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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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治 |
영어공식명칭 | Hong Chi |
이칭/별칭 | 여평(汝平),일송(一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희근 |
[정의]
조선 전기 영월군수 홍계관의 아들로, 평생 절개를 지킨 도학자.
[가계]
홍치(洪治)[1441~1513]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여평(汝平), 호는 일송(一松)이다. 아버지는 영월군수 등을 지낸 홍계관(洪桂官)이다.
[활동 사항]
홍치는 정몽주(鄭夢周), 권우(權遇), 안지(安止)로 계승되는 학통을 이어 15세기 후반에 활동한 도학자이다. 홍치는 대제학을 지낸 안지를 사사하여 의서(衣書)를 전수받았으며, 부모의 장례 때 일관되게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법식에 따랐다. 홍치의 학문과 효행이 널리 알려지자, 전라감사 박처륜(朴處倫)이 추천하여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제수되었다.
홍치는 연산군 때 어지러운 정사를 보고 상소를 올려 간하려고 글을 썼다가, 주위의 만류로 태워 버렸다. 그 뒤 나주에서 화순 능주로 거처를 옮겼다. 홍치는 그곳 금오산 아래 뜰에 소나무를 심고 정사를 지어, ‘일송정사(一松精舍)’라고 이름을 붙이고, 호도 일송이라고 하여 절개를 나타내었다.
중종반정(中宗反正) 뒤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홍치는 벼슬길에 나아지 않고 명현들과 교유하였다. 홍치와 교류한 벗으로는 무오사회 때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처형된 이목(李穆), 무오사화 때에 장형(杖刑)을 받다가 죽은 최보(崔溥) 등이 있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는 심학(心學)을 체계화하고 주석하여 편찬한 유학서인 『심학장구집주대전(心學章句集註大全)』 상·하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