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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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致遠 |
영어음역 | Park Chi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사이(士邇)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호(朴廷虎),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증직된 박수기(朴守基),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생원(生員) 이양진(李陽進)의 딸이다.
[생애]
몰년(沒年)에 대해 다른 기록에는 1764년(영조 40)이라 한 곳도 있다.
[경력]
1708년(숙종 34)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7인으로 합격하였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외직(外職)으로 경상도사(慶尙都事), 양성현감(陽城縣監)을 역임하고 곧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에 임명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벼슬은 판윤(判尹), 숭정대부(崇政大夫)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활동사항]
강직하여 1721년(경종 1) 노론(老論)으로, 달리 세 명의 간신(諫臣)으로 불린 어유룡(魚有龍), 이중협(李重協)과 함께 왕세제(王世弟, 영조(英祖))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주장하다 소론(少論)의 반대로 실패하고,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노론이 실각하자 고성(固城)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종부시정(宗簿寺正)에 기용되고 이듬해 보덕(輔德)을 거쳐 사간(司諫)에 올라 소론 일파의 극형을 주장하다 탕평(蕩平)을 펴려던 영조의 뜻에 거슬려 1728년 다시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54년(영조 30) 유배에서 풀려나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1756년 가의대부(嘉義大夫),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기노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63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에 올랐다.
[저술]
『설계수록(雪溪隨錄)』이 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