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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들 강선(姜銑)과 강현(姜鋧)도 문과 출신이다.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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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여수(汝垂), 호는 옥계(玉溪)이다. 강극성(姜克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종경(姜宗慶)이고, 아버지는 현령 강진명(姜晉眳)이며, 어머니는 안봉(安鳳)의 딸 충주안씨이다. 부인은 박유헌(朴由憲)의 딸 함양(咸陽)박씨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에 소속되었다. 승정원 주서와 성균관 전적 및 병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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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경진(慶珍)의 아들이다. 경대승(慶大升)의 동생은 이소응의 사위이다.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가사를 돌보지 않았다. 15세에 음보로 교위(校尉)가 되었으며 뒤에 장군에 이르렀다. 아버지 경진은 욕심이 많아 남의 토지를 빼앗아 재산을 많이 모았는데, 그가 죽자 경대승이 토지를 모두 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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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재상.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우대언(右代言) 경사만(慶斯萬)의 아들이다. 아들에 경보(慶補), 경진(慶臻), 경의(慶儀)가 있다. 1354년 군부판서(軍簿判書)로 등용되었으며,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를 역임하였다. 지정사상의(知政事商議)로 승진하였는데, 이때 경성수축을 논의하자 그가 정세운, 유숙과 더불어 “병란과 기근으로 인하여 만일 축성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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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85년(충렬왕 11) 지공거 설공검(薛公儉) 밑에서 문과에 급제해 문한서(文翰署)에 속하였다. 충직하고 문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예(郭預)[1232~1286]의 손자이며,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지태(郭之泰)가 있고, 손자에 곽충수(郭忠秀)가 있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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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열(郭說)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원(郭垣)과 곽여(郭輿)[1058~1130]가 있다. 처음에는 청주의 향리였으나 선종(宣宗)을 잠저 시절에 섬기었는데, 선종이 즉위하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거쳐 추밀원(樞密院) 좌승선(左承宣)에 이르렀다. 1086년(선종 3) 전중소감(殿中少監)으로 요나라에 토산물을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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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몽득(夢得)으로 곽상(郭尙)의 아들이다. 어려서 꿈에 어떤 사람이 여(輿)라고 명명하였으므로 이름을 삼고 몽득으로 자를 삼았다. 어려서부터 맵고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싫어하고 항상 홀로 한방에 거쳐하여 학문에 힘썼다.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內侍府)에 속했다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홍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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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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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996년(성종 15)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1011년(현종 2)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를 역임하였고, 1015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토산물을 바치고, 겸하여 거란이 해마다 내침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해 줄 것을 청하였다. 1016년 형부시랑(刑部侍郞)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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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안부(岸夫)이며, 호는 용촌(龍村)이다. 청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곽기(郭琦), 어머니는 진자기(晋自奇)의 딸 진주지씨(晋州池氏)이다. 할아버지는 곽수원(郭綏元), 증조할아버지는 곽윤성(郭允誠)이다. 부인은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의 딸 평산신씨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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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은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한다. 청주성 점령 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곽장을 목천현감으로 삼았다. 곽장은 이인좌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을 함락하고,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란진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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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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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무관. 1881년 11월 28일부터 1882년 8월 1일까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근대 개항기 고종(高宗) 때의 무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인여(藺汝), 호는 미산(渼山)으로 능성구씨 도원수파(都元帥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구병일(具秉一),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생모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이며,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일찍이 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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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계의(季依)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굉(具宏)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조정(趙玎)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부친이 되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였으며,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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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1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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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의 가담인물로 양성 출신이다. 양성에서 300여 명의 군사를 모은 뒤,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군과 합치기로 하고 청주 경내로 들어와 거짓으로 장례를 지낸다고 하면서 상여에다 병기(兵器)를 실어 청주성 앞 숲속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 1728년 3월 15일에 이인좌 군과 더불어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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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권부언(權孚彦)이다. 1816년(순조 1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으며, 1834년 경모궁(景慕宮)에서 작헌례를 행할 때 통례(通禮)로서 힘을 쏟아 통정(通政)을 가자(加資) 받았다. 관직은 사헌부지평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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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아들이다. 1386년(우왕 12) 전법판서(典法判書), 동북면 안무사(東北面按撫使)를 거쳐, 1388년 밀직부사, 청주목사 겸 원사를 지냈다. 조선건국 후인 1396년(태조 5)에 삼사 우복야(三司右僕射)가 되었다. 고려 말 우왕 때 권화가 청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고성(固城)의 이금(伊金)이라는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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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인근 출신의 인물. 928년(태조 11)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에 보낸 글에 간단히 언급된 인물이다. 즉 연산군(燕山郡) 지경에서 길환(吉奐)을 목베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길환은 친 견훤의 정치적 입장을 보인 인물로서 고려의 왕건에 의해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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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아(仲雅)이다. 아버지는 김계(金堦),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이다. 생부(生父)는 김지(金墀)이고, 할아버지는 김종손(金宗孫)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환(金丸)이다. 부인은 이달선(李達善)의 딸이고, 조카는 김계현(金繼賢)이다. 1513년(중종 8) 계유년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4등으로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15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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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회여(晦汝), 호는 수북(水北)이다. 할아버지는 김극효(金克孝)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며, 어머니는 권송(權悚)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진사 양과에 모두 합격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판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인재로 뽑혀 연원도 찰방(察訪)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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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형 김환(金桓)과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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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국서(國瑞)이다. 청주 출신으로 김인로(金仁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달현(金達玄)이고, 아버지는 김유성(金維城)이며, 어머니는 신진문(申進文)의 딸이다. 부인은 최일주(崔一柱)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 하였다. 급제 당시 왕세자가 춘도기 유생(春到記儒生)의 시험을 춘당대(春塘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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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재경 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했을 무렵 수도에 있던 청주 출신의 인물이다. 태조가 즉위 초에 청주인의 동정을 살피려고 청주 출신의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을 청주에 보냈는데, 능달은 믿을 만하다고 말했으나, 문식과 명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김근겸(金勤謙)에게 말하였다. 그런 사실에서 김근겸은 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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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기(汝器)이다. 청주 출신으로 김하서(金河瑞)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김악춘(金樂春)의 딸 순천김씨(順天金氏)이다. 부인은 강명윤(康明胤) 딸 신천강씨(信川康氏)이고, 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공연(金公衍)이다. 1615년(광해군 7) 소과의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21년에 실시한 문과 알성시(謁聖試)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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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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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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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숙종 때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본래 충직하였으며,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반란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자 지팡이를 이끌고 나아가 반란군을 향하여 “네 어찌 감히 국은(國恩)을 잊고 이에 이르렀느냐” 하고 호령하다가 살해당하였다. 1763년(영조 39)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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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과 더불어 창의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7일 충청도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금산의 칠백의총에 묻히고, 비가 세워졌다.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에는 의병장 조헌에 대한 기록과 함께 김선복에 대한 사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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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어머니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할 때였다. 무신란의 소식을 접하고는 상당성(上黨城)에 나가 역적들을 토벌하고, 그 공으로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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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충신이다. 의병 17인을 이끌고 역도의 무리 중에서 군교(軍校) 한진흥(韓震興)을 베고 역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당초에는 녹훈에 이름이 빠졌으나, 1788년(정조 12) 무신년에 종정(從征)한 장사(將士)로서 생존한 사람과, 의를 지켜 순국(殉國)하였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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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량경(亮卿)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성천부사를 역임한 김언(金琂)이고,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김낙서(金洛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부인은 이후응(李後膺)의 딸 전주이씨이다. 충주 출신으로 1654년(효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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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신.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 절개를 지킨(節臣) 사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기오(箕吾)이고 청주 출신이다. 비안현감(比安縣監)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며,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의 종제이다.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훈련원(訓練院) 첨정(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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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선조 때 무과에 등과하여 관직에 나갔다. 임진왜란으로 왜적이 침입할 당시 경상남도 거제 지세포(知世浦) 만호로 있을 때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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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여윤(汝潤)이다. 진사 김낙서(金洛瑞)의 아들이며 지평(持平) 김욱(金頊)의 아우로 청주 출신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進士)가 되었다. 1615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된 뒤 폐모론(廢母論)에 가담하지 않아 승진이 늦어 7~8년 뒤 겨우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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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계술(季述), 호는 청호거사(淸湖居士)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냈고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증직된 김홍경(金洪慶)이며, 숙종조의 우의정을 지낸 김우항(金宇杭)은 그의 형이다. 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 증조할아버지는 김진선(金盡善)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며, 장인은 절제사(節制使)를 지낸 신득수(申得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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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이정(而靜)이다. 아버지는 김벽(金鼊)이고, 어머니는 정경(鄭經)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김수장(金守長)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학수(金鶴壽)이다. 부인은 전홍국(全弘國)의 딸 천안(天安)전씨이다. 충청도 충주 출신이다. 1590년(선조 23) 소과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후 종9품 참봉(參奉)으로 있다 1601년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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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김의순은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지냈다. 읍인(邑人)이 사우를 세우고 초상을 봉안했다고 『청주읍지(淸州邑誌)』(헌종대 편찬)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사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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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에 이르렀다. 적가청(籍賈廳)을 신설하여 민폐를 덜어주었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하여 비를 세웠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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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계묘에 무과에 등과하여 두루 무반직을 역임했다. 1605년에 무겸 선전관(武兼宣傳官) 직책을 맡아 근시(近侍)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박천군수(博川郡守)로 있으면서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적과 대치하던 중 갑자기 목에 병이 생겨 군중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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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효자.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위경(衛卿)·등가(登可)이다. 좌의정(左議政) 김사형(金士衡)의 증손(曾孫)이며, 김종숙(金宗淑)의 아들로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고, 1454년(단종 2) 음보(蔭補)로 선공감(繕工監) 녹사(錄事)가 되었다. 이후 춘천부사(春川府使)·군기감정(軍器監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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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강원도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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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충신. 조선시대 유학자이며, 문신(文臣)이다.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며, 자(字)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이다. 1486년(성종 17) 정랑(正郞) 김효정(金孝貞)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0세에 사서(四書)에 능통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1507년(중종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하여 정언(正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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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유인(猶人)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치기(金致基)이며, 어머니는 신담(申澹)의 딸 고령(高靈)신씨이다. 생부는 김치서(金致瑞)이고, 생모는 이사검(李思儉)의 딸 한산이씨이다. 할아버지는 김승노(金承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규(金槼)이다. 부인은 이인정(李寅挺)의 딸이다. 1805년(순조 5) 성균관에서 공부 중 문과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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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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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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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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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청주 출신으로 자는 문보(文甫)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박사를 역임한 김응구(金應龜)이고, 어머니는 노경기(盧景麒)의 딸 교하노씨(交河盧氏)이다. 할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정랑을 지낸 김광우(金光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치련(金致璉)이며, 부인은 박의신(朴義信)의 딸 창원박씨이다. 이조참판을 지낸 김질간(金質幹)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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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목사(牧使)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하니 역도의 무리들은 이인좌를 대원수라 칭하고, 신천영(申天永)은 병사(兵使), 권서봉(權瑞鳳)은 목사로 가칭하여 청주를 쉽게 점령해 버렸다. 청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들은 김천장은 진천 방면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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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청주 목사. 남행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청주목사 재임시에 보역청(補役廳)과 해원청(解寃廳)을 신설하여 군민(軍民)·승도(僧徒)의 폐를 제거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 가대울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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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호(號)는 삼함당(三緘堂)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1576년(선조 9)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돌리어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의병 5백 명을 이끌고 충주(忠州), 죽산(竹山) 경계에 포진하여 관군과 함께 왜적과 싸워 크게 전공(戰功)을 거두었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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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효우(孝友)가 지극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자 그 해 3월 18일 발군(發軍)하여 적당을 소탕하기로 마음먹고 경기도 안성 죽산으로 향하여 3일간 머물렀으나,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 충절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어 충신문(忠臣門)을 세워졌고 아울러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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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무관. 1725년(영조 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에 역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벼슬이 병사(兵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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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김공예(金公藝)의 현손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얼굴과 모습이 웅위하고 힘이 장사였다.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인조 임금이 공주로 피난 갈 때 왕을 호종(扈從)하였던 공으로 선전관(宣傳官)에 특별히 제배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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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동생 김규(金糺)와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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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행원(行源)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승지를 지낸 김세정(金世鼎)이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윤인(尹認)·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고부천(高傅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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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청주 출신으로 1665년(현종 6) 을사년 무과에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관직이 군수에 이르고 3개 군을 두루 거쳤으나 물욕이 없어 가족들의 배고픔을 면치 못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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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안정(安定)이며, 자는 무숙(茂叔)이다. 아버지는 나인(羅紉)이고, 어머니는 조찬(趙璨)의 딸 임천(林川)조씨이다. 할아버지는 나윤충(羅允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나빈(羅濱)이며, 문과에 합격하여 세자시강원 설서를 지낸 나만기(羅萬紀)와 나만원(羅萬元)의 동생이다. 부인은 민건(閔楗)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1653년(효종 4) 계사년 문과(文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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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조선 성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막다 전사하여 충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광원(光遠), 호는 퇴수헌(退修軒)이다. 시조(始祖)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나천서(羅天瑞)의 6세손이며 나유선(羅裕善)의 셋째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학행과 무술이 뛰어났으며, 특히 궁마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그릇된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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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회재(繪哉)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한고(羅漢皐)이고, 어머니는 이세현(李世賢)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나일진(羅一鎭)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나치학(羅致學)이다. 부인은 신필록(申必祿)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실시된 문과 식년시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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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이다. 할아버지는 남식(南烒), 증조할아버지는 남타(南柁)이다. 아버지는 남일성(南一星)이고, 어머니는 권박(權瞨)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659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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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군망(君望)이다. 아버지는 남응호(南應浩)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등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다. 관직이 군수(郡守)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때 공을 세워 영국원종공신 1등(寧國原從功臣一等)에 녹훈되었다. 봉명리의 후손 남태희(南台熙) 댁에 병자호란 당시 사용하던 보검이 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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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무신란(戊申亂) 때 순절한 충신. 1728년 무신란 당시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군(叛軍)의 회유를 물리치고 순절하여 충절로 이름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수백(壽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남홍달(南弘達), 할아버지는 증사복시첨정(贈司僕寺僉正) 남유경(南有慶),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된 남두명(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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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강무공(剛武公) 남은(南誾)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1606년(선조 39)에 무과에 등제하여 관직에 나가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고, 최고 관직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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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교하(交河)이며, 자는 여화(汝和)로 청주 출신이다. 병자호란 때 아우 노극시(盧克時)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의 진에 이르러 싸웠으나 관군이 크게 무너지므로 단삼(單衫)에 혈서하여 말에 붙이고 형제가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말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혈서에 ‘군신의 죄가 중하여 처자와 인연을 끊는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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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사장(士章)이며, 호는 죽정(竹汀)이다. 교하노씨(交河盧氏) 경원군파(慶原君派)의 인물로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 일대였다. 아버지는 노극리(盧克履)이고, 할아버지는 체화당사에서 제향하는 노종원(盧從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노경기(盧景麒)이다. 장인은 조식(趙湜)과 송희원(宋希遠)이며, 아들은 노서(盧序), 형은 노영한(盧英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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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무신. 청주를 기반으로 했던 호족으로서 왕경에 초치된 인물로 보인다. 궁예(弓裔)가 청주 주민을 철원에 이전시킨 이래 이미 청주를 떠나 상경하여 종사하는 세력과 아직 토착해 있는 현지세력이 상호 시기·반목하였으며, 지방 세력 내부에서도 대립하였다. 태조(太祖) 왕건(王建)과의 관계에서 청주세력은 충역(忠逆)이 무상하였다. 태조는 즉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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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관리.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냈을 때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하던 태조는 재경청주인 문식(文植)·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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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사천(泗川)으로 경기도 양성 출신이다. 무신란에 이인좌(李麟佐) 군의 진용도위(進勇都尉)로 3월 15일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군관 홍림(洪霖)[1685~1728]을 살해하고 청주성을 장악하는데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는 대원수를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고 반군을 편성한다. 이때 목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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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재경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태조는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해서 재경청주인 명길, 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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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진구(閔鎭龜), 할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 증조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 외할아버지는 홍호(洪鎬)였다. 형으로 민약수(閔若洙)와 민정수(閔正洙)가 있었으며, 아들은 민백유(閔百有), 민백만(閔百晩), 민백익(閔百益)의 3형제를 두었다. 통덕랑(通德郞)으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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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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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이견(而見)이다.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으로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민명중(閔明重)이고, 할아버지는 민광석(閔光晰)이다. 동생으로 민진구(閔鎭龜)와 민진혼(閔鎭混)이 있었으며, 두 아들을 두었다. 1678년(숙종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도사(都事)와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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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관리.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음사(蔭仕)로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발하자 청주의 반란군들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사로잡혔다. 창의(倡義)로 인하여 가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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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당진현감을 지낸 민제영(閔齊英)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민광안(閔光顔)이고, 할아버지는 민목견(閔木絹)이다. 형은 민태석(閔泰碩), 동생은 민태항(閔泰恒)이다. 1705년(숙종 3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과 군수(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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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이다. 주부 박인량(朴仁亮)의 손자이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증손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장령·동래부사에 제수되었고, 1622년 청주목사가 되었다.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개하고 고집이 세어, 공론에 맞지 않으면 권귀(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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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선 중기의 사림(士林)으로 예(禮)의 실천과 기개로 이름났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로 화를 입어, 사후 서원에 배향되었다. 본관은 상주(尙州)로 자는 국이(國耳)이며, 호는 필재(蓽齋), 잠소당(潛昭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생원 박린(朴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장유성(張有誠)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 장씨(張氏)가 서실 3칸을 세우고 네 아들을 교육함에 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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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혜백(惠伯)이며, 호는 호은(湖隱)이다. 거주지는 흥덕구 강서동이었으며, 아버지는 박세경(朴世卿), 할아버지는 박이진(朴以震),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명(朴定命)이다. 형으로 박민창(朴敏昌), 동생으로 박민호(朴敏昈)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남학한(南鶴翰)이다. 1721년(경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며, 1725년에 증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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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신. 자는 자중(子仲)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도량이 넓고 후덕하였다고 전하며, 내금위(內禁衛)의 선략장군(宣略將軍)과 충무위(忠武衛)의 부사직(副司直)을 지냈고,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내곡리 대산(大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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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박석명은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조카이다. 1555년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修身面)에서 태어났다. 1574년(선조 7) 무과에 합격하였다. 개천군수(介川郡守)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공을 세워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자질이 날래고 용맹하였으며 기개가 대단하여 왜적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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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상초(尙初)이다. 영의정 박난(朴蘭)의 아들이며, 박인원(朴仁元)의 형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의 권지정자(權知正字)에 등용되고,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수찬(修撰), 교리(校理),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다.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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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때 청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영의정 박란(朴蘭)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고 있던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나이 21세였다. 1592년 왜군이 청주성까지 진격하자 청주성에서 전투가 크게 벌어졌는데, 7월 28일 전사하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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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후이(厚而)이다. 승지(承旨) 박순원(朴舜元)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창동(朴昌東), 할아버지는 박체소(朴體素)이다. 박계환(朴啓煥)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외할아버지는 유언침(兪彦琛)이다. 1771년(영조 47)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4인(人)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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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향(聖鄕), 호는 농아재(聾啞齋)이다.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 출신 타고난 기개와 큰 도량(度量)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담력이 있었다.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였고, 의분(義憤)이 대단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성 또한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일명 무신란) 청주를 주 무대로 난을 일으키자 당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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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청주 우후(虞侯)로 있던 박종원(朴宗元)은 무신란으로 청주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투항하여 반란군의 영장(營將)이 되었다. 박종원은 이인좌(李麟佐)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으로 진격하여 함락하고, 4, 5초(哨)의 병력을 거느리고 안성 청룡산 가지곡(加之谷) 대촌(大村)에서 죽산의 반란군이 오기를 기다리다 관군에게 발각되어 전투 끝에 현지에서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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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희인(希仁)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8세손으로, 눌재공파의 파조(派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박미(朴楣), 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증조할아버지는 박절문(朴切門), 외할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처부는 박영달(朴英達)이다. 아들 박훈(朴薰)[1484~1540]은 기묘명현(己卯名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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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임진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현손으로 삼대 창의(倡義)의 충절을 자랑한다. 어릴 때 『삼국지(三國志)』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를 외우고 감상하길 즐겼다. 1727년(영조 3)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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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여우(汝雨)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청주에 처음 정착한 장연현감(長淵縣監) 박계달(朴季達)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안검(朴安儉), 할아버지는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낸 박천귀(朴天龜)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박태장(朴泰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71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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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 출신으로 소과와 대과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숙길(夙吉), 호는 월탄(月灘)이다. 밀성군(密城君) 박광영(朴光榮)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박정직(朴廷稷)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죽산박씨(竹山朴氏)로 정랑(正郞) 박지문(朴之文)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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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과 가계가 미상이다. 형 박춘훤(朴春萱)과 동생 박춘련(朴春蓮)이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림산(東林山)으로 피신한 것으로 보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형 박춘훤, 동생 박춘련과 더불어 3형제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족과 형제가 모두 동림산 북쪽 광대동(光大洞)으로 피난을 갔는데, 갑자기 왜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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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사빈(士彬)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린(朴廷麟)[1607~1655], 할아버지는 박세대(朴世大), 아버지는 박수의(朴守義)이다. 어머니는 유시관(柳時觀)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아내는 김옥(金沃)의 딸 안동김씨이다. 1723년(경종 3)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7명 중으로 하나로 합격하였다. 영조(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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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사이(士邇)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호(朴廷虎),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증직된 박수기(朴守基),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생원(生員) 이양진(李陽進)의 딸이다. 몰년(沒年)에 대해 다른 기록에는 1764년(영조 40)이라 한 곳도 있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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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의 세거대족(世居大族) 출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초명(初名)은 치원(致遠), 자는 사이(士邇), 호는 읍건재(泣愆齋)·손재(巽齋)이다. 기묘사림으로 활약하던 박훈(朴薰)[1484~1540]의 7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표(朴廷彪)[1618~1662],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이다. 아버지는 감역관(監役官) 박수기(朴守基)이며,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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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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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노론의 대표적 인물.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계심(季心), 호(號)는 일휴(逸休)로 강수(江叟) 박훈(朴薰)[1484~1540]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참봉 박세증(朴世拯)의 아들로 외할아버지는 이여절(李汝晢)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6인으로 합격하였다. 1711년 가주서(假注書)를 시작으로, 부사정(副司正),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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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소과·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청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字)는 백원(百源)이며, 호(號)는 진천(眞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심(朴諶), 할아버지는 박세필(朴世弼)이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박정(朴淨)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생원 채응상(蔡應祥)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소과(小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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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기묘명현(己卯名賢).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형지(馨之)이며, 호는 강수(江叟)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눌재공 박증영(朴增榮)이고, 할아버지는 박미(朴楣), 증조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외할아버지는 박영달(朴英達), 처의 아버지는 변기지(卞紀之)이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시에 급제하여, 천거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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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인물.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할 무렵 재경청주인은 궁예파와 왕건파로 나뉘었다. 배총규(裵悤規)는 반왕건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왕건의 쿠데타 직후 청주 출신의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 등이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 경종(景琮)과 함께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청주로 돌아가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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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효행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병자호란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표경(表卿), 호(號)는 공암(公巖)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이다. 부인은 이득윤(李得胤)의 딸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숙인 신평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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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관료.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이괄(李适)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벼슬이 가자되었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字는) 사눌(士訥)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장사랑(將仕郞), 군공(軍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장례원(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된 변충남(卞忠男)이고, 할아버지는 청주에 낙향한 변경수(卞景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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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당상관에 오른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 자(字)는 문거(文擧)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할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 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 삼촌은 변시익(卞時益)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득윤(李得胤)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국시(宋國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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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청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서유민은 1821년(순조 21) 천릉도감(遷陵都監)의 감조관(監造官)으로 임명되었고, 1836년(헌종 2) 안주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838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제수되었고, 이어 청주목사(淸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청주목사로 재직중인 1840년 서유민은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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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정권 초기의 무신. 경대승(慶大升)의 족형으로 경대승이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 크게 활약하였다. 손석은 자신의 부친이 수령으로서 탐학을 일삼아 오광척이 탄핵하자, 이후 오광척을 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경대승이 정중부 일당을 제거하자, 경대승을 꾀어 오광척을 죽이고 아울러 장군 김광영 등을 잡아 죽였다. 1179년(명종 9)에 장군으로서 금나라에 가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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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복(宋煥復), 할아버지는 송헌규(宋憲圭), 아버지는 송흠시(宋欽時)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헌명(李憲明)이다. 1845년(헌종 11)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6인(人)으로 합격하였다. 1845년 대과 합격 후 가주서(假注書), 1848년 정언(正言), 1850년(철종 1) 교리(校理)·수찬(修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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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청주 출신으로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손자(孫子)이며, 청주지역 여산송씨(礪山宋氏) 입향조인 송인급(宋仁及)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아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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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남곡(南谷)이다. 청주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송흠학(宋欽學)의 아들로 송흠락(宋欽樂)에게 입양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세(宋煥世), 할아버지는 송택규(宋宅圭), 외할아버지는 이낙배(李樂培)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시(增廣試)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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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성백(誠伯), 호는 문도재(聞道齋)이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 입향조(入鄕祖)인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찬성(贈贊成) 송응기(宋應期)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송방조(宋邦祚)로 송시열(宋時烈)의 부친인 송갑조(宋甲祚)와 형제이며, 아버지는 송시염(宋時琰)이다. 1659년(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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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淸州)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낙원(宋洛源), 할아버지는 송명상(宋明相), 아버지는 송환옥(宋煥玉)이다. 1816년(순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14인으로 급제하였다. 1821년 정언(正言)·장령(掌令), 1827년 이조좌랑(吏曹佐郞)·지평(持平), 1828년 경기도사(京畿都事)를 지냈다. 1831년 지평으로 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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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중겸(仲兼)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송재은(宋載殷)이며, 할아버지는 송도정(宋道鼎)이다. 아버지는 송일렴(宋一濂)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로 정언(正言) 정최행(鄭㝡行)의 딸이다.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로 참의(參議) 김종언(金鍾彦)의 딸이다. 1837년(헌종 3)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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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습정(習靜)이다. 송방조는 의빈도부사 응기(應期)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영동에 피난하여 현감 한명윤(韓明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권지정자(權知正字)·박사를 지내고, 전적이 되어 영남지방의 향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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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자는 성구(聖求)이며, 호는 서곽(西郭)이다. 송상인(宋象仁)은 현감 송복흥(宋復興)의 아들이며,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아우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예문관검열을 거쳐 함경도북평사(咸鏡道北評事)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형조좌랑이 되었다. 1612년 (광해군 4) 김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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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덕구(德求)이며, 호는 천곡(泉谷)이다. 아버지는 평강, 용안 등의 현감을 지낸 송복흥(宋復興)이고, 할아버지는 송전(宋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승은(宋承殷)이다.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기묘명현인 묵재 이문건(李文健)의 손녀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10여세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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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자수(子綏)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응경(宋應慶)이고, 할아버지는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이다. 생부는 송응기(宋應期)이며, 아들로 송시혁(宋時爀)이 있다. 음사(蔭仕)로 관직에 나가 선공감역(繕工監役)과 여러 관직을 거쳐 지례현감(知禮縣監)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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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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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字)는 택지(擇之)이다.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7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다. 할아버지는 송복흥(宋復興), 증조할아버지는 송전(宋㙉), 외할아버지는 이온(李熅)이다. 동생으로 송효급(宋孝及)이 있으며, 아들로는 연원도 찰방(察訪)을 지낸 송근(宋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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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미수(眉叟), 태수(台叟), 호는 규암(圭庵)이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송계사(宋繼祀)의 고손이며, 정랑 송순년(宋順年)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송여해(宋汝諧)이고, 아버지는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송세량(宋世良)이다. 어머니는 유승양(柳承陽)의 딸이며, 부인은 권박(權博)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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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성양(聖養)이고, 거주지는 문의(文義)였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송득규(宋得圭)이고,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이규형(李奎衡)이다.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지연(李志淵)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에 식년문과(式年文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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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맹겸(孟謙)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철규(宋徹圭),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김이정(金履禎)이다. 1843년(헌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 21위로 급제하였고, 철종 초에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수찬,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1856년(철종 7) 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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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중함(仲咸)이다. 신명구(申命求)의 아들로, 생부는 신적구이다. 청주에서 거주하였고, 1834년(헌종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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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퇴수재(退修齋), 강암(彊菴)이다. 아버지는 신세제(申世齊)이고, 할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다. 형으로 신건(申湕)이 있었으며, 부인은 여산이씨(礪山李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 승문원의 관직을 두루 거쳐 가선대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과 정헌대부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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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중경(仲卿), 호는 어성(漁城)이다. 한산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신영원(申永源)이며, 어머니는 이윤수(李允秀)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시를 거쳐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정자·성균관 전적 등을 거쳐 1563년 정언·지평을 역임한 뒤 1565년 장령이 되었다. 156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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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정오(靜吾), 호는 현포(玄圃)이다. 대사헌 신식(申湜)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 정언(正言), 사예(司藝) 등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다. 1639년(인조 17)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빈객(賓客)으로 심양(瀋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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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양오(養吾)이다.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청원군 낭성면 지역에 세거했던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용(申涌)이고, 할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다. 부인으로는 광주안씨(廣州安氏)와 풍산심씨(豊山沈氏)가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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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나라를 다스릴 때 같은 고을 사람인 아지태(阿志泰)에 의해 입전(笠全), 관서(寬舒) 등과 함께 참소를 당하였다. 이 일을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때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사건의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려주어 일이 잘 해결되었다. 이 일로 인해 군문의 장교, 종실, 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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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택경(澤卿)이며, 호는 와룡(臥龍)이다. 청원군 낭성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파주목사를 지낸 신필청(申必淸)이고, 할아버지는 신집(申潗)이며, 형은 신담(申霮), 동생은 신방(辛方)과 신탁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이 신부의 처남이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었다.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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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농학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당(二知堂)이다. 승지 신경락(申景洛)의 아들이며, 족부 영원군(靈原君) 신경식(申景植)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로서 명경시(明經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지 못하였으나 시험관의 천거로 별제(別提)에 제수되고, 이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호조낭관·옥천현감 등을 역임하였고, 1644년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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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숙정(叔正), 호는 졸재(拙齋)·임곡(臨谷)이다. 신식은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이며, 현령(縣令) 신중엄(申仲淹)의 아들이다. 이황(李滉)과 성운(成運)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지평(持平)·헌납(獻納) 등을 거쳐 1590년 집의(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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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사흠(士欽), 아버지는 신일권(申一權)이다. 청원군 낭성면 지역에 세거했던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의 인물이다. 1787년(정조 11)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사헌부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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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물, 임란의사(壬亂義士).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문길(文吉)이다. 고려 개국공신이었던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지역으로 진격할 때 왜적에게 사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국으로 끌려간 신예남(申禮男)은 그들의 온갖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인으로서의 절개를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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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계달(季達), 계수(季收)이며, 호는 하은(霞隱)이다.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 할아버지는 신서(申漵),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저(申渚)와 신식(申湜)이 있고, 동생으로는 신은(申氵隱)이 있다. 11세에 형 신식과 함께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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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재(美哉)이다. 아버지는 삼강록에 효행이 실리고 지역의 사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기까지 한 신용제(申龍濟)이며,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신완(申浣)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다음해인 1718년 28세에 죽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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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덕중(德中)이고, 문충공 신숙주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낙권(申樂權), 할아버지는 신백연(申伯淵), 증조할아버지는 신철(申澈)이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합격하였으며, 관직은 사간원 정언(正言)과 남포현감(藍浦縣監)을 지냈다. 충청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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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희범(希范)으로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서(申漵)이고, 할아버지는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원군 낭성면 지역으로 은거한 신광윤(申光潤)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인이 있었다. 아들로 신저(申渚), 신식(申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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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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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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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기(聖紀), 호는 월헌(月軒)이다. 아버지는 옥과현감을 지낸 신득홍(申得洪)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신용(申涌)이다. 부인은 광산노씨(光山盧氏)이다. 1684년(숙종 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다. 손자인 신근(申氵近)이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올랐기에 통정대부 승문원 부정자(副正字)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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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세거하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申淑舟)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황(申仲潢)이고, 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운(申澐), 동생으로 신징(申澂)이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관찰사 정규(鄭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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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덕수(德粹)이다. 청송심씨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의 인물로 아버지는 심경수(沈景洙)이고, 할아버지는 심공망(沈公望)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심지란(沈之蘭), 외할아버지는 김후창(金後敞)이다. 거주지는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대로 추정된다. 형으로 심조해(沈朝海), 심우해(沈遇海), 심유해(沈有海), 심일해(沈日海), 심연해(沈延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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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관. 조선후기 철종 때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이다. 심의풍(沈宜豊)은 순조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1857년(철종 8)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공충도(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 금위영 기사 별장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이직하게 되자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면서 군인과 백성들을 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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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아첨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같은 고을(청주) 사람인 입전(笠全)과 신방(辛方) 그리고 관서(寬舒) 등을 참소하였다. 이 참소를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이나 판결이 나지 않자 고려 태조(太祖)가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였다. 태봉의 궁예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같은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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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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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태봉 때 청주에서 무신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궁예(弓裔)는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여 청주의 호걸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궁예는 장차 청주사람을 모조리 없애버릴 목적으로 청주에서 군인으로 있던 애견(愛堅), 윤전(尹全) 등 8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불러 죽이려고 포박하여 끌고 오게 하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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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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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淸州領軍)의 장군이었던 견금(堅金)의 부장(副將)으로서 활동하였다. 견금 역시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의 장군으로 있었는데, 태조(太祖)가 즉위한 후 “청주사람들은 변심하는 일이 많으니 제때에 방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생길 것이다” 생각하고 드디어 그 고을 사람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 등을 보내 엿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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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할아버지는 연재희(延再熙), 증조할아버지는 연응복(延應福)이며, 어머니는 유장(柳莊)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조양(趙暘)의 딸 평양조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사헌부 감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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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청주 출신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관(將官)으로서 용감하게 싸워 강도(江都) 남문(南門)에서 순절하였다. 후에 조정에서 포상의 은전을 내렸다. 고원군수를 지냈다. 1675년(숙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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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였다. 그 때 왜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을 때, 적이 그의 어머니를 칼로 해치려는 순간 어머니를 안고 엎드려 함께 목숨을 잃었던 효자였다. 그는 자식 없이 죽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포상할 대상이 없어 향리인들이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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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한림(翰林)을 지낸 오윤(吳潤)의 아들이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1521년(중종 16)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진출하였다.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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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지금의 청원군 낭성면 출신이다. 무과출신으로 벼슬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수로(水路)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바다에서 죽었다. 이에 의관(衣冠)으로 장사지냈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후에 판서(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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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字)는 회백(晦伯), 호(號)는 금암(琴巖)이다. 보성부원군(寶城府院君) 오천복(吳天福)의 9세손이며 생원(生員) 오행원(吳行遠)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1639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성균관의 정6품 또는 종8품 벼슬)·감찰(監察:사헌부의 정6품 벼슬)·예조좌랑(禮曹佐郞: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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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오효원(吳孝元), 할아버지는 오인헌(吳仁憲), 증조할아버지는 오숙동(吳叔仝), 장인는 신경장(申景章)이며, 손자로는 오행건(吳行健)이 있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진사시를 거쳐 1511년(중종 6) 별시 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이 한림(翰林), 학록(學錄)에 이르렀으며 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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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관.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고, 1762년 숭릉 별검, 1764년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오르고, 1774년에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사헌부 장령이 되어 돈령부의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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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경(汝敬)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오태좌(吳台佐)의 아들로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다. 형으로 오행건(吳行健), 오행민(吳行敏),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를 거쳐 진사가 되고, 그 해에 이어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춘추관 기주관을 역임하고 송도소윤, 종묘서령을 역임하는 등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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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강(汝强)이다.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오태좌(吳台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윤(吳潤)이다. 동생으로는 오행민(吳行敏)과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에 식년시 문과에 등제하여 강원도사를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상(喪)을 당했을 때에도 예의와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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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자림(子琳)이다. 현종 때 상주국 개성현 개국백(上柱國 開城縣 開國伯)의 봉작과 수충창궐공신(輸忠創闕功臣) 칭호를 받으면서 왕씨로 성을 하사받았으며, 그의 부인 김씨(金氏)는 개성군부인(開城郡夫人)에 봉해졌다. 왕가도(王可道)의 딸들은 현종 때 원질귀비(元質貴妃)가 되었으며, 덕종 때는 현비(賢妃)로 책봉되어 상회 공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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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 종성부사 등 북쪽 변방에서 재직하며 오랑캐를 격파하는데 공이 컸다.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사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하였다.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수습하여 원병인 이순신(李舜臣)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하여 옥포(玉浦), 당포(唐浦) 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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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흥원(柳興源)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유응명(柳應溟), 증조할아버지는 유운거(柳雲擧), 외할아버지는 노건흠(盧健欽)이다. 청주에 거주하였으며 유학(幼學)으로 1819년(순조 19)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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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덕초, 호는 청매당이다. 사인(舍人) 유자빈(柳自濱)의 증손이며, 상의원 별제 유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지조가 고결하였다. 선조 때 영릉참봉이 되었다. 광해군 때에 참봉(參奉)에 음제(蔭除)되었다가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내려와 살았다. 효행이 뛰어났었다. 인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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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예술가. 초명은 인(仁)이다. 어려서 과거에 합격하여 청근(淸謹)으로써 이름이 높았다.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청주목사가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공경하였다. 1087년(선종 4)에 예빈소경으로 있으면서 고주사(告奏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고, 1093년에는 공부시랑으로 사은부사(謝恩府使)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책부원귀(冊府元龜)』를 얻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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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청주의 선비. 본관은 서산(瑞山)으로 대제학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의 아들이다. 부인은 보령현감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단종이 폐위되자 세상일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여 도학연마에 진력하였다. 세조(世祖)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관원을 보내어 그가 살던 청주의 무동에 찾았다. 그곳에 무과나무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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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치운(致雲)이며, 호는 숙옹(塾翁)이다. 아버지는 유지정(柳之程)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이로(利老)의 딸이다. 평생을 고향인 문산(文山)[현 충청북도 문의(文義)]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과 같은 난국에 처하였을 때, 국가를 보위하려 하였으나 제대로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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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원로(元老), 호는 몽암(蒙菴)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인귀(柳仁貴)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현감 이장생(李長生)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년) 진사(進士)가 되고,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官檢閱)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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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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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태봉 때 청주에서 군인으로 활동하였다. 청주는 토지가 비옥하고 호걸이 많아 이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궁예(弓裔)는 항시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장차 청주 사람을 모조리 섬멸해 버릴 목적으로 군인으로 있던 윤전과 애견(愛堅) 그리고 8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포박한 채로 잡아오게 하였다. 태조(太祖)가 즉위한 후 이들이 무고하게 죽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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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유일(幼一), 호는 창주(滄洲)이다. 좌의정 윤개(尹漑)의 증손이며, 도승지 윤담무(尹覃茂)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광해군 1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15년 서원현감이 되었고, 1617년(광해군 9) 병조좌랑과 정랑을 거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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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坪)이고, 자는 정춘(靜春)이며, 호는 장주(長洲)·천상(川上)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아들이다. 1589(선조 22)에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문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96년 병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사서·장령·필선·사간 등을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治積)을 올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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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공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이공승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정(李挺)이며, 형은 청천백(淸川伯) 이거인(李居仁)이다. 아들로는 이백경(李伯卿), 이백관(李伯寬), 이백신(李伯臣), 이백강(李伯剛), 이백현(李伯儇)이 있다.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1397년 평안남도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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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신으로 등과하여 벼슬이 관찰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본도(本道), 즉 충청도의 도중군(道中軍)으로 군사를 이끌고 검천(險川)싸움에서 고군분투하였는데 전세가 불리하게 됨에 따라 노비를 보내어 부모에게 고하고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전사한 뒤 1637년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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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1570년(선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여 의병장에 특명되고, 충주목사에 제수되었다. 품계는 가선대부(종2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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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직부(直夫)이며,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목사 이수록(李綏祿)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1년 검열, 1617년에는 충원현감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의 실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취임하고,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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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달부(達夫)이며, 호는 추월재(秋月齋)이다. 태조 때 공신 이희능(李希能)의 6대손이자 이겸의(李謙宜)의 5세손이다. 이공승의 아들은 이춘로(李椿老)와 이계장(李桂長)이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잘 지었고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直翰林)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148년(의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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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휘(子輝), 호는 희암(希菴)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덕수(李德洙), 증조할아버지 이준(李浚), 외할아버지 김상(金尙), 장인은 김광찬(金光燦)이다. 형으로 이흥직(李興稷), 이기직(李基稷)이 있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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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공제(公濟)이며, 아명은 이재(李載)이다. 아버지는 이유적(李攸績)으로 예부시랑(禮部侍郞)의 관직을 지냈다. 청주 사람으로 선종 때 소부주부(少府主簿)가 되어 왕의 명령으로 송나라에 보내는 표문(表文)을 교정하였다. 그런데 송나라 연호를 써야 할 데다 그만 요(遼)의 대안(大安) 연호를 써서 송이 그 표문을 돌려보내 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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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이며, 자는 창여(暢如)이다. 아버지는 이유민(李裕民)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여 도사를 거쳐 승지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도가 지극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다. 영조 때에는 지평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연일현감 때에 어사가 그의 직분을 다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어버이을 효성스럽게 섬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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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예산군수(禮山郡守)를 지낸 뒤 영궁(英宮) 건축의 소임을 맡아 감동관(監董官)으로 청주에 내려와 활동하였다. 이때 그는 당시의 청주군수인 이한응(李漢膺)과 함께 청주지역의 농업발전에 힘써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그의 애민위국(愛民爲國) 활동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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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무신란을 주도하여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李麟佐)의 동생이다. 무신란이 일어나 반군이 청주를 장악 할 때 가담한 인물이다. 반군은 청주성 장악 이후 신천영(申天永)과 이기좌(李麒佐)에게 청주를 지키게 하고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지나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군은 안성, 죽산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었고, 이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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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사로(師魯), 소자(小字)는 여숙(汝淑), 호는 이유당(怡愉堂)이다. 영의정 이유청(李惟淸)의 후손이며 이도(李濤)의 아들로 일족인 현감 이준(李浚)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선대로부터 청주 북일면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에 우거(寓居)하였다. 1606년(선조 39) 진사(進士)가 되고 1608년 별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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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춘(伯春)이다.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이집중(李集中), 할아버지는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낸 이호원(李浩源),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경기수사(京畿水使)를 지낸 김형로(金亨魯)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석윤(成錫胤)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진영(李震榮)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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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순필(舜弼)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목사 이성연(李聖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조좌랑 이천(李蕆)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 재랑(齋郞)·빙고별검(氷庫別檢)과 공조·호조 좌랑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옥과현감과 김화현감을 역임하면서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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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성 출신이며, 본명은 이호이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양성에서 군사 2초(哨)를 모아 3월 15일 청주성 점령에 가담했다. 반군은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관련인물은 모두 처형되었는데, 이만은 경상북도 칠곡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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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이며, 호는 설해(雪海)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이견철(李堅鐵)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 장령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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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고,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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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청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603년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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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사로 재직할 때에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특히 재물의 씀씀이를 절약하였는데, 백미 20섬, 현미 70섬, 좁쌀 80섬, 메밀 30섬, 베 1천 필을 얻어 그것을 밑천으로 이식을 취하여 이 고을의 의재(義財)를 마련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색의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 명환조」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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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양성에서 모집된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청주성을 점령할 때 이인좌(李麟佐) 군의 중군(中軍)으로 선봉(先鋒)이 되어 병영에 들어갔다. 병영에 들어간 후 이인좌의 명으로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을 죽였다. 반군이 서울을 향하여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거쳐 북상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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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무경(茂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다. 이배원(李培源)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무관 집안인 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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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 후손이다. 아들은 이자심(李資深)이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사록(南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우정언(右正言), 지내지(知內旨)를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인 공주부사(公州副使)에 부임하여서는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다시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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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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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의숙(儀叔)이다. 이순신(李舜臣)의 5대손이다. 1702년(숙종 28) 무과에 급제하였고, 경종의 재위 중에 포도대장·훈련원 도정·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형조참판으로서 훈련·금위대장을 겸임하였다. 이때 이광좌(李光佐)·조태억(趙泰億) 등의 죄상을 논박하였다가,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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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아들이다. 기량이 준매(俊邁)하여 일찍이 무과에 올라 조수와 영암군수를 지냈다. 단종이 세조(世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연풍의 백운산에 숨어 살았다. 뒤에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으로 옮겨 살았으며 행정(杏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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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1633~1709]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는 윤보(潤甫)이며, 호는 송곡(松谷)이다. 이경항(李慶恒)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를 거쳐 1660년(현종 1)에 성균관 유생으로 과제(課製)에 1등하여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그해의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문장에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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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원(仲遠)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으로 생원 이덕유(李德游)의 아들이다.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등 인륜을 문란하게 하는 난정(亂政)이 벌어지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그 뒤 외숙 김류(金瑬)가 도모하는 인조반정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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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주(貞州)이며, 자는 거실(居實)로 정주이씨의 시조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다방(茶房), 내시 등의 벼슬에 이어, 1217년(고종 4)에는 정융분도원사 조충(趙冲)의 막하로 있다가 그의 천거로 대영서승(大盈暑丞)이 되고, 백령도의 진장이 되어 처음으로 향교를 창설하여 제자를 교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신호위 녹사에 올라 도병마사를 겸하고, 뒤에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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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후(仲厚)이고, 청주 남일면 고은치(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 부인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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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이원의 고손이다. 이발(李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도(金燾)의 딸이다. 판서를 역임한 이시발(李時發)의 아우이다. 청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였다. 여러 무관직을 거쳐 산계(散階)가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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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주로 내려와서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피신시키고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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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세종 때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32년(세종 14) 식년시(式年試)에 동진사(同進士) 1등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교리로 재직 하던 1445년에는 세자의 명을 받아 양전(量田)을 시험하는 공을 세웠고, 1450년(문종 1) 경기도 광주판관(判官)으로 있을 때에 국법을 어긴 승려 설정(雪正)과 도명(道明)을 체포하는 일 때문에 군사를 내어 몹시 놀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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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덕중(德仲)이다. 아버지는 이준상(李寯相)이며, 어머니는 김이명(金以鳴)의 딸 강릉(江陵)김씨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초기(李楚奇)이다. 부인은 한경(韓熲)의 딸 청주(淸州)한씨이다. 1723년(경종 3) 성균관에서 수업할 당시 임금이 친히 황감(黃柑)을 하사하고 시사(試士)한 자리에서 수석으로 뽑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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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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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본명은 이현좌(李玄佐)이다. 청주 송면 출신으로 전라감사 이운징(李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동생은 이기좌(李麒佐)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英祖)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심유현(沈維賢), 박필현(朴弼顯), 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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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몽응(夢應), 호는 청강(淸江)이다. 이시보(李時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공달(李公達)이고, 아버지는 병마사 이문성(李文誠)이며, 어머니는 부령도호부사 우예손(禹禮孫)의 딸 능달(能達)이다. 영의정 상진(尙震)의 손자사위이다. 부인은 상붕남(尙鵬南)의 딸 목천(木川)상씨이다. 7세 때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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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위로(渭老)이다. 아버지는 광주부윤을 지낸 이회(李禬)이고, 어머니는 이경인(李敬仁)의 딸 전주(全州)이씨이다. 할아버지는 함경감사 이창정(李昌庭), 증조할아버지는 한림(翰林) 이주(李澍)이며, 부인은 최동주(崔東柱)의 딸 강릉(江陵)최씨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기 전에 이미 음직(蔭職:과거를 치지지 않고 조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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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청주에서 거주하던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할 때 가담하였다. 점령 이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이지경(李之璟)은 진천수령이 되었다. 이지경은 청주성 점령 이후 이인좌 등과 함께 반군을 이끌고 안성·죽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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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덕수(德廋)·항승(恒承)·대수(大廋)이고, 호는 성헌(醒軒)이다.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후손으로, 이만선(李萬善)의 아들이며 이만원(李萬元)의 조카이다. 정랑 이만성(李萬成)에게 입양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여당이라는 무고를 당하여 친국을 받았으나 논리정연하게 논변하여 영조(英祖)로부터 재주를 인정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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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서백(湖西伯)과 더불어 3년간이나 청주성을 지킨 현감 이흥종(李興宗)의 동생이다. 관직이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흥종과 더불어 창의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그의 형 이흥종은 충의위(忠義衛) 신분으로 시골의 군사를 모아 적을 많이 사살하였고, 북문(北門)을 뚫을 때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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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정숙(靜叔)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덕사(李德泗)의 아들이고, 이덕수(李德洙)의 조카이다.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42년(인조 20)진사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검열(檢閱)을 거쳐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646년 설서, 정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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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청주군수(淸州郡守)를 지냈다. 청주군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백성들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켰으며, 공평무사하게 일처리를 하며 농업 장려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정(善政)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監官) 나성희(羅聖凞), 김영주(金英柱) 등이 1901년에 선정비를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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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익산(益山)이며, 상서좌복야 한림학사 승지 이주(李湊)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사록이 되고, 상서도사로 직사관을 겸하였으며, 뒤에 지홍주사(知洪州使)가 되었다. 원종(元宗) 때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어 반란군의 선법(選法)을 맡았다가 김방경(金方慶)에게 붙잡혔으나 김방경의 아버지 이인의 제자였다 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 후 청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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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성경(盛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섬(尹暹)의 딸이고, 형은 삭주부사(朔州府使)를 지낸 이배원(李培源)이다. 이호원(李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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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정백(靜伯)·이정(而靜)), 호는 삼죽(三竹)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이덕수(李德洙)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6년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세마(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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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조선 개국당시 원종공신으로 봉해진 이구직(李丘直)의 증손이다.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손자이고, 전군수 이사혜(李士惠)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출사하였으며, 판관(判官)으로 있다가 정처를 소박하고 창기를 사랑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다. 세조가 즉위할 때 원종3등 공신에 녹공되었고,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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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려 초의 무신. 일찍이 궁예(弓裔)를 섬겨 은밀한 일을 탐지해 바치는 것으로 신임을 얻음으로써 무관에 등용되었다. 궁예 말년에 이르러 웅주(熊州)를 습격해 빼앗았으므로 그대로 그곳을 지키게 하였는데,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몰래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나오니, 그 수하의 병사들이 대부분이 도망해 버리게 되어 웅주는 다시 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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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안(子安)이다.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주된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정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이고,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자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나주임씨이다. 동생으로 이기직(李基稷)과 이광직(李光稷)이 있다. 16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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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918년(태조 원년) 순군리(徇軍吏)를 지냈다. 청주사람으로서 918년(태조 원년)에 순군리(徇軍吏)로 근무하였다. 이때 같은 고향사람인 청주의 배총규(裵悤規), 계천(季川)의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 매곡(昧谷)의 경종(景琮)과 함께 반역을 꾀하고 청주로 돌아가려 하였다. 이것을 복지겸(卜智謙)이 먼저 알고 밀고하므로 태조(太祖)가 사람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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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에 의해 통치되던 태봉 때 같은 고을 사람인 아지태(阿志泰)에 의하여 신방(辛方), 관서(寬舒)) 등과 함께 참소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고려 태조(太祖)가 심리하여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려주어 여러 사람들이 태조를 따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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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의중(儀仲)이고, 거주지는 청주 가산리(駕山里)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며, 동생으로는 장윤(張輪), 장량(張車量), 장복(張輻), 장원(張轅)이 있었다. 청주 가산리(駕山里)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5세손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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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우경(虞卿), 호는 우헌(愚軒)이다. 거주지는 청주 남일면 가산리(駕山里)였으며, 아버지는 장회(張淮), 동생으로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 있다. 청주 가산리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4세손이다. 성종조에 사마시(司馬試) 및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관직은 교서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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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덕부(德夫)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의 어모장군(禦侮將軍)·부사직(副司直)·장예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한 장근(張瑾)이고, 동생은 장언붕(張彦朋), 할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지낸 장공손(張恭孫)이다. 1546년(명종 1)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훈도(訓導)를 지냈다. 1562년에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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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자견(子堅)이고,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아버지는 중훈대부로 개령현감을 지낸 정인형(鄭仁亨)이고, 할아버지는 정호(鄭浩)이며, 아들로는 지평(持平)을 지낸 정사현(鄭思顯)이 있다. 1507년(중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다. 성균관에 있을 때 유생들을 이끌고 요망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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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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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1657년(효종 8)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을 지낸 정재해(鄭載海)이고, 할아버지는 정만화(鄭萬和), 증조할아버지는 정광성(鄭廣成)이며, 외할아버지는 김일(金逸)이다. 아들은 정석조(鄭錫祚), 정석범(鄭錫範), 정석년(鄭錫年)이 있다. 음관(蔭官)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1696년(숙종 22) 전국적으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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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청주사람으로서 본관은 청주이며, 자(字)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장경공(章敬公) 정해(鄭瑎)이고, 아버지는 청하군(淸河君) 정책(鄭幘)이며, 동생은 좌사간(左司諫) 정포(鄭誧)이다. 과거에 급제하고,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성균관승(成均館丞)을 지내었으며, 이어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었으나, 내인 최안계(崔安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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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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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준유(俊儒)이다. 그의 아들은 정현(鄭儇)으로 벼슬이 감찰어사에 이르렀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고종(高宗) 때 서경 어사대리(御史臺吏), 섭중낭장(攝中郞將), 장군, 시랑(侍郞),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청주사람으로 1217년(고종 4)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로서 서경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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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청주 백성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임할 때는 청주의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겨 가는 길을 막기까지 하였다.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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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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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능(聖能)이며, 호는 기주(棋洲)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5대손으로 형조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들로, 어머니는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정치화는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동생으로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다. 부인은 오위장 남정(南瀞)의 딸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아들을 얻지 못하여 형 정태화의 막내아들 정재륜(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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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백곡(栢谷)이다. 예천 출신으로 현감 정원로(鄭元老)의 증손자로 정이충(鄭以忠)의 둘째아들이다. 1552년(명종 7) 성균생원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 1565년 정언을 거쳐 예조정랑·헌납 등을 지냈다. 1568년(선조 1) 춘추관기주관을 겸직하고,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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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조인옥(趙仁沃)의 아들이다. 어려서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에 나가 상호군, 전성진첨절제사, 옹진진절제사, 우군동지총제, 공조참판, 경기감사, 평안도도관찰출척사,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절제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35년(세종 17) 병으로 벼슬을 사퇴하고 양주 서산(西山) 선영 옆에 살다 76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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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단종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 배향공신이며 개국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이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조뢰(趙賚)의 손자이며, 이조참의(吏曹參議) 조순생(趙順生)의 아들이다. 음보로 세종 때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한번은 병조의 군적이 분실된 일이 있어 담당자들이 모두 죄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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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고려말의 권문세족이었던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조충산(趙忠山)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율(趙溧)이다. 1431년(세종 13)에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음사(蔭仕)로 여러 군읍의 수령을 지냈다. 관직은 숭록대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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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월여(月如)이다. 출신지는 청주(淸州)였으나 주된 거주지는 충청남도 온양(溫陽)[지금의 아산]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조상현(趙尙賢), 형은 조세익(趙世翼), 동생은 조세경(趙世經)이 있다. 1681년(숙종 7) 소과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1689년 문과 증광시(增廣試)에서 병과 19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예조정랑(禮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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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솔지(率之), 호는 화계(花溪)이다. 고려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8세손이다. 1442년(세종 24)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육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청주에 머무를 때 현 제일교회 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묘소는 청원군 북일면 구성리 아이(阿耳)고개에 있다. 1854년(철종 5) 곡수성신사(曲水誠信祠)에 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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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고려말의 권문세족이었던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의방(趙義方)이다. 1411년(태종 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431년(세종 13) 『태종실록(太宗實錄)』이 완성될 때 태종(太宗)의 존호를 제정하는데 활약하였다. 품계는 숭록대부(崇祿大夫), 관직은 이조판서(吏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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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다. 고려말의 권문세족이었던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고려말 예의총랑(禮儀摠郞)을 지낸 조정(趙靖)이고, 장인은 전교부령(典校副令) 방순(方旬)이다. 아들 조율(趙溧)은 청주지역에 세거하는 평양조씨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祖)이다. 1413년(태종 13) 문과에 급제하여 1415년 사천(泗川)과 울산(蔚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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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조순도(趙順道)이며, 할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조빈(趙玭)이다. 청주 구성리(九城里)에서 거주하다가 인근의 화장리(花庄里)[현 청원군 내수읍 은곡2리]로 옮겨 살았다. 품계는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였고, 관직은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지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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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字)는 신여(愼汝)이다. 아버지는 첨정(僉正) 조태수(趙泰壽)이며,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뒤 영소전참봉(永韶殿參奉)이 되었고, 세자익위사 시직과 호조좌랑을 거쳐 함양군수·청풍부사·능주목사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청주목사가 되어 피폐한 민심을 잘 다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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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무신. 1617년(광해군 9)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일등공신(靖社一等功臣)이 되었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선봉장이 되어 영전에서 승리한 공으로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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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율(趙溧)이고, 할아버지는 조의방(趙義方)이다. 1421년(세종 3)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숭록대부 상장군 겸 좌우군 지휘사에 이르렀다. 본래의 묘는 실전(失傳)되어 1958년 후손들이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에 제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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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字)는 여익(汝翼), 호는 지재(止齋)이다. 조상주(趙相周)의 아들이며, 생부는 조학주(趙學周)이다. 할아버지는 조보(趙普), 증조할아버지는 조유성(趙惟聖), 외할아버지는 유인협(柳寅協)이다. 부인은 직장(直長) 김실(金實)의 딸 안동김씨이다. 1744년(영조 20)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예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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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흡여(潝如)이다. 교리 조수익(趙守翼)의 아들이다. 광해군 말에 등용되어 승문원 정자가 되고, 1623년(인조 1) 김류(金瑬)·이귀(李貴) 등이 반정을 꾀함을 알고 이에 호응하여 포의(布衣)의 몸으로 이천(利川)으로 가서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군병을 모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웠다. 인조가 즉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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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오(受吾), 호는 뇌봉(雷峯)이다. 부원군 지용기(池湧奇)의 8세손으로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지경청(池景淸)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지란(池蘭), 증조할아버지는 지영수(池永洙), 외할아버지는 송수(宋璲)이다. 부인은 윤직방(尹直方)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재취한 부인은 성산이씨 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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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지(受之)이다.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涌寄)의 후손으로, 사과(司果) 지경담(池景湛)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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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字)는 경첨(景瞻)이다. 아버지는 지만유(池萬游), 할아버지는 지광일(池光日), 증조할아버지는 지성귀(池聖龜), 외할아버지는 이양(李瀁)이다. 거주지는 청원군 가덕면 은행리로 추측된다. 1752년(영조 28)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의 21위로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다. 1763년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나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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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字)는 자수(子受), 호는 관곡(寬谷)이다. 의당(義堂)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 산내이상면 문박리(현, 청원군 낭성면 문박리)이다. 아버지는 채유온(蔡有溫)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龍衛) 행부사과(行副司果)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채무민(蔡無閔), 증조할아버지는 채하(蔡河), 외할아버지는 유경훤(柳景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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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직경(直卿)이다.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채응호(蔡應昊)이며,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채종길(蔡宗吉)이다.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아들은 진사(進士)로 직장(直長)을 지낸 채지숙(蔡之淑)과 형 채적(蔡頔)의 집안으로 출계한 채지익(蔡之瀷)이 있다. 음사(蔭仕)로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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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선여(善餘), 호는 송촌(松村)이다. 아버지는 승지 채낙(蔡洛)이고, 어머니는 찰방 김훈(金壎)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었으나 조정에서 폐모론이 일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시의 상당산(上黨山)[419m]아래에 살면서 독서를 하였다. 인조반정 후 천거되어 희릉재랑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여 나아가지 않았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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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918년(태조 원년) 한찬(韓粲)을 지냈다. 청주사람으로 일찍이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섬겼다. 태조 왕건이 918년 6월 병진에 포정전에서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라 하였는데, 왕이 한찬 총일에게 “이전 임금(궁예(弓裔))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였는데, 그대의 고향인 청주는 토지가 비옥하고 호걸이 많아 이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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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양성현의 가천(加川)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최경우는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양성에서 반군과 말을 모집하였으며, 3월 15일 청주성을 장악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李麟佐)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최경우는 좌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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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자는 정보(正甫)이고, 구명은 거린(巨鱗)이다. 중서주서(中書注書)로서 청주통판(淸州通判)이 되었을 때 정사를 돌봄에 있어서 이속(吏屬)들에게는 엄하고 백성들에게는 긍휼(矜恤)하였다. 여러 번 승진하여 좌사간에 이르렀고, 기거사인으로 서해도 안찰사가 되었다. 상주사록으로 있을 때에 청빈함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122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이 실각하자 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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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이다. 청주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출신으로 영의정 완성부원군 최명길(崔鳴吉)의 형이다. 아버지는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낸 최기남(崔起南)이며,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 증조할아버지는 최업(崔嶪), 처의 아버지는 종실인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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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화(江華)이고, 자는 일민(日敏)이며, 호는 퇴암(退庵), 초명은 승(昇)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증직된 최혁(崔爀)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좌랑으로 증직된 최정화(崔挺華)이다. 처의 부모는 통덕랑 이시무(李始茂)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관직에 있을 때 선조(先祖)인 제정공(齊貞公) 최용소(崔龍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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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경(璟)이다. 고종 때 감찰어사(監察御使) 예부낭중(禮部郞中), 원종(元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간의대부(諫議大夫), 국자대사성(國子大司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조호(世子調護),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좌상시, 판삼사사(判三司事), 재추소사존(宰樞所司存),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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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공보(公甫)이다.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그의 처는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언니로, 윤번(尹磻)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18세의 나이에 음보로 충의위사용이 되고, 부사직으로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나주판관을 거쳐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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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순(子順)이다.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가 곧 집현전정자로 뽑혔다. 이어 부수찬·지제교로서 경연관을 상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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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의지(宜之)이다. 한강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한사기(韓謝奇)이고, 아버지는 사숙공(思肅公) 한악(韓渥)이며, 아들은 문경공(文敬公) 한수(韓脩)이다. 형 한대순(韓大淳)과 동생 한중례(韓仲禮), 한방신(韓方信)이 있다. 음직으로 벼슬을 받고 충혜왕의 신임으로 호군에 특진하여 대호군(大護軍), 삼사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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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온(仲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화산(韓華山), 할아버지는 한태(韓泰), 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이다. 그의 아들로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한 한일제(韓日躋), 한일휴(韓日休), 한일신(韓日신)이 있다. 손자(孫子)는 한준(韓峻)이다. 1528년(중종 23)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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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건국 공신 및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아버지는 한지원(韓智原)이다. 형으로 한만, 한간이 있었으며, 동생은 한영이 있었다. 한란(韓蘭)[?~?]은 청주한씨의 시조이며, 그 선계(先系)는 기자(箕子)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란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그곳에서 향학(鄕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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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준(子濬)이며,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다. 예문관제학 한상질(韓尙質)의 손자로, 한기(韓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두 딸은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와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글을 읽어서 성취한 바 있었으나 과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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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한강(韓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한사기(韓謝奇)이고, 아버지는 사숙공(思肅公) 한악(韓渥)이며, 형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아들로는 한휴(韓休), 한안(韓安), 한녕(韓寧), 한열(韓烈)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용략이 있어 상장군(上將軍)까지 올랐으며, 여러 관직들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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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명길(鳴吉)이며, 호는 구암(久菴)이다. 할아버지는 한여필(韓汝弼), 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장인은 구사중(具思仲)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5년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逑)[1543~1620] 등과 함께 교정낭청에 임명되어 『경서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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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후(子厚)이며, 호는 의암(義菴)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한창(韓昌)이며, 어머니는 판나주목사 이욱(李勗)의 딸이다. 예종의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가 그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사온직장이 되고, 1463년(세조 9) 사옹별좌로 있을 때 장녀가 세자궁의 소훈(昭訓)으로 선발됨으로써 1466년 의빈부도사에 발탁되었고,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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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숙경(叔敬)·경중(敬仲)이며, 호는 신재(信齋)이다.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 우정언, 전리정랑, 예문응교, 공부총랑, 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하였다.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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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질(仲質), 호는 죽소(竹所)이다. 호부상서(戶部尙書)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 그의 아우이고, 세조 때 공신 한명회(韓明澮)는 그의 손자이다. 1390년(공양왕 2) 6월 천추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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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응신(應辰)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한공의(韓公義), 할아버지는 부윤을 지낸 충간공(忠簡公) 한이(韓理)이다. 아버지는 한승순(韓承舜)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로 중추부(中樞府) 판사(判事)를 지낸 이근(李懃)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로 아버지는 판사(判事)를 지낸 권소(權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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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공서(公瑞)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첨정 한운(韓運)이고, 어머니는 이신(李愼)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정자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그 뒤 예조좌랑·병조좌랑·지평·병조정랑·승문원부응교·의정부검상과 사인 등을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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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명필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字)는 맹운(孟雲)이며, 호는 유항(柳巷)이다. 한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평간공(平簡公) 한공의(韓公義)이며, 중찬(中贊) 한악(韓渥)이 할아버지이다. 그의 아들은 한상환(韓尙桓), 한상질(韓尙質), 한상경(韓尙敬), 한상덕(韓尙德)이다. 1347년(충목왕 3) 나이 15세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필체가 뛰어나 충정왕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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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윤(韓鈗), 할아버지는 한양호(韓養浩)이고 외할아버지는 김리구(金履久)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式年) 전시(殿試)에 병과(丙科) 26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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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문혜공(文惠公) 한강(韓康)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사기(韓謝奇)이며, 형은 한영(韓永)이다. 한악(韓渥)의 아들은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한방신(韓方信)이다. 한대순은 관직이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에) 이르렀다가 충정왕 말년에 기장감무(機張監務)로 강직되었다. 한공의는 청성군(淸城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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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옥경(沃卿)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전구서승(典廐署丞) 한명진(韓明溍)이고, 어머니는 권제(權踶)의 딸이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조카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469년(예종 1) 부사과로서 진사시에 장원하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이 되고, 1475년 형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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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영조(英祖)~정조대의 문신으로 청주목사를 지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예지(禮之), 호는 광암(廣庵)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으로 증직된 한후유(韓後裕)이고,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민익수(閔翼洙)의 딸이다. 부인은 김치만(金致萬)의 딸인 정부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한상이(韓象履)이고, 2남은 한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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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경일(慶逸)이며, 호는 월포정(月浦亭)이다. 할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 아버지는 한기(韓琦)이고, 형 한일제(韓日躋), 아우 한일신(韓日신), 아들은 한준(韓峻)이다. 1567(명종 22)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宣祖)가 피난을 가자 단검(短劍)을 잡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여 용만(龍灣)에 이르러 선조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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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탁이(卓爾), 호는 설사(雪蓑)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한기(韓琦), 증조할아버지는 한영년(韓永年)이고, 외할아버지는 윤륜(尹輪), 아버지는 한일휴(韓日休)이다. 아내는 이의정(李宜正)이며 이사덕(李師德)의 딸이다. 아들 한사영(韓士英)이 있다. 1605년(선조 38) 증광 진사(增廣進士)시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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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사정(士精)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한익형(韓益亨), 할아버지는 한세헌(韓世憲), 외할아버지는 이석하(李碩夏), 아버지는 한경규(韓慶奎)이다. 아내는 변희적(卞熙績)의 딸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시에 병과(丙科) 급제하였다. 지평(持平)을 거쳐 1763년에 정언(正言), 1768년 장령(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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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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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통지(通之)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절(韓𥑇)이며, 어머니는 중군총제 조서(趙敍)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18세로 군직에 음보(蔭補)된 뒤 감찰·장령·사복시소윤을 거쳐, 1467년(세조 13)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좌부승지에 오르고 이어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그 해 12월 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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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이다.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韓永矴)의 아들이며, 덕종의 비(妃) 인수왕후(仁粹王后)의 아버지로, 성종(成宗)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1417년(태종 17) 진헌부사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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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경장(景張), 호는 석탄(石灘)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 중종대에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낸 한윤창(韓胤昌), 할아버지는 한극공(韓克恭)이다. 아버지는 한천뢰(韓天賚)이고, 외할아버지는 변명윤(邊明胤)이며, 장인는 이언형(李彦亨)이다. 자녀로는 한필원(韓必遠)과 한필명(韓必明)이 있다. 1590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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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허직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거주지는 개령(開寧)이었다. 아버지는 허좌(許佐)이고, 할아버지는 허돈(許暾)이며, 증조부는 허박(許璞)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다음해에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곧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고종 2)에는 예조정랑(禮曹正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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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918년(태조 원년) 순군낭중(徇軍郞中), 병부낭중(兵部郞中)을 지냈다. 청주사람인데, 태조(太祖)가 현율을 순군 낭중(徇軍郞中)으로 삼으니, 마군장군 배현경과 신숭겸(申崇謙)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임춘길(林春吉)이 순군리(徇軍吏)로 있으면서 반란을 도모하다가 일이 탄로되어 사형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병권을 잡고 있으며, 자기 고향(청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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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역임했다. 재임당시 청주목의 산동 세 개의 면을 사재(私財)로 진휼하였다. 그 행적을 기려 비를 세웠으나 조정의 명령으로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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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때 충청병영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초명은 진(震), 자는 춘경(春卿)이다. 첨절제사 홍수명(洪受命)의 아들이다. 충청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에 의하여 청백함이 인정되어 1727년(영조 3) 막료가 되었다. 이인좌의 난으로 1728년 청주읍성이 함락되고 이봉상이 잡힌 다음 죽음을 당하자, 그는 자신이 절도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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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원구(元九), 호는 만주(晩洲)이다. 청주 판교리(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 증조할아버지는 홍해(洪瀣), 외할아버지는 남충원(南忠元), 장인은 김발이다. 아들로 홍일우(洪一宇) 등 4형제를 두었고, 동생으로 홍석주(洪錫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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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만계(晩溪)로 청주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를 근거지로 한 남양홍씨 집안의 인물이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이정(洪頤正), 할아버지는 홍순각(洪純慤)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홉 살 때 병든 어머니께서 민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마침 장마로 물이 넘쳐 강가에 그물을 치고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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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서화가.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춘산(春山)·연탄(硏灘)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였으며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홍정주(洪定周), 할아버지는 홍필영(洪必榮), 증조할아버지는 홍희택(洪羲宅), 외할아버지는 조현성(趙顯誠)이다. 아들이 없어 홍우필(洪祐弼)의 아들 홍승목(洪承穆)을 양자로 들였다. 1850년(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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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동학농민전쟁 때 정부군을 이끌었던 조선 말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성남(聖南), 호는 규산(圭珊)이다. 초명이 재희(在羲)이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발하였을 때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있었는데, 명성황후(明成皇后)를 궁궐에서 탈출시킨 공으로 중용되었다. 1887년에는 충청병마절도사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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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정경(鼎卿), 호는 월탄(月灘)이다. 아버지는 홍곽(洪霍)이며,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1653년(효종 4) 알성문과(謁聖文科)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수찬(修撰),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으며, 1664년(현종 5)에는 사간(司諫)이 되었다. 같은 해에 서원현감(西原縣監), 즉 청주(淸州)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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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의 무신. 환선길은 동생 향식(香湜)과 함께 태조(太祖)를 섬겨 왕조 창업에 공로가 있었으므로 환선길을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임명하고, 심복으로써 믿으면서 항상 정예군(精銳軍)을 거느리고 왕궁을 숙위(宿衛)하게 하였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처가 말하기를 “당신의 재주와 능력이 남보다 훨씬 뛰어나므로 사졸(士卒)들이 당신에게 복종하고 있으며, 큰 공훈을 세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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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려 초의 무신. 청주사람으로서 청주 영군장군(領軍將軍) 견금(堅金)의 부장(副將)으로서 활동하였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하자 청주 영군장군 견금이 부장(副將) 연익(連翌), 흥현(興鉉)을 데리고 태조를 뵈오니, 각각 말과 비단을 차등 있게 주었다. 태조가 즉위한 후 ‘청주사람들은 변심하는 일이 많으니 제때에 방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생길 것이다’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