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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200
한자 風水地理
영어음역 Pungsujiri
영어의미역 Pungsu|Feng Shu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정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지리에 의하면 땅속에는 살아 꿈틀대는 정기(精氣)가 있으며, 이것은 우리 몸속의 피처럼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정기를 타고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정기가 뭉친 곳에 집을 지으면 가운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조상의 무덤을 쓰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집 터나 마을 터, 도읍 터, 무덤 자리의 좋고 나쁨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일종의 토속적인 운명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신라 말기 도선(道詵) 국사에 의해 사상 체계를 갖추게 된 풍수지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의 선택, 도읍의 선정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는 청룡·백호·현무·주작의 사신사(四神砂)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장풍과 득수에 의해 강력한 생기를 이룬 곳을 말하며 흔히 명당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지표상에는 풍수지리에서 요구하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 즉 명당(明堂)은 별로 없다. 그래서 풍수지리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미비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해결책으로 돌을 쌓아 언덕을 만들기도 하고, 숲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부족한 부분을 도와서 모자람을 채워주는 방법을 비보(裨補)라 한다.

미비한 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비보 이외에 염승(厭勝)의 방법이 있다. 쇠말뚝을 박아 역적의 기를 누른다든가, 풍수상의 흉한 기를 인위적인 조작으로 눌러 이기는 방법을 염승이라 한다. 이처럼 비보나 염승의 방법에 따라 실제로 산이나 숲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지명으로 대체하는 예도 많았다.

[용(龍)과 관련한 풍수지리]

풍수지리에서는 산·물·방위를 주요 구성 요소로 꼽는다. 이 중에서 산(山)은 용(龍)이라 하여 중히 여기고 있다. 즉 산을 살아 꿈틀대는 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주 지역에도 용과 관련된 풍수지리 사항이 많이 있는데, 계룡산과 진두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1. 계룡산(鷄龍山)

계룡산계림산·계약·중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으며, 산세와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도 계룡산을 비롯하여 구룡산(九龍山)·용산(龍山) 등 용과 관련된 지명으로 불리어 왔다.

그 중 용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름인 계룡산(鷄龍山)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다. 상봉~쌀개봉~연천봉~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이 닭[鷄]의 볏을 쓴 용(龍)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계룡(鷄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무학대사가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자 이성계와 함께 이곳에 와서 지세를 살피고는 “이 산은 한편으로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또 한편으로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니 두 주체를 따서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도 계룡산에는 용과 관련된 땅 이름이 많이 있다. 갑사에서 금잔디고개에 이르는 구간에 갑사구곡이란 계곡이 있다. 갑사구곡 계곡에 용과 관련 있는 용문폭포가 있다. 용문龍門)이란 용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이다.

최근 계룡시는 계룡팔경으로 천황봉·국사봉·숫용추·암용추·천마산·은농재·신도내 주초석·계룡대 통일탑 등을 선정하였다. 이 중 용과 관련 있는 지명이 숫용추와 암용추이다. 용추(龍湫)란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있는 웅덩이로 용소(龍沼)라고도 한다. 숫용추와 암용추는 계룡산 남쪽 계곡에 자리 잡은 명소로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라고 부르고 있다.

2. 진두교(辰頭橋)

계룡면 면사무소 소재지 입구에 진두교(辰頭橋)라는 다리가 있다. 진두교란 진두에 있는 다리를 일컫는다. 진두교는 계룡면의 옛 이름이 진두면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진(辰)은 지지(地支)의 다섯째 이름으로 동물로는 용을 의미한다.

땅 이름에 많이 나오는 두(頭)는 첫째로 동물 형상의 머리를 나타낸다. 용의 머리를 닮아 용두, 소의 머리를 닮아 우두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어느 곳의 첫머리 또는 입구를 나타낸다. 이는 성의 앞쪽을 성머리[城頭]라 한다든가, 돌이 쌓여있는 앞쪽을 돌머리[石頭]로 부르는 경우이다. 따라서 진두면의 진두(辰頭)는 용의 머리란 뜻으로 계룡산 들머리, 즉 입구를 말한다.

3. 기타

청룡리, 복룡산 등 공주 지역의 다음 지명들은 용과 관련된 풍수지리를 내포하고 있다. 청룡리(靑龍里)의당면의 면사무소 소재지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세청리·와룡리·수촌·유계리 등을 병합하여 세청과 와룡(臥龍)의 이름을 따서 청룡리라 부른다.

이밖에 의당면의 용두산(龍頭山)·용두천(龍頭川)·옥룡동(玉龍洞), 탄천면복룡리(伏龍里)·와룡리(臥龍里), 신풍면백룡리(百龍理)·용수리(龍水里)·대룡리(大龍里), 장기면은룡리(隱龍里), 사곡면유룡리(油龍里), 유구읍의 용수동(龍水洞), 의당면용현리(龍峴里)·용암리(龍岩里)·요룡리(要龍里) 등이 있다.

[봉황(鳳凰)과 관련한 풍수지리]

봉황새는 성인(聖人)의 탄생에 맞추어 세상에 나타난다는 성스러운 전설의 새로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고 한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살면서 예천(醴泉) 혹은 감천(甘泉)의 물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그리고 오색의 깃털, 5음(音)의 묘음(妙音)을 내는 영조(靈鳥)로서 뭇 새의 왕으로, 더 나아가 천자(天子) 또는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풍수에서도 봉황은 학, 거북 등과 더불어 그 형상을 길지로서 소중히 다루고 있다. 봉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땅 이름에서 풍수 비보로 많이 쓰이고 있다.

1. 봉황산(鳳凰山)

봉황산공주시 봉황동·반죽동·교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 뒷산이다.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며 봉우리가 수려한 편이다. 봉황산은 그 기슭 언저리에 봉황이란 이름을 많이 낳았다. 봉황산 기슭의 동남쪽 일원이 봉황동(조선시대에는 봉황산리(鳳凰山里)라 불렸음)이고, 그곳에 공주봉황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외에도 봉황이란 명칭이 봉황중학교에, 봉황의 문양이 쌍봉(雙鳳)의 형태로 공주고등학교 모표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제민천에는 봉산교(鳳山橋)란 다리도 있다. 공주 지역에는 이외에도 봉황과 관련된 풍수지리를 내포한 땅 이름이 여러 곳에 있다. 계룡면봉명리(鳳鳴里)·봉곡(鳳谷), 신풍면봉갑리(鳳甲里), 우성면봉현리(鳳峴里)·용봉리(龍鳳里) 등이 있다.

2. 반죽동(班竹洞)

봉황산 동쪽 기슭에서 제민천까지의 지역을 반죽동이라 한다. 반죽(班竹)이란 대나무의 일종으로 줄기에 검은색의 반점(班點)이 있으며, 60여 년 만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식물이다. 반점이 있기에 반죽이라 부르고 있다. 바로 그 반죽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상서로운 새가 봉황새이다.

봉황산을 더욱 봉황답게 하고, 봉황이 오래오래 머물게 하려면 봉황의 먹이가 되는 대나무가 풍부해야 한다. 그래서 봉황산 바로 아래 대나무밭을 지명으로 보충해 준 것이 반죽동이다. 따라서 반죽이라는 땅 이름은 풍수 비보(裨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오곡동(梧谷洞)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는 오동나무와 봉황과의 관계가 깊음을 나타낸 말이다. 따라서 봉황이란 지명이 있는 곳에 오동나무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봉황산이 있는 공주 지역에도 오동나무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오곡동인데 우금고개를 넘어 공주국립정신병원이 있는 마을이다. 이는 봉황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봉황산 가까이에 오동나무골이라는 땅 이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봉황산의 이름에 따라 반죽동이나 오곡동 등의 땅 이름을 지은 것은 풍수 비보(裨補)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행주형(行舟形) 지형과 관련한 풍수지리]

공주 구시가지 지역은 작은 분지 지형으로 남쪽의 주미산(舟尾山)을 중심으로 동쪽에 봉화대와 공주 공산성, 서쪽에 일락산·봉황산·정지산(艇止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제민천이 남쪽의 주미산에서 발원하여 공주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공주 구시가지를 동서로 양분하고 금강에 연결된다. 전체적으로는 북부 일부만이 트여 있는 분지 모양으로 배[舟]모양의 지형을 보이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는 이러한 지형을 일컬어 행주형 지형이라 한다.

풍수지리에서 배 모양의 행주형 지형은 사람과 재화가 풍부하게 모이는 곳으로 좋은 장소로 여긴다. 그래서 주변에 키·돛대·닻 중 어느 하나만의 지형물이 갖추어져 있어도 좋은 땅으로 여긴다. 이러한 지형물이 없을 때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는 데 청주 지역의 석당간은 돛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배와 관련된 지형물이나 조형물이 없을 때에는 배와 관련된 지명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행주형 지형의 고을은 배의 형상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함부로 우물을 파는 것을 규제해 왔다고 한다. 우물을 파는 것은 곧 배 밑을 뚫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배 안에 고인 물인 샘물을 이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공주 구시가지 지역도 행주형 지형으로 풍수적으로 볼 때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가 출발하기 전의 모습이라 한다. 이는 주미산·정지산·사공바위 등 배와 관련된 땅 이름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계룡면 중장리 삼거리 서쪽에 지형이 배의 형국처럼 생긴 주산(舟山) 또는 주산리(舟山里)라고 부르는 배살미가 있다.

1. 주미산(舟尾山)

주미산[381m]은 금학동주미동 사이에 걸쳐 있다. 주미산은 모양이 배의 꼬리 모양으로 생겨서 고물리 또는 주미(舟尾)동이라 불린다. 지세가 배 모양으로 생긴데다 강의 반대쪽에 있으므로 배의 끝 부분이 되어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2. 정지산(艇止山)

정지산금성동 백제큰다리 북쪽 정지산 터널이 있는 산이다. 공주 구시가지 지역의 지세를 배의 형국으로 볼 때 뱃머리 부분으로 배를 멈추어 두는 지점이다. 제민천(濟民川) 물이 금강으로 흘러 합류하는 곳으로 바로 금강에 접해 있다.

3. 사공바위[沙工岩]

주미산 밑에 있는 큰 바위로 사람같이 서 있어 사공이 배를 부리는 형상이라 하여 사공바위라고 한다. 지세가 배 모양으로 되어 있으므로 배를 모는 사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지어진 땅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땅 이름 궁합이라 할 수 있다.

[묘소와 관련한 풍수지리]

묏자리는 그 자체가 풍수지리의 결정체이다. 묏자리 부근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터라 하여 고인의 산소를 만든다. 누구나 명당을 원하지만 신분과 능력에 따라 산소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가문 좋고 권세 있는 집안의 산소가 좀 더 명당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송산소, 박산소의 이야기처럼 산소 자리가 지역의 땅 이름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1. 산소리(山所里)

1789년(정조 13)의 전국 인구 통계 자료집인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공주 지역에는 산소와 관련된 땅 이름이 많이 나타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웅진동 지역의 송산소(宋山所), 박산소(朴山所) 등을 들 수 있다. 송산소는 송씨의 산소를 일컬으며, 박산소는 박씨의 산소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송씨 산소가 있는 곳이라고 불리다가 아예 땅이름으로 굳어진 예이다.

그외에도 이산소·권산소·윤산소 등의 산소 관련 땅 이름이 도처에 산재한다. 그저 산소 터를 의미하는 산소리라는 땅 이름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는 효도와 더불어 조상의 묘를 잘 써서 발복(發福)을 받아 보자는 기복 풍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태봉(胎封)

옛날 왕가(王家)에서는 출산이 있을 때 그 출생아의 태(胎)를 묻는 석실(石室)이 있었는데 이를 태실(胎室) 또는 태봉(胎封)이라 한다. 태실은 대개 대석(臺石)·전석(轉石)·우상석(湡裳石)·개첨석(蓋襜石) 등으로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시로 설치된 태실도감(胎室都監)에서 관장하였는 데 안태사(安胎使)라는 관리가 좋은 땅을 선정하고 태를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는 태봉(胎封)·태봉(胎峰)·태산(胎山)·태봉지(胎封址) 등의 이름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공주 지역에도 숙종의 태를 묻은 태실이 있었던 영향으로 태봉동·태봉산·태봉천 등의 지명이 있다. 태봉의 위치는 공주 구시가지에서 이인면 방향을 따라 우금고개를 기점으로 3㎞ 지점의 도로에 인접한 곳에 있다. 공주 지역의 태봉에 1661년(현종 2)에 숙종의 태를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의 태실은 1869년(고종 6)에 태실을 경기도 양주로 옮기고 현재는 공주 숙종대왕태실비만 남아있다. 태봉과 관련된 땅 이름도 『호구총서』에 많이 보이고 있다.

3. 명당리(明堂里)

가거지(可居地) 또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명당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으로 사곡면 화월리에 있는 명당리(明堂里)라는 마을을 꼽을 수 있다.

화월리의 명당리는 장사추와형(長蛇追蛙形)이라는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땅 이름이다. 장사추와형은 장사축와형(長蛇逐蛙形)이라고도 하는 데 뱀이 개구리를 쫓아가는 모양으로 기다란 뱀 산과 그 앞에 조금 떨어져 조그만 개구리 산이 있는 형태를 말한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태를 먹을 것이 풍부한 좋은 터로 인식한다. 명당리에는 장사추와형 외에도 잠두형(蠶頭形)의 누에머리산과 금오탁시형(金烏啄屍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기타]

1. 문필봉(文筆峯)

문필봉이란 풍수적인 용어로 산봉우리가 글씨를 쓰는 붓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문필봉은 풍수적인 보통 명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필봉은 별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봉우리가 붓 모양이고, 붓은 문(文)을 상징하므로 풍수가들은 문필봉이 정면에 있으면 학자와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이름보다 문필봉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기도 한다. 공주 지역 곰나루 북안의 연미산(燕尾山)문필봉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계룡산 관음봉에서 연천봉 사이에는 4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다. 그 모양이 마치 붓처럼 보인다고 해서 문필봉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도 그 명칭은 사련봉(四連峯)이었다. 4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나란히 붙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련봉이 언제부터 문필봉으로 정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원래 이름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2. 우와리(牛臥里)

농업을 주업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은 소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소는 농촌 지역에서 재산 목록 1호인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집 터나 산소 자리도 소의 형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누운 소 형국인 와우형(臥牛形)은 마을이나 집 터의 형국 가운데 으뜸으로 꼽았다.

음택 풍수지리에서도 소의 형국은 그 자손이 부자가 된다고 하여 선호하였다. 계룡면 기산리에는 소와리라는 땅 이름이 있다. 한자로는 우와리(牛臥里)로 표시한다. 뒷산이 누운 소 모양이라고 하여 붙은 땅 이름이다. 보통은 와우(臥牛)라고 부르는데 계룡면 기산리 소와리는 특이하게 우와(牛臥)로 불린다.

3. 주봉(朱峯)

주봉(朱峯)이인면 주봉리에 있는 산이다. 봉우리의 흙빛이 유달리 붉어[朱] 주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풍수지리에는 사신사(四神砂)가 있는데, 좌(左) 청룡(靑龍), 우(右) 백호(白虎), 전(前) 주작(朱雀), 후(後)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명당은 일반적으로 남향이 많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하면 주작은 남쪽의 신(神)을 의미한다. 풍수적인 의미로 본다면 주봉(朱峯)은 공주 관아(官衙)로부터 남쪽에 있는 산이란 뜻도 된다.

4. 정자방(正子方)

오행(五行)의 이치를 설명하는 부호로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있다. 십간(十干)은 천간(天干)이라고도 하며 하늘을 의미하고, 십이지(十二支)는 지지(地支)라 하며 땅을 상징하여 땅 이름에도 이따금 사용된다. 정자방(正子方)은 금성동충청남도 공주교육청 뒤, 정지산 아래 동네이다.

정자방의 자(子)는 십이지 중의 첫 번째로 방위는 북쪽, 시간은 자정, 띠는 쥐를 뜻한다. 따라서 정자방의 의미는 정북쪽 방위를 뜻하며 이는 옛 충청감영 터(현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고등학교)에서 북쪽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땅 이름이다. 정자방을 증지방이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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