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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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平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조선 시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 있던 역원.
[개설]
역원(驛院)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신구 관찰사와 감사의 교대 장소, 사신 경유지, 수령을 맞이하는 장소 등 지방 행정의 공식적인 행사나 공무 및 일반 여행자에 대한 편의 제공의 복합적 기능이 수행되었던 건물이었다.
[관련기록]
『칠곡지(漆谷誌)』에 의하면 고평역(高平驛)은 “칠곡부 남쪽 1리(里)에 있는 퇴천방(退川坊)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대구 범어역(凡於驛)과 떨어진 거리가 30리이고 서쪽으로 인동 양원역과 떨어진 거리가 70리이다. 중마(中馬)가 2필(匹)이고 복마(卜馬)가 9필이고 역리(驛吏)가 72명이다. 김천도(金泉道)에 속한다. 참발소(站撥所) 위쪽으로 양원역과 떨어진 거리가 70리이고 아래쪽으로 대구와 떨어진 거리가 30리이다. 발장(撥將)이 1인이고 발군(撥軍)이 15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주목에는 “팔거현(八莒縣) 서쪽 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대마는 없고 중마 2마리, 복마가 6마리가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서울에서 부산 동래까지 이어지는 영남 대로는 양재도(良才道), 연원도(連原道), 유곡도(幽谷道), 김천도, 성현도(省峴道), 황산도(黃山道) 등 6개 역도로 구분되었다. 고평역은 김천도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시대 역도 및 역로는 도로의 중요성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등급이 나누어진다. 등급에 따라 역마(驛馬) 역시 대마, 중마, 소마로 나뉘고 대로, 중로, 소로 순서에 따라 역호 수도 비례하였다. 등급에 따르면 고평역의 경우 소로에 속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역마의 수효가 격감하여 역호 수가 대로에 해당된다 해도 역마의 수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경상북도 칠곡군 역둔 전답 도세 영정 성책(慶尙北道漆谷郡驛屯田畓賭稅成冊)』에 의하면 고평역은 양반 지주들의 토지 잠식이 심했던 곳이었다. 1900년대 초에 이미 고평역의 토지는 도씨(都氏), 배씨(裵氏), 소씨(蘇氏) 등 양반 지주의 소유가 되었고 나머지 김씨(金氏), 이씨(李氏) 등은 대부분 소농 및 빈농이었다.
[현황]
고평역은 『칠곡지』에 “부 남쪽 1리에 있는 퇴천방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퇴천방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로 편입되기 전 칠곡군 칠곡읍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