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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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仙臺記 |
영어의미역 | Palseondaegi Essa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은희 |
성격 | 한문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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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산해(李山海)[1539~1609] |
창작연도/발표연도 | 1592년~1595년 평해 유배시절 |
[정의]
1592년(선조 25)~1595년(선조 28) 사이 평해 유배 시절에 이산해가 자신의 모습을 팔선대(八仙臺)에 비유한 한문 수필.
[개설]
이산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이며 이색(李穡)의 7대손이다. ‘산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산해관에서 꿈을 꾸고 그를 낳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서로는 『아계집』이 있다. 1592년(선조 25) 왜적이 침입하도록 했다는 탄핵을 받아 평해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 수필은 평해에서 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문장 중의 하나이다.
[구성]
「팔선대기」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팔선대로 불리게 된 연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반부는 신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부정적인 사고관이 나타나 있다. 후반부에는 팔선대의 풍경과 자신의 모습을 조화롭게 묘사하고 있다.
[내용]
이산해는 전반부에 팔선대로 불리게 된 연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노인들의 이야기가 달라서 노인들의 말조차 믿을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 중반부에서는 신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하였다. 작가의 생각은 설사 신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인들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출 것이라고 하였다.
후반부에서는 작가가 거처하고 있는 곳에서 팔선대까지의 거리는 매우 가깝고 팔선대에서 아래로 굽어보면 맑은 못이 있는데 그곳에 비치는 물고기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팔선대기」의 후반부를 번역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우거(寓居)하고 있는 달촌이 이 대(臺)와 거리가 매우 가깝기에 복건[幅巾]을 쓰고 여장(藜杖)을 짚고서 날마다 이곳을 왕래하며 피로한 줄을 모른다. 산에 비가 막 걷히고 솔 그늘이 대(臺)에 가득하며 아래로 굽어보이는 맑은 못은 새로 닦은 거울 같고 크고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발랄한 모습으로 헤엄칠 때 노쇠한 얼굴, 흰 머리털로 그 위에 누워 산 빛, 구름 그림자와 더불어 그 푸르고 맑은 기운 속을 배회하노라면 심신(心身)이 화락하여 물아(物我)를 잊게 되니, 또한 유배 생활 중의 한 특기할 일이라 하겠다. 대(臺)는 일정한 이름이 없는데, 후세 사람들은 필시 적선대(謫仙臺)라 이름할 것이다.”
[특징]
「팔선대기」는 팔선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팔선대에 있는 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심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배생활 중이라 초라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은 신선과 같이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산해는 문장에 능하여 선조 때 문장 8대가[백광훈, 최경창, 송익필, 윤탁연, 이순인, 최립, 하응림]의 한 사람에 속했다. 그가 쓴 840수의 시 가운데 평해 유배 시절 3년 동안 창작한 시가 무려 483수가 된다. 이산해에게 있어 유배 기간은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