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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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增榮 |
영어음역 | Park Jeungyeong |
이칭/별칭 | 눌재공,교리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재학 |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희인(希仁)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8세손으로, 눌재공파의 파조(派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박미(朴楣), 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증조할아버지는 박절문(朴切門), 외할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처부는 박영달(朴英達)이다. 아들 박훈(朴薰)[1484~1540]은 기묘명현(己卯名賢)이다.
[활동사항]
1483년(성종 14) 문과(文科)의 춘당대시(春塘臺試)에서 병과(丙科) 11위로 급제하였으며, 1486년의 중시(重試)에서 을과(乙科) 2위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그 뒤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과 홍문관교리(弘文館 校理)를 지냈는데, 시문(詩文)과 필법(筆法)으로 당대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
1488년 예빈시직장으로 있을 때 허종(許琮)을 따라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을 의주(義州)의 의순관(義順館)에서 맞이하였는데 동월이 그의 시문과 필법을 보고, 시문은 두보(杜甫)[712~770]와 같고, 필법은 조맹부(趙孟頫)와 비슷하다며 감탄하였고, 우아한 성품과 단정함을 기려서 ‘희인’이라 이름하였다.
명나라의 부사 왕창(王敞)도 시에는 호연(浩然)의 기상이 있고, 글씨는 당나라 현종간의 천보서법(天寶書法)을 계승하였으며, 원나라 제일의 서예가인 조맹부의 서체를 잘 쓴다고 놀라워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씩씩한 기질이 있었고, 매우 청렴하여 사람들이 존경하였으며, 성종(成宗)이 그를 깊이 사랑하여 용연(龍硯)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홍문관교리로 재직 중 부친상을 당했는데, 여막에서 병을 얻어 29세의 나이에 죽었다.
[저술]
『눌재유고(訥齋遺稿)』가 있다.
[묘소]
당시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호평동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신촌리 대산(大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비상리에 있는 국계서원(菊溪書院)에서 제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청원지역에 세거하는 밀양박씨(密陽朴氏) 규정공파 종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눌재공파의 파조이다.