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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동은 조선시대에 광주군 낙생면 금곡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1971년 9월 13일 광주군에서 성남출장소가 분리, 독립하면서 낙생면 금곡리에 속하였고, 1975년 3월 17일 성남시 낙생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89년 5월 1일 성남시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9월 17일 분당출장소가 분당구로 승격될 때 금곡동에 속하였다. 1996년 1월 15일 분당구 금곡동과 정자동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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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동은 성남시 분당구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탄천이 동의 서쪽을 남출북류(南出北流 : 남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름)하고 있다. 불곡산의 북서쪽 기슭에 해당되며 분당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기존의 정자동 행정구역에서 불정동, 신기동 등이 새로 생겨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동의 북쪽은 백현로에 의하여 수내동 및 내정동과, 동의 남쪽은 정자로에 의하여 불정동과, 동의 서쪽은 내정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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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동은 성남시 분당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동쪽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과 불곡산 줄기에 의하여 나누어지며, 남쪽은 구미동과 금곡동, 서쪽은 신기동, 북쪽은 수내동, 정자동과 접하고 있다. 정자로가 동서로 뻗으면서 정자동의 경계를 이룬다. 분당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탄천의 동쪽에 자리잡은 신설 동으로 분당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기존의 행정구역이 새도시의 구조와 아파트 입지여건에 맞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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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생(67세)으로 한산이씨이다. 그의 집안은 500년간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수내리[현재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 부근]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그도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태어나 현 야탑동의 돌마초등학교에 다녔으며, 현재도 30~40명이 매년 한두 번 동창회를 연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 한백효 선생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이 분은 광복 후 중동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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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족은 아버님, 부인, 자녀 3남매이다. 큰딸은 시집가고, 큰아들은 결혼하여 분가해서 따로 나가 살고, 막내는 집에 있어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선산은 대부분 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에 있는데 조선시대 선조 때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낸 아천군 이증(李增) 선조 등 24개의 묘소들이 있고, 일부는 분당이 개발되면서 경기도 여주로 이장하였다. 서울로 이주한 이유는, 서울사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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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수내동에는 100여호 정도 살았는데, 숲안, 역말, 넘어말 등 세 마을로 구성되었다. 수내동의 유래는 이곳 마을이 안 보이게 그 앞으로 큰 나무들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숲안’이라고 불리다가 ‘수내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조선시대 청백리였던 한산이씨 이병태 선조가 많이 심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적 사건으로는 6·25전쟁 때 면사무소 직원, 선생님, 농협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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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계절별 의복을 회상하면 해방될 무렵 초등학교 1, 2학년 다닐 때는 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등교하였다. 6·25전쟁 이후부터 아이들의 바지, 저고리가 사라진 것 같다. 광복 후 초등학교 5, 6학년 때는 단추 달린 학생복을 입었다. 그 당시는 옷장수가 집집마다 방문하여 외상으로 옷을 팔았다. 농촌인 관계로 남자어른들은 바지, 저고리를 입고 다니고, 여름에는 중의적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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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일주일 식단은 없이 주식은 밥, 김치, 된장, 고추장인데, 광복 직후에 학교에 가지고 간 도시락에 반찬 대신 깨소금을 가지고 다녔다. 반찬은 여름에 고등어, 굴비를, 겨울에 동태, 북어를 가지고 요리하였다. 그 당시 학교에 가자고 온 아이에게 아침을 굶고 왔을 것 같아 “먹었어도 더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일상식에 소요되는 비용은 자급자족이므로 계산을 할 수가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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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내동은 중앙공원 내에 큰역말(30여 호), 넘어말(20여 호), 숲안(20여 호) 등의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고, 6·25 때 피난 온 이들이 중앙공원 쪽을 보고 명당이라는 말을 하였다. 6·25전쟁 이전에는 큰 기와집 한 채에 대부분 초가집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었는데 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다. 1990년대 개발사업으로 마을의 한옥 한 채만 중앙공원 내에 남아 있고, 역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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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의 인물에 얽힌 이야기로는 이경류(李慶流)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때 상주전투에서 전사하자, 타고 다니던 말이 이곳 집으로 와서 대문간에 머리를 부딪치고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산이씨 집안사람들이 이경류 산소 앞에 말을 장사지내서 지금도 낮은 무덤이 있는데 이를 말무덤이라고 부르고, 매년 풀도 깎아준다. 그 후 이경류 모친의 꿈에 나타나서 “어머니 저를 보려거든 깨끗한 대야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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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나 놀 때, 명절에 얽힌 노래는 기억이 없고, 잘 부르는 유행가도 없는데, 가수 이미자의 「총각선생님」, 배호의 「장충단공원」은 알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본인하고 같은 반에 있던 '최선봉'이라는 사람의 별명이 ‘둥금이’고, 또 ‘.오쟁이’도 있는데 지금도 73, 4세가 모두 지났지만 지금도 동문회를 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친구들이 그 동안에 벌써 상당히 세상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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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산부인과에서 낳았고, 백일잔치도 집안 식구끼리 조촐하게 치렀다. 돌잔치에는 자녀들이 연필이나 돈을 잡은 것 같았다. 생일잔치는 어렸을 때나. 현재도. 집안 식구끼리 하고 있다. 결혼은 지금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치르는 통과의례로 생각하여 나도 장가가야 하는가 보다 하여 현재 부인을 만났는데, 서울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당시 본인이 대학원 학생일 땐데 은사님이 집에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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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신앙은 기독교가 차차 퍼지면서 유교식에서 기독교로 바뀌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이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집안의 종교가 바뀌어가고 있으며, 유교식으로 사당을 모셔놓지는 않고, 기독교식으로 십자가를 걸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삿날은 음력 3월 20일인데, 저녁 8시경에 가족이 모여서 추모예배를 한다. 어릴 때는 새벽 1시까지 기다려서 눈을 비비고 세수한 다음에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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