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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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維鳩邑同族村 |
영어의미역 | Yugu-Eup Single-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
집필자 | 이춘진,박범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집성촌.
[개설]
공주시의 다른 면들에 비해 유구읍의 동족 마을은 현저히 적은데, 이는 유구읍이 조선시대부터 양반의 고장이 아닌, 역이 있던 상권과 교통이 발달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동족촌은 유교적 가치관과 혈연적 유대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며, 마을 뒤편에 조상의 묘소, 그 아래에 종가와 재실이 자리하고, 마을 입구에는 숲과 장승 같은 상징물이 자리하는 구조를 가진다.
유구읍의 대표적 동족촌인 여드니는 해주오씨 집단이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1920년에 조사, 발간된 『조선의 성』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여기에 신하면 동족 마을로 노동리의 경주김씨와 밀양박씨가 나오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1988년에 출판된 『공주군지』에서는 유구읍의 세거 성씨로 신영리의 해주오씨와 입석리의 밀양박씨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1996년에 편찬된 『공주의 전통마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통 마을 하면 보통 동족 마을이고, 동족 마을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인문·자연환경적 예가 있다. 즉 마을의 뒤쪽 산 아래에 중요한 조상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에 종가와 재실이 있으며, 마을의 입구에는 숲과 장승이 있다. 여드니는 이러한 전통 마을의 예와 가장 흡사한 동족 마을이다.
여드니의 입향조는 해주오씨 오명수(吳命修)이고, 여드니 해주오씨들은 서하공(西何公) 오윤성(吳允誠)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오윤성의 큰 형이 바로 추탄이고, 조카가 유명한 3학사의 한 사람인 오달제(吳達濟)이다. 오윤성은 임진왜란 당시의 피난 일기인 『쇄미록(瑣尾錄)』의 저자 오희문(吳希文)의 4남 중 4자로 태어났고,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진천현감을 역임하였다. 오윤성의 원래 묘소는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로, 부친과 부친 형제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 신달리 지역으로 이장하였다가 다시 여드니로 이장하게 되었다.
오명수는 아산군 신창면 신달리에서 거주하다 충청수군절도사를 역임한 후 조상의 묘가 있는 이곳에 정착하였다. 해주오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전주이씨와 김해김씨, 청해이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해주오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을 떠났고, 선대의 묘소들도 이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여드니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해주오씨가 처음 묘를 이장해 올 때, 본래 여드니에 정착하여 살던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여 마을 앞쪽에 광대패를 부르고 마을 사람들이 구경에 몰두하고 있는 순간을 이용하여 묘를 이장하였다고 한다.
[현황]
여드니는 38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로, 마을의 중앙에 마을회관이 있고, 위친계, 동계 등의 사회, 경제적 결합과 함께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 안에 연자방앗간, 물레방앗간이 있어 농업 중심의 생활 기반을 형성했으며, 태봉산 아래에 해주오씨 입향조의 묘소와 재실이 있다. 현재 유구읍에서는 신영리 해주오씨를 제외한 동족 마을은 확인되지 않아, 여드니는 지역 내 동족 마을의 마지막 남은 사례로서 조선 후기 동족촌의 구조와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의의와 평가]
유구읍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동족 마을이 비교적 덜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유구읍의 여드니 일대는 조선 후기 해주오씨 집단이 정착하며 형성된 동족 마을로, 지역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