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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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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2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고북중학교 앞 길가에 총 12기의 가구리 비석군이 있다. 1. 전고북국민학교장신영주공적비(前高北國民學校長申英柱功積碑)는 옥개형으로, 1989년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95㎝이며, 비신은 높이 130㎝, 너비 45㎝, 두께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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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1619년에 편찬된 서산 지방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강흡(姜洽)이라는 사람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흡은 향임으로서 기품이 맑고 강하여 시비가 분명하였으며,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자 했다. 백성 가운데 범법자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죄목을 붙여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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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서산 천장암에서 수도한 승려.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동욱(宋東旭),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경허(鏡虛)[1849~1912]는 1849년(헌종 15)에 전주 자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주 청계사에 들어갔다. 청계사 주지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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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군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은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서산에 왔던 수령 중 최고의 선정(善政) 수령으로, 서산 5현으로 추대되었다.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력하고 『호산록(湖山錄)』 발행을 권유하는 등 서산의 사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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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기록의 발급자와 수취자 간에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고받은 문서의 총칭. 고문서는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문헌 사료로, 대부분이 유일본이다. 형태는 낱장이 많고 이것을 책처럼 묶은 성책 고문서도 있다.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 문서(交隣文書) 등 공공의 성격을 갖는 문서와 개인 간에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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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의 지리·역사·정치·경제·민속 등을 기록·편찬한 향토지. 『고북면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의 역사와 문화유산, 생활, 관습 등을 보존·발전시키고 지역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발간되었다. 총 1권으로 1,02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크기는 가로 19.5㎝, 세로 26.3㎝이다. 『고북면지』는 지리, 역사, 정치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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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고수관(高壽寬)은 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으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방만춘(方萬春),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늠[판소리에서, 명창이 독특한 방식으로 다듬어 부르는 어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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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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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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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일(景日). 예조참의를 지내고 성암서원에 제향된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두광(金斗光), 할아버지는 김운경(金運慶), 아버지는 김한록(金漢祿)이다. 어머니는 서옥업(徐玉業)의 딸이다. 김한록은 영조의 장인인 김한구(金漢耉)의 사촌 동생이다. 서산의 경주 김씨는 일명 한다리 김씨라고도 불리는데 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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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증조할아버지는 김숙문(金叔文)이고,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원록(金元祿)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국량(元國良)의 딸이다. 김대덕(金大德)은 큰아버지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된 후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 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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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회사업가. 김동윤(金東潤)[1896~?]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대로리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사업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농어촌의 환경과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아 농어민과 관련된 일이라면 기꺼이 발 벗고 나섰다. 1934년 삼남 지방이 수해를 입자 복구 의연금을 보냈다. 1964년에는 자금을 희사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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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산 출신의 학자이자 교육자. 본관은 경주. 자는 경필, 호는 소암(溯巖).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889년(고종 26)에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김학방(金鶴芳)[1746~1822]이다. 김상억(金商億)[1862~1938]은 서산의 오랜 세거 성씨인 경주 김씨[일명 한다리 김씨]의 후손으로, 서산군 대산면 광암동[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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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이자 교육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봉은(鳳隱)이다. 김용돈(金容敦)[1898~1984]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7세 때부터 한문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주경야독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성장한 후에는 서당을 짓고 훈장을 지내면서 한시 수백 편을 비롯한 여러 장르에 걸친 문장을 지었다. 이때 시 작문을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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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유(德裕), 호는 용주(龍洲)·용곡(龍谷). 할아버지는 김자진(金自珍)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두징(金斗徵)[1646~1678]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파평 윤씨 윤필은(尹弼殷)의 딸이다. 김유경(金有慶)은 서산 대교[한다리]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김유경의 가계는 김연(金堧)[149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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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유경(金有慶)의 신도비와 묘역.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의 명문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 합격 후 1710년(숙종 36)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관직을 거쳐 1746년(영조 22) 좌참찬으로 관직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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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위(富城尉)[서산현령]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김광세(金光世)이고, 아버지는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경량(金鏡亮)이다. 김주정(金周鼎)[1228~1290]은 1257년(고종 44)에 음서로 부성위가 되었다. 부성위로 제수되었을 때, 몽고병이 대대적으로 침략하자 적을 방어하고 백성들을 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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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평양서윤을 지낸 김순성(金順誠)의 현손으로, 생부는 영동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생원시 동방진사과에 3등 43인으로 합격하고 그 해 별시 문과에 병과 1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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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광암마을에 있는 개항기 효자 김학방(金鶴芳)의 정려. 김학방 정려(金鶴芳旌閭)는 부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던 김학방[1746~1822]의 효자 정려이다. 김학방은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768년(영조 44) 무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통정대부 증직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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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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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먹수지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54년(효종 5) 7월 효종에게 응지상소(應旨上疏)[나라가 어려울 때 임금이 직접 구언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완남군 이후원(李厚源)[1598~1660]에게 편지를 보내 “부모님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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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익(金弘翼)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익이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인조가 몽진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시신을 수습하여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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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은거하였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조선 개국 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남일성(南一星)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박(權瞨)의 딸이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와리에서 태어났으며, 송준길(宋浚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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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세워진 8기의 비석. 대산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 대산 지역에서 어사(御使)와 첨사(僉使) 등을 역임한 인물들과 근대의 면장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대산리 비석군은 김봉환[1~3대 읍장으로 1944년~1960년까지 근무]이 대산읍장으로 재임할 때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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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조선초 서산 출신의 승려. 법명은 자초(自超), 당호는 계월헌(溪月軒), 법호는 무학(無學). 속세의 성은 박씨(朴氏)로, 아버지는 숭정대부문하시랑(崇政大夫門下侍郞)에 증직된 박인일(朴仁一)이고, 어머니는 고성 채씨(固城蔡氏)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학[1327~1405]의 고향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기면으로 이곳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문집류나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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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문인. 호는 우보(牛步) 또는 부춘산인(富春山人). 아버지는 민삼현이다. 민태원(閔泰瑗)의 할아버지가 산청현감을 지낸 인물이라 사람들이 그의 집을 민산청 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민태원[1894~1934]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에 상경하여 수하동 공립 보통학교와 경기고등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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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좌(蕣佐), 호는 경암(絅庵)이다. 민태직(閔泰稷)[1868~1935]은 충청남도 서산시 오남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유진하(兪鎭河)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1885년에 부친상을 당하자 몹시 슬퍼하며 시묘살이를 하였고, 시묘살이 중에도 경서를 탐독하고 예를 강론하였다. 민태직은 근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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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천도교 지도자. 본관은 밀양. 초명은 박용호(朴龍浩), 자는 도일(道一), 호는 춘암(春菴)이다. 박인호(朴寅浩)[1855~1940]는 충청남도 덕산군 장촌면 막동[현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지가서(地家書)[풍수지리에 근거를 두고 묏자리나 집터 따위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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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경립(敬立),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고조할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박간(朴幹)이고, 아버지는 박현룡(朴顯龍)이다. 어머니는 현감 윤환(尹瓛)의 딸이다. 박홍미(朴弘美)[1571~1642]는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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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방만춘(方萬春)[1825~?]은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중고제 명창이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고수관(高壽寬),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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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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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부조묘는 조선 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함하여 선조 3대를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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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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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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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간(柳成澗)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령 유씨는 서산 지방의 토성 집단 가운데 유력했던 성씨 중 하나로 여말 선초(麗末鮮初) 절의계 인물들을 배출하여 명성을 날렸다. 현재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柳方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의 후손으로 오래도록 재지 사족의 지위를 유지하여 향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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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실과 비. 명종대왕 태실(明宗大王胎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모셨던 곳으로,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 두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대군춘령아지씨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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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익(宋文翊)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송씨는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를 지냈으며 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진 송문익을 시조로 하며, 봉해진 지역을 관향으로 삼고 후손이 거주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편찬된 각종 읍지류의 서산군 성씨조에 송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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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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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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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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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두징(金斗徵)을 기리는 묘비. 김두징[1646~1678]은 성균관 생원으로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 탐구에만 열중하다가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김두징의 묘비에 쓰인 오석을 운반하는 데 동원된 노비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두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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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을 기리는 사당. 서산 숭덕사(瑞山崇德祠)는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1364~1421]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이 건립되자 회안군에 봉군되었고, 1398년(태조 7)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1400년(정종 2) 토산(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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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산시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시의 지리·역사·정치·경제·민속 등을 기록한 향토지. 충청남도 서산시는 서산 지역의 변천사를 정립하고 알리고자 1982년에 『서산군지』 증보판 발간에 이어 1998년에 『서산시지』를 발간하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집필자로 선정하여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보완·수정하였으며, 1998년 4월에 2,000부를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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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했던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전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교화 기구이다. 서원은 서재(書齋)·정사(精舍)·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사(祠)·리사(里社)·영당(影堂)·별묘(別廟)·세덕사(世德祠)·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서산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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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성암서원(聖巖書院)의 제향 인물은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후기 인조부터 효종 대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사암 유숙은 고려 때부터 서산 지역의 토착 성씨로 성장한 서령 유씨(瑞寧柳氏)로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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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중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성암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유허지에 석회로 광을 만들어 위판을 도자기에 넣은 후 분묘처럼 매안하였다. 이후 1897년 성암서원 터에 양가의 후손들이 유허비를 세웠다. 성암서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7월에 중건되었는데, 성암서원 중건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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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성암서원의 연혁과 관련 인물에 대해 기록한 책. 성암서원(聖巖書院)은 서산시 읍내동 서문 밖 부춘산 기슭에 자리한 서원으로, 1719년(숙종 45)에 건립되어 1721년(경종 1)에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제향 인물로는 고려 말 공민왕 대의 문신 사암(思庵) 유숙(柳淑)[1316~1368]과 조선 시대 인조에서 효종 대의 문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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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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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송곡서원(松谷書院)은 서산에서 배출된 향현들을 제향한 향현사(鄕賢祠)로서, 제향 인물은 정신보(鄭臣保)[?~1261], 정인경(鄭仁卿)[1241~1305], 유방택(柳方澤)[류방택, 1320~1402], 윤황(尹璜), 유백유(柳伯濡), 유백순(柳伯淳)[?~1420], 유윤(柳潤)[?~1476], 김적(金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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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송곡서원에 소장된 자료. 송곡서원 소장 자료는 제향 인물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주로 인물의 행적과 추배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5선생행장록(五先生行狀錄)」은 송곡서원에 제향된 5선생의 행장과 관련 기록을 모아 놓은 행적록으로, 창건 시 제향된 인물 4명[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방택(柳方澤), 유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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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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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역사 문화 축제. 해미읍성 축제는 서산시에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지역 축제로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문화재, 민속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병영성의 특성을 살린 국내 유일의 ‘병영 체험 축제’라는 것이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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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가야금 연주자. 본관은 청송. 할아버지는 피리와 퉁소를 잘 불었던 심팔록이고,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 심창래(沈昌來)[?~1895]이다. 작은아버지가 가야금 연주자 겸 판소리 명창인 심정순(沈正淳)[1873~1937]이다. 서산 청송 심씨 가문의 예술인으로는 국악 이론가 심재덕(沈載德)[1899~1967], 소리와 병창에 능했던 심매향(沈梅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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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겸 가야금 연주자. 본관은 청송. 아버지는 피리와 퉁소에 능했던 심팔록이다. 아들은 판소리 명창 심재덕(沈載德)[1899~1967]이고, 딸은 심매향(沈梅香)[1907~1927]이다. 막내아들은 심화영(沈嬅英)[1913~2009]으로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2000년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7호 승무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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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화원.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可度), 또는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 혹은 주경(朱耕). 1619년(광해군 11) 편찬된 『호산록(湖山錄)』에 ‘본읍지곡인(本邑池谷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견(安堅)은 세종~세조 대에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렸던 화원이다. 특히 세종 때 활동이 활발하였다. 시와 그림, 글씨에 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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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기독교 선교사. 양치옥은 서산 출신으로, 서산에 처음으로 개신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다. 본래 홍성교회에 소속된 전도사로, 1907년 태안군 안면도에 들어가 선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나이는 40세였다. 안면도의 포구 마을을 돌면서 어민들을 상대로 4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였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홍성으로 돌아갔다. 이후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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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의 소속 군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땅.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당연히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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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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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서령(瑞寧)[서산]. 아버지는 유침(柳忱)이다. 유민수(柳敏遂)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살면서 공부하였던 유생이다. 풍채가 좋고 마음 씀씀이가 공명정대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다. 1582년(선조 15)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한 뒤 서산 군내 20세 이하의 청년 30여 명을 뽑아 가르쳤다. 이들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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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아버지는 유기(柳沂)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낸 이종덕(李種德)의 딸이다. 아들은 유윤경(柳允庚)과 유윤겸(柳允謙)이다. 유기는 태종이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보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봉된 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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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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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사(柳泗)를 기리는 사당. 유사[1595~1636]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이끌고 진영에 합류하여 경기도 광주 송파에서 적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병사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사군사(死君事)’ 즉 ‘죽음으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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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형수(亨叟).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에 서산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거 성씨이다. 하지만 유기가 태종의 처남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아들 유방선·유방경(柳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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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입부(立夫). 서산의 유력 성씨인 서령 유씨 유백순(柳伯淳)[?~142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 유방익(柳邦翼)이며, 형은 유경립(柳景立)이다. 유지립(柳之立)[1555~?]은 1575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79년(선조 12) 25세에 생원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사마방목에 나타나는 서산 거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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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에 정착하여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기계. 자는 천일(千一), 호는 존재(存齋). 아버지는 유치섬(柳致暹)이다. 유진하(兪鎭河)[1846~1906]는 1846년(헌종 12) 8월 4일 경기도 고양군 벽제[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태어났다. 1865년 20세가 되던 해에 이미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권세가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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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회이(晦爾), 호는 야당(野堂). 할아버지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명랑해전에서 공을 세운 충경공 유형(柳珩)이고, 아버지는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한 진무이등공신 진양군 유효걸(柳孝傑)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조부 역시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진무이등공신 남이흥(南以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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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학자. 유형손(柳亨孫)은 1480년(성종 11)에 서산에서 태어났다. 품은 기질과 용모가 수려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평생 천성이 강직하고 의젓하며 행동하는데 법도가 있고 점잖아 도리를 잃지 않으므로 큰일을 잘 결정지을 수 있었다. 때문에 향당 사이에 결정짓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두들 찾아와 유형손에게 의견을 묻고 수렴하여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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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경(柳方敬)이다. 삼촌은 유방선(柳方善)[1338~1443]이고, 사촌동생은 유윤겸(柳允謙)[1420~?]이다. 유휴복(柳休復)은 일찍이 삼촌인 유방선에게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이에 1443년(세종 25) 사촌동생인 유윤겸과 함께 『두시언해(杜詩諺解)』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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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본관은 칠원. 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윤정학이고, 아버지는 윤병규(尹炳奎)이다.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다. 부인은 온양 예안 이씨 가문의 이용완이다. 윤곤강(尹崑崗)[1911~1950]은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777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할아버지 윤정학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는 등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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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인. 윤덕구(尹德九)[1929~1989]는 1929년 서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서령중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서령고등학교 교감에 이르기까지 교직 생활과 문학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63년에는 시인 이생진(李生珍)과 함께 동인지 『문(門)』을 창간하였다. 1964년에는 송종학(宋鐘學), 김영삼(金永三), 강현서(姜顯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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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이 원적인 근현대 아동문학가. 본관은 파평. 호는 석동(石童). 아버지는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윤덕병[1885~1950]이고 어머니는 조덕희다. 부인은 박용실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윤석중(尹石重)[1911~2003]은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윤덕병과 조덕희의 여덟째 자녀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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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윤찬구 가(家)에 소장되어 있는 윤시영(尹始永)의 일기와 관련 문서. 윤시영(尹始永)[1855~191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1902년(광무 6) 함흥 민요(民擾)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령의 장부(臧否)를 조사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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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의 서산시청 앞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건립된 31기의 비석. 읍내동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산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 서산 지역 곳곳에 위치하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서산시 읍내동 서산시청 앞에 조성된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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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아버지는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이다. 변성군은 정종(定宗)[1357~1419]의 10남인 덕천군(德泉君)의 증손자로, 광주목사를 지낸 서산 송씨 송효명(宋孝命)의 손녀와 혼인한 후 처가가 있는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로 거처를 옮겨 서산의 전주 이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전주 이씨 후손들은 서산시 수석동과 음암면 신장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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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만원(李晩遠)이다. 이상여(李商礖)[1774~1854]는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에서 태어났다. 평소에 쌀뜨물로 미음을 끓여 부모가 잡숫게 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을 지어 드렸다. 어느 날 밤 삼경쯤 별채에 불이 났다. 이에 이상여는 평소 우레 소리를 무서워하는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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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서천(舒川). 호는 소매(小梅). 아버지는 이우규(李禹奎)이다. 이석태(李錫泰)[1884~1967]는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에서 이우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는데, 10세 때 홍주목사가 개최한 경서 강의에 나가 유생들과 함께 실시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였다. 1900년에는 국비 장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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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종교인, 정치가. 본관은 성주. 아호는 황산(凰山), 도호(道號)는 보암(普菴). 필명은 봉황산인(鳳凰山人). 아버지는 이교칠(李敎七)이고 어머니는 전주 이씨다. 유복자로 태어나 작은아버지 이교삼(李敎三)의 양자로 들어갔다. 부인은 심은택의 딸 심인화이다.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의 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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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이자 교육자. 아버지는 한학자인 소매 이석태(李錫泰)이다. 이지풍(李之渢)[1929~2002]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이석태에게 한학을 배웠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탁월한 한학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아 1957년 『중도일보』에 특채로 입사하였다. 평기자로 출발하여 충청남도청 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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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택(李澤)을 기리는 신도비. 이택[1651~1719]은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택 신도비는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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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언론인. 이한용(李漢鎔)[1918~1985]은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 예비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언론인이 되었다. 『서울신문』 기자로 이직한 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민주일보』 기자, 정치부장·사회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에는 『평화신문』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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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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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창령군(昌寧君)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서산의 유력 성씨로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1421]의 둘째 아들 창령군[1389~?]의 후손과, 덕천군(德泉君)[정종의 10남]의 증손 변성군(邊城君) 이계연의 후손 등이 확인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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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족들이 일으킨 의병 운동.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서산 지역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군현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사족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리로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정유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 유흡(柳洽)·곽설(郭說)·한효순(韓孝純)[154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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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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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은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고려 말의 명장 정지(鄭地)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이다.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이인조(李仁祚)의 딸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이다. 아들은 정빙(鄭砯)이다. 정충신(鄭忠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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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묘. 정충신[1576~1636]과 부인 하양 허씨(河陽許氏)의 묘가 나란히 있으며, 주위에 묘비·상석·망부석·무인석·동자상 등이 있다. 정충신 묘는 진충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국사봉 남향 사면에 있다. 정충신 묘역은 1633년(인조 11)에 정충신이 아들 정빙(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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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振忠祠)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유품.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정충신 장군 유품은 총 5종으로 영정(影幀) 1점, 갑옷 1착,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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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갑옷. 정충신 장군 유품[갑옷]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갑옷의 바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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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명기(司命旗). 정충신 장군 유품[서군사명기]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호-3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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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영정(影幀). 정충신 장군 유품[영정]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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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로(香爐). 정충신 장군 유품[향로]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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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합(香盒). 정충신 장군 유품[향합]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향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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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9세손이다. 조광국(趙匡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신립(申砬)을 도와 출전하였다.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을 도와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치고 북상해 오는 왜군과 접전하였으나 4월 28일 고니시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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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 자는 희보(熙甫), 호는 낙분당(樂分堂).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아들 형제를 두었다. 조목(趙穆)은 연일현감[연일은 현 경상북도 포항]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조목 부자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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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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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서산 지역에 평양 조씨가 이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 본관은 평양. 정숙공 조인규(趙人規)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호(趙瑚)[?~1410]이다. 조아(趙雅)의 후손으로는 『여지도서(與地圖書)』와 1927년에 발간된 『서산군지(瑞山郡誌)』에 그 행적이 기록 된 조후윤(趙後尹)·조후량(趙後亮) 형제가 있다. 조후윤은 선전관으로 병자호란에 참여하였다 전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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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시조시인. 조재억(趙載億)[1921~2005]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서 출생하였다. 단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서산농림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같이 근무한 한담(韓湛)과 함께 학생들의 동인지인 『수라장(修羅場)』의 발간을 지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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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용호(龍湖) 또는 정곡(鼎谷). 할아버지는 증판서 조연손(趙連孫)이고 아버지는 조준수(趙俊秀)다. 부인은 용인 이씨로 이신충(李藎忠)의 딸이다. 둘째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조존성은 증좌찬성 조남(趙擥)에게 입양되었다. 조존성(趙存性)[1554~?]은 성혼(成渾)·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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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유학자. 조회영(趙懷瑛)은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영암군수을 지낸 조경록(趙景祿)이고, 둘째 아들은 부여현감을 지낸 조경희(趙景禧)다. 조회영의 형 조회침 역시 재주가 좋고 기개가 높았던 인물로 21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조회영은 서산 읍내에 살았다. 용모가 단정하고 의젓하였으며, 근검절약하여 재력가가 되었다. 애써 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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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서산에 평양 조씨(平壤趙氏)들이 세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조아(趙雅)의 후손이며, 병자호란 당시 충청감사 진영에서 전사한 조후윤(趙後尹)의 동생이다. 조후량(趙後亮)은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임금을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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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서산에 평양 조씨(平壤趙氏)들이 세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조아(趙雅)의 후손이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하였던 조후량(趙後亮)의 형이다. 조후윤(趙後尹)[?~1636]은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선전관(宣傳官)으로 참여하여 충청감사의 진영으로 나아갔으나 그 곳에서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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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서 지곡이 본관인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서산과 관련된 지리지 성씨 조에는 서산과 지곡의 토성으로 문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본관은 분명치 않지만, 서산이나 지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산록』에 등장하는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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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의 지리·역사·정치·경제·민속 등을 기록·편찬한 향토지. 지곡면은 서산시의 시원이 되는 지명이자 고읍기지(古邑基地)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서산의 고적(古跡)으로 서술되었다. 『지곡면지』는 지곡면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간행하였다. 총 1권으로 1,703쪽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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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진주 강씨는 지리지 및 읍지의 성씨조에 등재되지 않은 데다, 관련 기록도 부족하여 서산에 입향한 시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 기록 중 강몽서(姜夢瑞)의 본관이 ‘진주’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부터 서산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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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同姓)의 여러 집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를 동족마을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특히 17세기 중엽 이후의 향촌 사회는 조선 전기와는 다른 친족 의식이 일반화되었다. 이전까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공평한 재산 분배 등의 풍습에 따라 사위, 외손자 등 성(姓)이 다른 친족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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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 1670년경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곰실마을로 입향한 채근후(蔡謹後)의 5세손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이다. 채홍우(蔡弘宇)[1765~1836]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8세 때 이미 효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정성껏 부모를 봉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병든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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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정덕(韓正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청주 한씨는 서산의 유력한 세거 성씨로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찬술한 한여현(韓汝賢)의 가문이다. 『호산록』을 비롯해 서산의 지리지와 읍지 인물조에 등장한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원래 본관이 면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서는 1500년대 이후 크게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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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서산에 있었던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승려. 속세의 성은 김씨로 웅진[충청남도 공주]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다. 체징(體澄)[804~880]은 7~8세 때 불가에 뜻을 두어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다. 화산(花山) 권법사(勸法師) 밑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24세 때인 827년(흥덕왕 2) 서산의 가량협산[현 가야산] 보원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불교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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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훈련참봉을 지낸 최몽전(崔夢鸇)이 아들이다. 최린(崔麟)은 무과에 급제한 후 남포현감[현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을 지냈다. 고향인 서산에 내려와 고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매사 온유하고 겸손하여 많은 고을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고 한다. 아들이었던 최몽전은 훈련참봉을 지냈으나 재상에게 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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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부성군[현 서산시] 태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이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육두품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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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복초(復初), 호는 송천(松泉).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고, 할아버지는 최영호(崔永灝), 아버지는 전첨(典籤) 최수진(崔秀珍)이다. 어머니는 이세신(李世臣)의 딸이다. 최흥원(崔興源)[1529~1603]은 1555년(명종 10) 소과를 거친 후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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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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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서산 보원사(普願寺)에서 입적한 승려.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 속세의 성은 고씨(高氏)이다. 탄문(坦文)[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승려의 뜻을 품었으며 원효(元曉)가 살던 향성산(鄕聖山)의 옛 절터에 암자를 지어 수년간 수행하였다. 북한산 장의사(莊義寺)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 등을 배운 후 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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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반곡마을에 설치되었던 진(鎭). 평신진(平薪鎭)은 1711년(숙종 37)~1895년(고종 32)에 충청도 북서부 해안을 수호한 진으로, 종3품의 첨사가 관할하였다. 또한 평신진은 목장까지 관리하는 겸목관 체제를 채택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다. 더욱이 서산과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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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은 경주 김씨의 동족 마을이다. 한다리마을은 서산시의 동남쪽으로, 음암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7㎞ 거리에 있다. 마을의 동남쪽 전방으로 대교천(大橋川)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인 매벌들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현재 모습은 남쪽에 서산 A지구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의 지형이다. 이전까지 서해 바다는 내륙 깊숙이까지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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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시문집. 김홍욱[1602~165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이며,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1654년(효종 5)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비인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의 억울함을 상소했던 이른바 강옥사건(姜獄事件)으로 인해 장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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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일어난 전패(殿牌) 도난 사건. 1817년(순조 17) 서산에서 전패(殿牌)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처분이 『순조실록(純祖實錄)』에 기록되어 있다. 전패는 모든 군현의 객사에 보관되는 임금을 상징하는 물건이므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었으므로 이것을 훔쳤다는 것은 역모의 혐의를 받을 만한 심각한 사건이었다. 당시 실록의 기록이 매우 단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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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증조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이고, 할아버지는 한익(韓翼), 아버지는 한영희(韓暎憙)[1518~?]이다. 어머니는 담양 전씨이다. 아들은 『호산록』을 완성한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경춘(韓慶春)은 청주 한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족보에 올라 있고, 아들 한여현의 과거 급제 방목에 청주 한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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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교육자. 한담(韓湛)[1917~1950]은 어린 시절 한학과 신학문을 동시에 수학하였다. 1937년 성균관에서 주최한 전국 한시 대회에 장원을 수상하였으며, 1940년에는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한담은 1940년대 서산농림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였다. 당시 조재억(趙載億)[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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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현재(賢哉). 증조할아버지는 한익(韓翼)이고, 할아버지는 한영희(韓永禧), 아버지는 한경춘(韓慶春)이다. 한영희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되어 있다. 면천은 현재 당진의 남부 지역으로 각종 지리지의 면천 성씨 조에 한씨가 올라 있다. 청주 한씨의 서산 입향조는 고려 후기 서산 사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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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자는 희중(熹仲), 호는 우재(愚齋). 증조할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고, 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한익(韓翼)이다. 아들은 한경춘(韓慶春)이고, 손자는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영희(韓暎憙)[1518~?]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은 서산과 인접한 당진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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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리. 본관은 면천. 고려 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한자희(韓自禧)의 후손이다. 아들 한인국(韓仁國)[1552~?]은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시에 생원 3등 24위로 급제하였다. 한우(韓雨)는 서산 지역에서 여러 해 구실아치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지냈다. 공평하게 일처리를 한 덕분에 그가 호장을 지내는 동안 구실아치들 사이에 잡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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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 운동가인 김상정(金商玎)의 문집. 『한월빙설(寒月氷雪)』은 김상정[1875~1954]의 아들인 김홍제(金洪濟)가 김상정의 글을 모아 번역하여 1984년에 간행하였다. 초기에 초판본을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간행한 지 오래되어 배포할 수 없자, 2010년 서산문화원에서 『한월빙설』 500부를 더 간행하였다. 총 388쪽이며, 크기는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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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다. 한서정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였다. 후에 북방우후(北方虞侯)에 제수되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배(李裵)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 유씨로 현감을 지낸 유석정(柳碩汀)의 딸이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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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지역의 세거 성씨인 청주 한씨의 입향조. 본관은 청주. 아버지 한홍서(韓洪瑞)는 고려 충선왕 때 벼슬이 판도판서(判圖判書) 추밀원직학사에 이르렀으며,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원나라의 관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서산 지역에서 청주 한씨의 가계를 잇는 것은 한정덕(韓正德)의 아우인 한정수(韓正粹)의 후손들로, 한서정-한윤련(韓允璉)-한익-한영희(韓暎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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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최초로 서산에 입향한 청주 한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할아버지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한준(韓浚)이며, 아버지는 군기감사(君器監事)를 지낸 한경선(韓敬善), 어머니는 판관 구연(具珚)의 딸 능성 구씨이다. 부인은 해주 최씨로 고성군수 최광준(崔光俊)의 딸이다. 아들로는 판서를 지내고 서산에 입향한 한정덕(韓正德)과 예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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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 청주 한씨의 입향조. 한효순(韓孝純)[1543~1621]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지금의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서산 강씨 강효윤(姜孝胤)의 딸을 후취 부인으로 맞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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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해미향교에 소장된 자료.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미현 지역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건립한 교육 기관이다.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해미향교 소장 자료는 문서류, 현판류, 비석 등으로 다양하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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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이 나온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로 들어서는 큰길로 접어들면 홍살문이 보이고, 해미향교(海美鄕校)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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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에서 풍속 교정과 향리 규찰 등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구. 향서당(鄕序堂)은 조선 전기에 향리(鄕吏)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방의 품관(品官)들이 조직한 자치 기구이다. 이를 유향소(留鄕所)·향사당(鄕射堂)·향청(鄕廳)·향소청(鄕所廳) 등이라고도 한다. 서산에서는 유향소를 향서당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가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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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편찬된 향토의 지리, 역사, 사회, 전승(傳承) 등에 관한 기록. 향토지는 향토에 관한 다방면의 정보를 기록한 자료로 조선 시대의 읍지와 지리지, 현대에 제작된 군지와 시지, 그리고 읍지·면지 등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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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 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기본 체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따르고 있지만, 목차는 세분되어 있으며 내용이 훨씬 상세하고 여기에 지역과 지역민의 사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조선 전기부터 1500년대까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데 충청도에서 발간된 조선 전기의 지역 자료가 극히 드문 실정에 『호산록(湖山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