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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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 |
영어의미역 | Gimnyeo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평장리|석적읍 포남리|약목면|북삼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평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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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칠곡군 왜관읍[평장목]|석적읍 포남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1600년경 |
성씨 시조 | 김시흥(金時興) |
입향 시조 | 김후복(金厚福) |
[정의]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후복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연원]
김녕김씨의 시조는 문열공(文烈公) 김시흥(金時興)으로 김시흥(金時興)이 금주군(金州君)[현재 김해]에 봉하여진 연유로 김해의 고호(古號)인 김녕(金寧)으로 본관을 삼았으나 김해김씨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신라 경순왕의 후예가 된다.
[입향 경위]
약 400여 년 전에 칠곡에 들어와 왜관읍 평장리[현 왜관읍 왜관리]와 석적읍 포남리에 집성을 이루어 살았다. 약목면 동안리와 북삼읍 일원에도 살고 있다. 약목면 동안리 입향조는 김덕학(金德鶴)의 미망인 동래정씨가 어린 김극량(金極良)을 데리고 오평리로 들어와 살다가 동안리에 이거하여 살게 되었으므로 동안리 입향조는 김극량이다. 평장리에는 이조 판서를 역임한 백촌공(白村公)의 뜻을 기려 취사재(聚斯齋)를 건립하여 얼을 추모하고 있으며, 사육신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8세 손인 김후복이 칠곡 입향조이며 그 아들인 김정소(金正素)가 칠곡 여우골[현 석전리]에서 평장리[현 왜관리]로 옮겨와 정착함으로서 마을이 형성되어 현재까지 집성촌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후손들이 김시흥(金時興)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고려 말 관직인 평장사(平章事)를 마을 이름으로 하여 평장리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현황]
인구 주택 총조사 때의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690여 가구, 2,200여 명이 칠곡군 내에 살고 있다. 근래에는 약목면 동안리 입향조 김극량(極良) 후손은 북삼읍 약목리 기산에 약 150여 세대가 산거하고 있다. 왜관읍 왜관리[평장리]에는 20여 가구, 60여 명이 살면서 옛 집성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추모지소인 취사재(聚斯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