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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경기도 성남의 역사. 조선시대 성남 지역은 광주에 속해 있었으며, 돌마면·세촌면·대왕면·낙생면 지역이 성남 시역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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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시대에 경기도를 좌, 우로 분할하여 설치한 행정구역. 고려 현종 9년(1018) 정주(貞州), 송림(松林), 임진(臨津), 토산(兎山), 임강(臨江), 적성(積城), 파평(坡平), 마전(麻田) 등 여러 고을을 상서도성(尙書都城)의 직할이 되게 하고 처음으로 ‘경기’라 하였다. 경기는 ‘서울을 에워싼 문지방’이란 뜻이다. 이 지역은 후에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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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525개의 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22개 역도 중의 하나.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525개의 역이 있었으며 이들은 22역도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중 8개 도는 개경 북쪽에 배치되었으며, 청교도(靑郊道)·춘주도(春州道)·평구도(平丘道)·명주도(溟州道)·광주도(廣州道)·충청주도(忠淸州道)·전공주도(全公州道)·승나주도(昇羅州都)·산남도(山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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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983년(고려 성종 2)에 지방관 설치를 통하여 중앙 행정의 지방세력에 대한 통제책의 일환으로 전국을 12개로 분할하여 대단위 행정구획화하는 지방제도 정비에 의하여 설치된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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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조선이 건국되면서 토착적인 지방 호족·향리의 사적 지배권을 박탈하여 수령의 지배아래 예속시킴으로써,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고 행정사역인화시켜 중앙집권적 행정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지방편제에 의해 구획된 8도의 하급행정지역(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 중의 하나로서, 1504년(연산군 10) 이후 관읍이 혁파되기 도하고 부 또는 유수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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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복정동 및 중원구 상대원동, 하대원동 일대에 있었던 지명.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던 지방행정 구역으로, 7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913년 신설된 광주군 중부면으로 편입되었고,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경기도 직할 성남출장소, 성남시청 등 시대에 따라 주요 행정기관이 위치하며 성남시 초기 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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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조선시대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크게 『세종실록지리지』와 『경국대전』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3개(좌도충청도, 우도충청도, 경기·강원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종6품 찰방이 배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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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지금의 성남시 분당 지역에 설치되었던 역참(驛站). 역참(驛站)은 중앙과 지방 사이의 공문서 전달, 왕래하는 관리나 사신의 접대, 관수 물자의 운반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조선시대의 교통·통신 기관이다. 낙생역은 조선시대에 양재→천천현로→낙생역→구흥(용인)→김령(용인)→좌찬(죽산)→분행(죽산)→무극(음죽)→강복(안성)→가천(양성)→청호(수원)→장족(수원)→동화(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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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여지도서』에 돌마역[현재 수내동 역말]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과 달리 『여지도서』 이전과 이후 즉, 조선 전기, 후기에 편찬된 다른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도로고』, 『만기요람』, 『대동지지』 등에는 모두 낙생역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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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현재 봉안역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해오고 있지 않아 확실한 위치를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자료는 조선시대에 관한 것으로서, 『세종실록지리지』의 표를 보면 경기도에 속한 역도는 모두 3개로(좌도충청도, 우도충청도, 경기·강원도), 경기, 강원도에는 다시 5개의 역도(중림도·평구도·도원도·월화도·경안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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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시대의 역원제도(驛院制度)에서,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일대에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 원. 원이란 전국 각 역의 중간지점에 둔 일종의 국립여관으로서 대야원도 이에 해당된다. 원주(院主)의 관할하에 있는 원은 공무연락자의 숙식을 제공하였고, 공적 임무를 띤 사람에게 공무의 편의를 보아주는 야간휴식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대야원은 현재로선 찾아볼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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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 조선시대에는 행려자에게 교통 등 편의를 주기 위하여 설치된 숙발시설로 역로제도 뿐만 아니라 원과 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즉, 일반 공무여행자의 숙식을 위해 각 요지에 원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지방 각 관읍에 객사라는 관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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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주군 세촌면(細村面)에 있었던 주점. 광주부로부터 남쪽으로 15리, 경안(慶安)의 막감점(暯甘店)으로부터 10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판교읍내가 이곳에 해당된다. 주점(酒店)은 술과 밥을 팔면서 나그네 및 상인들을 숙박시키던 집으로 주막(酒幕) 또는 점막(店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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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음촌참(陰村站) 부근에 있었던 주점(酒店). 조선시대의 역참제도는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게 나누었다. 각 도로는 30~40리(약 4㎞)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역참을 설치하고, 역마(驛馬)와 역정(驛丁)을 배치하여 관청의 공문을 전송하는 외에 마필과 숙식을 알선,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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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남지역에 역과 함께 설치되었던 공공 숙박시설. 우리나라의 역참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시행되었으나 구체적인 제도로 드러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역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구체화되면서 간선도로와 지선도로로 나누고 다시 그 중요성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하여 시행되었다.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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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18개 숙박시설의 하나. 임진왜란 이후 폐지된 원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주막(酒幕)이 생겨나게 되었다. 역로제도와 함께 공무여행자에게 교통편의를 주기 위해 설치된 숙박시설인 원이 임진왜란 이후 폐지됨에 따라 원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생겨난 시설로서 점막 또는 흔히 주막이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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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고개. 천천현은 청계산과 천림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천천산 또는 천천령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부터 남쪽 삼남지방에서 한양 남산에 이르는 주요한 봉수로가 위치한 곳이었으며, 또한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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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생역의 동쪽지역이 있었던 전지(田地)로 추정되는 토지. 고려,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낙생역의 동쪽지역으로, 이 역에 할당된 전지, 즉 역전(驛田)으로 추정되는 토지이다. 당시 전국 각 역에는 그 운용 경비를 위해 지급된 토지가 있었다. 고려시대의 역에는 운용 경비의 재원인 공수전(公須田)을 대로역(大路驛)에 60결(結), 중로역에 40결, 소로역에 20결씩 지급하였다. 조선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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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시대의 역원제도(驛院制度)에서 대야원에 지급된 토지. 원이란 전국 각 역의 중간지점에 둔 일종의 국립여관으로서 대야원도 이에 해당된다. 원주(院主)의 관할하에 있는 원은 공무연락자의 숙식을 제공하였고, 공적 임무를 띤 사람에게 공무의 편의를 보아주는 야간휴식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대야원은 현재로선 찾아볼 수 없지만, 그 터의 대략적인 위치는 중원구 하대원동 일대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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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 판교원(板橋院)에 딸려 있었던 토지. 원(院)이란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사신은 물론이고, 상인 등 일반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공공 여관이었다. 성남과 광주 주변 역시 원과 주점이 발달하여 행인에 대한 숙식 제공과 물자유통 및 상공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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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천림산 봉수에서 근무했던 조선시대 군사 명칭. 천림산봉수대는 현재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산35번지, 일명 달래내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군사통신 시설의 하나이다. 봉수란 외적의 침입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써 중앙에 알리는 군사통신 수단으로서 1423년(세종 5) 전후하여 천천산(穿川山)봉수를 설치한 데서 유래하였으나 오늘날은 천림산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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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군사 훈련을 하거나 사열을 하던 평원. 정금원평(定今院坪)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과 복정동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정금원 앞의 넓은 평야로 처음에는 군사를 위한 시초지(柴草地 : 땔감으로 쓰는 풀을 마련하는 토지)로 활용되다가 왕이 사냥을 나서면서 군사 훈련과 사열 장소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왕이 이곳에서 군대 사열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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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의 침입에 의한 조선과의 전쟁. 제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년) 이후 맺은 조약에서 ‘형제의 맹약(盟約)’을 ‘군신의 의(義)’로 바꿀 것을 요구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였다. 당시 조정은 서인이 집권하면서 숭명반청(崇明反淸) 외교노선을 취하여 오랑캐인 청나라에 대해 척화(斥和)하자는 논의가 팽배해 있었다. 이때 청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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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남한산성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광주, 이천, 여주의 의병들이 결성한 연합의병진. 의병진의 결성은 실학정신을 계승한 정신사적 토양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을미사변에 대한 충격, 단발령으로 대표되는 민족자존심에 대한 도전에 반발하려는 의지력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런 관계로 전국 유림의 결단에 따라 직접무장투쟁을 독려한 전체적인 흐름에 호응하여 체계적인 의병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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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낙생면 소재 험천에서 벌인 전투. 험천은 현재 분당구 구미동에서 탄천에 합류한 동막천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기우단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약 12만명의 청 태종의 군대가 침략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가 임금을 구하기 위해 수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청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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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척화파로서 청의 요구에 강하게 척화소(斥和疏)를 올린 세 사람의 학사. 홍익한(洪翼漢)[1586~1637], 윤집(尹集)[1606~1637], 오달제(吳達濟)[1609~1637]를 말한다. 1671년(현종 12) 송시열이 지은 『삼학사전(三學士傳)』에서 이들을 ‘삼학사’라 불러 그 이름으로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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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에 있는 청군 주둔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의 주둔지로 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일원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위례신도시 택지 개발 지구에 포함되어 대규모의 공동 주택 단지가 들어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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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사회 및 일제강점기 때 농민들이 지배세력에 대항하여 벌인 저항운동. 농민들은 총체적인 봉건사회의 억압하에 어떠한 사회적, 신분적 모순을 의식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19세기 근대사회가 태동하여 봉건사회체제가 무너지면서 농민은 점차 봉건적 모순을 자각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집단을 이루어 봉건적 모순에 저항하며 개혁운동을 폄으로써 우리나라 농민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