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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55
한자 李命雄
영어음역 Yi Myeong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미상
성별
생년 1590년연표보기
몰년 1642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대표관직 목사

[정의]

조선 중기 칠곡에 있는 가산산성을 축조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정이(挺而), 호는 송사(松沙).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는 전주이씨완창부원군(完昌府院君) 이성중(李誠中)의 손자이고, 완흥군(完興君) 이유징(李幼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예문관검열 조확(趙擴)의 딸이다.

[활동사항]

1626년(인조 4)에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나아가 동궁세마(東宮洗馬)가 되고 같은 해 9월에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 정언·고성현령·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 등을 역임하였다. 1631년에 평안도순찰사로 나아가 성첩(城堞)을 수축하고 군량을 저장하여 방비를 튼튼히 하고 돌아와서 국경 지대의 정형을 자세히 보고하여 국방 대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1636년에 지평으로 대청 강경책을 진언하고 같은 해 겨울에 호란(胡亂)이 일어나자 사간으로 남한산성에 성하의 양곡을 실어 들여 전쟁 방어 대책을 확립하고 군심을 격려할 것을 계청하였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된 뒤에는 자청하여 세자를 따라 청나라로 가서 보좌·주선한 공이 있었다.

청에서 돌아온 후 대사간·부재학·경상도관찰사·예조참의 등을 지냈는데, 경상도관찰사 재임 때인 조선 중기 왜란과 호란을 경험함으로서 조야(朝野)에서 국방 태세의 재정비가 고조되었다. 비변사를 중심으로 산성(山城) 수축을 결정할 때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이명웅가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상계하여 허락받고, 1640년(인조 18) 9월부터 성을 쌓기 시작하여 다음 해 4월에 가산산성의 내성(內城)을 준공하였다. 그러나 거대한 산성을 축조함에 있어서 막대한 인력과 자금 소요로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 1641년(인조 19) 7월에 타직으로 전보되었다. 그 후 홍주목사로 재임 때 임지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완양군(完陽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6.13 인명 자 한자 수정 珽而 -> 挺而
이용자 의견
파** 이명웅의 자는 挺而이오니 수정 부탁드립니다.
  • 답변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의견을 검토하여 해당 한자를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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