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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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坦文 |
영어음역 | Tanmun |
이칭/별칭 | 대오(大悟),사미(聖沙彌),법인(法印),별대덕(別大德),별화상(別和尙)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출생 시기/일시 | 900년 - 탄문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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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914년 -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불교 교단에 입문 |
활동 시기/일시 | 968년 - 왕사가 되어 귀법사에 머뭄 |
활동 시기/일시 | 975년 - 국사가 됨 |
몰년 시기/일시 | 975년 3월 - 탄문 졸 |
출생지 | 경기도 광주 |
활동지 | 귀법사 -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
활동지 | 보원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국사 |
[정의]
고려 전기 서산 보원사(普願寺)에서 입적한 승려.
[개설]
자는 대오(大悟), 호는 성사미(聖沙彌). 속세의 성은 고씨(高氏)이다.
[활동 사항]
탄문(坦文)[900~975]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5세 때 승려의 뜻을 품었으며 원효(元曉)가 살던 향성산(鄕聖山)의 옛 절터에 암자를 지어 수년간 수행하였다. 북한산 장의사(莊義寺)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 등을 배운 후 914년(신덕왕 3) 15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교단에 입문하였다. 계법을 잘 실천하고 수행 능력이 뛰어나 고려 태조로부터 별화상(別和尙)으로 불렸다. 926년(태조 9) 왕후 유씨(劉氏)가 잉태하였을 때 왕의 부탁으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왕자[후에 광종]가 태어나자 태조는 법력을 빌려 아들을 낳았다며 탄문을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
탄문이 구룡산사(九龍山寺)에 머물면서 『화엄경』을 강의할 때 새가 날아들고 범이 뜰에 와서 엎드렸다고 하여 별대덕(別大德)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942년(태조 25) 염주와 배주 지역에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들판의 곡식을 해치자 『대반야경(大般若經)』을 외우니 벌레가 사라져 풍년이 들었다. 혜종과 정종 또한 법문을 극진히 공경하여 스승으로 예우하였고, 광종은 968년에 국사·왕사 제도를 마련하여 탄문을 왕사로 삼아 귀법사(歸法寺)에 머무르게 하였다. 탄문은 광종과 특히 가까이 지냈는데, 임금의 총애 속에 고려 불교계를 이끌면서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주창하였다. 975년(광종 26) 국사가 되어 당시 중요한 사찰 중 하나였던 서산 보원사로 옮겨 와 그해 3월에 입적하였다.
[상훈과 추모]
탑호는 보승(寶乘), 시호는 법인(法印)이다. 서산 보원사지에는 978년(경종 3)에 건립된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과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