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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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來善 |
이칭/별칭 | 내지(來之),수옹(睡翁),수헌(睡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목내선은 조선 후기의 남인 계열 문신으로, 형조·예조·호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기사환국에서 서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 좌의정에 올랐으나, 갑술옥사 때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699년에 풀려났다.
[가계]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내지(來之), 호는 수옹(睡翁))·수헌(睡軒)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목서흠(睦敍欽)이며, 어머니는 증 병조 판서 권탁(權晫)의 딸이다.
[활동 상황]
목내선(睦來善)[1617∼1704]은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한 후 1650년(효종 1)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교리·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1년(현종 2) 7월 7일에 청도 군수에 부임하여 1663년(현종 4) 정월에 사임했다. 그 뒤 1672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5년(숙종 2) 형조 판서가 되었으며, 1676년에 대사헌을 거쳐 예조·호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남인인 관계로 1680년(숙종 7) 경신대출척 때 삭직되었다.
1683년 다시 형조 판서로 기용되어 그 뒤 우참찬이 되고, 1689년(숙종 16)에 우의정에 올랐다. 그해에 일어난 기사환국에서 서인(西人)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 좌의정이 되었다. 1694년(숙종 21) 남인이 몰락하는 갑술옥사가 일어나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699년(숙종 26)에 풀려나 전리(田里)에 돌아왔다.
[학문과 저술]
허목(許穆)의 문인이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특히 해서(楷書)와 초서를 잘 썼다.
[상훈과 추모]
1907년(융희 2)에 윤휴·이현일 등과 함께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