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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분. 각동리 석관묘(角洞里 石棺墓)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분이다. 1938년 발굴 과정에서 간돌검[마제석검]과 간돌화살촉[마제석촉]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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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개항기 강원도관찰사 남정순의 선정을 기리는 비. 남정순(南廷順)은 본관이 의령이고, 남영중의 아들로 자는 성휴이다. 1848년(헌종 14) 증광별시 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철종 때 동래부사·이천부사를 거치고 고종 때 도승지와 직제학, 광주유수 등을 지냈다. 1872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는데, 평안도관찰사 재임 중에는 당시 성행하던 청나라와의 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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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원도관찰사 남정익의 선정을 기리는 비. 남정익(南廷益)은 본관이 의령으로 자는 성삼, 호는 원거이며,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870년 이조참의를 시작으로 병조참판, 이조참판을 거쳐 1882년 54세의 나이로 강원도관찰사를 제수받았다. 17개월간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다 1883년 동춘추관사로 이임하였다. 1887년 공조판서에 임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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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사건. 계유정난(癸酉靖難)은 수양대군(首陽大君)[1417~1468]이 단종(端宗)[1441~1457]의 왕위를 빼앗고자 1453년 10월 10일 일으킨 사건이다. 선대 왕인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급서하여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왕권은 약하였다. 문종의 부탁을 받은 김종서 등이 고명대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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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가 개창한 이후 1392년 멸망할 때까지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영월은 궁예(弓裔)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918년 왕건(王建)이 왕위를 찬탈하자, 강릉의 토호(土豪) 김순식(金順式)은 왕건에게 복속을 거부하였다. 그렇다면 영월 지역도 왕건의 영향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순식이 왕건에게 복속하면서 영월 지역은 고려의 영역에 포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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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고씨굴과 고씨 형제의 의병 이야기. 영월 고씨굴은 약 4억 8000만 년 전인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에 퇴적된 석회암이 분포한 지역에 위치한 석회동굴이다. 굴의 길이는 주굴(主窟) 약 950m, 지굴(支窟)은 약 2,438m, 총 연장 약 3,388m인데, 이 중 620m 구간만 공개되고 있다. 굴 내부에 4개의 호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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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와 마차리 경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시대 산성. 공기산성(恭基山城)은 실체가 학술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나 『영월군지』에 의하면 영월군 북면 공기리에서 마차리의 솔치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있다고 한다. 산성은 토석혼축성으로, 길이는 2㎞이고 중간중간 돌로 쌓은 석축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성벽 전면은 북쪽 방향인 평창을 향하여 있는데,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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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에 있는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공기리 고려무덤은 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에 있는 돌덧널무덤[석곽묘]으로, 고려 시대 고분으로 추정된다. 최초 신고자[전영수]에 따르면 1987년 발견 당시에는 무덤 외에 각종 청동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으나 현지 조사를 진행한 1995년 당시에는 유물은 없고 돌덧널무덤과 기타 분묘만 몇 기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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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돌화살촉. 공기리 돌화살촉은 강원도 영월군 북면 공기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이다. 1995년 한림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이 현지 조사 당시 이미 유실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형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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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나라가 부과하여 상납한 물품. 공납은 공물 부과에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민호와 전결(田結)에 토산(土産)을 참작하여 적당히 분정, 부과한다는 규정이 있다. 공물은 ‘토공(土貢)’이라고도 하며 넓은 의미로 진상(進上)·천신(薦新)·명일방물(名日方物) 등도 포함한다. 이와 같은 성격의 공물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중요한 재원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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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공자를 찬양하고 영월향교의 의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향교는 조선 시대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 교육을 담당하던 교육기관이다. 영월향교는 1398년(태조 7) 건립되어, 여러 차례 중창과 보수를 거쳤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을 봉안하였고, 유생들이 강론을 하던 명륜당과 숙식을 하던 동재와 서재 등이 있다. 향교의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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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개항기 강원도관찰사 민형식의 덕행을 기리는 비. 민형식(閔亨植)[1875~1947]은 본관은 여흥, 자는 덕여이다. 아버지는 민영철이다. 1888년(고종 25) 시강원겸필선과 응교를 거쳐, 1892년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경북관찰사, 황해도관찰사, 동지돈녕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신사보감』에 의하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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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원도관찰사 윤정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 윤정구(尹正求)는 본관이 해평으로 자는 대이, 호는 석하이다. 1851년(철종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862년(철종 13) 57세의 나이로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863년 4월 좌승지로 입조하여 지평, 우승지, 예조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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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개항기 강원도관찰사 이봉의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봉의(李鳳儀)[1893~1919]는 본관이 전주로 자는 선익, 호는 송부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893년(고종 30) 우포도대장이 되고 이듬해 갑오개혁 때에는 친군총어사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어 10개월간 재임하였다. 이봉의는 이후 이완용 내각에서 육군부장과 군부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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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조병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 조병헌(趙秉憲)[1800~1842]은 본관이 풍양으로 자는 윤문, 호는 금주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종영이며, 작은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낸 조인영(趙寅永)이다. 1827년(순조 27)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를 급제하였다. 1832년 규장각대교를 거쳐 수찬·응교 등을 역임하고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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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지방 관아 건물. 관풍헌(觀風軒)은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김복항이 건립하였다. 관풍헌은 영월 청령포로 유배온 단종이 홍수를 피하여 1456년 관풍헌에서 생활하였고, 1457년 10월 사약을 받은 곳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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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간행된 조선 후기 영월 지역의 지리지인 『영월부읍지』와 『영월군읍지』의 국역본 『국역 영월부읍지·영월군읍지(國譯 寧越府邑誌, 寧越郡邑誌)』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관찬(官撰) 읍지(邑誌)인 『영월부읍지(寧越府邑誌)』와 『영월군읍지(寧越郡邑誌)』를 번역한 책이다. 18~19세기 당시 강원도 영월 지역의 행정조직, 세제(稅制), 전제(田制), 성씨(姓氏), 풍속 등의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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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간행된 1796년 편찬된 『장릉사보』의 국역본. 『국역 장릉사보(國譯莊陵史補)』는 1796년(정조 20) 왕명에 의하여 편찬된 『장릉사보(莊陵史補)』를 국역한 책이다. 원전인 『장릉사보』는 단종(端宗)[1441~1457]의 사적을 모아 수록한 것이며, 총 9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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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김륵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륵(金玏)[1540~1616]은 1584년(선조 17)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충신 엄흥도의 후손인 한례에게 호역을 면제하여 주고 엄흥도의 묘를 지키게 하였다. 1585년(선조 18) 강원도관찰사 정곤수에게 청하여 엄흥도의 묘 아래에 재실을 짓고 제향을 올렸다. 1585년 ‘영월군 진폐소’라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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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군수 김현석을 기리는 비. 김현석(金玄錫)은 본관이 김녕, 자는 태초, 호는 여병재이다. 생원시를 거쳐 ‘통훈대부행거창현감겸진주진영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이후 거창현감·양지현감을 거쳐 영월군수에 부임하였다. 영월군수 재임 중에 아버지인 공조판서 김문기와 함께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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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심연의 덕을 기리는 비. 심연(沈鍊)은 1580년(선조 13) 2월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심연이 떠난 후 영월군민들은 군수 심연을 기려 1584년 군수 심공연 청덕비(郡守沈公鍊淸德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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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군수 윤순거의 공덕을 기리는 비. 윤순거(尹舜擧)[1596~1668]는 1633년(인조 11)는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서진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아버지가 척화죄로 귀양을 가고 작은아버지 윤전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고향에서 종약(宗約)과 동약(洞約)을 개정하고 문교(文敎) 진흥에 힘썼다. 1645년 대군사부로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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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월군수 이광적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광적(李光迪)은 1665년(현종 6) 별시 병과에 합격하여 함평현감·강릉현감·영월군수·안변부사를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1676년(숙종 2) 영월군수로 부임하였으나 1678년(숙종 4) 암행어사의 장계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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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군수 이야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야(李壄)[1648~1719]는 1691년(숙종 17)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691년 12월 25일 영월군수로 부임하였고 이후 1693년 12월 18일 지방 관리를 규찰하는 도사와 다툰 문제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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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지낸 전벽을 선정을 기리는 비. 전벽(田闢)[1584~1657]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정자에 임명이 되었는데 이때 김백함의 반란에 전벽이 동조하였다는 비밀 보고와 무고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난 전벽은 보령현감으로 있으며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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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월군수 한백겸의 공덕을 기리는 비. 한백겸(韓百謙)[1552~1615]은 1600년(선조 33) 8월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2월 동생 한준겸이 4도도예찰부사가 되자 상피(相避)에 의하여 형조정랑으로 영전하였다. 훗날 한백겸은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저서로 『동국지리지』, 『기전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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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영월군수 함기섭을 기리는 비. 함기섭(咸基燮)은 1895년 원주 하동리에서 태어나 1915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판임관 견습 시험에 합격하였다. 1915년 10월 횡성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1933년 정선군수를 거쳐 1935년 영월군수에 부임하였다. 영월군수로 부임한 함기섭은 자규루, 금강정, 민충사를 중수하고 관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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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 지역 관련 기행 가사를 지은 문인. 권섭(權燮)[1671~175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산부사를 지낸 권성원(權聖源)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집의 권격(權格)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권상명(權尙明)이고, 어머니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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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 군수 김부항이 세운 정자. 금강정(錦江亭)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영월군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금장강(錦障江)의 강변 절벽 위에 있으며 1428년 군수 김부항(金復恒)이 세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금장강에 임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금봉연을 바라본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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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효자. 금사하(琴師夏)[?~?]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할아버지는 금양정(琴養正)이다. 아버지는 금용성(琴用成)이고, 동생은 금사주(琴師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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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지역에 건립되어 역사적 사실을 담은 비석의 글씨. 강원도 영월군에서 금석문이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과 금강정 인근의 단종 관련 금석문, 금강공원의 비석군, 주천면 신일리 공덕비군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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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학자. 금용성(琴用成)[1639~?]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자는 백소(伯韶)이다. 아버지는 금양정(琴養正)이고, 동생은 금대성(琴大成)·금구성(琴九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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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김륵(金玏)[1540~1616]의 본관은 예안(禮安)이며,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만칭(金萬秤)이고, 할아버지는 증좌승지 김우(金佑)이다. 아버지는 김사명(金士明)이고, 어머니는 장응신(張應臣)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큰아버지인 형조원외랑 김사문(金士文)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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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에서 살았던 방랑 시인. 김병연(金秉淵)[1807~1863]은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다. 할아버지는 선천부사(宣川府使) 등을 지낸 김익순(金益淳)이고,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이다. 아들은 김학균(金學均)과 김익균(金翼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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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시인 김병연의 묘. 김삿갓묘는 조선 후기 시인이자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金炳淵)[1807~1863]이 묻힌 묘이다. 김병연은 호가 난고(蘭皐)이고 안동김씨 가문의 자손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하자 어머니와 함께 강원도 영월에 정착하였다. 이후 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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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 지역의 학자이자 효자. 김서범(金書範)[1812~?]의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자는 이서(彛叙), 호는 석거(石居)이다. 아버지는 김상윤(金相潤)이고, 형은 김주범(金周範)·김응범(金應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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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김신겸(金信謙)[1693~1738]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존보(尊甫), 호는 증소(橧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다. 아버지는 김창업(金昌業)이고, 어머니는 익풍군(益豐君) 이속(李涑)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형은 김우겸(金祐謙)·김언겸(金彦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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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김정룡(金廷龍)[1561~1619]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시현(時見), 호는 월담(月潭)이다. 할아버지는 김관석(金關石)이고, 아버지는 선공감참봉 김담수(金聃壽)이다. 어머니는 조씨(曺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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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사육신 등의 봉사와 관련한 상소를 올린 유생. 『정조실록(正祖實錄)』에 따르면, 김종진(金鍾眞)[?~?]은 1800년(정조 24) 유생 492인이 연명한 상소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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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김지철(金之喆)[?~?]의 호는 자초(自樵)이며, 고려 전기의 태자소부 김존중(金存中)의 후손이다. 김지철은 일찍이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과거를 보지 않았고, 산수가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문회(文會)를 조직하여 벗들과 함께 시를 읊조리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계곡 옆에 커다란 기암(奇巖)이 하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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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낙화암에 있는 단종의 시녀와 종인들의 충절을 기린 조선 후기의 비. 낙화암은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종인들이 투신한 곳이다. 영월부사 홍성보는 1742년(영조 18) 금강정 뒤쪽에 시녀, 종인의 신위를 봉안하기 위하여 ‘사우(祠宇)’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암벽 위에 갈석(碣石)을 세우고 비제를 ‘낙화암’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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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통일신라[676~935]와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부터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 신라는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676년 당나라를 축출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때부터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를 통일신라 시대라 칭한다. 한편 698년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靺鞨族)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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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애 있는 창절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학자. 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이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실을 기록한 「육신전(六臣傳)」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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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강원도 영월군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군사 조직. 내생군삼천당은 676년(문무왕 16) 강원도 영월 지역에 설치된 지방 군사조직이다. 당시 영월은 내생군이라 불리었으며, 통일신라는 내생군에 지방군사조직인 삼천당을 설치하였다. 내생군삼천당의 직접적인 주둔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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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부사 조성악을 기리는 비. 조성악(趙性岳)은 1893년 장릉령으로 영월에 부임하였다. 조성악은 1739년(정조 17) 영월부사 박기정이 중건한 ‘배견정’이 쇠락한 것을 보고 1893년(고종 30) 예조판서 민영달의 도움을 받아 개건하였고 「배견정개건기」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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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있는 단종이 영월에 있을 때의 터를 알리는 비.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部時遺址碑)는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의 터인 청령포를 알리는 비이다. 1763년(영조 39) 9월 영조가 직접 어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비’라는 제액을 써서 오석으로 된 비신을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세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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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부터 1457년까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 하였던 운동. 단종복위운동은 1455년 10월부터 1456년 6월 1일까지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집현전 학사들이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왕좌에 복귀시키려 한 상왕복위운동과 1456년 6월부터 1457년까지 금성대군이 추진한 단종복위운동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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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유배를 살다 숨을 거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생애. 단종(端宗)[1441~1457]은 이름이 홍위(弘暐)이고 조선 제5대 임금 문종(文宗)[1414~1452]의 외아들이다.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이며,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동궁의 자선당(資善堂)에서 출생하였다. 1448년(세종 30)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세종 32) 7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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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유배 과정과 유배지 개관. 단종(端宗)[1441~1457]은 이름이 이홍위(李弘暐)이고, 조선 제5대 임금 문종(文宗)[1414~1452]의 외아들이다.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동궁의 자선당(資善堂)에서 현덕왕후(顯德王后)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1448년(세종 30)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세종 32) 7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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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 앞에 있는 하마비. 하마비(下馬碑)는 왕이나 성현, 고관대작, 장군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웠다. 비석 앞을 지나는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비석이다. 영월 지역에는 단종이 머물렀던 관풍헌과 장릉 배견정, 물루리골 앞에 하마비가 있었다. 현재 장릉 담장 앞에 있는 대소인원개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碑)는 1996년 영월향토사연구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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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에 있는 고대 산성. 대야산성(大野山城)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의 남한강과 옥동천이 만나는 지점의 남쪽 산 정상부에 있다. 신라의 산성은 이처럼 하천변의 합수 지점 산지에 축성한 사례가 매우 많은데, 대야산성도 유사한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는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가재골교를 건너 대야리 가재골 마을로 가다가 민박집에서 북동쪽의 산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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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리에 있는 고대 산성. 도원산성(桃源山城)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리의 ‘안도내’라고 불리는 마을 북쪽에 자리한 해발 650m 높이의 산 정상부 일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전체 길이는 2㎞ 정도로 추정되나 실체가 확인된 바는 없다. 과거에는 도원리를 ‘성안(城內)’이라고 하여 현재까지 지명이 전하고 있으며, 한때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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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면은 강원도 영월군의 북서쪽에 있는 면(面)이다. 무릉도원면에는 적어도 3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지역민의 계(契) 조직인 요선계(邀僊契)가 있다. 20세기 초에 요선계가 중심이 되어 요선정(邀僊亭)을 세워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요선계나 요선정의 명칭은 무릉도원면을 흐르는 주천강(酒泉江)의 아름다운 바위 요선암(邀僊巖)에서 따온 것이다. 영월군 무릉도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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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리는 비. 박충원(朴忠元)[1507~1581]은 본관이 밀양이고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이다. 1531년(중종 26) 식년시에 올라 홍문관, 승정원 등을 역임하고 1541년(중종 36) 9월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영월에 3명의 군수가 연이어 죽자 민심이 흉흉하여 모두 부임하기를 꺼렸다. 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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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밀적포는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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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부사를 역임한 문관. 박규순(朴奎淳)[1740~?]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대규(大圭), 호는 비원(肥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웅(朴雄)이고, 할아버지는 박상빈(朴尙彬)이다. 아버지는 박경명(朴經明)이고, 어머니는 유응린(柳應獜)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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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박세장(朴世樟)[1629~1687]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여택(汝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박응복(朴應福)이고, 할아버지는 목사 박동망(朴東望)이다. 아버지는 박유(朴瀏)이고, 어머니는 현감 권흡(權恰)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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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부사를 역임한 문관. 박종휴(朴宗休)[1788~?]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원팔(元八)·치용(稚容)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필석(朴弼奭)이고, 할아버지는 박사린(朴師麟)이다. 친아버지는 박심원(朴心源)이고, 문중의 종손인 박영원(朴永源)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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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박충원(朴忠元)[1507~1581]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정관재(靜觀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미(朴楣)이고, 할아버지는 박광영(朴光榮)이다. 아버지는 별좌를 지낸 박조(朴藻)이고, 어머니는 기찬(奇欑)의 딸 행주기씨(幸州奇氏)이다. 부인은 이인수(李麟壽)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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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김삿갓[1807~1863]은 본명이 김병연(金炳淵)이다. 김삿갓의 자는 성심(性心) 호는 난고(蘭睾)이다. 김삿갓은 1807년(순조7)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삿갓은 민중의 한과 설움을 촌철살인의 시구로 노래하며 한 세상을 살다 간 인물이다. 항상 해학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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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는 김삿갓의 문학사상과 시대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조각상. 김병연(金炳淵)은 자가 성심(性心), 호는 난고(蘭睾)이며,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태어났다.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선천부사 김익순이 반란군인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폐족이 되어 현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를 거쳐 양백지간인 김삿갓면 어둔마을에 정착하였다. 항상 삿갓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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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단종 무덤인 장릉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배견정(拜鵑亭)은 1792년 영월부사 박기정(朴基正)이 세운 정자이다. 배견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단종이 죽은 뒤 단종을 모시던 시녀들의 혼이 단종이 묻힌 곳에 찾아와 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 제6대 왕 단종은 영월에서 사약을 받았다. 『장릉지(莊陵誌)』에서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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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는 포곡식 산성. 법흥산성(法興山城)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문화유적총람』, 『한국의 성곽과 봉수』, 『영월군지』에서 ‘법흥리성’ 또는 ‘법흥사성(法興寺城)’으로 표기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법흥산성은 백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5.7㎞ 지점에 해발 829m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축조된 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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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사고지. 법흥리 사고지(法興里史庫址)는 조선 시대 사고(史庫)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이다. 조선 시대 춘추관에서는 전화(戰禍)를 피하여 역사 기록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전국의 깊은 산중에 사고(史庫)를 지었다. 법흥리에 실제 사고지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사고지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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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의 일종. 보안도(保安道)는 조선 시대 강원도에 설치되었던 역도(驛道)이다. 보안도 산하에는 21~29개의 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중 영월에는 양연역(楊淵驛)과 연평역(延平驛)이 있었다. 보안도는 다른 역도와 함께 조선 국왕의 왕명 및 공문서 전달, 이외 진상품, 공물 운송, 사신 영송과 접대를 위해 활용되었으나 1896년(고종 32) 근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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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부사 구택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 구택규(具宅奎)[1693~1754]는 1740년(영조 16) 영조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3월 영월부사로 부임하여 1741년(영조 17) 8월 사직하였다. 1746년 교정당상으로 『속대전(續大典)』 편찬에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1748년 공조참판과 형조참판을 거쳐 1753년(영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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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개항기 영월부사 김오현의 선정을 기리는 비. 김오현(金五鉉)은 1867년(고종 4) 10월 과거에 합격하였다. 1875년 좌세마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의령현감, 김포군수를 거쳐 1885년(고종 22) 4월 영월부사를 제수받아 5월 부임하였다. 1886년 2월까지 재임한 후 장성부사로 영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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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는 영월부사 윤사은을 기리는 비. 부사 윤공사은 애민청덕선정비(府使 尹公師殷 愛民淸德善政碑)의 공식 명칭은 ‘부사윤공사은 애민청덕선정비(府使尹公師殷愛民淸德善政碑)’이다. 1837년(헌종 3) 7월 24일 영월부사로 제수되어 1839년 6월 이임한 영월부사 윤사은[1781~?]의 애민, 청덕, 선정을 기리는 철비로 1839년 7월 건립되었다. 윤사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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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부사 이만선의 공적과 선정을 기리는 비. 이만선(李萬選)[1654~1735]은 본관이 전주로, 자는 택중, 호는 거재이다. 효령대군의 10대손이다. 1693년(숙종 19)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삼사의 사간과 승정원의 동부승지와 좌우부승지, 풍덕부사를 거쳐 판윤·옥당 벼슬을 하였다. 1711년 3월 영월부사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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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쌍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월부사 정원화의 공덕을 기리는 비. 정원화(鄭元和)[1849~?]는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순일(舜一)이며, 아버지는 황주목사 정익영이다. 1870년(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874년 홍문관수찬으로 있었으며 1875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홍문관에서 봉직하였다. 1878년 교리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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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에 있는 개항기 영월부사 정원화의 덕행을 기리는 비. 정원화(鄭元和)[1849~?]는 본관은 청주, 자는 순일이다. 아버지는 황주목사 정익영이다. 1870년(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874년 홍문관수찬으로 있었으며 1875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홍문관에서 봉직하였다. 1878년 교리로 승진하였고 1882년 대사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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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연당리에 있는 개항기 영월부사 정원화의 선정을 기리는 비. 정원화(鄭元和)[1849~?]는 1870년(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874년 홍문관수찬으로 있었으며 1875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홍문관에서 봉직하였다. 1878년 교리로 승진하였다가 1882년 대사간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한 차례 더 역임하였다. 대사간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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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개항기 영월부사 홍용주의 공덕을 기리는 비. 홍용주(洪用周)는 경릉참봉, 경모궁영, 돈영판관, 한성판관, 예천군수를 역임하였다. 1879년 8월 원산·북청 등지에서 수심을 측량하던 일본 군함 천성호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현의 월하포에 정박한 것을 충청감사 이명응을 통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1880년(고종 17) 7월 영월부사를 제수받고 9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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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정감록』의 풍수도참 사상을 따랐던 사람들. 조선 후기 들어 신분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민중 의식을 갖춘 백성들이 사회의 변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의 민중들은 전통적인 성리학 체제를 부정하고 불교나 감결(鑑訣) 사상과 같은 전통적인 종교 사상이나 서학과 동학 같은 새로운 종교 사상을 통하여 사회 변혁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 민중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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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망산에 있는 누각.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은 조선 시대에는 원주목의 속현이었는데, 1904년부터 영월군에 속하게 되었다. 주천면에는 고을의 동서에 청허루(淸虛樓)와 빙허루(憑虛樓)라는 두 개의 누각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을의 동쪽에 빙허루가 있고, 고을 서쪽의 깎아지른 절벽에 청허루가 있다고 하였다. 두 누각 중에 빙허루에 관한 시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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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어 사망한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을 따른 사육신과 생육신의 생애. 사육신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1441~1457, 재위 1452~1455]의 복위를 위하여 절의를 바친 여섯 명의 충신을 말한다. 박팽년(朴彭年)[1417~1456]·성삼문(成三問)[1418~1456]·이개(李塏)[?~1456]·하위지(河緯地)[1387~1456]·유성원(柳誠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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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지역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던 시기의 역사.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되기 전까지인 42~562년까지는 고구려·백제·신라뿐 아니라 가야도 존재하였던 만큼 사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는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 체제로 성장하였으나, 가야는 고대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이런 이유로 사국 시대보다는 삼국 시대가 더 폭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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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뗀석기와 간석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 강원도 영월 지역은 산악지대이면서 남한강 상류에 있는 만큼 산과 물에서 다양한 생활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석기 시대 이미 영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석기 시대는 뗀석기[打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磨製石器]를 주로 사용하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영월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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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문자로 남긴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 선사 시대는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 시대를 가리킨다. 한국사에서 선사 시대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의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전기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기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후까지를 의미한다. 선사 시대에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선사 시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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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생년·본관·부임과 이임 시기 등을 기록한 문건. 「선생안(先生案)」은 조선 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각 관청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생년·본관·부임과 이임 시기 등을 기록한 문건을 말한다. 일명 ‘안책(案冊)’이라고도 하는데, 각종 제명록(題名錄)·좌목(座目) 등과 유사하며, 일반적으로 필사본 또는 첩장(帖裝)으로 되어 있다. 작성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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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지역의 조선 시대 송금정책과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한 금표. 조선 시대의 송금정책(松禁政策)은 국가에서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시행한 것으로, 확보한 목재는 주로 왕실의 관곽재, 건축재, 병선과 조운선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목재는 특수한 용도 외에도 백성의 생활필수품으로 항시 사용되었고, 긴급한 전쟁 시에는 각종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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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문관. 신렴(辛廉)[?~?]은 영월 출신으로, 고려 때 한성부윤과 밀직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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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화가이자 문관. 신세림(申世霖)[1521~1583]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버지는 예빈시별제를 지낸 신진석(申晉錫)이다. 신인림(申仁霖)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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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문관. 신영손(辛永孫)[?~?]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렴(辛廉)이다. 할아버지는 신희(辛熹)이고, 아버지는 신이(辛頤)이다. 부인은 이사검(李思儉)의 딸 양성이씨(陽城李氏)이고, 아들은 신중거(辛仲琚)·신계거(辛季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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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 신일리(新日里) 고려고분(高麗古墳)[노정승 묘]은 1966년 김남훈이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며, 부장품으로는 고려 시대 토기매병(土器梅甁) 1점, 토기병(土器甁) 1점, 청자 삼감국화문 팔작접시 1점, 청동제마상배(靑銅製馬上杯) 1점, 동거울, 청동수저, 동전 1점이 확인되었다. 이후 마을 주민들이 묘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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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을 점령한 호족. 양길(梁吉)[?~?]은 889년(진성여왕 3)에 북원(北原)[현 강원도 원주시]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호족으로, 892년 휘하에 들어온 궁예로 하여금 현 강원도 영월군 일대를 점령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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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문관. 엄수안(嚴守安)[?~1298]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아들은 엄찬(嚴贊)·엄정(嚴靖)·엄신(嚴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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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 출신의 학자. 엄익현(嚴益鉉)[1773~?]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자는 국재(國材)이다. 아버지는 엄성회(嚴星繪)이고, 동생은 엄덕현(嚴悳鉉)·엄창현(嚴昌鉉)·엄택현(嚴宅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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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문관. 엄한중(嚴漢重)[1664~?]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자는 자후(子厚), 호는 자정(子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엄성(嚴惺)이고, 할아버지는 엄석번(嚴碩蕃)이다. 아버지는 엄전(嚴絟)이고, 동생은 엄한평(嚴漢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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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향리. 엄흥도(嚴興道)[1404~?]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할아버지는 엄세원(嚴世元)이고, 아버지는 엄한저(嚴漢著)이다.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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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사실을 기록한 이후 강원도 영월군의 역사. 인간의 역사는 선사 시대,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원사 시대[protohistory], 역사 시대로 구분된다. 역사 시대는 문자로 쓰여진 기록에 의하여 과거를 알 수 있는 시대를 가리킨다. 영월 지역의 경우 삼국 시대, 후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근대와 현대가 역사 시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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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일종의 공공 여관. 연평원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 고덕재 아래에 있었던 공공 여관이었다. 원은 15세기 이래 수령의 관할 하에 운영되었는데, 국가는 원의 운영자로 원주를 임명하였으며 수축과 위전(位田)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원은 점차 감소하였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주점(酒店)·여점(旅店) 등이 설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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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는 단종의 안위를 걱정한 세 충신의 이름을 새긴 바위. 영월 삼공제명암(寧越三公題名岩)은 1456년(세조 2) 원호(元昊), 조려(趙旅), 이수형(李秀亨) 3공이 요선정 맞은편 치악산 자락에 자신들의 이름과 호(號)를 새긴 곳이다. 1987년 강원도 영월군 무릉~운학간 도로 확충으로 파괴된 것을 1990년 6월 영월충절현창회(寧越忠節顯彰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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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에 있는 구석기 유적. 영월 옹정리 사정동 유적은 1989년 4월 20일에서 23일까지 남한강 상류 지역에서 단국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는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옹산리(甕山里)와 사정리(射亭里)에서 한 자씩 따서 옹정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옹정리의 남쪽에는 평창강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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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는 을미의병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비. 영월은 항일 의병 항쟁의 중심지였다. 제1차 의병인 유인석 의병장의 ‘을미의병’이 1895년 ‘복수보형(復讐保形)’이라는 깃발을 영월 관아 문루에 걸고 창의하였다. 제2차 의병인 원용팔 의병장의 ‘을사의병’도 1905년 영월군 주천에서 일어났다. 이강년 의병장도 1907년 중군장 김상태 의병장과 주천면 강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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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왕릉. 영월 장릉(寧越莊陵)은 강원도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1541년과 1580년 중수되었다. 1970년 5월 1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09년 6월 30일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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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에 있는 고대 산성. 영월(寧越) 정양산성(正陽山城)은 왕검성(王儉城)으로 불리며, 계족산성(雞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정양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 시대 역대 지리지 등에서 대부분 ‘정양산성(正陽山城)’으로 표기하여 관련 내용이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정양산석성은 군 동쪽 10리[3.93㎞]에 있으며, 둘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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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태실과 태실비. 영월 정종대왕 태실(正宗大王 胎室) 및 태실비(胎室碑)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계족산 자락 태봉에 조성되었으나 영흥리로 이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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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후탄리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영월 후탄리 뒷들 유적은 1989년 4월 20일에서 23일까지 남한강 상류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 조사를 하던 단국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영월군 한반도면 후탄리(後灘里)는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용하리(龍下里) 일부와 광탄리(廣灘里)를 병합한 후 후평(後坪)과 광탄(廣灘)에서 한 자씩을 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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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월군수 김현석을 기리는 비. 김현석(金玄錫)은 본관이 김녕, 자는 태초, 호는 여병재이다. 생원시를 거쳐 ‘통훈대부행거창현감겸진주진영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이후 거창현감·양지현감을 거쳐 영월군수에 부임하였다. 영월군수 재임 중에 아버지인 공조판서 김문기와 함께 단종 복위에 연루되어 순절하였다. 1791년(정조 15) 이조판서 겸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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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통치를 행하였던 업무 공간. 영월군은 단종의 무덤 장릉(莊陵)이 있는 곳으로, 숙종 때 단종(端宗)이 복권되면서 영월군에서 영월부(寧越府)로 승격되었다. 영월부의 관청 건물이 있던 곳은 현재 영월읍 영흥리인데, 현재 관풍헌(觀風軒)과 자규루(子規樓)가 남아 있다. 영월부의 객사는 정청(正廳)인 내성관(奈城館), 서익헌(西翼軒)인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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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영서 지역에서 다시 동학이 부흥된 과정과 관련 인물. ‘동학’이란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서학(西學)[천주교]의 도래에 대항하여 동쪽 나라인 우리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며, 1905년에는 손병희(孫秉熙)에 의하여 천도교(天道敎)로 개칭되었다. 동학 교조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오랜 정신적 방황과 수행을 거쳐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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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의정 조인영의 공덕을 기리는 비. 조인영(趙寅永)[1782~1850]은 자가 희경, 호는 운석, 본관은 풍양이다. 할아버지는 조엄,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진관, 형은 조만영이다. 조인영은 풍양조씨 세도가의 중심인물로 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응교에 임명되었다. 1822년 함경도 암행어사 복명 후 대사헌에 특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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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제정을 설치한 연유를 기록한 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한식 제례 때가 되면 항상 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자 계유정난으로 죽음 당한 이들의 원한이라 여기고 이를 달래기 위하여 제례를 지내고 ‘영천(靈泉)’이라 새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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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월 지역 지방관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선정비. 영흥리 비석군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비석군으로 영월군수 심연·김륵·한백겸·이광적·이야·윤순거·구택규·함기섭·홍용주, 탁지대신 심상훈의 비이다. 지붕돌이 있는 형태와 지붕돌이 없는 형태의 비석이 모여 있다. 비석거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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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에 있는 고려 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완택산성(泰華山城)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에 간략한 기록이 나타난다. 고려 시대에 합단적(哈丹賊)이 침입할 당시 영월읍민이 입보(入保)하여 농성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하는 이야기와 입지 등을 고려할 때 고려 시대 이후 조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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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있는 왕방연이 지은 시를 새긴 비석. 조선 시대 왕방연(王邦衍)은 단종에게 사약을 올린 인물이다. 왕방연은 시름을 안고 강가에 앉아 지은 시를 지었는데, 김지남이 채록하여 『용계유고(龍溪遺稿)』에 수록한 내용을 1984년 청령포에 세웠다. 왕방연 시조비(王邦衍時調碑)의 글씨는 영월교육청 장학사를 역임한 갈내 이만진이 쓰고 영월라이온스클럽과 영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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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에서 조선 후기 이후 행하여진 일종의 동계. 요선계는 조선 후기 이래 중방동·도곡동·두릉동·하동·도내라는 5개 마을에 거주한 재지사족 가운데 원주원씨, 원주이씨, 청주곽씨가 결성한 동계(洞契)를 말한다. 참고로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은 조선 시대 강원감영이 소재한 원주의 동(東) 4면에 소속된 곳 중 하나였다. 요선계는 단일한 가계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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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왕의 글을 써 놓은 현판을 보관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 요선정(邀仙亭) 앞은 주천강의 본류로 법흥천이 흘러드는 곳이다. 법흥천은 백덕산과 사자산에서 발원하여 주천강과 합쳐진다. 요선정은 절벽 밑에 기묘한 모양의 바위가 많아서 일찍이 요선암(邀僊巖)이라고 불렀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바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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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일종의 공공 여관. 용정원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공공 여관이었다. 원은 15세기 이래 수령의 관할 하에 운영되었는데, 국가는 원의 운영자로 원주를 임명하였으며 수축과 위전(位田)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함께 원은 점차 감소하였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주점(酒店)·여점(旅店) 등이 설립되어 여행자에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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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 철기 문화가 유입되는 단계부터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 우리나라 역사에서 철기 시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시작된다. 철기 시대는 다시 청동기 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후부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원삼국 시대는 선사 시대로부터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데, 청동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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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낙화암 위에 있는 관기 경춘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영월부 관기 경춘[1757~1772]이 낙화암에서 투신하여 절의를 지킨 것을 기려 열녀 풍속을 권장하기 위하여 1795년(정조 19) 강원도순찰사 이병정(李秉鼎)의 지시로 월기경춘순절비를 건립하였다. 경춘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영월부 관기가 되어 어린 동생을 부양하였다. 영월로 부임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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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개항기 육군 참령 박선빈의 공적을 기리는 비. 박선빈(朴善斌)은 1860년 5월 14일 출생하였다. 이완용과 가까운 인물로 1895년 경무청주사(警務廳主事)를 시작으로 1897년 정위(正尉)로 황주(黃州) 지방대중대장(地方隊中隊長)을 거쳐 1900년 7월 28일 육군참령(陸軍參領)에 임명되었다. 참령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신설된 무관직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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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이자 학자. 윤순거(尹舜擧)[1596~1668]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고, 할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고, 어머니는 이조참판 성혼(成渾)의 딸 창녕성씨(昌寧成氏)이다. 죽산부사를 지낸 큰아버지 윤수(尹燧)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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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부사를 역임한 문관. 윤양래(尹陽來)[1673~1751]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계형(季亨), 호는 회와(晦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영(尹泳)이고,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다. 아버지는 경주부윤 윤리(尹理)이고, 어머니는 이의윤(李義胤)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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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효자 금사하와 호랑이의 무덤. 의호총(義虎塚)은 효자 금사하와 의로운 호랑이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무덤이다. 조선 시대에 금사하(琴師夏)라는 선비가 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강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장마로 강을 건널 수 없자 울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선비를 등에 태우고 거센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게 하여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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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이광적(李光迪)[1628~171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초명은 이연(李演), 자는 휘고(輝古), 호는 은암(隱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 이언충(李彦忠)이고, 할아버지는 전생서봉사 이성(李珹)이다. 아버지는 이세미(李世美)이며, 어머니는 감찰 송문길(宋文吉)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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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군에 유배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기 위하여 관직을 버린 생육신 중 한 사람. 이맹전(李孟專)[1392~1480]의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군상(李君常)이고, 할아버지는 도원수 이희경(李希慶)이다.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심지(李審之)이고, 어머니는 공부전서 여극회(呂克誨)의 딸 성산여씨(星山呂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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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영월부원군에 책봉된 환관. 이신(李信)[?~?]은 고려 때의 환관으로, 영월부원군(寧越府院君)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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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이준민(李俊民)[1524~1590]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자수(子修), 호는 신암(新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건(李楗)이고, 할아버지는 이정윤(李貞胤)이다. 아버지는 참봉 이공량(李公亮)이며, 어머니는 조언형(曺彦亨)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정백거(鄭伯渠)의 딸 초계정씨(草溪鄭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윤기(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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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군 지계최를 기리기 위한 비. 지계최(池繼崔)[?~1636]의 본관은 충주, 자는 언숙(彦叔), 호는 표곡(豹谷)이다. 지계최는 1623년(인조 1)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로 들어가서 ‘서로소모별장(西路召募別將)’이 되었다. 지계최는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안현에서 반란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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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강원도 영월군을 포함하여 조선 전역을 침략한 일본군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였고, 이튿날 부산진성을 공격하면서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14일 만에 도성을 함락시켰고, 선조는 평안북도 의주군까지 피난하였다. 명군이 참전하여 평양성을 탈환하였지만, 명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후 일본과 강화 협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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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종원을 기리기 위한 비. 고종원의 9세조 인비(仁庇)는 고려 시대 훈신으로 화전군에 봉하여졌다. 아버지 안릉참봉 고광후(高廣後)는 횡성의 명문세족으로 제천, 원주를 거쳐 김삿갓면 진별리로 이주하였다. 영월의 입성조인 고광후는 다섯 형제가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셋째인 고종원(高宗遠)과 고종경(高宗慶), 고종길(高宗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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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조선 전기 영월군수 신권근이 세운 누각. 자규루(子規樓)는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과 『매산집(梅山集)』에 의하면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신권근(申權根)이 창건한 것으로 처음에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였다. 그 후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누각에 오르기도 하고 자규시(子規詩)를 지은 바도 있어서 누각의 이름을 자규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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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에 있는 법흥사를 창건한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는 643년 강원도 영월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흥녕사(法興寺)를 창건하였다. 흥녕사는 징효국사(澄曉國師)에 의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중심 사찰이 되었고, 1902년에 법흥사(法興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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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군에 개설되었던 시장. 영월의 장시(場市)는 1770년 당시 읍내장, 신천장, 녹번장, 연평장 등 4개가 있었고, 1830년에는 부내장과 토교리장으로 축소되었다. 1915년 다시 영월시, 주천시, 강림시, 옥동시로 개편되어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영월읍의 장시는 광복 이후 중앙시장과 서부시장 같은 상설 시장이 개설되면서 폐쇄되었지만, 녹전시장과 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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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 있는 생육신 조려의 충절을 기리는 비. 생육신 조려(趙旅)[1420~1489]는 본관이 함안(咸安)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단종 때 진사에 올라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나, 수양대군이 왕이 되자 낙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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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 영월에서 단종에게 문후를 드렸다고 전하는 학자. 조려(趙旅)[1420~148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낸 조천계(趙天啓)이고, 할아버지는 공조전서 조열(趙悅)이다. 아버지는 조안(趙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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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의 건국부터 1876년 개항까지 강원도 영월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영월의 행정구역은 고려 시대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1399년(정종 원년) 영월은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이속되었고, 원주진(原州鎭)에 소속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때 지군사(知郡事)가 군수(郡守)로 바뀌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魯山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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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 경내에 있는 단종의 생애를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영조실록』에 의하면 1733년(영조 9) 6월 19일 영조가 소대(召對)를 행하였는데, 소대 자리에서 영월부사 윤양래(尹陽來)가 장릉에 단종의 비석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고, 7월 단종대왕의 능비와 비각을 건립하라는 어명이 내려진다.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능비는 1733년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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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는 생육신 원호의 충절을 기리는 비. 원호(元昊)는 원주 출신으로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무항(霧巷)이고 아버지는 별장 원헌(元憲)이다. 1423년(세종 5)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향리인 원주로 낙향하였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서강 서쪽인 송학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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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에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수운을 이용하여 곡물을 경창으로 운송하였던 제도. 고려 시대에는 전국에 13개소의 조창(漕倉)이 설치되어 운영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9개소 조창, 조선 후기에는 8개소 조창이 운영되었다. 조운 세곡은 당시 국가 재정의 가장 중추가 되는 재원이었으므로, 중앙정부에서는 안전한 운송을 위하여 다양한 제도와 법규를 만들었다. 조선 후기에 조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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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부사를 역임한 문관. 조하망(曺夏望)[1682~1747]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아중(雅仲), 호는 서주(西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호조참판 조문수(曺文秀)이고, 할아버지는 참판 조한영(曺漢英)이다. 아버지는 금구현령을 지낸 조헌주(曺憲周)이고,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일상(李一相)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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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에 있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 호랑이로 인한 재앙인 호환(虎患), 호랑이 입에 들어간다는 뜻의 호람(虎嚂)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전근대 시대 호랑이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컸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중앙에 착호갑사(捉虎甲士), 지방에 착호인(捉虎人)을 두어 호랑이가 출몰하면 포획하도록 하였다.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람을 위하여 호식장(虎食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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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던 흥녕선원에서 활동한 승려. 징효국사(澄曉國師)[826~900]는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흥녕선원(興寧禪院)을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중심 사찰로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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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채성구(蔡聖龜)[1605~1647]의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이다.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고, 아버지는 채진형(蔡震亨)이다.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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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철종의 왕세자 이융준의 태를 묻은 태실. 철종대왕 왕세자 태실(哲宗大王王世子胎室)은 철종과 철인왕후의 원자 이융준(李隆準)의 태를 묻은 태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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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제작·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제작하기 전까지의 역사.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1500년경 사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간단한 소형 제품을 만든 동검(銅劍) 이전 시기, 단검(短劍) 등의 각종 무기와 공구 등을 본격적으로 제작·사용하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동검 이전 시기는 한국 청동기 시대의 상한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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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민간인 출입 금지를 알리는 목적으로 세운 조선 후기 석비. 금표는 금지나 경고 등을 나타낸 표지이다. 단종[1441~1457] 사후 269년이 지난 1726년(영조 2) 10월 어명으로 단종 유배지에 민간인 출입을 금하는 청령포 금표비(淸泠浦禁標碑)를 영월부사 윤양래(尹陽來)가 세웠다. 단종은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올랐다가 1457년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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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를 역임한 문관. 최응현(崔應賢)[1428~1507]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자는 보신(寶臣), 호는 수재(睡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원량(崔元亮)이고, 할아버지는 최안린(崔安獜)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최치운(崔致雲)이고, 어머니는 현령 함화(咸華)의 딸 강릉함씨(江陵咸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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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 엄흥도의 충절을 정표하는 사적비. 충신충의공 엄흥도 정려비(忠臣忠毅公嚴興道旌閭碑)는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자 장례를 치른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1726년(영조 2) 엄종한(嚴從漢)의 상언으로 청주에 세웠다. 그 뒤 1759년(영조 35) 어명으로 고향인 영월로 옮겼다. 1788년(정조 12) 어명으로 창절사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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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에 있는 충신 추익한을 기리는 비. 추익한(秋益漢)[1383~1457]은 조선 전기의 인물로 본관은 추계(秋溪), 호는 우천(愚川)이다. 추익환은 홍문관부수찬, 호조좌랑,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훗날 관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화원리로 낙향하여 시서를 읽으며 자연과 함께하였다. 1457년 단종이 영월 관풍헌에서 승하한 후 태백산신이 되어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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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엄흥도기념관 정원에 있는 기념관 건립 취지를 기록한 비. 단종이 1457년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하자 충신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영월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에 모셨다. 주위에서는 위험한 일을 만류하였으나,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달게 받겠다.”라는 말을 남긴 채 의연히 일어나 아들과 함께 옥체를 염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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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개항기 탁지부대신 심상훈을 기리는 선정비. 심상훈(沈相薰)[1854~?]은 1874년(고종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판서, 선혜청 당상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장호원에 피신하여 있던 명성황후에게 왕궁의 근황과 청나라와 일본의 출병 사실 등을 전달하여 신임을 얻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경기도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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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태화산에 있는 산성. 태화산성(泰華山城)은 태화산[해발 1027.4m]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해발 900여 m의 봉우리에 있는 산성이다. 태화산은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산지여서 정양산성, 완택산성, 대야산성과 단양의 온달산성이 모두 보인다. 전체 둘레가 약 1.2㎞ 정도인 포곡식 산성이다. 평면 모습은 오각형에 가까운 부정타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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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도기와 토기를 굽던 가마터. 토교리 사기도요지(土橋里砂器陶窯址)는 17~18세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368.5m의 야산 경사면에 있었는데 현재는 밭으로 변하였다. 밭 가장자리로 무덤 형태의 사기 파편 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굽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것으로 보이는 사기편도 많이 발견되었다. 토교리 가마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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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주판관 김진화의 덕행을 기리는 비. 김진화(金鎭華)[1793~1850]는 본관이 의성으로 자는 성관, 호는 탄와이며 아버지는 현감 김종수이다. 1828년(순조 28) 창릉참봉이 되고 자문감봉사를 거쳐 한성부판관을 지냈다. 외직으로 나가 아산현령·진산현령·무장현령을 거쳐 청송부사·능주목사를 지냈다. 특히 1834년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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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주판관 윤종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 윤종호(尹宗鎬)는 1823년 선공감감역을 거쳐, 성부주부·은진현감을 역임하였다. 1831년 8월 24일 원주판관에 제수되었고, 1843년 금천군수로 제수되었다. 판관 윤공종호 영세불망비(判官尹公宗鎬永世不忘碑)는 판권 윤종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97년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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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개항기 원주판관 정익영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 정익영(鄭翼永)[1819~]은 1871년(고종 8) 알성시 병과에 3위로 급제하였다. 제릉참봉, 금부도사, 이조참의, 좌승지, 원주목판관, 황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868년(고종 5) 강원도 암행어사 신헌구의 서계로 표창을 받고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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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는 허수윤을 기리기 위한 비. 허공수윤 선심불망비(許公守允 善心不忘碑)는 허수윤(許守允)이 돈과 곡식을 풀어 굶주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는 것을 기리기 위한 석비이다. 1880년[庚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이 없고, 인근 마을 주민 중에도 건립 경위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어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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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월부사를 역임한 문관. 1741년 영월부사로 재직하던 중 단종이 승하한 후 강물에 투신한 시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민충사를 건립하고 매년 한식제를 지내게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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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월군수 홍계관의 아들로, 평생 절개를 지킨 도학자. 홍치(洪治)[1441~1513]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여평(汝平), 호는 일송(一松)이다. 아버지는 영월군수 등을 지낸 홍계관(洪桂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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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에 있는 황장목 보호와 출입 금지 내용을 새긴 경계지 바위 표석. 황장금표비(黃腸禁標碑)는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표석이다. 황장목은 왕의 관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 질이 좋은 소나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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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가 정립하였던 시대의 역사. 신라는 하대[선덕왕~경순왕대](780~935)에 이르러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거듭되는 실정으로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지방에서 독립한 세력들은 점차 호족(豪族)이 되어 갔다. 이 중에서도 견훤(甄萱)과 궁예(弓裔)는 국가를 수립하여 신라에 정면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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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 후진은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었던 나루터이며, 남한강을 이용하여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때 이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