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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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孟 |
이칭/별칭 | 자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출생 시기/일시 | 1410년 - 김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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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41년 - 김맹 식년 문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51년 - 김맹 평안도 도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김맹 좌랑으로 세조 집권을 도움 |
몰년 시기/일시 | 1483년 - 김맹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55년 - 김맹 좌익원종공신 3등에 책록 |
출생지 | 김맹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 |
묘소|단소 | 김맹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
성격 | 관료/문관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관직 | 사헌 집의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진(子進). 청도 사인촌(舍人村)[현 각남면 칠성리]에 살았다. 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며, 어머니는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김준손(金駿孫)·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 등 세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꿈에 용마(龍馬)를 보았기 때문에 아들 이름을 모두 마(馬)변 글자로 지었다 전한다.
[활동 사항]
김맹(金孟)[1410∼1483]은 생원시를 거쳐, 1441년(세종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김천 도찰방·예조 좌랑이 되었다. 1451년(문종 1) 평안도 도사를 거쳐 고령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좌랑으로서 세조 집권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곧 의금부 진무를 거쳐 오위도총부 경력을 역임하였다. 성종 초 집의에 올랐다가 퇴직하였다.
벼슬을 마다하고 부모의 봉양에만 정성을 쏟은 아버지 김극일의 훈회(訓誨)에 영향을 받아 성품이 단아하고 청렴하였으며 권세와 이익을 쫓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명의 임금을 모시는 동안 화기(禍機)를 여러 차례 겪었으나 무사할 수 있었다. 안평 대군이 여러 번 그를 초대하였으나 만나지 않았으며, 또 도총부의 경력으로 재직할 당시 직속 상관인 도총관 남이(南怡) 집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번번이 화(禍)를 면했다고 전한다.
[묘소]
묘는 경상도 청도군 상북면 수야촌[지금의 이서면 수야리]에 있다. 묘갈(墓碣)은 함허정(涵虛亭) 홍귀달(洪貴達)이 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세조 즉위 당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