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87 |
---|---|
한자 | 盆唐區藪內洞地域-誌-平生儀禮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
[이연복]
자녀는 산부인과에서 낳았고, 백일잔치도 집안 식구끼리 조촐하게 치렀다. 돌잔치에는 자녀들이 연필이나 돈을 잡은 것 같았다. 생일잔치는 어렸을 때나. 현재도. 집안 식구끼리 하고 있다.
결혼은 지금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치르는 통과의례로 생각하여 나도 장가가야 하는가 보다 하여 현재 부인을 만났는데, 서울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당시 본인이 대학원 학생일 땐데 은사님이 집에 얘기하기도 전에, “자네 주례는 내가 서야지.”하여 주례를 서 주셨다. 신혼여행은 우이동의 그린파크로 갔다. 가족계획은 꼭 계획을 세워가지고 몇 낳겠다 생각도 해본 적도 없고, 자연스럽게 3자녀를 낳았다.
환갑잔치는 집 앞의 뷔페에서 했는데, 4촌 이내만 초청하였다. 이 당시 자녀들은 학생이어서 본인 회갑 부담은 없었고, 사촌 형과 동생들이 축의금을 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는 1992년인데, 본인이 교회를 나갔기 때문에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교인들이 와서 장례를 치렀다. 그러니까 장례 후에 유교적인 부친이 “교회가 그게 좋구나. 그러니까 나는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죽거든 나도 그렇게 해라.”고 말하였다. 장례식 비용은 부조금이 꽤 많이 들어와서 장례식을 치르고 조금 남았으므로 일부는 교회에 특별헌금을 하였다.
묘소와 제사는 본인의 12대 선조까지는 분당중앙공원에 묘소가 있고, 13대조 이상 선조는 여주군 대신면 도룡리에 모셔놓아 성묘하러 갈 때는 도룡리로 간다. 본인의 아버지가 7남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 분 증조할아버지가 4형제이다. 그 자손들이 벌초하러 모일 때 차를 타고 오는데 열 몇 대가 된다. 대체로 서울, 용인, 수원, 여주에 살고, 7촌~8촌까지 모이는데 제수를 각각 분담하여 과일 또는 고기, 음료수, 술 등을 갖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