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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청주 출신의 인물. 궁예(弓裔) 정권 하에서 같은 고을 사람 아지태(阿志泰)로부터 참소를 당하였다. 아지태는 아첨을 좋아하고 간사하였는데, 궁예에게 같은 고을 사람 관서(寬舒)와 입전(笠全) 등을 참소할 것을 청하였다. 해당관리가 이 사건을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다. 왕건(王建)이 당장 그 흑백을 분간해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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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청주인으로 고려 초에 서울에 와 있던 인물이다. 태조(太祖)의 즉위 초에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과 관준 등이 서울에 있으면서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하면서 없애버릴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향의 인물로부터 참소를 당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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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 청주 출신으로 1595년(선조 28)에 무과에 등과하여 관직이 수사(水使)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함이 세상에 알려져 여러 번 포상을 받았고, 사서(賜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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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용암(勇菴)으로 돈령(敦寧) 김복원(金復元)의 현손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유고(遺稿)로 『사장(詞章)』 2권, 『성리설문답(性理設問答)』 3권, 『경설(經說)』 1권, 『비문(碑文)』 1권 등 7권이 전한다. 전간재의 제자로서 성리학에 밝고 문장에 뛰어나며 효우와 독행(篤行)이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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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918년 태조(太祖)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에 관직을 전면 재임명하였을 때 김언규(金言規)는 일길찬(一吉湌)으로 백서성경(白書省卿)에 임명되었다. 태조 초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으로부터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무고당하였다. 그러나 김언규가 그것을 알고 견금을 체류시키고 관찰하도록 아뢰자, 태조가 김언규의 말을 따랐다. 사무에 능숙하고 청렴하였으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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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방(子房), 호는 반곡(盤谷)이다. 상락군(上洛君)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이며, 음사(蔭仕)로 출사하여 1552년(명종 7)에 도사(都事)를 지내다가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만 매달렸다. 거처하는 동네 아래에 반곡(盤谷)을 쌓아 호를 반곡이라 하고 지냈다. 그가 남긴 제영(題詠)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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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호는 농곡(聾谷)이다. 아버지는 노종원(盧從元)이고, 아들은 목사를 지낸 노문한(盧文漢)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駕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등제하지 못하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경적(經籍)에 심취하였다. 사림에서 문묘종향을 건의할 정도로 문명(文名)이 높았다. 처사로서 세인(世人)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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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초자는 신중(愼仲), 자는 여림(如林), 호는 한원(漢源)이다. 아버지는 진사 노명흠(盧命欽)이다. 영조(英祖) 때 영의정이었던 홍봉한이 청주목사로 재직할 당시인 1742년(영조 18)에 실시된 청주 백일장에서 6살의 나이로 장원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홍씨 일문의 자손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1765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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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대해(大海)이며, 호는 사지당(四知堂)이다. 경원군파(慶原君派) 인물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체화당사(棣華堂祠)의 배향인물인 노일원(盧一元)이며, 형으로 노준(盧浚)과 노척(盧滌)이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청주에서 은거하였다. 인조 대에 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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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나주(羅州)이며, 자는 세숙(世叔)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박제(朴悌)이고, 동생으로 박익한(朴翊韓)과 박일한(朴一韓)이 있었다. 1660년(현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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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청주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서백(恕伯)이며, 호는 선재(扇齋)이다. 아버지는 박몽신(朴夢信)이고, 동생 박효열(朴孝悅), 박신열(朴信悅)이 있다. 청주에서 거주했는데, 1568년(선조 1)에 증광 진사에 합격하였다. 학행(學行)이 널리 드러났고,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흥덕구 강서동의 송곡평(松谷坪) 선영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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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주지역의 효자·학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중신(仲申)이며, 호는 백음(栢陰)이다. 청원군 내수읍 비상리 출신이다. 세종 때 예문관제학을 지낸 변효문(卞孝文)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승종(卞承宗), 증조할아버지는 변심(卞鐔)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성장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함이 지극하여 생전의 봉양과 사후의 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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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자는 휘경(輝卿), 호는 일공(一笻)이다. 변유명(卞惟明)의 아들이며, 변경복(卞景福)의 손자이다. 1635년(인조 13)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흥덕현감(興德縣監)에 그쳤으나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벼슬에서 물러나던 날 짐이 아무 것도 없자, 어머니가 ‘맑은 것은 네 지조(志操)라도 집에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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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군식(君式), 호(號)는 안소당(安素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안악군수(安岳郡守)를 지낸 송세훈(宋世勛),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송남수(宋柟壽)이다. 아버지는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지내고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에 증직된 송희진(宋希進)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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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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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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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정치가.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두(石頭) 스님·우재(愚齋)이다.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아버지는 증 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명화(申命和)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임당이다. 부인은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谷山)노씨이다. 어려서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익히고, 1564년(명종 19)에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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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서휘(瑞輝)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과 이인형(李寅馨)이 있다. 부인은 초계정씨이다. 1654년(효종 5) 식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에서 은거하며 경학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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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문원(聞遠)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부친은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이 있고, 동생으로 신항서원의 사액을 청한 이인빈(李寅賓)과 이인정(李寅貞)이 있다. 부인은 순흥안씨이며, 경상우병사와 함경도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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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석여(錫汝) 또는 보여(寶汝)이며, 호는 동계(東谿), 건천자(乾川子)이다. 첨정 조태수(趙泰壽)의 아들이다. 재종형인 조문명(趙文命)의 딸이 진종(眞宗)의 왕비로 간택되는 등 조선 후기 소론의 벌열가문인 풍양조씨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문장으로 자처하였다. 특히, 산문에 특장이 있어 당시 팔문장(八文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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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호는 운옥(雲獄)이다. 지필동(池必東)의 아들이며,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에 청주를 피하여 영남·호남지방을 여행하는 동안 사회제도의 모순을 간파하고 시정을 노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회덕으로 옮겨 학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서 만민평등(萬民平等), 국민개병(國民皆兵), 전제개혁(田制改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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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군범(君範)이며,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채영용(蔡領用)이며, 어머니는 유씨(柳氏)로 유승주(柳承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어머니가 『등왕각서(藤王閣序)』를 말로써 가르치면 한번에 암송하는 재질이 있었다. 8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였고, 또한『상서(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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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근초(謹初), 호는 쌍백당(雙栢堂)·쌍백당이다. 아버지는 홍해(洪瀣)이며, 거주지는 청주 산내일면 판교리(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이다. 부인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섬계서당을 열어 조선 중기 청주지역 사림들의 교육에 앞장 선 이잠(李潛)의 딸이다. 동생으로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된 홍순선(洪純善)과 집의(執義)를 지낸 홍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