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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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년(우왕 3)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옛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공주의 금강루에 올라 지은 한시. 「제공주금강루」는 작자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7, 공주조에 실려 있다. 정도전이 1375년(우왕 원년)에 친원정책을 반대하여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에 금강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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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에서 올리는 산신제와 여제(厲祭). 가교리의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승과 팔월 말에 길일을 잡아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관, 축관, 제주(일명 화주)를 선정한다. 제물은 고기(생 것), 떡, 과일 등을 마련하여 올린다. 가교리의 거리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동네 어귀에서 지낸다. 제물은 떡, 과일 등으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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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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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안에 있는 조선 중기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北門樓).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공북루는 금강에 인접하여 있다.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인 공북루가 있었던 곳에는 원래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다. 1530년(중종 25)에 증보(增補)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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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공주의 세거 성씨. 시조 이천일은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왕 5) 중국 한나라로 가서 뛰어난 문명으로 대장군에 올라 흉노적을 정벌한 공훈으로 요동백에 봉해졌다. 환국 후 공산군에 봉해진 이천일은 그때부터 공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전기 지리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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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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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서 정월 대보름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탄천장승제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1989년 12월 29일에 지정되었다. 공주탄천장승제는 송학리의 소라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길일을 축원하는 마을 축제이다. 특히 축원에 의하면 칠성(七姓) 즉 공주의 토성(土姓)이 그 대상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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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45리에 있다. 설장수의 시에 ‘아침 해 둥그렇게 뜨자 광정역을 떠나니, 흰 구름이 깊숙이 일만 산 푸른 것을 깊이 감추었네. 들꽃 난만히 주인 없이 피어서 봄빛을 단장하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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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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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단평역은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존재하였던 조선시대 중요한 역참이다. 역참은 주요 도로 30리마다 존재하였으며, 단평역은 공주의 다른 역참인 이인역·경천역·광정역·유구역과 함께 중요한 도로 교통망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은 여섯 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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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동혈사가 있는 천태산은 ‘동혈산(銅穴山)’, 혹은 ‘동혈산(東穴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절 이름도 지금처럼 ‘동혈사(銅穴寺)’로 부른 것 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공산지(公山誌)』에는 ‘동혈사(東穴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동혈사가 공주 지역의 혈사(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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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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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것은 단군시대부터라고 하며,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고조선 때에 왕족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귀족 관료층을 중심으로 성씨가 일반화되고 고려시대에 본관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본관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동일한 성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거성(巨姓)의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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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신풍산성이 있는 곳은 나지막한 구릉으로, 해발 110m에 해당되며, 전체 성벽의 둘레는 약 350m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신풍산성을 “신풍현 남쪽 3리 지점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7백 1척이다,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벽은 토축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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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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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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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공주 출신의 지사.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경장(敬章)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정승 이사손이고, 아버지는 전공판서 충청공 이엽(李曄)이다. 조선 각 시기에 간행된 읍지류에 등록된 가문을 보면, 공주이씨는 전주이씨를 비롯하여 부안임씨, 김해김씨, 여흥민씨 등과 더불어 공주의 유력 성씨 및 명족의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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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던 역원이다. 고려 때부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산하의 9개 역을 관할하였다. 이인면은 한양과 호남으로 통하는 대로에 있어 백제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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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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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지방관의 예헌(禮獻)으로 임금에게 올리던 토산물. 진상이란 임금에 대한 지방관의 예헌으로 관할 구역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을 상납하는 제도이고, 공물(貢物)은 국가의 재정 수요에 충당하기 위해 지방의 토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토산물을 상납한다는 점에서는 진상물과 공물이 같은 성격을 지닌다. 조선시대에는 각 도의 감사, 수사, 병사, 계수관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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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가산리에 있는 산. 산이 수려하고 정기가 있으며, 명당의 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천태산이라 불리운다. 온 산의 바위가 모두 구리빛으로 빛나고, 바위마다 구멍이 뚫려 있어 동혈산(銅穴山)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천태산이란 이름보다는 동혈산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운다고 한다. 천태산은 공주시가지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금강 북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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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관찰사가 파견되어 직무를 보던 관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공주 지역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등급에 따라 중앙으로부터 부윤(종2품), 군수(종4품), 현령(종5품), 현감(종6품) 등의 수령이 파견되었다. 공주 지역에는 충주·청주·홍주와 함께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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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유교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인 삼강을 의미하는 충효열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였던 조선시대의 전 기간·전 지역에 걸쳐 강조되었던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충신·효자·열녀를 최고의 도덕을 갖춘 인간으로 여기는 이와 같은 덕목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더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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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백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의 회맹을 위해 취리산 정상부에 쌓은 제단의 터.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 체제로 운영되는 백제가 영토를 유지하며 신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665년 8월 유인원의 주재로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화친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그리하여 웅진, 즉 지금의 공주에 있는 취리산 정상에 제단을 쌓고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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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공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토성(土姓)이라는 말은 그 지역의 영토를 뜻하는 ‘(土)’와 성씨를 뜻하는 ‘성(姓)’이 합쳐진 말로, 그 지방에 토착하면서 그곳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을 말한다. 즉 토성은 그 지역의 읍사(邑司)를 구성하는 지배 세력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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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각. 공주시 중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1.08㎞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옥룡동주민센터가 있다. 그 뒤편 언덕에 효자 이복 정려비각이 있다. 효자 이복 정려비각은 원래 옥룡동 비선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8년 이복의 효를 알리기 위해 발기인 이치하와 옥룡동 노인회가 현재의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