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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정(佳亭)과 신흥동(新興洞)의 첫 자를 따서 가신동(街新洞)이라 하였다. 가정천(佳亭川)과 신흥천(新興川)을 따라 농사짓기에 편리한 산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조선 중기 이전에 주민들이 들어와서 생활의 터전을 잡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신2리에 장수황씨, 가신1리에 풍산홍씨·계계유씨 그리고 신흥동에 청주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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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불견리(不見里)와 학성리(鶴城里)의 이름을 따서 견학리(見鶴里)라 하였다. 견학리는 일찍이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길가의 양옆 너른 들에 형성된 마을로, 본래 충주군 신석면(薪石面)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불견리·학성리·마제동(馬蹄洞)과 주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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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광벌리(廣伐里)와 수월리(水越里)[일명 무너미]의 이름을 따서 광월리(廣越里)라 하였다. 광월리는 부용산(芙蓉山)[644.8m] 아래에 있는 마을로, 남쪽의 음성군 음성읍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어 목고개에 주막이 형성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산기슭에 마을이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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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아홉 마리의 용(龍)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리라 하였다. 구룡리는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소태재[蘇台峙, 일명 소탱이고개] 아래 남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는 태양면(省台陽面) 율현리(栗峴里)로 나온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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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금생면(金生面)과 가차산면(加次山面)에서 ‘금(金)’자와 ‘가(加)’자를 따 금가면(金加面)이 되었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가차산면이라 하여 마산(馬山)·휴암(休岩)·하담(荷潭)·경촌(卿村)·기동(基洞)·마사(麻沙)·사천(沙川)·비산(飛山)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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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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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있는 행덕산(行德山)[447.7m]의 이름과 같이 덕(德)을 크게 행한 마을이라 하여 대덕리(大德里)라 하였다. 대덕리는 차령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일찍이 전주이씨, 문화유씨, 광산김씨가 들어와 살았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충원현 고장박리(古莊朴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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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화리(大化里), 동화(同花), 화치(花峙)를 병합하고 대화와 화치의 첫 이름을 따서 대화리(大花里)라 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신석면(薪石面) 탄현리(炭峴里)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화리와 화치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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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세포리(細浦里)와 조기암리(造奇巖里)를 병합하고 주민들이 온순하고 덕(德)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은리(德隱里)라 하였다. 이 지역은 남한강과 황산천(黃山川)이 흘러든 강변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강원도 남부와 경계로서 교통 왕래가 빈번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생활 터전을 마련하였다. 17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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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도리(島里)와 경촌리(卿村里)에서 ‘도(島)’자와 ‘촌(村)’자를 따 ‘도촌(島村)’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리·경촌리·마사리(麻沙里)·기동(基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도촌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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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에 동량곡(東良谷)이라 하다가 1910년 동량면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동량면이라 하여 운교(雲橋)·용대(龍垈)·대야(大也)·사천(沙川)·배일(排日)·마흘(馬屹)·황전(黃田)·장선(長善)·모천(毛川)·건지(乾地)·조돈(早遯)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교(龍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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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태면 동쪽 끝 산기슭에 있다 하여 동막(東幕)이라 하였다. 동막리는 야동리(冶洞里)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동쪽의 엄정면으로 넘어가는 강달고개 위아래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로,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성태양면(省台陽面) 율현리(栗峴里)였다. 1914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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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대소리에 있는 산. 마산은 봉화불을 올리던 산으로서 일명 봉화산 또는 봉화뚝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마산의 산정에는 약 100㎡ 정도의 면적에 돌로 쌓은 축대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봉수대터라고 한다. 1898년에 편찬된 『충주군읍지』에서도 “마산 봉수는 충주에서 서쪽으로 25리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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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마제동(馬蹄洞)·온수리(溫水里)·내룡동(內龍洞)·학성리(鶴城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마제와 온수의 이름을 따서 마수리(馬水里)라 하였다. 마수리는 남쪽 가섭산(加葉山) 줄기가 뻗은 골짜기 아래 형성된 마을로 북쪽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일찍이 운봉박씨 운성부원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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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매사리(梅沙里)와 하시리(下矢里)에서 ‘매(梅)’자와 ‘하(下)’자를 따 ‘매하(梅下)’가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사리·하시리·상시리 일부가 통합되어 매하리로 개편되었다. 공군비행장으로 인하여 주민들은 모두 이주하여 법정리의 이름과 호적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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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모도원동(毛陶院洞)·남악리(南岳里)·수월리(水越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모도원동과 남악리의 이름을 따서 모남리(毛南里)라 하였다. 모남리는 수레의산[679.4m] 줄기 아래에 남쪽으로 형성된 마을로 일찍이 충주의 관문 구실을 하였다. 그에 따라 목고개(못고개)를 넘어오는 사람들의 쉬어 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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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회문리(回文里)·동락리(同樂里)·모도원동(毛陶院洞)·남악리(南岳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회문리와 동락리의 이름을 따서 문락리라 하였다. 문락리 지역은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신니곡면(申尼谷面) 숭선리(崇善里) 지역이었다. 일찍이 전의이씨(全義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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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문지리(文旨里)와 마산리(馬山里)에서 ‘문(文)’자와 ‘산(山)’자를 따 ‘문산(文山)’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지리와 마산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문산리로 개편되었다. 신대마을의 일부가 공군부대에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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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신전리(薪田里)[섭밭], 문암리(文岩里)[문바위], 저전리(楮田里)[닥밭골], 우성리(于城里)[우리재]를 통합하고 문암리와 우성리의 이름을 따서 문성리(文城里)라 하였다. 문성리는 비교적 평야 지대에 형성된 마을로 주민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이어 오고 있다. 신전리에는 김해김씨 후손들이, 저전리에는 안동권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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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숭선리(崇善里)의 상숭리(上崇里)·중숭리(中崇里)와 상사리(上寺里)·점촌(店村)·문내리(文內里)·내포리(內浦里)[일명 속개]의 일부를 병합하고 문내리와 숭선리의 첫 이름을 따서 문숭리(文崇里)라 하였다. 능안고개를 넘어가는 수리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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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의 자손들이 들어와 양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법동리라고 하였다.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세거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법동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8년(대한제국 고종 2)에 편찬된 『충청북도 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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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저수지.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는 1992년 폐교된 복성국민학교가 있어 지당저수지, 또는 복성저수지라 하였다. 노은면의 가신리와 지당리의 경계에 있는 승대산(僧代山)[567m] 동쪽의 둔티고개와 승대산 서쪽의 질마루고개, 질마루재 등의 고개에서 북류하는 계곡수가 지당리 대촌마을을 거쳐 복성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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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남쪽에 남한강이 여우섬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 두 개의 여울이 되므로 복여울 또는 복탄(福灘)이라 하였다.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강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이 지역은 성태양면(省台陽面) 무동리(武洞里)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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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마사리(麻沙里)와 휴암리(休岩里)에서 ‘사(沙)’자와 ‘암(岩)’자를 따 ‘사암(沙岩)’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촌리(卿村里)·기동(基洞)·마사리·하담리(荷潭里)의 각 일부와 휴암리·비산리(飛山里)가 통합되어 사암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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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송강리 상산(上山)마을과 영덕리의 계척(桂尺)마을에서 ‘산(山)’자와 ‘척(尺)’자를 따 산척면(山尺面)이 되었다. 또한, 천등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로 오르는 길인 천등산의 가장 지척에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산척면이라 했다고 한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산동면이라 하여 정암(鼎岩)·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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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의 종류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지방의회의원 선거 등이 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실시되고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충주 지방에서의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는 1952년 8월 5일 국민 직선에 의해 치러진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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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선동(仙洞)과 용당리(龍堂里) 등을 병합하면서 선동과 용당리에서 한 자씩을 따서 선당리(仙堂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신석면 여탄리(汝呑里)로 충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50리 거리에 위치하며, 124가구에 총 714명(남 347, 여 367)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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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충주읍성의 남쪽 지역에 위치한다 하여 성남동(城南洞)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충주목(忠州牧)에 속하였다. 충주 관아의 남쪽 거처로서 아전들이 거주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 따르면 남변면(南邊面) 중부리(中部里) 지역이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읍을 본정(本町), 영정(榮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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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충주읍성 안의 중심에 위치한다 하여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충주목(忠州牧)에 속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 따르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지역이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하면서 본정(本町), 영정(榮町), 금정(錦町), 대수정(大手町) 4구역으로 나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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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46년 충주읍성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성서동(城西洞)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충주목(忠州牧)에 속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 따르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지역이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면서 본정(本町), 영정(榮町), 금정(錦町), 대수정(大手町) 4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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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성태양면(省太陽面)이라 칭했으며, 율현리(栗峴里)·덕산동(德山洞)·청룡동(靑龍洞)·무동(武洞)·조기암리(造奇岩里)·부동리(釜洞里) 등의 6개 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 중기에는 태양면(台陽面)·태양소내면(台陽小內面)이라고도 불렀으며, 중청동(中靑洞)의 자작에서 해마다 성황제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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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흑암리(黑巖里)와 팔송리(八松里)를 병합하면서 흑암과 팔송에서 한 자씩을 따서 송암리(松巖里)라 하였다. 옛날 팔송리에는 8그루의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송암리는 남쪽의 가섭산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신석면(薪石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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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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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에 있는 저수지. 신덕저수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과 충주시 신니면·노은면 경계의 남쪽에 위치한 수레의산의 동사면, 신니면과 노은면 경계의 중앙부에 있는 웃고개와 능안고개의 남사면,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와 신니면 광월리 경계 못고개의 동남사면, 남쪽의 송암저수지 등에서 흘러내린 요도천(堯度川)이 유입되고 있다. 신덕저수지 남쪽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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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신단리(新丹里)와 수청동(水淸洞) 등을 병합하면서 신단리와 수청동에서 한 자씩을 따서 신청리(新淸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신니곡면(薪尼谷面) 수청동리(水淸洞里)와 신의곡리(信義谷里) 2개 마을로, 수청동리는 충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40리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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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대리(新垈里)와 효죽리(孝竹里) 등을 병합하면서 신대리와 효죽리에서 한 자씩을 따서 신효리(新孝里)라 하였다. 신효리는 북쪽의에 보련산(寶蓮山)[764.9m]과 남쪽의 자주봉 산기슭에 자리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면서 충주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관문으로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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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1898년(고종 35)에 발간된 『충청북도 각군읍지』 충주군조에 “충주군 노은면 마을 남쪽 안락골의 이름을 따서 안락리(安樂里)로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안락리라는 지명은 안락골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안락리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으로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가 있어 문화유씨 등이 일찍부터 들어와 세거하였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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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솥을 만드는 풀무가 있어서 풀무골 또는 야동리(冶洞里)라 하였다. 야동리 지역은 충주와 원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일찍부터 야곡과 가정 등 마을이 형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성태양면(省台陽面) 율현리(栗峴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0리 거리에 위치하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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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태면의 양지 쪽에 위치하여 양촌리(陽村里)라 하였다. 양촌리는 충주시에서 목계리를 지나 소태면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목계나루와 같이 남한강 수운을 이용한 교역으로 선박장이 생기고 경제 환경이 좋은 덕분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성태양면(省台陽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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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시에 연원(連原)과 동수동(東守洞) 등을 병합하면서 연원과 동수동에서 한 자씩을 딴 연수리(連守里)가 연수동이 되었다. 연원은 찰방(察訪)이 있던 곳이고, 동수는 연원의 동쪽을 지키던 망대(望臺)가 있어서 동수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북변면(北邊面) 연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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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저전리(楮田里)와 우성리(于城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연화동과 하남의 첫자를 따서 연하리라 하였다. 국망산과 보련산 등의 높은 산 아래에 좁게 펼쳐진 계곡에 아주신씨, 여양진씨 등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1760년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노은면의 보련동리(寶蓮洞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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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성태양면(省台陽面) 지역으로 청계산(淸溪山) 밑에 소재하여 지대가 매우 높아 오랑골·오량골·오량동이라 하였다. 또는 마을이 오방(午方)을 향해서 있다고 하여 오향동(午向洞)이라고도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 때 오량동(五良洞)이라 하였다. 1760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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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평리(梧坪里)와 석교리(石橋里)에서 ‘오(梧)’자와 ‘석(石)’자를 따 ‘오석(梧石)’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金生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산리(毛山里)·오평리·석교리·연합리(連合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오석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행정리동으로 석교, 모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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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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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광평리(廣坪里)·당곡리(堂谷里)·원대리(院垈里)와 용당리(龍堂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원대와 광평의 이름을 따서 원평리라 하였다. 영남대로 변에 위치한 마을로서 예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 신라 선덕왕 때 사찰이 창건되어 선조사(善祖寺)라 칭하다가 병자호란 때 불타고 현재는 석등, 석탑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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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원평리(遠坪里)와 종포리(鍾浦里)에서 ‘원(遠)’자와 ‘포(浦)’자를 따 ‘원포(遠浦)’가 되었다. 원포리는 충주군 금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독재리(篤才里)·원평리·종포리·연합리(延合里)·석교리(石橋里)·마산리(馬山里)·매사리(梅沙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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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월탄리(月灘里)와 상시리(上矢里)에서 ‘월(月)’자와 ‘상(上)’자를 따 ‘월상(月上)’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金生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평리(凉坪里)·옥강리(玉江里)·월탄리·상시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월상리로 개편되었다. 공군비행장으로 편입되고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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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동(遊洞)과 반송리(盤松里)에서 ‘유(遊)’자와 ‘송(松)’자를 따 ‘유송(遊松)’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생면(金生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동·반송리·화동(禾洞)·창리(倉里)가 통합되어 유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금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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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잠병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잠리(中岑里)·사천리(沙川里)·사랑리(沙浪里)·하담리(荷潭里)·상잠리(上岑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잠병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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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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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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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산. 이병연(李秉延)이 편찬한 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 주산은 충주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락리 안락골의 주산은 풍수지리형국의 주산(主山)이라서 붙어진 이름으로 안락골의 진산이 되고 있다.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안락골(일명 안락동)과 신니면 화석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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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성태양면(省台陽面) 지역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느 쪽으로 가나 두루 고개를 넘게 된다고 하여 두리티 또는 주치(周峙)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숯과 사기를 굽던 부동(釜洞), 하남리(河南里), 외촌(外村)을 병합하여 주치동이라 하였다. 주치리는 산간의 협곡과 강변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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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에 있는 저수지. 수안보면의 중앙부에는 적보산(積寶山)[일명 첩푸산, 689m]이 있고, 동남쪽에 신선봉(神仙峯)[967m]과 포암산(布巖山)[961m] 등이 솟아 있는 평균해발 고도 500m 이상의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발원한 고운천이 중산리에서 중산천이 되어 수회리에서 석문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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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1995년까지 읍의 외곽 지역 12개 면을 관할했던 행정구역. 중원군의 인구는 충주시와 분리된 1년 후인 1957년 12월 현재 113,114명이었으며, 1966년에는 153,487명으로 충청북도 내에서도 으뜸가는 거대한 군이었다. 그러나 1993년 말 현재는 주민등록상 18,951가구에 67,749명(남 34,531, 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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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룡마을의 중간이 되므로, 가운데 청룡 또는 중청룡(中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청동(下靑洞)을 병합하여 중청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여지도서』충원현조에 의하면 성태양면 청룡동리(靑龍洞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5리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가구수는 122호에 남자가 3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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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이름은 대동창(大同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또한, 옛날에는 버드나무가 많아 은버들마을[銀柳村]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충주군 주류면(周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전1리·창전2리·창전3리·창전4리·창전5리·창전6리·창전7리로 나누어 있다가 동산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창전리로 개편되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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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충주목과 충주군 소재지로서 충주읍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또는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광복 후에 충의동으로 개칭되었다. 일설에 충의동은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 (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남변면의 중부리 지역으로 충주관아(忠州官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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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충주목, 충주군의 소재지로서 충주읍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또는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광복 후에 충인동으로 개칭되었다. 충인동은 충성스럽고 어진 마음씨와 자애로운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 (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남변면의 중부리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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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소(강 하구의 늪)가 있었으므로 하소 또는 하담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담리(斗潭里)·상잠리(上岑里)·사랑동(沙浪洞)·사천리(沙川里)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하담리로 개편되었다. 1996년 면소재지를 공군비행장의 소음의 피해 때문에 도촌리로 이전하면서 행정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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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향토지는 처음 향토사 개념으로 출발하였다. 자기 지역을 알리기 위해 지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하고 그 지역 출신의 인물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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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화악리(化岳里), 추동(楸洞), 지석리(支石里)와 신단리(新丹里), 내포리(內浦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악과 지석의 첫 이름을 따서 화석리(化石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신니곡면(薪尼谷面)의 신의곡리(信義谷里)의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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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가섭산(加葉山)[709.9m] 아래 동쪽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1982년 군사시설 용지로 편입되어서 자연마을은 폐쇄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산직리(山直里), 안항동(顔巷洞), 화산동(花山洞), 석포리(石浦里), 마제동(馬蹄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산과 안항의 이름을 따서 화안리(花顔里)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