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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427
한자 東鶴寺
영어음역 Donghaksa
영어의미역 Donghaksa Temple
이칭/별칭 동계사(東鷄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지도보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김방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건립연도/일시 724년(신라 성덕왕 23)연표보기
창건자 상원(上願)화상
전화 042-825-2570
팩스 042-825-6068
홈페이지 동학사(http://www.donghaksa.or.kr)

[정의]

724년 상원(上願) 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창건한 사찰.

[개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절로 ‘동계사(東鷄寺)’라고도 한다. 동학승가대학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손꼽히고 있다.

[건립경위 및 변천]

724년(성덕왕 23) 상원(上願) 화상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년(태조 3) 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차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寺)를 지었다.

그 뒤 사찰을 확장하고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이 전하고, 또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고 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1394년(태조 3)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년(정종 1) 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동학사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 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전각을 세웠다. 길재가 죽자 세 사람만의 제를 지내고 그들의 호를 따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 김시습(金時習)조상치(曺尙治)·이축(李蓄)·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세조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定順王后), 안평대군(安平大君), 금성대군(錦城大君),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 찬위로 원통하게 죽은 280여 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 : 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였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승려와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1728년(영조 4)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이 절과 초혼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1785년(정조 9) 정후겸(鄭厚謙)이 위토를 팔아버리자 제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814년(순조 14) 월인(月印)이 예조에 상소하여 10여 칸의 사옥과 혼록봉장각(魂錄奉藏閣)을 세웠다.

1827년 홍희익(洪羲翼)이 인신을 봉안하는 집을 따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柳奭)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鄭河永)이 제답(祭畓)을 시주하여 다시 제사를 베풀었다. 1864년(고종 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보선(普善)이 여기에 와서 옛날 집을 모두 헐고 건물 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肅慕殿)이라고 개칭하였다. 6·25전쟁 때 옛 건물이 모두 소실되자 1960년 이후에 중건하였다.

[현황]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이며 문수암(文殊庵)·길상암(吉祥庵)·미타암(彌陀庵)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육화원·염화실·범종루·동학사 삼성각·조사전·설향당·화경헌·강설전·요사·실상료 등이 있다.

[관련문화재]

대웅전 동쪽에 ‘동학사(東鶴寺)’ 사액이 붙어 있는 실상선원이 있다. 근대의 선풍을 일으킨 경허(鏡虛)[1849~1912] 선사가 견성한 토굴자리에 세운 선원이다. 대웅전은 1980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아미타여래, 약사여래가 안치되어 있다. 후불탱화로 근래에 제작된 「목각삼불탱화」와 1898년에 조성된 탱화가 동과 서쪽에 안치되어 있다.

대웅전 서편에 있는 동학사 삼성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818년에 지어진 것인데, 중앙의 「칠성탱화」 좌우에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사육신의 넋을 기리는 계룡산 초혼각지는 충남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숙모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학사에서 북쪽으로 2.8㎞ 지점에 위치한 두 기의 남매탑은 보물 제1284와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1.22 [건립경위 및 변천] 수정 <변경 전>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변경 후>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寺)를 지었다.
2013.12.05 [건립경위 및 변천] 수정 <변경 전>1399년(정종 1) 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동학사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변경 후>1399년(정종 1) 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동학사에 와서 정몽주·이색(李穡)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전각을 세웠다. 길재가 죽자 세 사람만의 제를 지내고 그들의 호를 따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이용자 의견
전주환 유차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이부분에서 동학사가 아니고 동계사가 맞는거 아닌가요??
  • 답변
  •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