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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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 時代 |
영어공식명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방기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6년 - 영월읍 요석 1점 발견, 각석리 돌덧널무덤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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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3년 - 쌍용리 매장문화재 신고, 돌도끼 출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영흥리 매장문화재 신고, 돌도끼 출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영월읍 유적 지표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문산리 유적, 주천리 유적, 방절리 유적 지표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 문산리 유적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2008년 - 삼옥리 유적 시굴 및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2009년 - 공기2굴 유적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 와석리 유적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 꽃병굴 유적 발굴 조사 |
[정의]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제작·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제작하기 전까지의 역사.
[개설]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1500년경 사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간단한 소형 제품을 만든 동검(銅劍) 이전 시기, 단검(短劍) 등의 각종 무기와 공구 등을 본격적으로 제작·사용하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동검 이전 시기는 한국 청동기 시대의 상한이 될 수 있다. 단검이 보급되는 시기는 다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시기와 세형동검(細形銅劍)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비파형동검은 중국 요령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어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라고도 한다. 세형동검은 만주·우리나라·일본의 규슈(九州) 지방에서 출토되는데, 특히 청천강 이남의 우리나라와 규슈 지방에서 주로 출토되는 결입부(抉入部)가 있는 동검을 한국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기가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지만, 주조가 어려워 생활도구로 활용되기보다는 무기와 장신구가 주를 이루었고, 일상에서는 간석기[磨製石器]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 시대 특징 중 하나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괭이[石鍬]·돌낫[石鎌]·돌보습·반달돌칼[半月形石刀] 등의 농기구가 출토된다. 농경의 시작으로 평야, 하천과 가까운 야산, 구릉지대, 충적 대지 등에 취락을 형성하였다. 주거 형태는 네모꼴[方形]이나 긴네모꼴[長方形] 움집이었다. 움집의 형태는 신석기 시대보다 더 낮아졌고, 규모는 더 커졌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은 고인돌[支石墓]과 돌널무덤[石棺墓]인데, 그 외 돌덧널무덤[石槨墓]·움무덤[土壙墓]·독무덤[甕棺墓] 등도 등장하였다. 음식을 끓이고 저장할 때는 찰흙의 바탕흙에 굵은 모래나 활석을 섞어서 구운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많이 사용하였다.
영월 지역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였음이 처음 확인된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1916년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영월읍에서 요석(凹石)을 채집하였다. 또 김삿갓면 각동리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간돌칼[磨製石劍] 1점과 간돌화살촉[磨製石鏃] 8점을 1938년 소개하였다. 1973년 쌍용리, 1984년 영흥리에서 매장문화재가 신고되었다. 1989년부터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20여 개소의 청동기 유적이 조사되었다.
[유적과 유물]
2019년 영월 지역에 존재하는 청동기 시대 유적지는 20여 개소에 이른다. 대표적인 유적은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 문산리 유적, 삼옥리 유적, 주천리 유적, 와석리 유적, 외룡리 고인돌 유적 등이다. 영월군 남면 연당2리 산322-2번지 석회암동굴에 있는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구석기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복합유적인데, 청동기 시대 중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큰굴은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작은굴에서는 청동기 시대 가족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부장된 유물로 간돌칼과 화살촉 등의 석기, 화분형토기(花盆形土器) 등의 민무늬토기, 찌르개[尖頭器]와 삿바늘 등의 뼈연모[骨角器], 조가비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문산리 유적은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408-1번지 일원 하안 충적대지에 있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 지표조사를 통하여 철기 시대 유물산포지로 알려졌고, 2006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철기 시대 주거지 주변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인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편·석촉(石鏃)·반달돌칼·숫돌[砥石] 등이 수습되었다. 문산리 유적은 청동기와 철기 시대 즉 선사 시대와 역사시대의 복합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옥리 유적은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73번지 일원 구릉에 있는데, 주거지·고상가옥(高床家屋)·구상유구(溝狀遺構)·수혈유구(溝狀遺構) 등이 발견되었다. 주거지에서 저장구덩이[貯藏孔]가 확인되었고, 민무늬토기 숫돌·석촉·독칼 등이 출토되었다. 수혈유구에서는 반달돌칼과 원통형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삼옥리 유적은 전기부터 후기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천리 유적은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890-1번지 좌평들에 있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로 선사 시대 유적이 분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8년 예맥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주거지 17기 및 수혈유구 3기 등을 발견하였다. 출토된 유물은 민무늬토기류 148점, 토제품 19점, 석기류 363점, 옥제품 13점 등이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청동기 시대 전기부터 후기까지 취락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와석리 유적은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1019-1번지 옥동천 남안 충적대지에 있다. 2010년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여, 청동기 시대 주거지 8기와 수혈유구 1기 등이 발견되었다.
영월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뿐 아니라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도 다수 발견되었다. 외룡리 고인돌 유적은 영월군 김삿갓면 외룡1리 682-2번지 일원으로 음지말들과 양지들에 있다. 1998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로 고인돌 4기가 확인되었고, 돌로 만든 가락바퀴[紡錘車] 1점이 출토되었다. 그 외 1995년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고인돌의 덮개돌, 2004년 영월읍 방절1리에서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되었다.
[역사적 의의]
영월 지역의 청동기 유적은 강안의 충적대지상에 분포하는 유적, 동굴유적, 하안단구에 형성된 유적 등으로 구분된다. 유적의 성격은 동굴이나 수혈주거지 등의 취락유적, 고인돌과 돌덧널무덤 등의 무덤유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하여 영월 지역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 시대까지 인간의 삶이 지속되었음과 남한강 유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의 변천 양상도 이해할 수 있다. 영월 지역의 고인돌 분포를 통하여서는 남면의 들골, 영월읍의 방절리, 영흥리, 김삿갓면의 외룡리 등에 촌락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청동기 시대 영월 지역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권력자가 존재하였으며, 지위가 세습되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