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운암2리 생골 산신제와 거리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114
한자 雲岩里生-山神祭-距離祭
영어의미역 Sacrificial Rite for the Mountain and the Street of Unam2-ri Saenggol Villag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집필자 최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거리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3일|음력 1월 14일|음력 10월 3일
의례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생골
신당/신체 산신당|장승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2리 생골에서 정월 초사흗날과 열 나흗날, 시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구름재의 운정(雲頂)과 거북바위 구암(龜岩)을 합쳐 운암리라 하였으며, 생골마곡사 서쪽에 있으며 마을에 찬 샘이 있다고 해서 생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에서 마을의 안녕과 결속, 농사의 풍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사곡면 운암리의 산신제와 거리제는 일반 제사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며 해마다 제를 지내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운암리 생골 산신제와 거리제가 언제부터 마을에서 행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신당이 원래 오성골에 있었으며 1936년에 현재 생골로 옮겼다고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운암리의 산신제와 거리제는 약 300년 전부터 내려온 마을제라고 한다.

최근 2003년에 주민들이 약 2천만 원의 기금을 모아 신당을 신축하였다. 마을에는 산제축문(山祭祝文) 서식과 축원문이 전해지고 있으며, 과거에는 마을에서 매년 나무 장승을 깎아 세우다가 1970년대부터 선돌을 세워 장승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였고, 1995년 노신제 때 현재의 돌장승을 세웠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은 운암리 안터에서 서북쪽으로 펼쳐진 991.74m²의 왕솔밭 가운데 있다. 다시 지어진 신당은 참죽나무를 대들보로 썼으며, 태화산당(泰華山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당의 뒤쪽에는 옛날 신당의 대들보가 처마 밑에 보존되어 있다.

신당 내의 탱화는 한때 도난당해서 쌀 세 가마니 값어치로 다시 사들였다고 한다. 신당의 주위에는 신께서 노하신다고 죽은 나뭇가지 하나 정리하지 않았으며, 재건축 시에도 같은 이유로 기계의 접근을 막고 자제 운반도 손으로 직접 하였다고 한다.

장승은 본래 개울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었으나 도로 공사로 때문에 개울 한쪽에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세워졌다. 각 장승의 정면에는 동방청제대장군(東方靑帝大將軍)과 서방백제대장군(西方白帝大將軍)이라고 명문을 새겨 놓았고 선돌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또한, 동쪽 장승은 사모를 씌우고 수염을 표시하여 남자의 형상을 하였고, 서쪽 장승은 비녀를 꽂아 여자 장승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장승의 높이는 196㎝, 폭 350㎝, 두께 24㎝로 두 장승 모두 같다. 선돌은 동쪽 장승 쪽이 높이 128㎝, 폭 34㎝이고, 서쪽은 높이 103㎝, 폭 49㎝, 두께 22㎝이다.

[절차]

운암리 생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과 시월 초사흗날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당은 한 칸 기와집으로 마을 뒤편 계곡에 있다. 산제를 주관하는 제관과 축관은 이장이 겸하고, 노인 회장, 마을 유지 등 다섯 명 정도가 함께 제사를 주관한다. 제물은 육류나 생선류를 전혀 쓰지 않고, 삼색실과·나물·시루떡 등으로 마련한다. 산제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가운데 조용하게 지낸다. 제를 올린 후에는 각 가정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올리며 한 해 동안 집안과 마을의 안녕을 빈다.

또한, 거리제를 살펴보면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는 거리제를 지낸다. 거리제는 장승제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입구에서 약간 안쪽에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를 장승이라고 부른다. 나무 아래에는 각각 선돌 한 기씩이 서 있다. 마을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의 조금 더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가 천하대장군, 그보다 작은 왼쪽의 나무가 지하여장군이다.

거리제를 시행하는 날 오전에는 한 해 동안 사용하려고 겨우내 꼬아 모은 새끼로 소곳 줄(쟁기 줄)을 엮어 마을에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완전히 치 늘여 매단다. 이때 한 집 당 약 1.5m짜리 새끼를 30개에서 40개 정도 만들어 서로 길게 연결하여 거리제에 앞서 약 15일간 돌을 매달아 놓는다. 이것은 줄을 미리 늘어나게 하여 나중에 사용하다가 줄이 늘어지는 것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쇠줄들이기는 공업용 나일론 줄이 나오기 전까지 마을에서 행해지던 풍습이다.

오전에 쇠줄들이기가 끝나면 점심 이후에는 액막이굿을 하는데, 마을 사람 전체가 마을 회관에 모여 풍장을 치고 집집이 돌며 조왕 즉 부엌, 장독대, 우물 등에서 고사를 지내고 액을 막았다. 저녁에는 해 질 녘에 나뭇단을 장승 가까이에 세워서 모아두고 액을 태운 후 장승에 제사를 지냈다. 거리제의 제물은 산제와 마찬가지로 육류와 비린 것을 빼고 시루떡, 과일, 나물 등으로 간단히 올린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4.03 관련시청각 연결 삭제 GC017P2152(석송리 등불동화제) 연결 삭제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