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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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 이용하의 문집. 이용하(李用夏)[1789~1874]는 명문대가의 후예였으나 문달(聞達)을 구하지 않았으며, 또한 세도(世道)가 점점 쇠락해져 감을 보고는 낙향하여 향리 공주 이인(현재 공주시 이인면 목동리)에 은거하였다. 이때 공자·주자·율곡을 삼대성(三大成)이라 일컬으며 성현(聖賢)의 종주(宗主)로 삼아 의지하며 학문을 게을리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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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정헌태의 문집. 정헌태(鄭憲泰)[1894~1974]가 작고한 후, 아들 정인희(鄭璘喜)가 정동휘와 더불어 정헌태의 유고를 정리하여 1987년 편집을 완료한 후, 문인 이병관·오창환 등과 힘을 합하여 1988년 6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하당사고(荷堂私稿)』는 6권 4책이며, 필사영인본이다. 권수제 및 판심제는 ‘하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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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청 서기는 생전에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학식과 재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와 얽힌 이야기 속에는 한결같이 그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신이한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 그와 관련한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고청봉 정기받은 마을 공암리』(2005) 책자의 250쪽 일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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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의 선계(先系)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중봉(重峰) 조헌(趙憲)은 1586년 공주제독을 지낼 때에 임금에게 올린 소장에서 그를 ‘양인(良人)’으로 표현했고, 서기가 만년에 공암에서 강학할 때 공주목사였던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는 서기의 출신이 ‘비미(卑微)하다’고 했으며, 서기의 벗이었던 수암(守菴) 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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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학문 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 기관. 서원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이다.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 때 서적 편수처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에서 유래하였고 제도로 정해진 것은 송(宋)나라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주자가 도학연마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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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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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효종(孝宗)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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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을 지낸 조시채(趙始采)이다. 1702년(숙종 2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과 정언을 지냈다. 1716년(숙종 42) 지평으로 있으면서 윤선거(尹宣擧)의 선정(先正) 칭호를 금할 것을 청하였다. 이후 장령과 헌납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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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향촌 자치 규약. 초려 이유태[1607~1684]가 향촌민의 통제를 위해 향약을 조직하고, 그 규약을 기술하였다. 규약은 오가통(五家統), 향촌 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창법(社倉法), 관학 교육으로서 학교 제도 등을 동시에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17세기의 조선 사회는 16세기 후반 이래 사회 변동이 계속되고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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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충청도 최초로 세워진 사액 서원. 공주시청에서 대전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8㎞ 달리면 공암이 나온다. 대략 27분여의 시간이 소요되며, 충현서원은 마을의 중앙에 있다. 충현서원은 고청 서기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기는 출신적인 한계를 딛고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인물로, 노년기에 이곳에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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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에 있는 서원 사적비. 충현서원 사적비는 충현서원(일명 공암서원) 안에 있는 서원 사적비로, 1712년(숙종 38) 연천의 임장서원에서 주자의 화상을 모사해와 신판 뒤에 봉안한 과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때 충현서원이 소실되는 과정 속에서 주자 화상 또한 불타 없어졌다. 이후 중건되었으나 주자의 화상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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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의 제향은 일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행해진다. 일자는 매년 음력 4월과 10월의 중정일(中丁日)인데, 여기서 중정일이란 한달 중 간지에 두 번째 ‘정(丁)’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2007년 10월 30일(丁酉) 오전 11시부터 12시 30분까지 충현서원에서 행해진 가을제향에는 공주시장을 비롯하여 공주시의원, 충현서원의 이사장을 비롯한 집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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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은 주자영정을 모신 사액서원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부임하는 지방관은 물론 경향각지 유림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충현서원 소장문서인 『심원록 尋院錄』에는 광해군 3년(1611)부터 연산의 돈암서원이 사액 받는 현종 원년(1660)까지 50년간 충현서원을 방문한 854명의 유림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을 분석해 보면, 우선 지방관의 서원 방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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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주희의 초상. 주희(朱熹)[1130~1200]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주자(朱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살아생전 초상화를 여러 차례 그리도록 했으며, 죽은 후에는 후학들이 그의 초상을 보고 그의 업적을 찬미하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명나라 대부터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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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충현서원의 유적. 1581년(선조 14) 학자 서기(徐起)[1523~1591]가 주자(朱子)를 추모하기 위해 ‘박약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이존오(李存吾)·성제원(成悌元)·이목(李穆)의 위패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복원하고, 1624년(인조 2) 조헌(趙憲)을 추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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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의 창설당시에는 주자를 주향으로 석탄 이존오·한재 이목·동주 성제원을 배향하였다. 1628년에는 고청 서기를 별사에 제향하였으며, 효종조 중봉 조헌을 시작으로 사계 김장생,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 4인을 추향하였다. 처음부터 배향된 배향인물 3인의 행적과 배향동기는 다음과 같다.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341-1371]는 고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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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청 서기가 죽은 다음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공암서원은 폐허화되었다. 이것을 광해군 2년(1610)에 중수하게 되는데, 이때 중수를 주도한 인물은 서기의 문인들이었다. 중수당시 서원의 원장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박로(朴輅)였고, 그 외 박희성(朴希聖)·박희철(朴希哲)·민재문(閔在汶)·박고(朴卨+木)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공주향교 『청금록』에 등재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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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마을의 중심지에는 기와담장에 둘러싸인 오색단청을 한 전통가옥이 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뒷뜰에 있는 수백년 수령의 여덟 그루 단풍나무가 타는 듯이 붉게 물들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찾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 않은데, 이곳이 바로 충청남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원, 충현서원(忠賢書院)이다. 충현서원이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