖)의 딸이다.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은 송준조(宋浚祚)·송효조(宋孝祚)·송현조(宋顯祚)이다. 부인은 김찬(金瓚)의 딸이다. 송석조(宋碩祚)[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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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계문(稽文) 호는 호은(湖隱). 통덕랑(通德郞) 송덕규(宋德圭)의 아들이고, 현감 송환세(宋煥世)의 손자이며, 우암 송시열의 7대손이다. 송흠서[?∼?]는 음보로 출사하여, 1801년(순조 1) 2월 청도 군수에 부임하였다가 1805년(순조 5년) 5월 거창 부사로 자리를 옮겼다. 성품이 너그럽고 넉넉하였으며 효성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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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신대우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순조가 세자일 때 세자익위사 익위에 제수되어 보필하였고, 경연 특진관을 거쳐 동지중추부사·동지돈녕부사·호조 참판을 지냈다.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저서로는 『완구유집』이 전한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의부(儀夫), 호는 완구(宛丘). 우승지 신택하(申宅夏)의 손자이며, 의영고 판관(義盈庫判官) 신성(申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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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안구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부모 봉양을 위해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 부임 초부터 백성을 잘 보살피고 선정을 베푼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을 받았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중(思仲), 호는 태만(苔巒). 할아버지는 시직(侍直) 안숙량(安淑良)이고, 아버지는 진사 안보문(安普文)이다. 어머니는 사인(舍人) 정지주(鄭至周)의 딸이다. 안구(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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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전통 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으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전국에 480여 개가 운영되었다. 역(驛)은 삼국 시대 이래로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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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흥(義興). 자는 극겸(克謙). 도사 예난종(芮蘭宗)의 아들이고, 생부는 예난지(芮蘭智)이다. 시조 낙전(樂全)의 11세손이며, 예승석(芮承錫)의 현손이다. 예극양(芮克讓)[?∼?]은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 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1500년 초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각계리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면서 청도군의 의흥 예씨 입향조가 되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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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담은 사찬 읍지. 『오산지(鰲山志)』는 청도의 재지 사족이던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당시에 편찬된 다른 사찬 읍지보다 편목이 다소 많은데, 이는 당시 청도의 재지 사족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찬 읍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경의 본관은 전의이며, 1599년 아버지 이기옥[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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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청도 운문산 일대에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운문산 전투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중의 하나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 중 제1군은 4월 14일에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이 버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해·양산·울산·언양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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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청도 지역을 거치는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시설. 조선 시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청도 지역 여행자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원이 설립되었다.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일종의 여관이다.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약 1,310개소의 원들이 각 지역에 설치 운영되었다. 대로(大路), 중로(中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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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병(汝柄). 거주지는 한양으로, 양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안악 군수(行安岳郡守)를 역임한 유수증(兪守曾), 아버지는 통훈대부 행진위 현령(行振威縣令)인 유시증(兪是曾)이다. 유극(兪極)의 아우이다. 유비(兪秘)[1605∼1671]는 23세 되던 1627년(인조 5)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했다. 1666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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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계성(季省). 아버지는 절충 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유대기(兪大祺)이고, 유상증(兪尙曾)과 유약증(兪若曾)이 형이다. 부인은 첨추공(휘 기원)의 딸 신평 송씨이다. 거주지는 서울이다. 유선증(兪善曾)[1583∼1658]은 30세이던 1612년(광해군 4)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했다.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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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시숙(時叔). 증조할아버지는 유파(柳坡)이며, 할아버지는 유해(柳瀣)이다. 아버지는 어모 장군(禦侮將軍) 전행훈련원 첨정(前行訓鍊院僉正) 유충정(柳忠貞)이고, 어머니는 민수천(閔壽千)의 딸이다. 거주지는 나주(羅州)이다. 유주(柳澍)[1536∼?]는 26세 되던 1561년(명종 16년) 사마시 생원과에 합격한 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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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유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애 유성룡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사마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명문가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한 생애를 보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 거주지는 안동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고, 어머니는 이경(李坰)의 딸이다. 유여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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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할아버지는 호조 참판 윤비경(尹飛卿), 아버지는 윤명운(尹明運)이며, 우참찬 윤봉오(尹鳳五)의 형이다. 윤봉구(尹鳳九)[1681∼1767]는 1714년(숙종 40)에 진사가 되고, 1725년(영조 1) 7월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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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의지(宜之).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윤훤(尹暄)이고, 윤순지(尹順之)·윤원지(尹元之)·윤징지(尹澄之)가 형이다. 윤의지(尹誼之)[1605∼1666]는 1605년(선조 38)에 태어나, 20세 되던 1624년(인조 2)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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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왕실 외척인 윤임 일파 대윤이 윤원형 일파 소윤에게 탄압을 받으면서 사림이 화를 입은 사건. 조선 중종(中宗) 말기부터 인종(仁宗)의 외척인 대윤(大尹)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小尹) 간의 세력 다툼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1545년(명종 1)[을사년] 명종(明宗)이 즉위한 후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이 윤임이 중심인 대윤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윤에 가담한 사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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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경생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광해군이 인목 대비를 폐하려 하자 반대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으나, 임금 될 사람을 가까이 하면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될까 조심하였다. 1623년(인조 1) 김화 현감을 시작으로 풍덕 군수·양양 부사·청도 군수 등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향(叔向). 아버지는 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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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의 효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6 경상도 청도군 편 효자를 설명하는 조항에는, 청도 출신의 효자 이관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관명의 어머니가 어느 날 호랑이에게 물려가게 되었다. 때마침 큰 비가 내리고 천지가 캄캄하여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어린 이관명이 13살 된 누이 연가(延加)와 9살 된 질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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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부모의 상을 당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군위 현감을 시작으로 사간원 헌납·사헌부 지평·공조 정랑 등을 역임하며 탄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해로 귀양가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 때 해배되어 다시 관직에 기용되었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심원(深源), 호는 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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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병경(秉卿). 이균(李鈞)[?-?]은 1483년(성종 14)에 청도 군수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1485년(성종 16)에 청도 향교를 중창할 당시 공을 많이 들였다. 각 사찰의 놀고 있는 건물과 재목 등을 모아 향교의 규모를 넓히고 말끔히 중창하였다. 탁영 김일손이 청도 교수를 역임할 때 남긴 「중수청도학기(重修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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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백응(伯應).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행가리포첨사(行加里浦僉使)를 지낸 이우(李友)이다. 이몽상(李夢祥)[1530∼?]은 31세 되던 해인 1560년(명종 15)에 충순위(忠順衛) 신분으로 무과 시험에 장원을 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부사를 역임했다. 경상북도 청도군 종도면(終道面)[현 매전면] 정촌(井村)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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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성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 교례를 비롯하여 병조 정랑·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49년(인조 27)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생활을 하며 선정을 쌓았으나, 화재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화봉(華封), 호는 매헌(梅軒). 영광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이응종(李應鐘)이고,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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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옥(應玉), 호는 남강(南岡). 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일매당 이사균(李思均)이다. 청도 사인촌(舍人村)[현 각남면 칠성리]에 살았다. 후손들이 청도읍 냉정에 살고 있다. 이영(李柃)[1503∼?]은 22세가 되던 1524년(중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역임한 후 평안도 관찰사와 개성 유수 등을 역임했다. 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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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이운룡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옥포 만호로 있으면서 패전한 원균(元均)을 대신해, 이순신(李舜臣)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번 싸움에 나아가 큰 전공을 세워,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가 되었다. 오랑캐가 북쪽 변방에 침입했을 때 함경남도 병마 절도사가 되어 적을 진압했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견(景見), 호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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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원숙(元淑), 호는 모헌(慕軒).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원(李原)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평(李泙)이며, 어머니는 허추(許樞)의 딸 숙부인 양천 허씨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흥해 최씨이다. 사림으로 이름 높았던 쌍매당 이윤(李胤)과 망헌 이주(李冑)의 아우이다. 이육(李育)[?∼?]은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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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윤은 1486년(성종 1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 가주서를 거쳐 사헌부 지평·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무오사화 때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다시 관직에 들어와 홍문관 응교·전한 등을 거쳤다.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는 13조목의 국가 시책을 올려 아첨하는 무리를 멀리하고 학풍을 바로잡을 것을 진언하였다. 본관은 고성(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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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이정욱(李廷郁)[?∼?]은 임진왜란을 당하자 고향 청도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박경전이 청도 의병진을 구성할 때 김계후(金繼後)·정희호(鄭希濩) 등과 함께 복병장(伏兵將) 임무를 부여받았다. 1592년 5월 22일에 왜적 500여 기가 금천 동창강가에 이르자, 자인(慈仁) 지역에서 의병을 이끌던 최문병의 병력과 합세하여 적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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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야(白也).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이석령(李錫齡), 할아버지는 이유한(李維漢), 증조할아버지는 이상연(李尙淵)이다. 어머니는 황응로(黃應老)의 딸이며, 부인은 서종제(徐宗悌)의 딸이다. 이중인(李重寅)의 형이다. 이중경(李重庚)[1680∼?]은 23세이던 1702년(숙종 28)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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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찬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청도 군수와 삼척 부사,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자소(子昭), 호는 계동(溪東). 증조할아버지는 이헌(李憲)이고, 할아버지는 이주도(李周道)이며, 아버지는 이명(李㟰)이다. 이찬한(李燦漢)[1610∼1680]은 1646년(인조 24)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2년 후인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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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관료.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출생 연도는 알 수 없다. 임종(林宗)[?-1271]이 청도 감무(監務)로 재직하고 있던 1271년(원종 12), 당시 진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삼별초 무리들이 청도까지 쳐들어왔다. 밀양 출신 동정(同正) 박경순(朴景純) 등 200여 명의 삼별초 무리들이 몰려와, 임종을 죽이고 농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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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에 침입하여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에 걸쳐 일본이 조선에 침입한 전쟁이다. 화의 결렬로 1597년 다시 침입한 정유재란을 포함해서 일컫는다. 조선 건국 후 약 200년간 안정이 지속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 초기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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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옥호자(玉壺子). 정석기(鄭碩基)의 손자로 목사 정무(鄭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우태(尹遇泰)의 딸이다. 정하언(鄭夏彦)[1702∼1769]은 1735년(영조 11) 진사로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2년(영조 18) 경상도 도사 시절 진휼사의 종사관으로 선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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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지숙(祗叔). 아버지는 통훈대부 경기좌도 수운 판관(京畿左道水運判官) 정재악(鄭載岳)이며, 형제로 정희선(鄭希先)·정술선(鄭述先)·정현선(鄭顯先)·정무선(鄭懋先)이 있다. 정흠선(鄭欽先)[1670∼1752]은 1730년(영조 6) 12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35년(영조 11) 10월 임기가 차서 벼슬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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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은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 수는 640호 6,718인으로, 절반의 토지만 비옥했고, 풍속은 검솔했으며,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군사 동원 체제인 진관은 대구도(大丘道)에 귀속되어 청도 군수가 경상좌도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 이래로 대성(大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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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 상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조희(趙禧)이고, 아버지는 조광헌(趙光憲), 어머니는 홍윤최(洪胤崔)의 딸 남양 홍씨이다. 조정(趙靖)[1555∼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1596년 왜와의 강화를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1599년(선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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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여(德轝)·여빙(汝憑), 호는 일제당(日躋堂). 거주지는 중화(中和)이다. 아버지는 차득보(車得輔)이다. 차은로(車殷輅)[1563∼?]는 1591년(선조 24) 29세의 나이로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이듬해인 1592년(선조 25) 9월 별장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진수(金進壽)와 함께 요로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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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도 감무를 지낸 관료. 최안을(崔安乙)[?-?]은 청도 감무를 지낸 고려 후기의 관료이다. 『청도읍지』에 의하면, 최안을은 감무로 있을 당시 면읍루(面邑樓)인 청덕루(淸德樓)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청덕루는 현재 터만 전하고 있고, 청도 동헌(東軒)[현 화양읍 동상리]이 현재까지 남아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청덕루는 생김새가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선현들의 주옥같은 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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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경산(耕山). 관가정(觀稼亭) 최청(崔淸)의 8세손으로 경주 최씨 청도 입향조이다. 최여준(崔汝峻)[1567∼?]은 26세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대구에서 노모를 업고 청도 팔조령에 올라 화를 면했다. 이후 대구의 선비인 여모당(與慕堂) 손처눌(孫處訥)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풍각 전투에서 왜적을 크게 격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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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철학자. 최재희는 청도 출신의 철학자이자 교수이다. 1965년 서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 대학교 교수 및 명예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 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호는 서우(曙宇). 경상북도 영덕 군수와 영천 군수를 지낸 최항묵(崔恒默)과 어머니 손숙자(孫淑子)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동생으로는 최후재(崔厚在)와 최덕경(崔德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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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풍각면 전투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중의 하나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 중 제1군은 4월 14일에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이 버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해·양산·울산·언양까지 파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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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무신. 허세린은 조선 전기 무신으로, 평소 처신이 검소하고 청렴하여 염근리(廉謹吏)에 뽑히기도 하였다. 청홍도 병마절도사를 비롯하여 양주 목사·함경북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세린(許世麟)[1507∼1579]은 1552년(명종 7) 무반 청요직인 부장(部將) 재임 중 청렴하고 근면한 관리로 뽑혔고,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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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황응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569년(선조 2) 과거에 급제하여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를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하였다. 고향에 은거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 양곡을 내어 병사를 돕고, 향병 대장에 추대되어 의병을 모집하는 등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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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의지(義止), 호는 설봉. 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손자이자 황보신(黃保身)의 아들이다. 부인은 좌의정을 역임한 철성부원군 이원의 딸 고성 이씨이다. 황종형은 아들 셋을 낳았는데, 황관(黃瓘)은 생원이고, 다음은 황찬(黃瓚)과 황규(黃珪)이다. 황종형(黃從兄)[?∼?]은 1464년(세조 10) 청도 군수로 부임하던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