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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194
한자 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집필자 이해준박범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사람들이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을 가지고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

[개설]

공주 지역의 집성촌을 일괄 조사한 자료로는 1920년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조선의 성』이 있다. 그 당시에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조사에 의하면 공주에 많은 집성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는 예전 집성촌의 모습을 온전히 전하고 있는 마을들도 있지만 산업화로 인한 인구 이동으로 여러 성씨가 함께 살고 있는 마을로 변한 곳도 있다.

[읍면별 현황]

장기면 제천리는 부안임씨 집성촌으로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80~90%가 부안임씨였으나 지금 마을에는 절반 정도가 살고 있다. 부안임씨가 연기 공주 일원에 뿌리를 내린 것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고려 말 공조전서(工曹典書)로 봉직하던 임난수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맞이하여 신하된 도리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충절을 지키기 위해 낙향한 곳이 이곳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문리에는 진주유씨 집성촌이 있다. 금사(錦沙) 유충걸(柳忠傑)[1588~1665]이 한양에서 공주로 이주하면서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우성면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가 집성촌을 이루면 많이 살고 있다. 문중 10개 파 중 9개 파가 공주에 거주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 처가와의 인연으로 공주 지역에 정착한 노혁은 지금의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 일대에 터를 잡아 세거하였다. 만경노씨는 조선 후기에 삼의사(三義士)를 배출하는 등 공주 지역의 유력한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그 일대인 반촌리, 귀산리 그리고 동곡리에는 지금도 약 142호 정도가 만경노씨 들이다. 반촌리동곡리의 경우에는 불과 몇 집만 빼고는 모두가 만경노씨인데 비하여 귀산리에는 오히려 노씨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우성면 단지리는 동북오씨 집성촌이다. 오백령(吳百齡)의 증손자 오시수(吳始壽)가 공주에 터를 마련하면서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 정착한 후 전주이씨들은 마을의 80여 호 중에서 50~60 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탄천면 송학리는 함양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400년 전통을 잇고 있다.

탄천면 견동리는 전주이씨 세거지이다. 이곳에 전주이씨 집안의 계양군 자손의 집단 묘가 있으며, 지금도 그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탄천면 광명리 일대에는 연안이씨의 집성촌이 있다. 특히 광명리에 종산(宗山)이 있고, 1988년에 연안이씨 판사공파 선조의 제단이 설치되었다.

탄천면 유하리사곡면 신영리에는 함양박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특히 유하리는 함양박씨가 많이 거주하였던 곳이라 관련 유적도 남아 있다. 신영리의 경우 250여 년 전 박경혁이 처음 공주에 와서 자리를 잡았고, 한산이씨 딸과 혼인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반포면 공암리에는 이천서씨 집성촌이 있다. 고청(孤靑) 서기(徐起)[1523~1591]가 온천리 거북골에서 처음 자리를 잡았다가 고청봉 아래 공암으로 옮긴 후 강학 활동을 하였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계룡면 금대리에는 장기정씨의 집성촌이 있다. 장기정씨의 정승주가 은진송씨와 혼인한 후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주미동의당면 수촌리는 천안전씨가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수촌리에는 전성덕(全性德)이 처음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미동에 언제 왔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전몽우의 4세손 전효일의 일부 후손이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공주 주미골로 이주해 왔다고 전한다.

의당면 도신리에는 진주강씨 집성촌이 있는데, 조선 청백리였던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이 낙향한 후 그 후손들이 설봉공파로 정착하였다. 이곳에 강백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문정사도 있다.

유구읍 추계리 2구[추동]에는 남평문씨 가구가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한편 공주 일대에 넓게 분포한 집안도 있다.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종친의 수가 많은데, 공주에는 1,000여 명이 거주하고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넓게 분포하여 있다. 공주 지역의 경우 의당면가산리중흥리, 탄천면 송학리, 장기면 송선리, 금흥동, 월송동, 신기동, 정안면석송리, 월산리, 화봉리, 장원리 등에 분포하고 있다.

공주이씨는 정안면 운궁리 은학골, 계룡면 봉명리, 금성동[정자방], 유구읍 만천리, 우성면 신웅리 등지에도 살고 있다.

진주정씨 집성촌의 경우, 충장공파는 사곡면 호계리, 참의공파는 정안면 평정리, 연기파는 연기군 태천으로 나뉘어 살고 있다.

경주이씨의 집성촌은 크게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1607~1684]가 말년에 거주한 상왕동[中湖]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1341~1371] 후손들이 사는 탄천면 정치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이인면 이곡리, 발양리에도 경주이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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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공주의 집성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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